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탁!진우찬은 소리가 나도록 전화를 끊었다.영재는 핸드폰을 거뒀다. 강솔을 바라볼 때는 이미 눈에 떠올랐던 감정을 말끔히 감춘 뒤였다. “집에 급한 일이 좀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그래.” 강솔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다음에 자세히 얘기할게.” 영재가 짧게 설명했다.정확히 말하면 지금 영재에게는 사과할 시간도, 잘못을 만회할 시간도 없었다.진우찬은 미친 사람이었다. 제대로 눈이 뒤집히면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고 사고를 일으키기 일쑤였다.“괜찮아.” 강솔은 더 묻지 않았다. “급한 거 아니니까.”영재가 전화받을 때 강솔과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진우찬의 목소리까지 못 들은 건 아니었다.강솔이 지금껏 봐온 영재는 늘 능글맞고 제멋대로인 진씨 집안 막내 도련님이자 외할아버지 진환식이 아끼는 손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강솔이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듯했다.강솔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영재를 보낸 뒤 다시 지안의 곁으로 돌아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그 시각, 영재는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엄마 이가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네댓 번이나 연결음이 울리는 동안 아무도 받지 않았다.영재는 어쩔 수 없이 진우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우찬 역시 받지 않았다.계속 불이 들어오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진우찬은 코웃음을 쳤다. 바닥에 쓰러진 채 온몸에 상처가 난 이가희를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 “영재는 네 일만 생기면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더니, 내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문병 한 번 오는 꼴을 못 봤네.”이가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입가와 온몸을 파고드는 통증 때문에 다른 감각은 느껴지지도 않았다.“말해.” 이가희가 침묵하자 진우찬의 화가 더 치밀었다. “꼭 맞아야 대답할 거야?”“때릴 거면 때려.” 이가희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생기가 없었다. 진우찬을 바라보는 눈도 죽은 사람을 보는 듯했다. “몇 대 더 맞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홍일의 눈에 이해했다는 기색이 스쳤다.일 이야기를 마친 강솔은 신동이 요즘 쉬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떠올랐다. “신명호 회장은 요즘 연락 안 해?”신동이 느긋하게 답했다. “연락이 왔습니다.”강솔이 의아해했다.‘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지?’신동이 사실대로 설명했다. “만나서 자세히 얘기하자고 하셨는데, 제가 요즘은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강솔이 말했다. “볼일 있으면 다녀와도 돼. 홍일 씨는 계속 있으니까.”신동은 진씨 집안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다. JX그룹 지분 20%는 결코 작은 몫이 아니었다. “지분이 아가씨 명의로 확실히 넘어간 뒤에 가겠습니다. 지금은 급하지 않습니다.”강솔도 더 권하지 않았다. “그래.”30분 뒤.일행은 집에 도착했다.영재도 같은 때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솔에게 물었다. “누나, 나 여기서 밥 한 끼 얻어먹어도 되지?”강솔이 안으로 들어가 앉으라고 했다. “그래. 들어가.”강솔이 H시에 온 뒤로 영재는 단 한 번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의를 지켰고, 가끔은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엄마 강정숙의 교통사고에도 가담하지 않았다.영재를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다.그 뒤로 가족들은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시작했다.웃음소리로 가득한 분위기를 보며 영재의 눈 깊은 곳에 부러움이 스쳤다.저녁 식사가 끝났다.영재는 강정숙 일행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가 진환식 곁에 앉았다.고민이 있어 보이는 영재를 보고 진환식이 물었다. “무슨 생각 하냐?”영재가 답했다. “할아버지 생각이요.”진환식은 늘 그렇듯 받아쳤다. “나 아직 안 죽었다. 내 생각은 왜 해?”영재가 두 손을 머리 뒤로 받치고 능청스레 말했다. “왜 예전에 아버지를 제대로 안 가르치셨을까 싶어서요. 똑같이 할아버지 자식인데, 고모는 그렇게 훌륭하고 좋은 분이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쯧.”진환식은 억울했다. “제 놈이 바르게 살지 않은 것까지 내 탓이냐?”영재가
