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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2화

Auteur: 주 한잔
그저 용강한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머무는 것이, 차디찬 빙상 위에 홀로 누워 있는 것보다 훨씬 편안했다.

“사부님, 저에게 전생의 일을 더 들려주세요…”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소우연을 보며, 용강한은 애가 타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그저, 그저 오라버니께서 저를 안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절대로, 절대로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꾹 참겠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오늘 평소보다 한참이나 지체된 탓에 빙상으로 돌아올 시간을 놓쳤고, 설상가상으로 사부님이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받아주지 않는 현실에 부딪히자 소우연의 심맥은 크게 손상되고 말았다.

가냘픈 그녀가 품 안으로 덜컥 뛰어들자, 용강한은 두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허공에서 방황했다.

소우연은 용강한에게 온전히 매달리다시피 했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서늘한 기운과 은은한 침향 냄새가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였다.

용강한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심장 소리가 빨라졌다.

그는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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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587화

    '이건 희곡에나 나오는, 황자나 공주가 황제에게 쓰는 호칭이 아닌가?'령이는 온몸이 굳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소우연이 고개를 돌려 령이를 발견하고는 손짓하며 물었다.“왜 그러느냐, 무슨 일 있느냐?”령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저, 그게, 저기, 소 대인께서 오셨습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알고있다.”소우연은 령이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보고 이진을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방금 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에 아마도 령이가 대화를 엿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령이는 내 사람이니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터였고, 이 비밀을 밖으로 발설할 리도 없었다.소우연이 령이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다 들었구나.”령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소우연이 이어서 말했다.“괜찮다. 다만 당분간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거라.”“예, 마님. 명심, 명심하겠습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일 즈음, 음식을 든 소항이 약재 창고 쪽으로 다가와 문가에 서서 소우연을 바라보았다.몇몇 늙은 의원들이 이미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화랑과 령이 역시 다가가 예를 갖췄으나, 오직 소우연과 이진 모녀만이 하던 일을 계속하며 바삐 움직일 뿐이었다.소항이 손을 들어 올리며 명했다.“모두 물러가라.”늙은 의원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린 뒤 뿔뿔이 흩어졌다. 화랑과 령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난처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소우연이 말했다.“너희 둘도 그만 물러가 보거라.”“예, 마님.”령이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만약 큰아가씨가 공주라면, 마님께서는 황태후라는 뜻 아닌가? 그럼 이 대인과 소 대인 두 분 중, 도대체 누가 큰 아가씨의 친부란 말인가?'화랑은 령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그녀를 끌고 밖으로 물러났다.소항이 소우연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음식을 마당에 있는 나무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이진이 웃으며 말했다.“대왕께서 오늘 또 저희 어머니께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신 겁니까?”“그래. 너도 먹어도 좋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586화

    주익선의 말에 양세봉은 차마 제대로 된 대답을 잇지 못했다.“그는 대왕이다. 대왕이 신하에게 죽으라 명하면 신하는 어쩔 수 없이…”“그자는 그저 노비를 거느린 주인에 불과합니다. 군주라면 마땅히 신하와 백성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건만, 그런 자를 어찌 성군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자에게 어찌 충성을 바치며, 어찌 제 목숨을 그리 가벼이 그자의 손에 내맡길 수 있겠습니까?”부장군이 다급히 손을 들어 주익선의 입을 틀어막았다.“제발 그만하거라.”주익선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이 영남의 주인은 진작에 바뀌었어야 했습니다.”말을 마친 주익선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소항 그놈이 이따가 또 무슨 선 넘는 짓거리를 벌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와 이진은 소우연을 단단히 호위해야만 했다.양세봉을 비롯한 이들은 주익선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하나같이 말문이 막힌 채 멍하니 서 있었다.부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장군님, 이 일은 대왕께 보고를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양세봉이 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신하의 아내를 탐내고 백성들의 생사 따윈 안중에도 없다니, 허허…”“양 장군님,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아직도 이휘와 소성진, 그리고 주 단주 같은 자들이 진정 평범한 인간들로 보이느냐?”양세봉이 일행을 돌아보며 되물었다.“확실히 범상치 않아 보이긴 합니다. 특히 그 소성진과 이휘라는 두 사람은 관상부터가 남을 압도하는 기백이 흐르더군요. 심지어 왕 의관과 이 의관 모녀조차도 묘하게 평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부장이 거들었다.“어쨌든 상운국에서 유배되어 온 자들이니 태생이 얕진 않겠지요. 허나 이곳 영남에서 대왕께서 기회를 주지 않으신다면, 그들이 무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양세봉이 무심하게 대꾸했다.“글쎄. 정 고발하고 싶거든 그대들이 직접 가서 하거라.”“장군님께서는 대왕께 고하지 않으실 작정이십니까?”양세봉은 눈앞의 부하들을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난 그런 말 한 적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585화

