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서경은 점심을 먹고 병원에 약속한 70만 원을 보냈다. 원무 담당자가 입금을 확인했다는 답을 준 뒤였다. 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서경은 바로 받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정 변호사와 이야기한 뒤 정해진 시간에 연락을 돌렸다. 대리인이 함께 듣는 자리라는 사실을 먼저 알렸다.“그렇게까지 해야 얘기할 수 있니.”그가 말했다.“보내주신 제안서는 받았어요.”“그럼 읽어봤겠네. 네가 밖에 나가 고생할 필요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야.”시우의 목소리는 병실에서처럼 다정했다.“일을 그만두겠다면 그렇게 해. 너 좋아하는 음악도 다시 해보고. 어머니는 내가 계속 챙기고.”서경은 탁자 위의 펜을 보았다.“대신 제가 시우 씨한테 부탁했던 일이라고 확인해야 하네요.”“우리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네가 잘 모르는 걸 내가 대신해준 거고.”“제가 모르는 건 먼저 확인할게요.”시우의 숨이 조금 달라졌다.“누가 옆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 정도로 정리해주겠다는 사람 없어. 네가 평생 일해서 벌 돈이 얼마나 되는지도 생각해봐.”서경은 악보실에서 받은 20만 원을 떠올렸다. 일을 마치면 더 받을 돈이 있었다. 그래도 300억에는 닿지 않을 것이다.“평생 벌어도 안 될 수 있겠죠.”그녀가 말했다.“그런데 돈 받고 제가 원했던 일이라고는 못 해요.”“원하지 않았다고? 내가 아니었으면 네 어머니가……”“엄마 비용 오늘 제가 냈어요.”
월요일에는 예정대로 악보실에 갔다.이문정은 그녀의 중간 결과에서 확인할 항목 몇 개를 골라놓았다. 서경은 의자를 당겨 앉아 설명을 들었다. 같은 작곡가의 곡을 다른 표제로 중복 등록한 부분 하나가 남아 있었다.“제가 앞에 있는 자료만 확인했네요.”“여기 보충 목록도 같이 보시면 돼요. 처음엔 찾기 어렵습니다.”서경은 수정 표시를 했다. 이문정은 고친 항목을 확인하고 다음 묶음의 마감일을 물었다. 잘못된 줄 하나 때문에 오늘 맡은 일 전체를 빼앗기지는 않았다.점심시간에 어머니에게 가져다줄 수납함을 샀다. 너무 큰 것을 고를 뻔했지만 병실 탁자 크기를 다시 확인하고 작은 것으로 바꾸었다. 병원 담당자와 약속한 시간에 들러 이름표만 붙여놓고 왔다. 어머니는 색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엄마가 골랐잖아.”서경이 말하자 어머니가 짧게 웃었다.오후에 돌아오는 길, 태주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현지 공항에서 보낸 짧은 연락이었다.[저도 제 일정대로 다녀왔어요. 출장 잘 마치세요.]서경은 책상 사진까지 찍지는 않았다. 태주에게 보낼 메시지를 닫고 다음 악보를 폈다.저녁에 윤상혁이 추가로 낸 인계 표지와 지출 명세 사본이 왔다.서경은 숙소 책상에서 파일을 열었다.처음에는 코드가 보였다.HD-16.그다음에 아버지의 이름이 나왔다. 이번에는 유족의 생활비라는 표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망 이후 정리한 지출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서경은 그 아래의 항목을 천천히 읽었다.외부 처리 비용.가족에게 지급된 돈이라고 보기 어려운 업체명이 이어졌다. 전체 명세가 아니라 일부였고, 다른 장을 참조하라는 표시도 남아 있었다.서경은 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약 취소 확인은 다음 날 오전에 왔다.두 번째 객실은 취소됐고 항공편 문의도 종료됐다. 대행사는 본인 요청 없이 연락한 점을 사과하며 추가 예약을 중단했다.서경은 그 메일을 읽고 태주에게 보냈다.[확인했어요. 오늘 오후에 잠깐 볼 수 있어요.]태주는 장소를 먼저 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집 근처가 아닌 서점의 휴게 공간을 보내자 그곳으로 오겠다고 했다.서경은 책을 펼쳤지만 읽지는 못했다. 먼저 도착한 태주에게는 휴대전화만 들려 있었다.“취소 내역은 받았습니다.”서경이 말했다.“네.”“비용은요?”태주는 잠깐 그녀를 보았다.“취소 수수료가 발생한 부분은 내가 부담했습니다. 서경 씨에게 돌아가는 청구는 없습니다.”그녀는 책장을 넘기려다 멈췄다. 태주가 먼저 설명을 이었다.“개인 예약에 든 42만 원입니다.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그가 휴대전화를 돌렸다. 청구인 권태주, 42만 원. 서경이 화면을 보다가 밀어주었다.“취소했다고 해서 제가 바로 괜찮아지는 건 아니에요.”“네. 내가 정리한 비용입니다.”태주가 앉은 자세를 고쳤다.“내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서경 씨의 일정을 뒤로 밀었습니다. 안전한 선택지를 드리려던 거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내가 안심할 곳에 두고 싶었던 겁니다.”그의 말은 평소보다 느렸다.“내 일정에는 손을 안 대고, 서경 씨 일정만 비웠습니다.”서경의 손이 책장 위에서 멎었다.“대행사 직원이 아니라 내가 그랬습니다.&rdquo
