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너 이제 스물다섯이야. 결혼 생각도 해야지.”“리재 그 아이 괜찮잖아. 우리도 어릴 때부터 봐 왔고.”“조만간 네 아버지랑 서씨 집안에 정식으로 이야기해 볼까 하는데, 너 생각은 어때?”민하는 차분하게 답했다. “저는 아직 결혼할 생각 없어요.”강솔과 통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예의 바른 딸다운 말투였다. “오빠도 아직 결혼 안 했잖아요.”“네 오빠는 회사 맡아서 운영하느라 바빠서 그런 거고.”도명란이 타이르듯 말했다. “너는 직접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미룰 이유가 뭐가 있어?”밖에서 그 대화를 듣던 강솔은 민하가 자신을 어디에 이용하려는지 대충 짐작했다. 곧이어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똑똑-방 안이 조용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강솔을 본 민하의 눈에 웃음이 스쳤다. 곧바로 팔을 벌려 안았다. “이제야 왔네. 안 오는 줄 알았잖아.”강솔도 자연스럽게 안아 주며 친한 친구 역할에 맞췄다. “조금만 늦었으면 못 올 뻔했어. 자, 생일 선물.”민하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받아 들며 물었다. “뭐야? 좋은 거야?”강솔은 웃었다. “맞혀 봐.”민하도 웃었다. 시선을 내리고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도명란이 강솔을 바라보며 먼저 인사했다. “강솔 씨 맞죠?”강솔은 H시 주요 집안 사람들을 미리 파악해 둔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민하가 어머님이 정말 우아하고 다정한 분이라고 자주 말했는데 오늘에서야 뵙네요.”도명란은 기분 좋게 웃었다. “우아하고 다정하긴 뭘. 얘가 말을 너무 좋게 했네.”“너희 둘 이야기하고 있어. 나는 아래 내려가서 민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좀 모셔올게.”강솔이 미소 지었다. “네.”방에는 강솔과 민하만 남았다.민하는 평소엔 그렇게 반듯한 강솔이 방금은 능청스럽게 칭찬을 늘어놓은 게 재미있었다. 문틀에 기대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강 대표한테 우리 엄마 얘기를 그렇게 했어? 지 대표가 아니라 민하라고 이름까지 부르고. 우리가 그렇게 친했나?
민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나 상처받는데?]강솔도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나 이용하겠다는 사람이 내 마음을 걱정해?”민하가 웃음을 터뜨렸다.강솔은 다시 현관 쪽으로 걸으며 물었다. “어디야?”[호텔.]강솔은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호텔 이름이랑 주소를 말해.”민하는 톡으로 위치를 보내고 태연하게 부탁 하나를 더 얹었다. [오는 길에 주얼리 매장 들러서 한정판 목걸이 하나만 사 와. 가능하면 2억 원 이상 되는 물건으로.]강솔은 어이가 없었다.어느새 민하와 제법 가까워진 강솔이 툭 던졌다. “돈 보내.”[그 정도 돈이 강 대표한테 큰돈은 아니잖아.]강솔은 주소를 신동에게 보내며 전화를 이어 갔다. “지 대표한테는 더 푼돈이겠지. 돈부터 보내면 물건 사 갈게.”민하가 투덜댔다. [치사하다.]강솔도 똑같이 받아쳤다. “지 대표는 통 크시니까 나한테 20억 원짜리 선물 하나쯤 해 줘도 되겠네.”[20억이 뭐야. 강 대표가 필요하다고 하는 날엔 돈으로 값 못 매길 걸 하나 구해 줄게.]민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아래층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한번 봤다. [아, 맞다.]강솔이 물었다. “왜?”민하의 말투가 조금 진지해졌다. [아까 내가 이용하겠다고 한 거 기억하지?]강솔이 짧게 대답했다. “응.”민하는 더 숨기지 않았다. [내 친구인 척하면서 그 목걸이를 선물해 줘.]강솔은 잠깐 놀랐지만 곧바로 승낙했다. “알겠어.”최근 인터넷에 강솔 관련 기사가 전혀 나오지 않은 건 민하가 뒤에서 막아 준 덕이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긴 했어도 맡은 일은 확실히 처리해 줬다.민하는 이번엔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그러는지는 안 물어봐?]강솔은 민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이용 끝나면 알아서 말하겠지. 방 번호나 보내.”[방 번호는 따로 없어.]민하는 보석처럼 짙은 파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목선을 따라 작은 진주 장식이 반짝였다. [연회장에 있어. 도착하면 사람 보내
