LOGIN하성에서 돌아온 답은 두 줄이었다.
[학생 사진 사용 여부와 기존 악기 대여를 연계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갤러리 보관 악기는 대여처 확인 중입니다.]
서경은 먼저 민지의 담당 교사에게 연락했다. 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덧붙이자 교사는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아이가 그 문제로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말도 전했다.
전화를 끊은 뒤 서경은 다시 업무 메일을 열었다.
유세라의 갤러리에서 경매 자료의 보완본이 도착해 있었다. 다음 날 보내겠다던 자료가 한 주를 넘겨 온 것이다. 이번에는 운송 내역까지 붙었다. 서경은 전달 목록을 작성하다가 파일 하나를 다시 열었다.
새벽의 천사.
작품의 취득 이력에는 프랑스 개인 소장가로부터 인수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첨부된 운송 서류의 출발지는 방콕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작품의 문서가 잘못 붙은 줄 알았다. 작품 사진 아래의 관리번호를 보자 같은 번호였다. M-17.
그녀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득 이력과 운송 경로가 다른데 중간 대여 이력이 있나요?”
“서류에 있는 게 전부인데요.”
“권 대표님 쪽에서 빠진 이력을 요청하셔서요.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아요.”
담당자가 잠깐 기다려달라고 했다. 음악이 흘렀다. 그 사이 서경은 번호 뒤에 붙은 사진을 확대했다.
사진의 받침대에는 길게 팬 홈이 있었다. 도록 사진을 옆에 띄우자 그 자리만 매끈했다.
서경은 도록을 돌려놓고 빛의 방향을 맞춰보았다. 홈은 보이지 않았다. 사진 아래에 촬영일을 적고, 받침대 부분을 따로 표시했다. 누구에게 보여줘도 같은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담당자가 돌아왔다.
“관장님은 지금 외부 일정이시라서요. 윤 비서님이 설명해주실 겁니다.”
갤러리 작품의 운송 경로를 왜 시우의 비서가 설명할까.
서경은 그 질문을 삼켰다.
“그럼 회신 메일로 부탁드릴게요.”
통화를 마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윤 비서였다.
“서류는 전달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는 인사 없이 본론부터 말했다.
“제가 질문받으면 답을 해야 하니까요.”
“하성에서 물으면 태산으로 연락하라고 하십시오. 해당 거래는 저희 검토가 끝났습니다.”
“경로가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한 줄만 적어주시면…….”
“한서경 씨.”
사모님 대신 이름이 나왔다.
서경은 등을 바로 세웠다.
“오늘 요청하신 사항은 제가 대표님께 함께 보고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윤 비서는 예상하지 못한 답을 들은 듯 잠깐 말을 멈췄다.
서경은 그 틈에 덧붙였다.
“제가 무엇을 물었는지도 같이 적어주세요. 프랑스에서 샀다는 작품이 왜 방콕에서 왔는지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 한 줄이 아직 없어서, 제가 전달을 못 끝냈어요.”
서경은 자료를 하성 담당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설명이 누락된 점과 윤 비서에게 문의한 경위도 짧게 붙였다.
사진 동의서에는 당장 서명하지 못하겠다는 답도 보냈다. 내용을 먼저 확인하겠다고 적자, 수신 확인 표시가 곧 켜졌다.
***
태주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보내주신 자료 확인했습니다.”
“제가 잘못 본 걸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없애려고 원문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서경은 서류철 위에 손을 놓았다.
“담당자가 설명을 안 해줘요. 그냥 전달하래요.”
“추가로 캐묻지는 마십시오. 그쪽에서 이미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제가 답을 못 받았다는 것도 기록에 남겨주세요.”
“메일에 붙여주신 내용 그대로 요청하겠습니다.”
서경은 보낸 편지함을 닫았다. 윤 비서가 막았던 질문은 이제 하성의 요구가 되어 돌아갈 것이었다.
태주가 말했다.
