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아르텐시아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는 그 불꽃 속에서 언제나 빛나고 다정했던 에테르가 보이는 듯해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가 바랬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는데….’
평화로운 작은 에테르의 동산과 푸른 숲과 생명력이 넘치는 세계가 그려졌다.
눈이 부셨었다. 감히 천상의 신들에게 붙이는 찬란함을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게 붙일 만큼.
아르텐시아는 그것들에 눈이 부셔 에테르의 품에 숨어 지혜를 내리던 때도 있었다.
“그랬었는데….”
그랬던 이 땅에, 무엇이 남았나.
삿된 것을 쫓아내어 항상 태양 빛만 가득하던 이 땅에.
그때 아르텐시아의 푸른 눈동자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
아르텐시아는 마저 손을 떼어냈다.
작아진 심장은 그녀의 손바닥보다는 길고 잘 벼려진 창보다는 짧았다.
이 이상 힘을 받아들인다면 그 작은 조각마저 잃을 것이 뻔했다.
그녀는 잠시 잃어버렸던 숨을 토해냈다.
“…에테르, 에테르.”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고 갈라진 그 틈새에 이마를 갖다 대며 속삭였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어.”
자신의 마음에 스미는 분노가 이끼처럼 끼어 가는 것을 느끼며.
“이대로, 잃을 순 없어.”
아르텐시아는 그 분노가 살기가 되어 인간을 향해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아이작이 살아있지?”
그녀의 입가에서 들이키지 않은 낮은 숨이 새어 나왔다.
“내 죽음 이후, 지난 300년 동안의 모든 것들을 알아야겠어.”
그녀는 이대로 광명을 되찾을 수 없었다.
혼자서만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린, 함께여야 하니까.”
아르텐시아는 나무와 맞닿은 이마를 통해 조금씩 빛과 함께 되찾은 힘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서서히 그녀의 머릿속에 에테르의 기억이 쏟아져 내렸다.
세계 에테르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을 할퀴고 짓밟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먼저 보인 것이 있었다.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에테르를 돕고자 선택했던 다섯 현자였다.
신의 힘을 담을 그릇이었던 아미노와 강인한 정신을 가졌던 르완.
짐승의 지혜를 가진 텐죠우와 숲의 요정 시시.
그리고 에테르를 대신해 눈이 되어준 아이작까지.
아르텐시아는 저도 모르게 토기가 올라와 급하게 입을 막았다.
자식과도 같았던 이들에게 느꼈던 치욕과 배신의 결과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믿었다.
그들이 여신에게 보여준 애정과 신뢰를.
그렇기에 시작은 창대했다.
[에테르를 도와 세계를 지탱하는데 그 사명을 다하라.]
그들에게 자신의, 신의 힘을 나누어 줄 정도로.
정말 그들을 믿었다.
하지만 끝은 어떠했나.
[여신님! 비를 내려주세요!]
[여신이라더니, 신관보다도 못하지 않은가.]
[신은 무슨 신! 죽은 자도 살리지 못하는 게!]
[아미노님을 유혹하려 내려온 악귀구나!]
“초라하구나.”
강림과 동시에 힘을 잃은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심연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었다.
아르텐시아는 구역질을 삼키고 이제 자신이 죽고 사라진 세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세계는 여전히 평화롭고 번창했다.
여신의 죽음 이후 현자들은 추앙받으며 세상 곳곳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단 한 명, 아미노를 제외하고.
뿌드득.
아르텐시아는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턱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쁘게 쉬어졌다.
분명 처음 마주한 진실과 감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강림당했을 때에도, 많은 인간에게 돌팔매질을 당했을 때에도.
비참함 그 이상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충격과 공포가 에테르의 기억으로부터 느껴지며 그녀를 잠식했다.
에테르는 그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근간이 흔들리고 그것이 아미노에게 향하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한 인간에게서 느끼기엔 과분한 감정이었다.
“본질은 한낱 인간 따위가 대체하지 못하거늘.”
그만큼 아이작을 통해 본 아미노에 대한 에테르의 기억이 너무나 끔찍했다.
아르텐시아는 자책했다.
“아둔한 것은 나였구나….”
세계의 본질, 근원의 자리를 탐내는 인간의 이면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그의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에서 지배자로서의 야욕과 최상위 포식자의 탐욕을 찾아내지 못한 자신을!
그래서 맹세했다.
감히 신의 힘을 받은 인간이 분수에 맞지 않은 것을 탐낸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을.
결국에는 모든 원인은 인간 그 자체에 있으니까.
“…내 힘을 되찾아야겠어.”
우선 거두어야 했다.
인간의 욕심을 부추겨 영광을 누리기 위해 에테르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죄를 짓게 만든 그 힘을.
“모조리 빼앗고 갈취하여 피와 살에 가뭄이 일게 할 테다.”
자비와 순정의 여신은 이제 없었다.
“전부, 다.”
