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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Author: 주 한잔
소우연은 얼굴을 붉혔지만, 고개는 잊지 않고 끄덕였다.

두 사람은 침실로 들어갔다. 정연이 책을 소우연의 베개 밑에 넣으며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마마께서 좀 더 마음을 쓰셔야 합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워낙 뛰어나시니, 앞으로 각 가문의 세력가들이 미인을 보내올 일이 많을 것입니다.”

소우연의 뺨이 다시 붉어졌다. 이토록 좋은 사람이니, 앞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미녀들이 그에게 다가오겠지.

그런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장차 이육진은 황제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직 자신만의 여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방금 받은 책 같은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마마?”

정연은 소우연의 표정이 어두워진 걸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때 명심이 탕을 가져왔다.

소우연은 반 그릇 정도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육진에게 발라줄 약고가 다 떨어져 가는 걸 떠올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별채로 가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가 서쪽으로 지도록 약을 거의 다 완성했으나, 아직 이육진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잠시 책을 보았으나 바깥 하늘은 이미 별이 가득했다.

“전하께서는 아직 안 돌아오셨느냐?”

소우연이 의서를 덮으며 작은 탁자 곁에 앉아 졸고 있던 정연에게 물었다.

정연은 졸다가 소우연이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네, 아직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제가 한번 나가서 확인해 볼까요?”

정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소우연이 손을 들어 말렸다.

“아니다, 됐다. 씻고 쉬자.”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정연이 급히 다가와 보고했다.

“마마, 방금 태자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밤엔 궁에 머무시고 내일 돌아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다더냐?”

“그 말씀은 없었습니다.”

“알겠다. 너희도 이제 쉬어라.”

오늘 밤 돌아오지 않는다니…

왜인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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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7화

    이육진을 보자마자 나인들이 서둘러 예를 올리려 했으나, 그가 손가락을 들어 작은 소리로 막았다.“태자빈은 아직 자고 있느냐?”정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 시각까지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평소 소우연은 잠이 많긴 했지만, 이렇게 정오까지 자는 일은 없었다.정연이 어젯밤 소우연이 갑자기 놀라 깬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했다.이육진은 순간 말이 없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정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부엌에 가져가 따뜻하게 데워두거라.”“예, 전하.”이육진은 가볍게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그는 침상 위에서 잠든 소우연을 깨우지 않으려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다.어젯밤, 황제는 그를 궁에 남게 하고는 한 가지 약속을 요구했다.장차 그가 황제가 되면, 덕빈을 태후로 책봉해서는 안 되며, 오직 태비로만 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육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누구나 황제가 덕빈을 가장 아낀다는 것을 아는데, 어째서 태후의 자리를 덕빈에게 주지 않는 것일까.심지어 앞으로 그가 황위에 오르더라도, 결코 덕빈을 태후로 삼아서는 안 된다니.황제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를 어서 결단을 내리라며 어서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다.이육진은 밤새도록 이 문제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정신을 차렸을 때는 날이 환히 밝았고, 이미 조회도 한참 전에 시작된 뒤였다.그에게 과연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황제의 말을 따른다면 온 상운국 백성들이 그를 욕할 것이고, 따르지 않는다면 황제의 명을 어기게 되니,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소우연의 아름다운 얼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녀는 늘 소우희와 이민수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했다. 심지어 꿈에서도 늘 불안해하는 아이였다.그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태자 전하께서는 아직 서재에 계십니까?”덕빈 곁에 있는 기 나인의 목소리였다.문밖의 내시가 바로 대답했다. “예, 아직 계십니다.”기 나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태자 전하, 덕빈 마마께서 전하를 단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8화

    이육진은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목이 쉰 듯 낮게 속삭였다.“별로 좋지 않았다.”“무슨 일입니까?” 소우연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의 손을 부드럽게 주물러 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거예요?”“지금 당장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럼,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녀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저도 당장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이 있거든요.”이육진은 작게 웃으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그렇다면 우리 이렇게 약속하자. 서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리되면 그때 함께 말하기로.”“좋아요.” 소우연은 망설임 없이 바로 수락했다.“네.”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옷을 벗고 침상으로 올라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사실 이육진은 오래전부터 소우연이 자신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음을 느꼈다.그녀가 먼저 말하지 않는다면 굳이 묻지 않았다.게다가 지금은 자기 자신조차 궁에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모든 일의 시작은 어쩌면 두 분이 혼인했던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르지만, 그토록 오래전의 일이라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을 보고 소우연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이육진은 그녀의 손을 잡아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난 괜찮아.”소우연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부군, 아침은 드셨어요?”이육진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우연이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생각에 이내 간석을 불렀다.“부르셨습니까, 전하.”밖에서 기다리던 간석이 곧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상을 들이거라.”“예, 전하.”간석이 물러나자, 정연과 명심 등 나인들이 곧바로 들어와 두 사람의 세수를 도왔다.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난 뒤, 소우연은 이육진에게 좀 쉬라고 권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우연아, 나랑 조금만 더 자자.”그녀는 잠시 말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79화