“감정서 발급처에도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답을 받으면 공유하겠습니다.”
“그전에 경매가 열리면요?”
“그 문제가 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태주가 조용한 곳으로 옮긴 것 같았다.
“하성 심의가 오늘 보류됐습니다. 서류가 부족한 상태로 낙찰 자금을 쓰겠다는 안은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대표님인데도요?”
“회사 돈입니다. 내 의심을 확인하려고 쓸 수 있는 돈은 아닙니다.”
태주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럼 이번에는 못 막는 거예요?”
“50억을 더 주고 사오면, 그쪽은 서류를 안 보여줘도 돈을 번 겁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서경 씨가 표시한 받침대 사진을 운송 자료와 대조하겠습니다. 값을 올릴 게 아니라, 저 물건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야 합니다.”
서경은 표시해둔 사진을 다시 열었다. 자신이 짚은 작은 홈을 이 사람도 보고 있었다.
“민지한테 사진 때문에 악기를 뺏기지는 않을 거라고 답해주고 싶어요.”
“그쪽 확인부터 받겠습니다.”
태주의 목소리가 잠깐 부드러워졌다.
“아까 같이 먹은 김밥값도 정산해야겠군요.”
서경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깜빡였다.
“그건 행사 도시락인데요.”
“그래서 하성 참석자 식대로 넣으라고 했습니다. 학생 도시락 먹고 모른 척하면 곤란하니까요.”
서경이 짧게 웃었다.
“그런 보고까지 하시는군요.”
“서경 씨가 웃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 뒤에는 짧은 침묵이 왔다. 서경이 먼저 웃음을 거두지 않자 태주도 전화를 서둘러 끝내지 않았다.
***
저녁에 돌아온 시우는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
그는 외투를 벗어 걸고 서경이 차린 식탁에 앉았다. 서경은 맞은편에서 수저를 들었다.
“운송 이력 물어봤다며.”
시우가 생선 살을 발라 제 접시에 놓았다.
“첨부가 빠져서요.”
“원래 네가 그렇게 꼼꼼했지.”
서경의 수저가 멈췄다.
“좋은 뜻이야.”
시우가 웃었다.
“그런데 일에는 각자 맡은 부분이 있어. 네가 물어보면 담당자들이 대표 지시인 줄 알고 불필요하게 일을 키워. 내가 책임지는 일이고, 세라 씨도 있는데.”
“그럼 다음에는 누구에게 먼저 물을까요?”
“나한테.”
그가 너무 빨리 대답해서 서경은 잠깐 그를 바라보았다.
시우가 물컵을 들었다.
“내가 모를 일은 없어.”
시우가 발라둔 생선 살을 그녀의 접시에 옮겼다. 가시가 하나도 없었다. 늘 그랬다. 서경이 입에 넣기 전에 그가 전부 골라냈다.
서경은 수저를 들어 밥만 먹었다. 채린에게 보낸 돈도, 돌아오지 않은 악기도, 그가 몰랐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자리는 이제 없었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식사 뒤 시우가 서재로 들어갔다. 서경은 설거지를 하다 물을 잠그고, 잠깐 젖은 손을 보았다. 오른손 약지는 오래 구부리고 있으면 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천천히 손가락을 펴자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밤 10시가 가까워져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하성 담당자가 전달한 감정서 발급처의 답이었다. 아직 최종 확인은 아니라며 번역문이 덧붙어 있었다.
제시된 사본만으로는 발급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원문 전체와 문서 번호가 필요하다.
도록에 실린 감정서 사진에서는 하단이 잘려 있었다. 발급 기관의 직인은 보였지만 문서 번호가 있어야 할 부분은 없었다.
서경은 이미 정리해서 갤러리로 돌려보낸 서류 목록을 열었다. 인쇄 원본이 별도 봉투에 들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원본을 직접 본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아래에 수령 담당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상혁.
서경은 처음으로 그 이름을 비서라는 호칭 없이 읽었다.