아르텐시아는 이마를 떼어냈다.
“죽일 것이다.”
멸망시킬 것이다.
그들을 살렸던 신의 힘으로.
아르텐시아의 처연한 얼굴 위로 분노가 폭포가 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후회와 절망의 파도에 휩쓸려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게 할 것이다.”
이 눈물의 끝은 어디일까. 이 끝에 에테르가 있을까.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르텐시아는 그 끝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해야 함을 알았다.
“에테르….”
아르텐시아의 새까맣게 변한 손이 에테르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뽑아냈다.
날 선 심장은 그녀의 손 아래서 작은 울림과 미약한 빛을 내뿜었다.
“에테르….”
그와 동시에 근원을 잃은 나무가 점차 바람을 타고 나부끼며 흩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르텐시아는 저도 모르게 한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저었다.
통한에 젖은 애절함이 손끝에 묻어 에테르에 닿기를 소망하며.
그녀는 점차 땅이 요동치고 잿빛 하늘이 휘몰아치기 시작해도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에테르. 내, 내 사랑이여….”
이 가련한 작은 심장은 내가 가져갈게. 마지막까지 날 지켜 봐줘.
부디, 내가 저들의 목을 베고 심장을 뽑아내어 우리의 사랑을 추억할 수 없을 때까지.
하지만 불행은 둘이 신전을 감쌌던 메데이아의 줄기를 넘어갈 때, 다시 발밑에 모습을 드러냈다.“이게 무슨 일인가!”시작은 신전에 들어가 잊었던 병사들로부터였다.아비규환인 그곳에서 그들은 꽤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당장 몸이 성한 자는 부상자를 데리고 숲을 나가라!”“저 검은 구슬에 몸이 닿아서는 안됩니다!”이 모든 움직임과 소리를 들은 아이작이 아르텐시아의 잡은 손을 잡아당겼다.“조심하십시오. 천천히 내려오세요.”그는 말과 다르게 더욱 서둘렀다.“아이작, 우리는 숲을 빠져 나갈테니 걱정하지 말거라.”조급함을 눈치챈 아르텐시아는 부드러운 손길을 받으면서도.“네. 그럼요 아르텐시아.”서쪽으로 향하는 숲의 입구는 지척에 있었다.아이작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등 뒤로 들렸던 부산함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던 탓이었다.그는 안심이 불러온 과장된 평온이 허상에 빠지게 할 줄 몰랐다.‘이 숲을 나가면, 잠시만 쉬자고 해야겠다. 아르텐시아도 피곤할거야.’그는 라리아의 집에서 피를 토했던 그녀를 기억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엄청난 함성이었다. 꽤 많은 병사가 아이작과 입씨름을 한 병사에게 동조하고 있었다.“더 들을 것도 없다. 아이작.”그때, 진정한 악신이 서슬 퍼런 눈을 하고 그들을 바라봤다.그녀의 어깨 위에는 크기는 크지 않았으나 본능적인 위험을 느끼게 할 악의 구가 살벌하게 떠 있었다.“뚫린 입이라고 한낱 벌레보다 못한 대거리를 하는구나.”“뭐, 뭐라?!”“너희 인간들은 곱게 만들어준 입으로 시궁창을 헤매니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아르텐시아….”아르텐시아는 애틋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작에게 작게 웃어 보이고는 작고 마른 손을 유려하게 움직여 악의 구에서 여러 알갱이를 만들어 냈다.그것은 저잣거리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구슬과 비슷해 보였다.악의 구에서 나온 알갱이들은 아이작과 아르텐시아의 주변에 머물며 스산한 빛을 내뿜었다.병사들의 눈동자에 그것은 어떠한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한가지는 바로 해야겠구나.”그녀는 선연하게 드러나는 분노를 지우지 않은 채 웃어 보였다.그때,
불온한 기운이 내려앉는 메데이아의 줄기 위를 넘어 신전 앞마당으로 침투하려 하고 있었다.기어코 메데이아의 줄기가 움직임을 멈추었다.아이작은 아르텐시아의 손에서 얼굴을 떼지 않은 채 눈동자를 굴려 그 너머를 살폈다.“아르텐시아.”새카만 어둠은 닮은 인간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신전의 앞마당 뒤, 메데이아의 줄기가 얼기설기 얽혀있는 지척에 마침내 그의 시선이 닿았다.긴 생각이 필요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었던 지금까지의 시간과 순간이 마치 주마등과 같았다면 어서 깨어나야 했다.“…못해도 수백, 수천이군.”아르텐시아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어깨에 한기가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그녀는 뒤로 돌아 아이작의 시선을 따라갔다.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달빛이 어지러이 흘러 내렸다.그 아래, 르완의 병사들이 아직 죽지 않은 숲을 밟고 서 있었다.“…….”아이작은 동요하듯 크기를 키워가는 악의 구를 보며 아르텐시아에게 속삭였다.“이토록 많은 병사를 보낸 것을 보면, 완전한 죽음 또는 생포가 목적일 겁니다.”“…어느 쪽이라 생각하지?”“둘 다이겠지요.”