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뭐가 그리 급해 이설아? 그리고 내가 분명 그 새끼랑 같이 찾아오라고 했을 텐데, 왜 혼자야? 설마 지고 너 혼자 가래?“"그런 거 아니에요……오빠.. 그 사람은 정말 아무 잘못 없잖아요…….“설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 발짝 다가서며 애원하듯 말했다."내가…… 내가 전부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거래처 압박하는 것 좀 풀어줘요, 부탁이에요…….“서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강렬한 위압감을 풍기며 설아에게 다가왔다."그러게, 이설아. 왜 그까짓 되도 않는 놈을 만나서 건방지게 물이 들었어?“다가오는 서진의 기세에 설아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지만, 이내 벽에 가로막혀 갈 곳을 잃고 말았다."자…… 잘못했어요.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그러니까 제발 거래처 압박만 풀어 줘요. 시키는 거 다 할게요, 제발…….“설아의 어깨가 겁에 질려 잘게 떨리고 있었다.서진은 그런 설아를 차가운 눈빛으로 담아내더니,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거칠게 움켜잡아 제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수치심과 공포로 볼이 붉게 달아오른 설아에게서 아슬아슬하고 매혹적인 아우라가 피어올랐다.서진의 입술이 숨결이 닿을 듯 바짝 다가오자, 설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피하려 했다. 하지만 서진은 목덜미를 쥐고 있던 손에 악력을 더해 고개를 고정시킨 뒤, 그대로 매섭고 거칠게
멍하니 수화기를 내리던 설아의 머릿속에 유서진이 자신에게 협박처럼 말하던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유서진…….'“이런 쥐구멍만한 회사 하나쯤은 내 손가락 하나로도 업계에서 매장시킬 수 있어.”귓가를 찌르듯 울리는 서진의 차가운 협박의 음성들과, 어제 관리 숍에서 마주쳤던 서진의 어머니 그리고 수현과의 마찰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자신한테 굴복하지 않은 대가, 그리고 박수현과 자신의 어머니를 감히 거스른 대가를 이렇게 치르게 만들겠다는 건가…….‘설아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비상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묵직한 철문을 열고 들어선 조용한 비상구 계단, 설아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다시는 누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유서진의 전화번호를 찾아 클릭했다.신호음이 불과 몇 번 울리지도 않아, 수화기 너머로 기다렸다는 듯 서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설아. 생각보다 반응이 빠르네?]"……설마, 지금 벌어진 이 일들…… 전부 오빠가 한 짓이에요?“[내가 분명 경고했었지, 그딴 작고 보잘것없는 회사 하나쯤 날려 버리는 건 나한테 일도 아니라고.]"도대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에요, 대체 왜!.....“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온 설아는 울먹거림이 섞인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을 이어갔다."내가 전부 다 그만둘게요…… 내가 회사 나갈 테니까, 제발 '이음'은 건들지 말아 줘요. 제발…….“수화기 너머로 낮고 차가운 서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러게 왜 둘 다 내 앞에서 건방을 떨어? 이설아 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조용히 살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잖아. 누구 마음대로 감히 다른 놈을 만나?]"내가 다 잘못했어요…… 전부 내 잘못이니까 제발 회사는 건들지 말아 줘요, 부탁 할게요…….“설아는 자존심도 모두 내려놓은 채 서진에게 빌다시피 애원했다.[그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다면, 오늘 저녁에 강윤 그 새끼랑 같이 내 회사로 찾아와. 둘이 내 눈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제대로 빌면, 거래처 건은 생각은 해볼 테니까
강윤의 문자를 확인한 설아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대표실로 향했다."대표님,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설아가 묻자, 강윤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아뇨, 설아 씨가 쉬지도 않고 일만 하는 것 같아서요. 좀 쉬엄쉬엄해요. 그나저나…… 어제 받았던 관리는 어땠어요?"강윤의 물음에, 어제는 하도 경황이 없어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사실이 떠오른 설아가 살짝 투정 어린 투로 말을 이어갔다."맞다…… 대표님, 왜 저한테 거짓말하셨어요? 저한테는 선물 받았다고 하셨으면서 그 관리숍 대표님이 강윤 씨 사촌 누나라면서요?“강윤은 난감하다는 듯 긁적이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아, 참…… 누나한테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새 다 말해버렸어요?“이내 강윤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말을 이어갔다."근데 이왕 이렇게 알게 된 거 잘됐네요. 사실 그 누나가 평소에 저를 얼마나 부려 먹는지, 저한테 신세 진 게 아주 산더미거든요. 이번에 저도 '누나 찬스' 한번 제대로 쓴 것뿐이니까 설아 씨는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앞으로도 그냥 편하게 이용하면 돼요.“장난스레 눈을 맞추던 강윤이 설아에게 가볍게 눈을 찡긋 거렸다."