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한편, 밖을 샅샅이 뒤지고 돌아온 강윤의 꼴은 엉망이었다.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에 머리카락은 푹 젖어 있었고, 거칠어진 숨소리가 턱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선 그가 급히 지나가던 직원의 소매를 잡아챘다."저기요, 실례지만…… 혹시 아까 저쪽 룸에서 나온 여자분 못 보셨어요? 피부가 새하얗고,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계셨는데…….“강윤은 간절한 눈빛으로 설아의 인상착의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하지만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글쎄요…… 워낙 손님이 많이 들락거리는 날이라서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술에 취해서 나갔다고 들었는데 연락이 전혀 안 돼서요...“"잠시만요. 사장님한테 말씀드려 볼게요.“직원이 귀에 꽂은 무전으로 상황을 전하자, 곧 카운터 뒤에서 묵직한 인상의 사장이 걸어 나왔다. 사장은 강윤의 걱정 가득한 눈빛을 금세 읽어냈다."손님, CCTV 확인해 드릴 테니 따라오시죠. 룸 안이야 개인정보 때문에 안 찍히지만, 복도는 찍힙니다. 일단 매장 밖으로 나가셨는지부터 확인해 드리면 되는 거죠?“"네, 네! 정말 감사합니다!“강윤은 연신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화면 속, 설아가 룸을 나선 시각부터 CCTV 영상을 꼼꼼히 살피던 강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차가운 벽을 겨우 짚고 힘겹게 걸어 나오는 설아의 모습이 모니터에 찍혀 있었다."아, 사장님! 이 사람이에요!“사장은 녹화 영상을 조금 더 뒤로 되돌렸다.설아가 식당 복도를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화장실 방향으로 가고 있던 바로 그때 설아의 그 뒤를 따라 유서진이 화면에 나타났다.그리고 주저 없이 설아의 허리를 강하게 잡아채더니, 복도 구석에 위치한 룸 안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가는 장면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이 룸 밖으로 나오는 영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그 순간, 강윤의 눈빛이 차갑고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감사합니다!“강윤은 사장에게 급하게 목인사를 건네자마자,
생각해보면 자신과 함께했던 결혼 생활 동안, 설아는 잔뜩 시든 꽃처럼 매일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생기가 만연하게 감도는 얼굴, 당당하고 또렷한 눈빛. 마치 대학 시절, 서진이 처음 반했던 바로 그 시절의 모습이었다.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고 독보적인 아우라를 풍기던 그 반짝이던 이설아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넋을 놓은 채 한참 동안 설아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서진은, 그녀가 술기운과 어지러움에 힘겨워하며 찌푸리는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내가 왜 이러지.‘그렇게 못할 짓을 해놓고 쫓아내듯 이혼해 놓고, 왜 아직도 이설아에게 온 신경이 쏠리는 건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건지.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이 서진의 머릿속을 사정없이 어지럽혔다.강윤과 강서윤, 그리고 이설아. 세 사람을 둘러싼 알 수 없는 관계. 그리고…… 혹시 이설아가 정말로 강윤 그 자식을 마음에 품기라도 한 건지.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감이 치밀어 올랐다. 서진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는 걸 느끼며 커다란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는,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한편, 그 시각.강윤은 급하게 차를 몰아 식당 앞에 도착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의 꽉 막힌 도로를 뚫느라 예정보다 시간이 훌쩍 늦어버린 뒤였다.'설아 씨 혼자 불편할 텐데... 혼자 너무 오래 있게 해서 어쩌나.‘마음이 급해진 강윤이 다급한 걸음으로 룸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이미 얼큰하게 술기운이 오른 기업인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강윤을 애워쌌다."아니, 오늘의 주인공이신 이음의 강윤 대표 아니야! 왜 이렇게 늦었어, 자, 일단 앉아서 한 잔 받아!“"죄송합니다. 오 오는 길에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늦었습니다.“강윤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사과하며 룸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건네는 술잔을 받아들면서도 그의 시선은 재빨리 룸 안을 훑었다.'……어?‘하지만 어디에도 설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간단한 인사치레를
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투명하게 새하얗던 그녀의 얼굴 위로 발그레한 열기가 번져갔다. 설아는 한순간이라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다.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유서진은 슬쩍 술잔을 기울이며 비틀린 미소를 흘렸다. 곁에 앉은 박수현은 이미 분위기에 취해 옆자리 사람과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었다.서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설아의 비어 있는 맞은편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유씨 그룹의 수장이 직접 자리를 옮겨 앉자, 주변에 있던 기업인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서진에게로 쏠렸다. 반가운 표정의 한 대표가 냉큼 서진에게 잔을 건넸다."아, 유서진 대표! 왜 이렇게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모임에도 얼굴을 잘 안 비추고 말이야.“"아, 최근에 조금 바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젠 거의 정리되었으니 언제든 불러주세요.