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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hor: 주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4 19:56:40

그 손은 천천히 손에 잡히는 불순물을 매만졌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생명력이라고는 메말라 죽어버린 것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아르텐시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땅을 가르고 밟으며 그 위에 올라섰다.

그녀는 지저분한 손을 들어 얼굴을 아무렇게나 닦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쪽으로 치워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푸른 눈동자에 이 땅의 모든 것이 담기기 시작했다.

다 죽었다. 다 죽어 있었다.

다 죽은 땅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라곤 믿을 수 없게도 자신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죽음을 받아들였던, 애정으로 만들고 가꿨던 세계.

“에테르…?”

에테르에서.

아르텐시아는 비틀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도통 이곳이 그 세계가 맞는지, 그렇다면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기억 속에 이토록 절망적인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르……아.}

이렇게 희미해져 언젠가 꿈결에서 보았던 오로라같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목소리도.

“에테르.”

{아르텐시아…}

목소리는 안도가 섞여 그녀를 불렀으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럼 에도, 그것은 분명 에테르였다.

“에테르…, 에테르. 어디에 있어?”

아르텐시아는 땅속을 헤쳐 나올 때와는 다르게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그녀의 시야가 조금씩 다른 것을 담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새카맣게 죽은 대지와 무덤의 비석을 지나며.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썩어 형체만 남아있는 시체와 같은 나무 한 그루를.

“아….”

숨이, 숨이 찼다.

아르텐시아는 차가운 땅속을 버티어낸 것이 무색하게, 제대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으며 무덤가를 가로질러 그것에 다가갔다.

작고 마른 맨발에 부스러지는 돌멩이가 치였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 차가운 나무를 그리움을 담아 어루만졌다.

마르고 떨리는 손은 조금 전 힘차게 땅을 갈랐던 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했다.

나무는. 신목은, 그녀의 전부였던 그것은 이 세계의 이지이자 생명이었으며 상징이었다.

아르텐시아가 에테르라는 칭호를 내린 세계이자 이지를 가진 이후 여러 모습으로 지혜를 나눴던.

여신 아르텐시아의 최초의 사랑, 에테르였다.

그는 찬란하고 성스러웠으며 생명력이 넘쳐 강직하게 세계를 지탱했었다.

“왜…….”

과거에는, 300년 이전에는 분명히 그랬다.

아르텐시아는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에테르를 봤다.

힘겹고 흉측한 모습으로 그녀를 기다렸을 안타까운 동반자를.

“왜…?”

아르텐시아는 그를 어루만지던 손을 움직여 찢어지듯 갈라진 나무 기둥 틈 사이로 향했다.

단 한 조각 남은 세계의 생명력, 에테르의 심장의 조각이 그녀의 손 끝에 닿았다.

그것은 마치 잘 벼려진 칼날과 같았고 절망을 찌르는 창과 같았으며 죽음에 이르는 초대장과 같았다.

생명의 근원이 그 한 자락 남아있었다.

아르텐시아는 끝내 절규했다.

“왜!!”

슬픔과 고통을 담은 비명소리가 질척한 공포를 뚫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왜!!!”

그녀의 손끝이 차마 그 조각을 만지지 못하고 죽은 나무를 긁어댔다.

“나의 목숨으로는 부족했단 말이냐!”

분명 빼앗긴 것이다. 에테르는 힘을 빼앗긴 것이었다.

멍청하고 아둔한 짓이었다. 세계를 유지하는 근원의 힘을 빼앗는 것은.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솟아오르며 인간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미래가 다가올 만큼 무서운 일이었다.

“내 생명과 힘을 앗아가 놓고 어째서, 어째서!”

그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르텐시아를 무참히 짓밟고 처참하게 버린 그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것은 고의이며 악행이고 저주였다.

{…….}

에테르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절망하고 절규하는 아르텐시아가 안타까웠으나 그 모습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그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는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는 자신의 여신의 슬픔이 어서 끝나길 바랐다.

이제 정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에테르는 스스로 빛을 발하며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르텐시아, 아르텐시아.}

“흐으윽, 흐어엉!”

아르텐시아는 이제 거의 흙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헝클어진 머리가 숙인 그녀의 얼굴을 따라 바닥에 나부꼈다.

목놓아 슬픔을 토해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처참해 보였다.

{아르텐시아. 부디 눈물을 거두어 주세요.}

그녀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방금 죽음에서 돌아온 이라 생각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없어요. 아르텐시아.}

에테르의 간곡한 목소리에도 소용없었다.

죽음마저 받아들였던 여신의 슬픔은 둘이 보았던 밤하늘보다 어둡고 시시의 연못보다 깊었다.

심연을 박차고 나온 여신은 그것들을 뜯어 발기고 싶었다.

모조리 찾아다 손에 잡히는 데로 부수고 찢어내어 이 고통을 상쇄시키고 싶었다.

아니, 에테르와 자신이 받은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르텐시아. 날 봐요.}

어둠을 밀어낸 손으로 그녀는 죽은 땅을 긁어대며 소리쳤지만, 그 손끝은 차마 드러난 에테르의 뿌리까지는 뻗치지 못했다.

오히려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덜덜 떨며 에테르의 뿌리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녀는 시간이 없다는 에테르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에테르는 잠시, 아주 잠시 과거에 그와 함께했던 여신 아르텐시아를 기억했다.

순수하고 정순하며 자비롭고 아름다웠던 아르텐시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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