혹시라도 누나가 나중에 딴소리하거나 안 잘해주면 바로 저한테 말해요. 제가 제대로 혼내 줄 테니까.“자신을 배려해 선의의 거짓말까지 해가며 마음을 써 준 그의 진심이 온전히 전해져 왔다.설아는 강윤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고마워요, 강윤 씨. 덕분에 그렇게 좋은 관리도 다 받아보고……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또 고마워요.“설아의 담백한 감사 인사에 강윤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하지만 그 따스하고 기분 좋은 감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대표실 문이 예고도 없이 노크 소리와 함께 급하게 열렸다.벌컥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사람은 장서인 팀장이었다."대표님!“하얗게 질린 얼굴에 거친 숨을 헐떡이는 서인의
서진은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비서를 불러 이음의 거래처 목록을 샅샅이 파악해 오라고 지시했다.강윤의 회사가 아무리 유망하다고 한들,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곳이었다. 거래처 명단을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진은 비서가 올린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거래처 목록을 하나씩 훑어 내려갔다.그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서진은 당장 거래가 중단되었을 때 이음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핵심 업체들부터 우선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마침 목록 중에는 서진의 회사와도 오랫동안 거래를 이어오던 대형 업체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판이 아주 쉽게 짜이는데?.'서진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업계에서 서진의 회사가 가진 영향력과 규모는 강윤의 이음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거대한 체급 차이를 이용해 압박을 넣는다면, 저 작은 회사 하나쯤 말려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자신에게 건방지게 굴면 어떤 꼴이 되는지, 그리고 감히 내 여자를 욕심낸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지.”서진은 보고서를 툭 던져 놓으며 차갑게 중얼거렸다.서진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 인터폰을 눌러 구매담당 이사를 자신의 방으로 호출했다."대표님, 부르셨습니까?"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이사를 향해, 서진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이음의 거래처 내역서를 툭 던지듯 내밀었다."당장 여기 적힌 거래처들에 연락해서 이음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하라고 해요."서진의 지시에 이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서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늘하게 말을 이었다."중단 사유는 입단속 확실하게 시키고, 만약 우리 요구대로 거래를 끊지 않으면 유씨그룹과의 거래도 오늘부로 끝이라고 정확하게 전하세요. 오늘 안으로 전부 연락 돌린 뒤 나한테 직접 보고하도록."갑작스러운 강경책에 이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하지만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업계에서 저희 유씨그룹이 특정 중소업체를 매장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면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한편, 매끄럽게 달리는 강윤의 차 안. 설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니,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가장 숨기고 싶었던 비참하고 추악한 밑바닥을 전부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마치 강윤의 앞에서 온몸이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수치심에, 도저히 그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자신 때문에 아무 상관도 없는 강윤까지 자꾸만 저런 저급한 언쟁에 휘말리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울음을 참으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주고 있던 설아의 손 위로, 강윤의 커다랗고 따뜻한 손이 가만히 덮여왔다. 위로하듯 다정하게 손을 감싸 쥐는 그 온기에, 아슬아슬하게 견디고 있던 설아의 제방이 무너지듯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흑…… 흐읍…….“갑작스러운 설아의 오열에 놀란 강윤은 급히 비상등을 켜고 차를 갓길에 세웠다."설아 씨, 왜 그래요? 아까 그 인간들 때문에 그래요? 아니면 어디 아픈 거에요?“걱정 어린 강윤의 목소리에 설아는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한번 터진 서러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그…… 그게 아니라…… 자꾸, 자꾸 저 때문에 강윤 씨까지 저런 대우를 받는 게…… 흣, 너무 죄송해서요…… 정말 이런 모습까지는 정말 안 보여주고 싶었는데…… 흐흡……."서러움과 미안함이 복받쳐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설아를 바라보던 강윤의 눈