진무천이 멈칫했다.진우찬도 굳었다.두 사람 모두 이렇게 불쑥 그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진우찬이 핵심을 짚었다. “새로? 아버지가 언제 유언장을 쓰셨어?”진무천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노인이 그렇게 말한 이상, 잘 보일 필요는 있었다. “나도 몰라. 정숙이가 돌아왔을 때일 수도 있고, 정숙이네 집에 계실 때일 수도 있지.”진우찬은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영재, 너...” 영재에게 당분간 잘 처신하면서 노인의 눈에 들라고 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보니 영재가 있던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영재는 어느새 진환식의 차에 올라타서 떠난 뒤였다.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이는 진환식에게 영재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저도 누나 집에 가서 밥 한 끼 얻어먹어도 되죠?”진환식은 선을 지켰다. “그건 솔이랑 네 고모한테 물어봐. 내가 정할 일이 아니야.”영재가 놀렸다. “할아버지도 별수 없으시네요.”진환식은 할 말을 잃었다.영재가 말을 이었다. “제가 드라마 좀 많이 보시라고 할 때는 안 보시더니. 그러니까 아직도 고모한테 용서를 못 받으셨잖아요.”진환식은 영재가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쉽게 떠들지 마라.”영재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굴렸다. “그냥 하는 소린지 아닌지는 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 고모 집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시면서 뭘 하셨어요?”“돈으로 갚으셨어요? 진심을 보이셨어요? 불쌍한 척이라도 하셨어요? 아니면 예전에 잘못하신 걸 깊이 반성하셨어요?”진환식은 대답하지 않았다.영재가 아픈 곳만 골라서 찔렀다. “설마 매일 드시고 주무시고 놀기만 하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하신 건 아니죠?”“누가 아무 생각 안 했대.” 진환식은 인정할 수 없었다. 진환식에게는 일상을 함께 보내며 쌓이는 작은 일들이 영재가 늘어놓는 방법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영재는 늘 하던 대로 진환식과 말씨름했다. “정말 생각하셨으면 아직 이 정도는 아니겠죠. 회장님 보세요. 할아버지보다 고모한테
진우찬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놈이! 어디 한 번만 더 말해 봐.”진무천이 호통쳤다. “그만해!” 과거의 일은 조금도 들추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합의한 일이잖아. 이제 와서 다퉈 봐야 무슨 소용이야.”진우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진무천이 손을 멈췄다. “아니면 네가 저지른 일을 내가 다 밝혀야 서명하겠어?”그 말을 듣자, 진우찬은 진무천을 찔러 버리고 싶었다.‘태휘 하나 있다고 그렇게 유세 부리는 거야?!’진우찬은 그 말에 굽히지 않았다. 진무천을 향해 쏟아부었다. “잘난 척하지 마. 정숙이는 여자라서 가업을 맡으면 안 된다고 부추긴 게 누군데? 지분 안 내놓겠다고 하니까 아버지한테 허미정으로 협박하라고 한 건 또 누구야?”진무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진우찬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진우찬이 코웃음을 치고 마지못해 펜을 집어 들었다. “대범한 척은. 위선 떨고 있어.” 그러고는 서명을 시작했다.뚝!진무천의 손안에서 펜이 부러졌다.그렇게 화가 난 진무천의 모습을 보자 진우찬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도량이 넓으시다더니, 왜 발끈해?”진무천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김 집사가 건네는 새 펜을 받아 다시 서명했다.두 사람이 서로 물어뜯는 모습을 보며 강솔은 또다시 엄마 강정숙이 안타까웠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애쓴 게 아까웠다.지분은 엄마를 몰아붙여 팔게 만든 것이었다. 겉으로는 엄마의 자녀가 같은 가격에 되살 수 있다고 해 놓고, 막상 강정숙이 딸 강솔에게 돈을 보내려 하자 뒤에서 수를 썼다. 그 때문에 강정숙은 그렇게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결국 처음부터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한번 빼앗은 것을 다시 뱉어 내기는 싫었던 거다.외할아버지 진환식에게 딸 강정숙을 향한 죄책감이 없었다면, 강솔은 이 지분을 절대로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진환식은 복잡한 강솔의 표정을 보고 달랬다. “저 둘 때문에 마음 상할 것 없어. 일 다 마치면 돌아가서 축하하자.”강솔이 물었다.