    몇 바퀴를 더 산책한 후, 소우연은 이육진의 다리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부군의 다리는 앞으로 무리만 하지 않으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이육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예전처럼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는 소우연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기색이 보일까 봐 불안해하는 눈빛이었다.“물론이죠.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내가 묻는 건… 완전히 예전처럼 무공을 다시 익힐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걸 말하는 거야.”소우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가능해요. 하지만 무공 수련은 내년 봄이 지나고 난 후부터 하시는 게 좋겠어요.”내년 봄이라…그때까지는 아직 반년 정도 남아 있었다.하늘엔 달이 뜨고, 별들이 밤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정연이 등롱을 들고 조용히 다가와 길을 밝혔다.소우연은 이육진이 너무 오래 걷다가 피곤할까 봐 걱정돼 곧장 본채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이튿날.소우연이 일어났을 때는 이육진이 이미 조정으로 조회를 나간 뒤였다.아침 식사를 하면서 소우연은 일부러 한 번 물어보았다.“어머니께서 오늘 또 왔느냐?”정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안 오셨습니다.”잠시 생각한 뒤 정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어쩌면 앞으로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소우연은 고개를 흔들었다.“분명 다시 올 거다. 오늘 오지 않은 건 평춘왕부에 가서 소한준을 장군부로 데려오는 문제로 바빴기 때문일 거다.”정연이 깜짝 놀랐다.“앞으로 매일 와서 마마를 귀찮게 하시면 어떡하죠?”“그러니 다음번엔 그냥 뒷문을 열어주고, 앞으로 올 때마다 뒷문으로 들어와 별채에서 기다리라고 전하거라.”정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듯했다.……평춘왕부.평춘왕 이종대는 이미 하루 종일 물 한 모금조차 넘기지 못했다.그의 입술은 메마르고 갈라져 창백했고, 옅은 핏자국만 희미하게 보였다. 온몸에서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80화

    소우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마침 침상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이종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씁쓸하게 비웃으며 말했다.“그러게 일찍이 죽지 그러셨어요.”하지만 평춘왕을 직접 죽일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서둘러 목욕탕으로 가서 몸에 묻은 피를 깨끗이 씻었다. 방으로 다시 돌아온 후, 소우희는 사람을 시켜 혜주를 데려오게 했다.난장판이 된 방 안은 시녀들이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지만, 공기 중에 가득 퍼진 피비린내는 숨길 수가 없었다.혜주는 잔뜩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소우희는 주변 사람들을 전부 물러가게 한 뒤, 갑자기 그녀를 껴안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아아아…”혜주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고 그저 소우희의 등을 살살 두드리며 달래주었다. 소우희의 공포와 무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소우희는 한참이나 울고 나서야 혜주의 손을 붙잡고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어머니와 셋째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도 전부 말했다.혜주는 찡그린 채 그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과거에 소우희가 잘 나갈 때는 그녀도 덩달아 영광을 누렸지만, 지금처럼 소우희가 몰락하니 그녀 역시 처참해졌던 것이다.“이 모든 게 다 소우연 때문이야.”소우희는 중얼거리며 미친 듯이 자신의 목과 얼굴을 긁었다. 얼굴에는 금세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생겼다.혜주는 놀라서 과감히 소우희의 손을 붙잡았다. 더 긁으면 얼굴을 망치고 말 거라고 온 힘을 다해 말리고 싶었지만, 혀가 잘린 탓에 그저 급하게 ‘아아’ 소리만 낼 뿐이었다.“혜주야, 나… 나 정말 느낌이 안 좋아…”“나 너무 두려워.”“누가 날 해칠 것만 같아. 소우연이 내 목숨을 노리고 있어. 내가 알던 소우연이 아니야, 너무 독해졌다고!”소우희는 횡설수설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좋지 않은 예감이 마치 거대한 산처럼 그녀의 가슴을 짓눌러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혜주야,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몰라…” 소우희의 눈에는 공포만 가득했다.“아버지, 어머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81화