태주는 회사에서 주말 회의를 마치고 있었다.서경이 만나고 싶다고 하자 바로 시간을 비웠다. 회의실로 들어온 그녀의 얼굴을 보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제가 월요일에 도쿄에 간다고요?”태주의 손이 멎었다.직원이 물을 놓으려 들어오자 그가 잠시 나가달라고 했다. 문이 닫히고서야 서경이 의자에 앉았다.태주는 맞은편에 앉지 못한 채 서 있었다.“오늘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언제요?”그는 대답을 늦췄다.“숙소하고 현지에서 지낼 곳을 먼저 알아봤습니다. 괜찮은 조건을 찾고 나서 제안하려고요.”“제안하기 전에 예약부터 했어요?”서경은 가방을 무릎 위에 놓았다. 휴대전화에는 대행사와 통화한 번호가 남아 있었다. 화면을 끄고 태주를 보았다.태주가 의자에 앉았다.“항공권은 발권하지 않았습니다. 가시겠다고 하면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숙소는요.”“취소하면 됩니다.”“그럼 제 월요일도 취소하면 되는 거예요?”태주의 시선이 그녀의 가방으로 내려왔다. 안에는 검수할 악보가 들어 있었다. 서경은 가방을 열어 보여주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일이어야 했다.“그걸 왜 제가 모르는 사람이 저한테 먼저 말해요?”태주가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그건 내 잘못입니다.”“직원이 먼저 전화한 게요? 아니면 저한테 묻지 않은 게요?”그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와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닭강정집은 아니었다. 그냥 그 시간에도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태주는 주문을 마치고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서경이 맞은편에 앉아 물병을 들자 그제야 화면을 껐다.“오늘은 생각보다 말이 많아졌군요.”그가 말했다.“싫지는 않았어요.”서경은 자기 컵에 물을 따랐다. 태주에게도 병을 건넸다.“그런데 내내 죄지은 사람처럼 말씀하세요.”태주는 물병을 내려놓았다.“늦었다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습니다.”“그날 저녁에요?”“그날도 그렇고. 사고 뒤에도요.”그는 창밖을 보았다.“돌아와서 자료를 찾는 사이에도 누나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무리했다, 혼자 일을 벌였다. 누나를 변호하고 싶은데, 먼저 그런 말부터 확인해야 했습니다.”서경은 수저를 들었다가 놓았다.“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면 끝날 줄 알았습니까?”태주가 먼저 물었다. 서경이 대답하지 않자 그가 짧게 고개를 저었다.“나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누나를 잘 알면 바로잡힐 줄 알았어요.”음식이 나왔다. 두 사람은 잠깐 대화를 멈췄다. 서경은 국물을 한 숟갈 뜨고, 태주가 아직 수저를 들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저 먼저 먹을게요.”그녀가 말했다.태주가 고개를 들었다.“식으면 맛없잖아요.”서경이 먹기 시작하자 태주도 수저를 들었다. 국물의 김이 두 사람 사이로 올라왔다. 서경이 뜨거운 무를 식히
태주가 도착했을 때는 로비가 평소처럼 조용해진 뒤였다.서경은 직원이 안내한 휴게 공간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저도 모르게 출입구부터 보았다. 시우의 모습은 없었다. 태주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는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정장 재킷 소매에 비행 중 생긴 주름이 있었다.“이쪽에 앉지요.”서경은 그가 부른 자리에 곧바로 앉지 않았다. 출입구를 등지게 되는 의자였다. 옆 의자를 당기자 태주가 자기 자리를 바꾸었다.“여기가 낫겠군요.”그는 그녀가 보려던 출입구를 가리지 않는 쪽으로 가방까지 옮겼다. 서경이 앉고 나서야 자기 의자를 당겼다.태주는 시우를 어디서 찾아낼지 묻거나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받은 연락을 정 변호사에게 남겼는지 확인한 뒤에는 휴대전화를 엎어놓았다.“어디 안 가셔도 돼요?”서경이 물었다.“지금은 괜찮습니다.”“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서경은 테이블 위에 손을 놓았다. 한참 힘을 주고 있었더니 약지가 뻣뻣했다. 태주의 시선이 그쪽으로 내려왔다가 멈췄다.그녀가 먼저 손을 조금 뻗었다.“이 손 말고.”왼손을 내밀었다.“이쪽 잡아주실래요?”태주는 잠깐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위로 돌려 테이블 위에 놓았다. 서경이 그 위에 손을 얹었다.크고 따뜻했다. 손가락을 펴보라고 하지 않는 손이었다.잠시 뒤 그녀가 힘을 풀었다. 태주도 쥔 손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그 작은 변화에 눈물이 났다.“내려가야 하는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