진무천 일행이 다가왔다. “아버지.”도엽도 인사했다. “할아버지.”그렇게 공손한 모습을 보자 옆에 있던 진우찬도 마지못해 다가왔다. 입에서는 얄미운 말이 나왔다. “이제야 돌아오실 마음이 드셨습니까? 진정숙 집에서 평생 지내실 줄 알았습니다.”진무천이 나무랐다. “아버지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진우찬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잔뜩 불만스러운 얼굴로 옆에 섰다.진환식은 화난 기색조차 없었다. 곁에 있는 강솔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솔아, 나랑 들어가자.”“네.” 강솔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진환식의 옆에서 반걸음 뒤를 따랐다.10분 뒤.모두 한자리에 모였다.강솔은 진환식이 시키는 대로 바로 옆에 앉았다. 나머지는 항렬에 따라 양쪽으로 자리를 잡았고, 홍일과 신동 일행은 응접실 문 앞에서 대기했다.진우찬은 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러니 아버지가 편애하신다는 거죠. 그 자리는 형이나 태휘도 앉아 본 적 없잖습니까. 이런 어린애부터 앉히시네요.”“불만 있냐?” 진환식의 얼굴에 위엄이 서렸다. 평소의 자상한 노인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은 진씨 집안의 결정권을 쥔 사람이었다.진우찬이 입을 열었다.그러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진환식이 낮은 목소리로 잘랐다. “있어도 삼켜.”진우찬의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진우찬이 영재 쪽을 보았다.‘쓸모없는 자식!’‘아버지 옆에서 그렇게 비위를 맞추면 뭐 해. 중간에 끼어든 강솔 하나만도 못한데.’진환식이 압박감 어린 눈으로 일행을 하나씩 훑었다. “오늘 왜 모이라고 했는지는 다들 알겠지.”진무천이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대답했다.“주식 양도 계약서의 세부 사항은 지난번 식사 때 이미 확인했어. 이제 솔이도 과제를 마쳤으니 너희도 서명해야지.”진환식은 말과 함께 주식 양도 계약서를 꺼냈다.김 집사가 진무천과 진우찬 앞에 각각 놓았다.태휘의 경우는 달랐다.태휘가 관리하는 지분 대부분은 대신 보유한 것이라, 최종 서명은 진무천이 해야 했
도엽은 그런 속내를 전혀 몰랐다.통화를 끊은 뒤에는 앞으로 강솔을 상대할 때 뒤를 받쳐 주고 수습해 줄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뿐이었고, 더는 거리낄 게 없었다.진무천이 돌아온 도엽을 보자 김 집사를 밖으로 물리고 물었다. “어떻대?”도엽이 도현의 뜻을 전했다. “아직은 저희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대신 성의 표시로, 지분이 넘어간 뒤 저희가 움직이게 되면 하중현 씨는 막아 주겠답니다.”진무천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머릿속으로 득실을 따져 보았다.‘하중현만 막으면 정숙이랑 여윤재는 상대하기 어렵지 않아.’여윤재는 결국 여씨 집안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간섭하면 여윤재의 아버지와 다른 집안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진씨 집안과 여씨 집안은 본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정숙이는...’‘혼자서 진씨 집안 전체를 어떻게 흔들겠어.’“믿어도 되겠냐?” 진무천이 걱정하는 건 그것뿐이었다.도엽은 도현을 제법 신뢰했다.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하씨 집안 장남에 현 HS그룹 대표인데, 약속을 어기면 본인의 명예에도 흠이 나지 않겠습니까.”진무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두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자신들의 말에는 힘이 너무 없었다.집안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태휘는 이 일에 끼지도 않았다.도현이 정말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책임을 물을 처지가 아니었다.도엽이 물었다. “작은아버지께도 알려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 말이나 내뱉을까 걱정됐다. 원래 감정에 휘둘리고 성정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진무천은 제 동생을 잘 알았다. “그럴 필요 없어. 그런 배포는 없는 사람이다.”진우찬은 실제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다.일이 드러나면 자신의 쪽은 전부 끝장이지만 진무천 쪽에는 태휘가 남는다는 생각에 속이 뒤집혔다. 결국 영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영재는 진환식과 함께 앉아 있었다.누가 거는 전화인지 확인하고는 무심하게 거절 버튼을 눌렀다.진우찬은 기가 막혔다.진우찬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