    소우희는 혜주에게 말했다.“내 몸에 약 좀 발라주렴.”유 의원이 준 약은 효과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이 이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혜주는 소우희의 몸에 정성껏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혜주는 한때 매끄럽고 깨끗했던 소우희의 피부가 온통 긁힌 자국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긁힌 부위에 가느다란 핏줄들이 마치 피부를 뚫고 나오려는 듯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혜주가 깜짝 놀라 몸을 떨자 소우희도 덩달아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팔다리에는 검은 점들이 수도 없이 생겨 있었다.소우희가 급히 문지르자, 검은 핏줄들이 정말로 피부를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다행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손목의 검게 물든 핏줄이 특히나 섬뜩하게 다가왔다.이 독을 빨리 치료하지 못한다면 내일은 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이지윤은 지난번 그녀와 함께한 후로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인의 말에 따르면 세자는 멀리 길을 떠났다고 한다. 신의를 직접 초빙하러 떠난 길이자 앞으로의 큰일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했다.이지윤이야말로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조금의 원망 섞인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참고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아얏! 좀 살살해. 너무 아프잖아.”소우희는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며 말했다.“내가 반드시 소우연 그년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반드시 그렇게 하고 말겠어!”혜주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정성스레 약을 발라주었다. 피부의 상처가 워낙 심해서 약을 바를 때마다 피가 섞여 옅은 분홍색이 되어 흘렀다.약을 다 바르고 옷까지 제대로 입혀준 혜주는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우희를 향해 절을 했다. 커다란 눈망울로 소우희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소우희가 조용히 물었다.“앞으로 계속 내 곁에서 날 보살펴 주고 싶은 거지?”혜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혜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82화

    ”장군부로 돌아갈 것이다.”“태자 전하께서는 허락하셨어요?”임진숙은 소우희를 쳐다보며 말했다.“그래, 허락하셨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러느냐?”얼굴을 온통 긁어 붉은 자국투성이였다.소우희는 억울해 울먹이며 말했다.“소우연 그 애가 저한테 독을 썼어요! 너무 가려워 미칠 지경이에요!”“정말…”임진숙은 발을 구르며 안타깝게 소리쳤다.“이 못난 것, 정말 못난 것 같으니라고!”이 일은 예전에도 소우희가 말한 적이 있어, 다 해결된 줄만 알았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녀의 얼굴은 어둡고 칙칙했으며 긁힌 자국이 너무 심해 마치 마마 자국이라도 난 것 같았다.소한준의 다리도 아직 낫지 않았건만, 이제는 소우희의 얼굴까지 이 꼴이 되었으니 임진숙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서 태의를 불러 진맥을 받아 보아라.”어쨌든 본인은 평춘왕비인데, 태의 정도는 얼마든지 부를 수 있지 않은가?그때 소한준이 싸늘한 말투로 비웃으며 말했다.“남을 해치려다가 자기가 당한 거니 자업자득이지요.”“오라버니…”갑자기 들려온 독설에 소우희는 정신이 멍해졌다. 방금 자신을 향해 차갑게 비웃던 사람이 소한준이 맞나?어렸을 때부터 누구보다 자기를 아껴주었던 셋째 오라버니가?“더 이상 날 셋째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마라. 지난번에 이미 말했지만, 난 이제 너 같은 동생 없다.”소한준의 눈에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그가 소우희를 증오하는 이유는 그녀가 온 가족을 속여 자신이 의술을 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거짓말이 들통난 뒤에도 자신을 끝까지 속였다.소한준은 소우희가 그저 소우연과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거라 믿고 도왔지만, 그녀는 오히려 소우연을 해치려 하고 심지어 그녀의 얼굴까지 망가뜨리려 했다.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악독함이었다.소한준은 장군이었다!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그러나 이제 두 다리가 망가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전부 다 소우희 때문이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이육진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83화