아르텐시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아이작의 팔을 잡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그들은 동시에 말했다.“나를 죽이고 당신은 생포할 목적일 겁니다.”“너를 죽이고 나를 데려갈 생각이구나.”“아미노의 명령이겠죠.”“아미노에게 데려가기 위해서.”결국은 다시 아미노였다. 아르텐시아는 이가 갈렸다.교묘하고 약삭빠르기가 마귀와 다를 데가 없었다.아이작의 현자의 눈을 통해 이곳을 살피지 못하니 그가 가진 정보력을 의심해 이런 다음 수를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더이상은 참지 못하겠구나, 아이작.”“생각보다 수가 많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감히, 너의 숨을 빼앗으러 온 것들이다. 난 이들의 숨을 갈취하는데 망설이지 않아.”아마도 병사의 수는 이 신전을 감싸고 마을에까지 닿아 있을지도 몰랐다.아르텐시아와 아이작이 짐승들을 처리하는데 시선을 빼앗겨 있을 때 이미 지척에 와있던 자들이다.분
아르텐시아를 가리고 선 그는 오래된 고목과도 같았고 단단한 요새와도 같았다.그리고 그의 손안에서 에테르의 창은 어느 때 보다 밝게 빛났다.“…그래, 아이작.”아르텐시아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긴 세월 동안 이어진 신뢰는 이깟 불안에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굳건해졌다.그 시선의 끝은 아이작의 어깨 너머에 있었다.아르텐시아는 신전 주변을 제외하고 꽤 많은 면적의 숲의 생명력을 빼앗아 악의 구를 더욱 키우기 시작했다.이제 메데이아의 뿌리는 피를 갈구하며 신전 위의 하늘을 덮어버렸다.완연한 어둠. 심연과도 같은 그것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소리마저 차단된 공간 속에서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짐승은 울음을 삼키고 메데이아는 활기를 멈춘 그때.두 사람에게 신호는 필요 없었다. 촤악!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아이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크아아아!”“깨갱!”아르텐시아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지만 빛을 잃지 않은 그 푸름을 쫓았다.그 푸른 빛은 옅은 잔
***“이, 이게 무슨! 누구냐! 내 신전을 이토록 엉망으로 만든 것이!”아르텐시아의 고통이 담긴 목소리가 신전에 닿았다.그녀는 신전 문 앞에 다다라서 털썩 주저앉았다.발에 채며 나부꼈던 메데이아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이어서 아이작이 그녀의 뒤를 따라 곁에 앉았다.“이런! 아르텐시아!”“…아이작. 보아라 나의 아이들이 이토록 고통을 받았구나.”“당신을 괴롭게 만들다니,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내야겠습니다!”“아니다, 그럼 안돼. 너까지 다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아르텐시아…….”그는 결국 손에 얼굴을 묻으며 눈물을 삼키는 아르텐시아가 안타깝다는 듯 신음했다.아르텐시아는 아이작의 위로를 받으며 겨우 고개를 들었다.참담함이 서린 눈동자는 형태가 남아 있는 메데이아 꽃에 닿아 있었다.“내 힘이 온전치 못해 신전과 숲과 메데이아를 지키지 못했구나….”“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르텐시아.” 부스럭, 부스럭.아르텐시아와 아이작의 눈동자가 시선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마주쳤다.생명력이 사라지는 숲의 마지막 움직임이 타인에 의해 들려왔다.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아이작, 저 병사 중에 아는 얼굴이 있느냐?”“없습니다.”“다 죽었으니까?”“네, 다 죽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아르텐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놀랄 일도 아니었다.처음 이상함을 느낀 것은 신전의 조사를 텐죠우의 자식들이 했다는 것이었다.짐승은 말을 하지 못 한다.하지만 인간들은 생각과 말을 할 줄 알았다.그러니 텐죠우의 자식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르완의 병사들이 숨어있던 고위 신관이나 제물들을 찾도록 내버려 둔 거다.“명분 자체를 없앤 거야.”병사들은 지루한 임무에서 신이 나 있었을 것이다.물러나 사라진 줄 알았던 짐승들이 수를 부풀려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병사들이 취한 것들은 모두 텐죠우의 자식들이 도로 가져갔습니다. 아미노에게 갔죠.”수법이란 이런 것이었다.아미노로서는 매우 쉬운 일이었을 터였다.명분, 경계. 그것들로부터 오는 반발심? 모두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그러나 오늘은 다 죽이지 못할 것이다.”아르텐시아의 검푸른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너와 내가 있으니까.”“아르텐시아….”“우리는 아미노의 수를 죽이는 거다.”말을 끝낸 그녀의 어깨 위로 조금 전보다 더욱 위험한 악의 기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