기분 좋게 밖으로 들어서던 수현의 눈빛이 순간 음흉하게 반짝였다. 수현은 설아에게 다가가 일부러 어깨를 강하게 치며 지나갔다. 전혀 예상치 못하고 무방비하게 서 있던 설아는 강한 충격에 균형을 잃고 앞으로 쏠리며 보도블록 위로 크게 넘어졌다."으읏……!“무릎이 긁히며 서서히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는 설아를 내려다보며, 수현은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어머, 미안해요 설아 씨! 일부러 그런 거 절대 아니에요, 내가 진짜 못 봐서 그랬어요. 어쩌면 좋아!“사과하는 목소리에는 미안함이라곤 눈곱만큼도 들어있지 않았다. 옆에 있던 서진의 어머니 역시 넘어진 설아를 보며 고소하다는 듯 혀를 찼다."얘, 수현아! 네가 왜 미안해하니? 길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던 저 기집애 잘못이지! 너야말로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서진의 어머니는 쓰러져 있는 설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히려 수현의 옷가지나 살피며 뻔뻔하게 적반하장으로 굴었다.그때, 매서운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강윤의 고급 세단이 그들 바로 앞에 거칠게 멈춰 섰다.차문이 열리고 급하게 내린 강윤은 넘어진 설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조심스레 일으켜 세웠다. 피가 나는 설아의 무릎을 확인한 강윤의 눈매가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난번 요트에서 설아를 밀쳐낸 것도 모자라, 또다시 뻔뻔하게 이런 짓을 저지르는 박수현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사실 강윤은 신호 대기 중 차 안에서 이 모든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다."박수현 씨를 여기서 또 보네요? ……참, 이번 수주 건은 아쉽게 됐습니다. 유씨 그룹에서 많이 신경 쓰신걸로 알고 있는데"약을 올리는 강윤의 말에 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화끈거리며 붉게 물들었다. 강윤과 설아 앞에서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며 오만하게 굴었던 자신이 떠올라 수치심이 밀려왔다.그 옆에 있던 서진의 어머니는 설아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안은 채 부축하고 있는 강윤을 훑어보며 가당찮다는 듯 소리쳤다."당신이 얘랑 바람피운 그 남자
어색하게 시작된 사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가까워졌다. 서진은 자주 설아 앞에 나타났고, 부담스럽지 않은 선을 지키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다른 여자들에게는 한결같이 차갑고 무뚝뚝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유서진이, 설아 앞에서만큼은 달랐다. 먼저 말을 걸었고, 소소한 것들을 챙겼고, 무심한 듯 곁에 있었다.친구들이 먼저 눈치챘다."야, 설아야. 유서진 선배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에이, 설마.""설마가 사람 잡는다."설아는 웃어 넘겼다. 하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건 설아도 인정하기 싫었
어느 봄날 오후봄 햇살이 유리창을 가득 채운 학교 앞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두꺼운 전공서적을 펼쳐 놓은 설아는 주변 소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형광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식어가는 아메리카노 옆으로 빼곡히 필기된 노트가 쌓여 있었다. 그 모습이, 봄날 카페 안에서 유독 선명하게 빛났다.그 앞을 지나치던 두 남자 중 한 명이 발걸음을 멈췄다.유서진.졸업을 목전에 둔 4학년. 국내 손꼽히는 그룹사 회장의 외동아들. 훤칠한 키에 날카롭고 차가운 이목구비 어딜 가든 시선이 쏠리고, 어딜 가든 먼저 자리가 만들어지는 남자였다
차갑고 하얀 침대 위, 설아는 떨리는 손을 억지로 뻗어 머리맡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간신히 집어 들었다.언제부터 흘렸는지도 모를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며 시트를 적셨고,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은 숨을 쉴 때마다 타는 듯이 뜨거웠다. 눈앞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손끝에 감각이 없었다.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 석 자조차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지만, 손가락은 습관처럼 아니, 어쩌면 마지막 본능처럼 그 이름을 눌렀다.서진 오빠.통화 버튼을 누르자 텅 빈 신호음만 허공에 울려 퍼졌다. 한 번, 두 번. 설아는 바짝 마른 입
불도 켜지 않은 채였다. 소파에 팔짱을 낀 자세로, 굳은 얼굴로 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어디 다녀와?"낮고 날이 선 목소리였다.설아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냥 바람 좀 쐬고 왔어요.""병원에서 왜 퇴원했어?""아무 이상 없다길래요.“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간호사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빈혈 수치, 면역력,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몸. 그런데 설아는 지금 아무 이상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아무 이상 없다고?""네. 걱정 안 하셔도 돼요."평소와 달랐다. 목소리에 온기가 없었다. 기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