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강솔은 단아를 바라봤다. “저 이번에 돌아가면 한동안 J시에 안 올 것 같아요.”단아는 조용히 대답했다. “알아요.”정말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강솔도 더 캐지 않았다. 떠나기 전 진화연의 전화번호를 단아에게 건넸다.진화연은 강정숙의 친구였다. 중현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니 도현을 겁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강솔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지막 걱정까지 정리해 줬다. “곁에 있는 경호원이 도현 씨에게 제가 다녀갔다고 말해도, 적당히 둘러댈 이유 하나 만들어 두시면 돼요.”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제야 단아는 방금 진실을 말하지 않은 선택이 옳았다고 다시 느꼈다.강솔처럼 사람을 잘 챙기는 성격이라면 도현이 동생을 이용해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움직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강솔에게는 진씨 집안과 여씨 집안, 중현과 관련된 일까지 이미 처리할 일이 많았다. 자신 때문에 강솔에게 걱정을 하나 더 얹고 싶지 않았다.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 주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단아는 마음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두 걸음도 못 갔을 때 정진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언니, 방금 안에서 만나신 분 강솔 씨 맞죠?”단아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식사는 가져왔어?”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단아도 짧게 대답했다. “응.”정진은 더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단아가 입을 닫자 더 캐묻지 못했다....한편 강솔은 신동이 공항으로 차를 모는 동안 슬쩍 물었다. “표정 보니까 이야기가 썩 잘된 건 아닌 것 같은데요?”강솔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아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 만큼 지킬 생각이었다. “잘 안됐다고 할 정도는 아니야. 그냥 세상에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인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도현이 단아를 붙잡아 두기 위해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썼을 거라고는 예상했다.일상 전체를 감시하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런 환경에서 단아가 어떻게 견뎌 왔는지
문이 닫히자 단아는 강솔을 똑바로 바라봤다. “강솔 씨?”강솔은 손을 내밀어 단아를 옆자리로 이끌었다. “이쪽에 앉으세요.”단아는 꿈꾸는 기분이었다. 감독이 부른다고 해서 촬영 이야기를 하려나 했는데 강솔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강솔은 단아의 상태를 한번 살핀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회포는 나중에 풀고요. 오늘 아침에 보내신 문자, 무슨 뜻이었어요?”단아가 멈칫했다.몇 초 고민한 뒤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때문에 여기까지 직접 오신 거예요?”강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단아는 문 쪽을 한번 바라봤다.감독이 직접 불러들인 만큼 경호원과 정진이 문에 붙어 엿듣지는 않겠지만, 계속 감시받으며 지낸 탓에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신동은 바로 눈치챘다. “두 분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랑 홍일은 밖에서 사람 못 들어오게 지키고 있겠습니다.”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단아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하도현을 두려워하지 않는 변호사를 한 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단아는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증거를 다 모으면 정식으로 고소하려고요.”강솔은 바로 답했다. “알겠습니다.”단아는 마음 한구석에 놓여 있던 돌덩이가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고마워요.”강솔은 고민하다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바로 전화하지 않으셨어요? 톡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한 이유도 있고요?”단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하도현이 저한테 강솔 씨와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 곁에 있는 정진이랑 경호원도 전부 하도현 사람이에요.” 결국 솔직하게 설명했다. “톡 계정은 하도현이 쓰는 태블릿이랑 노트북에도 로그인돼 있고요.”몇 마디만 들어도 상황은 충분히 이해됐다.강솔은 바로 의미를 알아챘다.도현은 단아의 이동만 제한한 게 아니라 일상적인 연락까지 감시하고 있었다.강솔이 물었다. “제가 더 도와드릴 일은 없어요?”“괜찮아요.” 단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강솔을 이 일에 더 깊게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신동이 밝은 색 캐주얼 차림으로 앞으로 나섰다. 짧은 머리 덕분에 더 산뜻해 보였다. “아가씨는 잠깐 쉬고 계세요. 