    말을 마친 임진숙은 호위병들에게 소한준을 데려가도록 명한 뒤, 그대로 큰 무리를 이끌고 떠났다.“양심이 없다고요? 어머니, 지금 뭐라 하셨어요!”“난 아니에요! 난 아니라고요!”“가장 악독한 사람은 소우연이에요! 재수 없는 그 계집애라고요!”소우희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울부짖으며 항변했다.평춘왕부의 하인들은 멀찍이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안타까운 듯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세자 저하가 현명하시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 여인은 어떻게 봐도 복이 없어 보였다.오직 질투와 증오뿐, 조금의 넓은 마음씨도 없었다.“뭘 봐? 보지 마! 전부 다 고개 돌려!”소우희는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방금 전까지 푸르고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둡게 물들더니 먹구름이 무겁게 몰려오기 시작했다.거센 바람은 마당의 나무들을 사납게 흔들었고, 가지는 금방이라도 꺾일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모두 나를 괴롭히는구나! 하늘마저 나를 괴롭히려 드느냐? 내가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내려왔단 말이다. 난 분명 봉황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란 말이야!”“그런데 왜!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아니야! 난 지지 않아! 난 절대 지지 않을 거야!”먹구름 사이를 번개가 가르더니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곧장 이어졌다.한 하인이 용기를 내어 외쳤다.“마마, 비가 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세자는 소우희가 이 시련을 이겨낸다면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의향이 있다고 했다.바로 그때, 소우희는 눈앞에 수많은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듯했다. 심지어 벌레들이 그녀를 비웃으며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렸다.“넌 이제 더 이상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야.”“지금 넌 그저 불쌍한 벌레일 뿐이지. 네 자존심도, 가족도 전부 널 버렸어. 마치 예전의 소우연처럼. 넌 이제 아무 쓸모도 없어.”“닥쳐! 전부 닥치란 말이야!”소우희는 날벌레들을 쫓아내려고 팔을 휘두르며 비틀비틀 마구 걸어 다녔다.본채 뒤뜰에서, 흰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84화

    “그렇다고 할 수 있다니?”무슨 뜻이지?소우희는 아령의 청아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아니, 지금은 화장을 한 것 같았다. 소우연처럼도, 평서왕세자빈처럼도 아닌 모습이었다.왠지 모르게 소우희는 이 아령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지금 다른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하인의 말이 떠올라 그녀는 급히 물었다.“하인이 네가 의술에 능하다고 하던데 사실이냐?”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럼 내 몸 좀 살펴봐라. 소우연 그년이 도대체 어떤 독을 썼는지.”소우희는 아령에게 손목을 내밀었다.손목 위로 검푸른 핏줄이 뚜렷이 드러나 있었고, 그 흑색의 기운이 팔꿈치까지 번져 있었다.아령은 별말 없이 그녀의 맥을 짚었다.“어떠냐?”아령의 미간이 자꾸 찌푸려지자 소우희는 초조해져 다급히 물었다.“왕비 마마, 맥상으로는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만… 분명 독에 중독된 것이 맞습니다.”소우희의 얼굴과 온몸에 긁힌 자국을 보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그럼 치료할 수 있느냐?” 소우희가 간절히 물었다.치료할 수 있느냐고?치료할 수 있다 해도 소씨 가문의 사람을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아령은 마음속으로 경멸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소녀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그 말에 소우희는 화가 나 테이블 위의 차와 찻잔을 모두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혜주가 황급히 바닥을 치우러 달려왔다.소우희는 의심의 눈초리로 아령을 쏘아보았다.“치료할 수도 없으면서, 오늘 여긴 왜 온 것이냐?”아령은 담담히 대답했다.“소장군의 상태를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려 왔지만, 안타깝게도 소녀가 능력이 부족했습니다.”소우희는 아무래도 아령이 자신을 놀리러 온 게 아닌가 싶었다.하지만 아령은 이지윤의 사람이었고, 그동안 백화루에서 편히 지내왔으니 자신이나 소씨 가문과 원한을 맺을 일은 없을 터였다.밖의 천둥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지만 빗줄기는 여전히 거셌다.소우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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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2화

    용부에 도착하자 하인이 다가와 알리겠다고 했지만, 소우연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 미리 알리지 않으셔도 돼요.”정연과 진우를 데리고 주합문 앞에 다다랐을 때, 소우연은 마당 한가운데서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는 용강한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얇은 담요 하나 덮은 채 대나무 안락의자에 기대어 있었고, 따사로운 햇살은 그의 온몸을 감싸며 은은한 빛을 퍼뜨리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햇살 속에 스며들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소우연은 잠시 숨을 삼켰다.곁에 있던 호위가 다가오려 하자 그녀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저는 태자빈입니다. 용 감정과 조용히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호위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그는 그녀를 몰라볼 리 없었다. 주군께서 가장 자주 안부를 묻던 이였다. 위급한 상황에는 도우라는 명까지 내려졌으니, 그가 나서서 막을 이유는 없었다.소우연은 조용히 정연과 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누구도 들이지 말고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발소리조차 삼키며 마당을 가로질렀다.낙엽과 풀이 깔린 바닥 위로 바스락이는 소리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돌려보내라.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용강한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무심하게 말했다.소우연은 멈추지 않았다.“제가 오늘 올 거라는 예감이 들진 않으셨나요?”그제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햇살을 뚫고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그는 그대로 누운 채 손을 모아 가볍게 인사했다.“태자빈 마마셨군요. 자리에 앉으시지요.”소우연은 그제야 그의 옆에 놓인 또 하나의 안락의자를 발견했다.방석까지 가지런히 놓인 자리가, 누가 봐도 ‘그녀’를 기다린 자리였다.“이걸 미리 준비하셨군요. 오늘 제가 올 걸 아셨던 거네요.”“예. 그리고 약간의 수를 써서 태자 전하께서 잠시 궁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단둘이 뵙고 싶었거든요.”소우연은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진맥해드릴게요.”“괜찮습니다…”그의 말이 끝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1화