민지는 악기 없이 왔다.서경은 먼저 케이스를 찾지 않았다. 쉬기로 한 수업 다음 주였다. 아이가 오늘은 듣기만 하겠다고 했고, 보호자와도 그렇게 정해두었다.준우가 보면대 아래에서 파일을 꺼냈다.“너 이거 놓고 갔어.”“알아.”민지가 받았다.“알면 가져가지.”준우는 덧붙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민지는 그 말이 오히려 편했는지 파일을 열었다. 친구는 언제까지 위로해야 하는지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냥 두고 간 물건을 돌려주었다.다른 아이들 합주가 시작됐다. 민지는 뒤에서 듣다가 자기 파트가 늦게 들어온다고 중얼거렸다. 준우가 돌아보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서경은 수업이 끝난 뒤 아이에게 따로 앉겠느냐고 물었다.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영상 보고 싶어요. 한 번은요.”서경은 화면을 켰다. 민지가 그 말을 듣고 짧게 웃었다.“저도 그거 싫었어요. 무조건 잘했다고 하는 거.”영상이 시작됐다. 민지는 첫 음부터 미간을 좁혔다. 서경은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화면을 멈췄다.“여기서 제가 너무 빨랐네요.”“어떤 생각 했어?”“앞사람이 되게 잘해서요. 저도 힘 있게 해야 할 것 같았어요.”민지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연습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민지가 화면을 조금 뒤로 돌렸다. 자기 앞에서 연주한 아이의 잔향까지 들어 있었다. 그 짧은 소리를 듣고 다시 자기 영상으로 돌아왔다.“저 사람은 세게 해도 되는데 저는 왜 안 돼요?”“세게 한 게 문제였을까? 네가 어디까지 밀고 갔는지 들어봐.”민지는 음량을 낮추려던 손을 멈췄다. 빨리 끝났으면 하는 부분을 그대로 들어야 했다. 활이 현을 누르는 소리가 선율보다 앞으로 나왔다.
민지는 자기 이름을 세 번 찾았다.위에서 아래로 한 번, 아래에서 위로 한 번. 마지막에는 성을 빼고 이름만 보았다. 벽에 붙은 결과표의 글자는 그대로였다.없었다.2029년 봄, 청소년 콩쿠르의 예선 결과였다. 민지는 다이어리에 미리 적어둔 본선 날짜를 만졌다.옆에서 지아가 작은 소리를 냈다.같이 대기실을 썼던 아이였다. 보호자가 다가와 축하했고, 지아는 민지를 보다가 웃음을 조금 거두었다. 그 배려가 더 싫었다.“축하해.”민지가 먼저 말했다.지아가 고맙다고 답했다. 더 이야기하려는 표정이었지만 민지는 가방을 들어 메었다. 케이스 손잡이가 손바닥에 깊게 닿았다.지아는 다음 일정을 적은 종이를 받으러 갔다. 민지는 자기 가방에서 접어놓은 다이어리를 만졌다. 같은 날짜에 같은 곡을 켤 거라고 적어둔 칸이었다.직원이 이름을 확인하고 지아에게 종이를 건넸다. 민지는 한 발 다가갔다가 멈췄다. 자기 이름을 말해도 받을 것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서로 어디서 연습할지 물어보던 친구였는데, 이제는 한 사람에게만 다음 안내가 있었다.민지는 케이스를 든 손을 바꾸었다. 손바닥에는 오래 든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연습한 시간은 명단에 없었다. 지아도 그만큼 연습했을 것이었다.민지는 서경이 다가오자 입꼬리를 올렸다가 그만두었다. 오늘은 웃고 싶지 않았다.서경은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일단 나가자.”그녀가 말했다.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걸으면서도 한 번 돌아보았다. 명단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다.***대기실에는 아직 떠들썩한 사람들이 있었다.통과한 아이는 다음 일정표를 받고, 떨어진 아이는 악기를 넣었다. 어떤 부모는 위로했고 어떤 부모는 연주 중 무엇을 틀렸는지 벌써 설명하고 있었다. 민지는 자기 어머니