    주익선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소항이 무슨 대왕이 될 운명이 아니라, 그저 진 도사의 계략에 쓰이는 장기말에 불과하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진 도사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단 말이냐? 만약 진짜로 그렇다면, 어째서 자기 핏줄이나 믿을 만한 심복을 대왕으로 내세우지 않았겠소?”“세상은 넓고 기이한 일도 많은 법입니다. 그 속에 또 다른 내막이 숨어 있을지 장군께서 어찌 아시겠습니까?”무리들의 시선이 주익선에게 쏠렸다.주익선이 말을 이었다.“비유하자면 하늘의 신선들이 싸우는 격인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무얼 알 수 있겠습니까?”“하늘의 신선들이 싸운다?”주익선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소항,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강자들의 다툼에 휩쓸린 희생양일 뿐이지요.”“그건…”“여러 분들 모두 군영의 중책을 맡고 계시건만, 밖에서 돌아가는 소식을 알아낼 수 있는 분이 정녕 한 분도 없단 말입니까?”몇몇이 고개를 저었다.부장군이 입을 열었다.“정말로 없다. 바깥세상이 대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도 통 알 수가 없다. 하나 듣자 하니 지금 상운국의 국정은 꽤 괜찮다던데,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고 하더구나. 아무래도 여자가 황제 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여자가 집안을 이끌면 집이 무너진다고 했다. 하물며 여자가 황제 자리에 앉았으니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깨지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니겠느냐? 그러니 소항이 대왕이 될 운명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주익선은 이 자들이 도무지 구제 불능이라고 느꼈다.“여자도 사람이고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분에게 황제가 될 능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지도 못했을 겁니다.”부장군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그래서 소항이 장차 우릴 이끌고 이 영남을 벗어나 상운국의 황제가 될 수도 있다…”“그때가 되면 왕조가 바뀌는 것이고, 상운국은 그저 전조로 남게 되겠지.”이토록 확신에 찬 그들의 모습을 보며, 주익선은 일이 꽤 까다롭겠다고 생각했다.부장군이 주익선의 어깨를 툭툭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584화

    해가 중천에 떴다.과연 예상대로 소항이 군영으로 시찰을 나왔다.주익선이 양세봉에게 다가가 소리 낮춰 물었다.“대왕께서 군영에 항상 이리 자주 오십니까?”양세봉은 속으로 이 주익선과 이휘 일행이 한패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소항이 이리 자주 군영을 찾는 이유가 대단히 긴박한 군무 때문이 아니라, 선약방에 있는 그 여인 때문이라는 것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이토록 여색을 밝히고 남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는 무리를, 양 장군께서는 정말 마음 놓고 따르며 충성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진 도사로 말하자면, 그는 그저 상운국 전 감정의 사형이자 사문에서 쫓겨난 배신자에 불과한데, 그에게 무슨 재주와 자격이 있어 소항이 대왕이 될 운명이라고 점쳤단 말입니까?”“양 장군, 만약 오늘 장군께서 이런 큰일을 당하셨다면 저는 절대 수수방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훗날 장군께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저 역시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양세봉의 뇌리에 이휘가 예전에 해주었던 그 말들이 무의식중에 스쳐 지나갔다.이토록 여색을 밝히고 신하의 아내를 빼앗는 자가, 진정 명군이란 말인가?양세봉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주익선을 응시했다.“내가 지금 당장 대왕께 이 사실을 낱낱이 고할까 두렵지 않느냐?”주익선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보고할 거였다면 어제 하셨어야지요. 어제는 입을 다무시고 이제 와서 말씀하신다면, 소항의 성정으로 보아 도리어 장군의 저의를 의심할지도 모릅니다.”“……”주익선이 덧붙였다.“양 장군,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장군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해치지 않을 거면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거라.”“예.”양세봉이 소항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자, 주익선 일행도 바짝 그 뒤를 따랐다.“대왕을 뵈옵니다.”“양 장군은 고개를 들라. 모두 예를 거두어라.”소항의 말에 주익선 일행도 허리를 곧게 폈다.소항은 연병장에서 무술 대련을 하는 병사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대련에 임하는 병사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진지하고 열성적이었다.“오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583화

    이날 밤, 나무 침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감당해 본 적 없는 격렬한 힘을 고스란히 견뎌내야만 했다.닭이 우는 새벽 무렵.이육진은 그제야 겉옷을 걸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그는 마당 물독가에 앉아있는 령이의 모습을 멀리서 발견했다.이육진이 입을 열었다.“여봐라.”비몽사몽 간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령이는 번쩍 눈을 떴다. 이내 소 대인이 정말로 본채 문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예, 대인.”“더운물을 가져오너라.”“예.”령이는 짧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이육진은 방으로 들어간 뒤 목욕통을 번쩍 들어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마당 한구석에 쏴아악 하고 단숨에 물을 쏟아버렸다.때마침 물통을 들고 다가오던 화랑과 령이 부부는 그 장엄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화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 대인의 힘이 어찌나 장사인지, 저토록 거대한 물통에 든 물을 이토록 가볍게 비워버리다니!만약 자신과 령이였다면 나무통으로 물을 퍼내기를 반복하느라 족히 반 각은 걸렸을 텐데, 소 대인은 숨을 몇 번 고를 시간 만에 끝내버린 것이다.화랑이 목욕통을 깨끗이 씻어내자, 두 사람은 부엌에서 부지런히 더운물을 길어 와 통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통에 더운물이 가득 차자 이육진이 말했다.“너희 둘은 그만 가서 쉬거라. 내일은 좀 늦게 일어나도 괜찮다.”“대단히 감사합니다, 대인. 감사합니다, 마님.”“물러가거라.”“예.”화랑과 령이가 물러갔다. 마님이 아직 침상에서 일어나지조차 못한 상황을 보건대, 오늘 밤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만했다.이 세상에 이런 사내가 존재할 줄이야,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다음 날.이육진은 서둘러 떠나지 않았다.선약방으로 온 이진은 이육진을 보자마자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그의 품으로 뛰어들 뻔했다.이육진이 빙그레 웃으며 이진을 향해 손짓했다.이진은 얌전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행여나 용강한도 없는 마당에 남의 귀에라도 들어갈까 두려워, 그저 마음속으로만 '아바마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582화