“서진은 여유롭고 능숙한 태도로 응대하며 단숨에 술잔을 비워 냈다.빈 잔을 내려놓은 서진의 서늘한 시선이 설아에게로 똑바로 꽂혔다. 그는 묵직한 병을 들어 설아의 잔에 술을 채우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축하드립니다, 이음의 이설아 씨. 한 잔 받으시죠.“예상치 못한 서진의 접근에 설아는 순간 굳어졌지만, 수많은 눈이 보고 있는 자리였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받아들었다."자, 이음의 성과를 위해 다 같이 한 잔 하시죠.“서진의 주도 아래 또다시 독한 술잔이 오갔다. 안 그래도 한계에 다다랐던 설아는 핑 돌며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했다.설아는 테이블 아래로 두 손을 꼭 쥐어 짜며 떨림을 참아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온 힘을 다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설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트러지지 않으려 발끝에 바짝 힘을 주고 걸었지만, 미세하게 흔들리는 어깨와 지탱하듯 테이블 끝을 살짝 짚는 손끝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3년의 결혼생활 동안 그녀의 모든 행
거래처가 다 막혀 아무것도 진척시키지 못한 채, 죽상을 하고 나타날 그의 꼴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서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마침내 만찬회 당일.강윤과 설아는 함께 일을 마치고 조금 일찍 회사를 나섰다. 금요일 저녁의 빽빽한 도로를 뚫고, 약속된 식당으로 향하던 그때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윤이 컵 홀더에 놓인 커피를 집어 들었다.그 순간, 앞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읏……!“강윤 역시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콰쾅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쏠리며 컵 홀더에 있던 커피가 그의 셔츠와 재킷 위로 왈칵 쏟아져 내렸다."강윤 씨! 괜찮아요?“설아가 깜짝 놀라 얼른 손수건을 꺼내며 묻자, 정작 강윤은 쏟아진 커피보다 설아의 상태를 먼저 살피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설아 씨는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전 멀쩡해요! 저는 괜찮은데…… 어떡해요, 옷이 커피로 다 젖어버려서…….“짙은 아메리카노 물이 들어버린 옷을 보며 설아가 울상이 되자, 강윤은 그녀가 너무 걱정할까 봐 일부러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옷이야 다시 빨거나 갈아입으면 되죠, 설아씨가 안 다쳤으니 다행이에요."하지만 당장 갈아입을 여분의 옷이 없는 상태였기에, 엉망이 된 재킷을 내려다보던 강윤의 눈빛에 곤란한 기색이 스쳤다. 시계를 확인한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결단을 내린 듯 설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설아 씨,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 좀 불편하겠지만 설아 씨가 먼저 들어가 있을래요? 난 집에 들러서 옷만 갈아입고 금방 갈게요. 진짜 오래 안 걸릴 테니까.“"네,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운전 조심하시구요.“"금방 갈 테니 먼저 들어가 있어요.“강윤은 만찬회장 입구에 설아를 먼저 내려준 뒤, 옷을 갈아입기 위해 곧장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설아는 묵직한 목재 문 앞에서 얇게 한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예약된 단독 룸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달칵—문이 열림과 동시에, 이미 도착해 담소를 나누던
끝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은 채 대놓고 서진을 무시하는 그녀의 태도에, 서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 앉았다.서진이 차갑게 돌아서려던 찰나, 그녀의 고급스러운 원목 책상 위에 놓인 자그마한 명패로 시선이 꽂혔다.[ 대표 강서윤 ]'강서윤…….‘숍을 나와 차에 올라탄 서진은 핸들을 쥔 채 미간을 찌푸렸다. 명패의 이름도 이름이었지만, 방금 전 자신을 쏘아보던 그녀의 눈빛과 분위기가 묘하게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생각을 더듬던 서진의 머릿속에 순간 떠오르지 말아야 할, 가장 불쾌한 얼굴 하나가 겹쳐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이 번뜩였다.강윤. 그리고 강서윤.서늘한 눈매와 상대를 압도하는 특유의 오만한 분위기.'그래…… 저번에 수현이가 숍 에서 이설아를 봤다고 했었지.‘뇌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소름 끼칠 정도로 딱딱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진의 입가에서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리고 조금 전, 그 맹랑한 대표가 자신을 향해 쏘아붙였던 말이 환청처럼 귓가를 울렸다.'손님의 개인정보라 성함을 직접 말씀드릴 수는 없네요. 하지만…… 어머님과 그쪽 친구분께서 누구보다 아주 잘 알고 계시지 않겠어요?‘"하……이것들 봐라.“서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차가운 분노가 눈동자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기분 상하게 만들었다는 그 대단한 손님이…… 이설아였어?“서진은 곧장 차를 거칠게 몰아 회사로 향했다.대표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선 서진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이사의 정중한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서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상대를 몰아붙였다."강윤 회사의 거래처들, 확실하게 끊어버린 거 맞습니까?“갑작스러운 서진의 날 선 태도에 수화기 너머의 이사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침착하게 답했다."네, 대표님. 현재 그만한 물량을 감당해 줄 만한 대체 거래처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라 아마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을 겁니다.“"다시 한번 확실하게 단속하세요.”"