5월 말, 정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올해 초 항소심에서도 유지된 시우와 강몽구의 무기징역형이,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서경은 하은이의 옷을 접다 손을 멈췄다. 필요한 서류는 따로 받기로 했다. 반환과 배상의 집행은 별도로 이어졌다.그녀는 전화를 끊고 태주에게 알렸다.그는 그날 저녁 일찍 돌아왔다. 두 사람은 아이가 잠든 뒤 거실에 앉았다. 태주는 누나의 사진을 꺼내놓지 않았다. 서경도 아버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억지로 찾지 않았다.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태주가 물었다.“조금 걸을 수 있겠습니까?”서경은 아이를 봐줄 사람이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잠깐 맡기고 집 앞을 걸었다. 늦은 봄의 바람이 뺨에 닿았다. 태주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끝났다는 말을 기대했는데.”그가 말했다.“누나가 없다는 건 그대로군요.”서경은 그의 손을 더 잡았다.“그래도 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 말은 이제 제가 대답 안 해도 돼요.”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샀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려고 고른 것은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면 아침에 먹을 것이 필요했다.돌아오는 길에 서경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이를 맡아준 사람이 보낸 사진이었다. 하은이가 작은 입을 벌리고 자고 있었다.서경은 정 변호사와의 통화 기록을 닫고 사진을 태주에게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우유 봉투를 나누어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여름이 되기 전 서경은 악보실에 갔다.짧은 합주 시간을 잡고 대여 악기의 기간도 연장했다. 서경은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 먼저 턱에 대보았다.첫 합주에서 유진은 너무 천천히 들어왔다. 서경이 활을 내렸다.“그렇게까지 기다리지 않으셔도 돼요.”그가 건반 위에 손
12월, 기관은 다음 해 상반기 수업을 소연과 다른 교사들에게 나누었다. 서경의 복귀는 몸 상태를 보고 정하기로 했다. 그녀는 계약서를 보내고 봄 수업 시간을 비웠다.집에서도 방 하나를 비웠다.서경은 자기 악보 책상을 옮기려고 했다. 아기가 쓸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미 서랍을 꺼낸 뒤였다. 태주가 문 앞에 섰다.“왜 이 방부터 비웁니까?”“여기가 밝으니까요.”“제 방도 밝습니다.”태주는 자기 서재의 의자 둘을 먼저 끌어냈다. 문턱에 걸리자 의자를 돌렸다. 서경은 꺼내놓은 악보 서랍을 다시 밀어 넣었다.“저것도 옮기려고요?”“네. 내 책도 거실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그가 빈 벽을 짚어 아기 침대의 폭을 재보았다. 서경도 들어가 둘이 쓰는 수납장을 열었다. 아무도 쓰지 않는 물건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번에는 함께 비울 물건을 골랐다.아기 침대가 들어온 날, 태주는 설명서를 잘못 접어놓고 한동안 같은 그림만 보았다. 서경이 옆에서 넘겨주었다.“똑같은 부품 세 번 찾고 있어요.”“누가 책을 이렇게 접어놨습니까.”“아버님이요.”태주가 그녀를 보았다. 서경은 웃다가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그 호칭을 농담으로 먼저 말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두 사람은 이름 후보를 읽었다. 짧게 부르기 좋은 이름을 고르다가 하은에서 멈췄다. 서경이 몇 번 불러보고, 태주도 따라 불렀다.“권하은.”그가 말했다.서경은 완성된 침대를 보았다. 침대 옆에는 내일 보낼 수업 자료와 태주의 업무 수첩이 나란히 있었다.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내일부터 말고 오늘 하나 해요. 태주 씨 맡을 거.”그는 설명서를 들었다가 웃었다.“일단 이 나사부터 다시 끼우겠습니다.”**