제가 이분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직원은 신동이 소매를 걷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무, 무슨 짓 하려고요? 여긴 촬영장입니다. 소란 피우면 경찰 부를 겁니다.”신동은 상대 어깨에 팔을 가볍게 두르고 옆으로 데려가며 손에 지폐 몇 장을 슬쩍 쥐여 줬다. “경찰은 무슨 경찰입니까? 그냥 이야기 좀 하자는 겁니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걸 보며 강솔이 홍일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홍일은 담담했다. “아마 돈으로 설득하려는 겁니다.”강솔은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두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동은 직원과 5분쯤 이야기했다. 잠시 뒤 그 직원이 촬영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신동은 웃으며 돌아왔다. “됐습니다. 저분이 다시 나오면 들어가시면 됩니다.”허풍은 아니었다.조금 뒤 직원이 다시 뛰어나왔다. 태도가 아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세 분 들어오세요. 임단아 배우님은 지금 촬영 중이라 잠깐 기다리셔야 합니다.”강솔은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직원이 세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강솔이 촬영장에 온 건 처음이었다. 세트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자 낯설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상대 배우와 연기 중인 단아가 보였다.“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은 급히 임시로 마련된 대기 공간으로 안내했다. “임단아 배우님 파트의 촬영이 끝나면 감독님이 이쪽으로 보내 주실 겁니다.”강솔은 잠깐 멈칫했다.감독에게까지 이야기가 들어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직원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저는 밖에 있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불러 주세요.”강솔은 직원이 나간 뒤 이 상황을 만든 신동을 바라봤다.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갑자기 이렇게까지 친절해졌어?”“아가씨 신분을 말했습니다.”신동은 이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았다. “아가씨가 괜히 사람들
단아는 더 묻지 않고 촬영장으로 향했다.강솔에게 문자를 보낼 짬이 난 건 30분쯤 뒤였다. J시에 온 게 맞는지 짧게 물었다.강솔은 아침을 먹다가 문자를 확인했다. 메시지 끝의 괄호 안 문장을 보자 미간이 좁아졌다.[톡 말고 문자메시지로 연락해 주세요.]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대로 답했다. [네. 그런데 오늘 돌아가려고 해요. 저한테 무슨 일 있으세요?]단아는 답장을 쓰려다 정진이 다가오는 걸 보고 몇 글자만 급하게 입력했다. [별일 아니에요. 다음에 J시에 오시면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보내자마자 대화 기록을 전부 삭제했다.정진도 그때 바로 앞에 도착했다.“언니, 30분 뒤에 메이크업 받으러 가시면 됩니다.”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시선은 자꾸 핸드폰 화면으로 내려갔다. 강솔이 다시 문자를 보내지 않기를 바랐다.정진이 차 안에서 CCTV를 알려 주긴 했지만, 결국 도현이 붙여 둔 사람이었다. 어디까지 보고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강솔은 단아의 문자를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신동이 식사하다 강솔의 표정을 보고 먼저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강솔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떤 상황이면 톡 안 쓰고 문자만 써?”신동이 진지한 얼굴로 농담했다. “광고 문자 수신 거부할 때요?”홍일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톡에서 차단당했을 때.”강솔은 잠시 멈췄다. 바로 단아와의 톡 친구 상태를 확인했다. 차단되거나 삭제된 흔적은 없었다.신동은 이런 일로 오래 고민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궁금하면 문자 보낸 사람한테 그냥 물어보시면 되잖습니까.”강솔은 선뜻 그러지 못했다.최 집사는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곧바로 다가왔다. 몇 달째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지루하던 참이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 있습니까?”강솔은 별 기대 없이 물었다. “단아 씨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어제는 이쪽에서 촬영했고 오늘은 가람시에 있을 겁니다.” 최 집사는 평소 보고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