    “아주 잘하셨습니다. 부군께서 가장 잘하시는 것이 정권을 장악하는 일이지요.”소우연이 웃으며 말했다.이육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연아, 내게 무슨 상을 줄 테냐?”“무슨 상을 원하시나요?”그녀가 이육진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너.”“그거 말고요.”“그래도 너다.”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담긴 소유욕은 예전처럼 강렬했고, 말투는 단호하고 강경했다.“내게 있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원하는 건 너뿐이다.”소우연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그의 목을 끌어안고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이육진은 실없이 헤벌쭉 웃더니, 이내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을 때, 살포시 눈을 감은 연아의 모습이 보이자,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동했다.기둥이 달린 침상도 제멋대로 생각이 있는 것인지, 평소의 고요함과는 달리 오늘따라 유난히 삐걱대며 심하게 흔들렸다.마당을 지키고 있던 령이의 귀에 어렴풋이 무언가 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바람 소리가 그 소리들을 한데 뒤섞어 버렸다.군영을 이리저리 순찰하는 병사들은 단 한 번도 이곳까지 오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지만, 이는 본래 소항이 선약방에 들를 때 남의 이목을 피하고자 직접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령이는 별빛 아래 서 있었다. 봄날의 밤바람은 아직 살을 에는 듯하여, 그녀는 양팔을 감싸 안은 채 마당에 놓인 큰 항아리에 기대어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령이가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서둘러 대답했다.“제가 당장 더운물을 떠 오겠습니다!”화랑이 웃으며 말했다.“나오.”령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약방 안을 힐끗 보니 촛불은 그리 밝지 않았고, 물을 달라고 부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화랑이 말했다.“두 분 다 이미 잠드신 게 아니오?”“그럴 리가요. 마님은 틀림없이 깔끔한 걸 좋아하실 텐데, 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330화

    “제가 좋아하는 꽃이네요.”그녀가 가늘고 고운 손으로 꽃을 받아들며 향기를 맡았다.경장명이 물었다. “낭자, 아까는 무슨 생각에 그렇게 빠져 있었던 겁니까? 혹시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그는 알 수 없었다. 혹시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하는 걸까. 처음에는 그녀가 잘 감추고 있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마음이 산만해 보였다.이 모든 것은 그녀가 이천이 장안거리에서 점을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아닙니다.”그녀는 청년의 시선을 피하며 교외를 흐르는 강을 바라보았다. 강 양쪽으로는 잡초가 무성했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377화

    ’만약 일찍 이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궁궐에 들어가 호위무사가 되든지, 아니면 마음잡고 글공부를 하여 과거를 봤을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신세는 되지 않았을 텐데.’그는 가슴이 쓰렸다.이진은 주익선의 얼굴에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며, 고운 입술선을 그려주기 시작했다.“아씨…”하녀 염이가 복숭아꽃 가지 몇 개를 안고 들어왔다. 방 안에서는 공주가 또다시 주익선에게 화장을 시키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광경이 전혀 낯설지도 않은 모양이었다.다만 이번에는 주익선의 화장된 얼굴을 본 순간 눈이 동그래지더니 깜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179화

    이튿날, 경문과 이천은 말을 달려 운불사에 당도하였다.달리는 내내, 이천의 가슴 속엔 설명할 길 없는 불길한 예감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큰일이 아니고서야, 사부님께서 경문을 보내어 자신을 부를 리 없었다.“사부님.”이천은 용강한의 얼굴을 보자 안절부절못한 채 입을 열었다.“이영 누님은 사부님께서 누님 때문에 경성을 떠나셨다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용강한은 조용히 응하였다.“그 일은 이미 심초운에게 부탁하였다. 그 아이가 영이를 잘 달랠 것이다.”“경성을 떠나신 것이 누님 때문이 아니라면…”이천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135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찌하여 저를 영원히 '시군'의 신분으로만 곁에 두려 하십니까?”이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인상을 찌푸린 심초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그가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영은 반사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의 손아귀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강압적인 기운, 아침에 허공을 딛고 뇌운을 몰아칠 때 보여준 그 위압감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그 감각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그녀는 당황한 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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