서경은 진료실에서 나오며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태주가 바닥에서 주워 건넸다. 화면은 깨지지 않았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고도 받아 든 전화기를 한동안 켜지 못했다. 가방에는 병원에서 받은 안내문과 작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2027년 9월의 아침 햇살이 복도 끝으로 들어왔다.“태주 씨.”그녀가 불렀다.“네.”“진짜 아기가 있대요.”같이 들어가서 같은 말을 듣고 나온 사람에게 다시 말했다. 태주는 웃다가 입술을 눌렀다.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들었습니다.”그가 대답했다.“그런데 아직도 다시 듣고 싶습니다.”서경도 웃었다. 태주가 팔을 벌리자 그녀는 가까이 안겼다. 병원 복도라 오래 붙어 있지는 못했다. 떨어지고 나서도 그의 손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차 안에서 태주는 사진을 앞에 두고 들여다보았다. 무엇이 어디인지 아까 설명을 들었는데도 다시 물었다. 서경은 자기도 정확히 가리킬 자신이 없다며 웃었다.“우리 둘 다 모르네요.”“배워야겠습니다.”그가 말했다.서경은 웃다가 창밖을 보았다. 기쁜 마음이 가슴에 꽉 찼는데 그 옆에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가을에 준비 중인 국내 연주와 수업, 이제 조금 늘어난 악보 정리 일. 무엇부터 놓아야 할까.태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회의에 늦는다고 짧게 답했다. 서경은 그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저 무서워요.”그녀가 말했다.태주의 표정이 굳었다.“어디 아픕니까?”“아니요. 그냥…… 좋아하는 일들이 이제 막 생겼는데, 또 못 하게 될까 봐요.”서경은 사진 봉투에서 손을 뺐다.“방금 그런 생각부터 해서 미안해요.”“이렇게 말하면
그날 밤 두 사람이 돌아온 곳은 태주의 집이었다.서경의 책상과 의자는 이미 작은 방에 들어와 있었다. 월세방의 남은 짐은 다음 날 가져올 예정이었다.현관에 들어서자 태주가 신발을 벗다 멈췄다.“왜요?”“잘 들어가라는 말을 하려 했습니다.”서경이 웃었다. 그동안 문 앞에서 늘 하던 인사였다. 그녀는 그의 재킷을 벗겨 팔에 걸고 안으로 들어갔다.“같이 들어가요.”태주가 뒤따라왔다. 머리핀을 빼던 그녀가 손을 멈추자 그가 거울 앞에 섰다. 당기면 아프니 하나씩 빼달라는 부탁에 그는 핀을 찾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마지막 핀이 빠졌을 때 서경의 머리카락이 어깨로 내려왔다. 태주가 목덜미에 짧게 입술을 댔다. 그녀는 거울 속 그를 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꽃 장식도, 하객들의 시선도 없었다.“오늘은 안 돌아가죠?”그녀가 물었다.그는 대답 대신 다시 가까이 왔다. 서경이 웃으며 그의 셔츠 앞을 잡았다. 방 문은 두 사람이 함께 닫았다.다음 날 아침, 서경은 식탁에서 남편의 수첩을 보았다. 내일인 월요일에는 회의 시간이 빽빽했고, 자기 수업도 그날 오후에 있었다. 신혼이라고 세상이 멈추지는 않았다.태주가 커피를 놓았다.“오늘 짐은 몇 시에 가지러 갑니까?”“밥부터 먹고요.”그녀가 빈 의자를 당겼다. 그는 맞은편이 아니라 옆에 앉았다. 좁지 않은 식탁에서 두 사람의 팔꿈치가 자꾸 닿았다.서경은 컵을 집다가 자기 반지를 보았다. 태주의 손에도 같은 빛이 있었다. 두 사람이 물건을 옮길 때마다 어제와 조금 다른 손이 움직였다.그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보았다.“불편합니까?”“아뇨. 자꾸 보고 싶어서요.”태주는 컵을 내려놓고 손을 펴 보였다. 서경은 그 위에 손끝을 대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