유씨 그룹 사람을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 그것은 명백히 자신과 가문에 대한 도전이었다.'감히 내 집안 사람들을 건드려?‘서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깟 관리숍 하나쯤은 당장 없애버리는 건 유서진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수화기를 들고 지시를 내리려던 서진은 이내 들었던 수화기를 천천히 내려놓았다.문득 그 무모하고 맹랑한 대표라는 여자의 얼굴이 직접 보고 싶어졌다.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이렇게까지 건방지게 굴 수 있는지,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불쾌함이 동시에 치밀었다.서진이 수화기를 든 채 잠시 멈칫하자, 수현이 서진의 팔을 자신의 가슴쪽으로 잡아 당기며 말했다."서진아, 왜 그래? 응?“서진은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으며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우선 들어가 있어.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서진의 미지근한 대답에 수현의 미간이 살짝 틀어졌다. 당장 제 눈앞에서 전화를 걸어 그 숍을 박살 내주길 바랐건만,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에 서운함과 불쾌감이 슬그머니 밀려왔다.수현은 살짝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티를 냈지만, 이내 퉁퉁 불어터진 눈가를 대충 훔쳐내고는 조용히 대표실을 나섰다.수현이 대표실을 나서자, 소파에 기댄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있던 서진이 마침내 눈을 떴다. 감정 없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제 어머니와 수현에게 감히 수치심을 안겨준 에스테틱 숍으로 향했다.고급스러운 건물 앞에 차를 댄 서진은 망설임 없이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하고 웅장한 인테리어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선 서진이 안내 데스크 앞에 서자, 직원이 살가운 미소로 그를 맞이했다."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을까요?""이곳 대표를 좀 만나고 싶은데요.“서진의 차가운 태도에 직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정중하게 물었다."무슨 일때문에 오셨다고 전달해 드릴까요?“"유씨 그룹이라고 하면 알 겁니다.“직원은 서진의 싸늘한 기류를 느꼈는지 곧바로 대표실로 내
다음날설아의 눈이 힘겹게 떠졌다. 낯선 천장이었다.설아는 한동안 그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온몸을 짓누르는 묵직한 통증에 그대로 굳어버렸다.‘여기가… 어디지.’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공간이었다. 넓고 정돈된 방. 고급스러운 가구들. 자신이 덮고 있는 이불조차 낯설었다.그리고 구겨진 침대 시트 위에서 눈이 멈췄다.설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아니야. 아닐 거야.’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끌어올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어젯밤 기억이 없었다. 친구들과
어색하게 시작된 사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가까워졌다. 서진은 자주 설아 앞에 나타났고, 부담스럽지 않은 선을 지키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다른 여자들에게는 한결같이 차갑고 무뚝뚝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유서진이, 설아 앞에서만큼은 달랐다. 먼저 말을 걸었고, 소소한 것들을 챙겼고, 무심한 듯 곁에 있었다.친구들이 먼저 눈치챘다."야, 설아야. 유서진 선배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에이, 설마.""설마가 사람 잡는다."설아는 웃어 넘겼다. 하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건 설아도 인정하기 싫었
어느 봄날 오후봄 햇살이 유리창을 가득 채운 학교 앞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두꺼운 전공서적을 펼쳐 놓은 설아는 주변 소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형광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식어가는 아메리카노 옆으로 빼곡히 필기된 노트가 쌓여 있었다. 그 모습이, 봄날 카페 안에서 유독 선명하게 빛났다.그 앞을 지나치던 두 남자 중 한 명이 발걸음을 멈췄다.유서진.졸업을 목전에 둔 4학년. 국내 손꼽히는 그룹사 회장의 외동아들. 훤칠한 키에 날카롭고 차가운 이목구비 어딜 가든 시선이 쏠리고, 어딜 가든 먼저 자리가 만들어지는 남자였다
차갑고 하얀 침대 위, 설아는 떨리는 손을 억지로 뻗어 머리맡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간신히 집어 들었다.언제부터 흘렸는지도 모를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며 시트를 적셨고,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은 숨을 쉴 때마다 타는 듯이 뜨거웠다. 눈앞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손끝에 감각이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 석 자조차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지만, 손가락은 습관처럼 아니, 어쩌면 마지막 본능처럼 그 이름을 눌렀다.서진 오빠.통화 버튼을 누르자 텅 빈 신호음만 허공에 울려 퍼졌다. 한 번, 두 번. 설아는 바짝 마른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