    이민수는 혜주와 소범준만 남긴 채, 홀연히 자리를 떴다.그가 떠난 뒤, 아령은 소씨 가문 안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 소지윤에게 아이를 얻기 위한 계획도 한결 수월해졌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혜주는 속으로 생각했다.아씨는 누구에게도 깊은 감정을 보이지 않는 분이라고... 그런데 어째서… 소지윤 대인에게만은 그 마음이 다른 것 같았다. 아니, 그렇지 않다면 왜 하필 그의 아이를 가지려 하시는 걸까.한편, 태자부.이육진은 연회를 열고, 용강한과 심소균을 초대했다.술이 몇 순배 돌았을 즈음, 소우연이 용강한더러 ‘오라버니’라 부르자 심소균은 술잔을 들고 멍한 얼굴이 되었다.‘아니…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된 거지?’태자빈이 ‘오라버니’라 부를 정도라면, 절대 가벼운 인연이 아닐 터.그보다 더 놀라운 건, 태자 이육진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심소균은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친 기분에, 괜히 청주를 몇 잔 더 들이켰다.“그냥 조용히 마시죠.”용강한은 무심히 말하며 자신도 잔을 비웠다. 하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소우희는 이미 죽었다.그토록 집요하게 소우연을 괴롭히던 이가 사라졌다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법도 했다.하지만, 연회 자리를 둘러싼 이들의 표정은 어딘가 무거웠다.심소균은 내막을 알지 못했지만, 용강한은 알고 있었다.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어쩌면 또 다른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심소균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자, 이육진은 하인을 불러 그를 데려가게 했다.연회가 마무리되고, 소우연이 조심스레 물었다.“오라버니,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니세요?”“괜찮습니다.”용강한은 담담히 웃었지만, 이어진 기침은 거셌고… 이내 곧 수건에는 선혈이 스며들었다.그는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재빨리 망토를 여미고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띠었다.그러나 그를 지켜보는 눈은 날카로웠다.소우연은 물론, 이육진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용 감정, 네 몸 상태가 왜 이리 나빠졌느냐.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그는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80화

    서재 안은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숨막히는 분위기로 가득했다.이민수는 의연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예전에 우희가 소우연에게 얼마나 애원했는지, 부인께서 또 얼마나 고개를 숙였는지… 다들 기억하시겠지요? 그런데도 소우연은 우희를 단 한 번도 용서하지 않았답니다.”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지금 잠시 조용하다고 이게 끝이라 생각하십니까? 제가 내민 손길을 뿌리치셨으니, 훗날 다시 찾아오신다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고, 서늘한 눈빛을 떨구었다.“우희와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아령이 눈물로 애걸복걸하지 않았다면… 소씨 가문을 위해 이 더러운 일에 제 발로 들어설 생각 따윈 없었습니다.어차피 저희 평서왕부는, 태자부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니까요.”그 말에 소홍범의 안색이 굳어졌다.평서왕의 야심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과거 이육진이 불구가 되고 얼굴까지 망가졌을 무렵, 평서왕은 황태자의 자리를 가장 가까이서 노릴 수 있는 유력한 인물이었다. 비록 직접 황태자가 되지 못한다 해도, 그의 장남 이민수가 황제에게 양자로 들어가 후계자가 될 거란 이야기는 조정에 이미 돌고 있었다.수년간 평서왕부는 조용히 인맥을 조율하고 관료를 포섭해왔다. 이육진이 회복했다고는 하나, 평서왕 부자의 야망은 그 무엇으로도 꺾이지 않았다.소씨 가문은 이제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아버지…”소현우가 조용히 일어섰다. 우희를 향한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소우연에 대한 원망은 이미 마음속에서 불덩이처럼 타오르고 있었다.이 길로 가나 저 길로 가나 지옥이라면, 차라리 평서왕세자의 손을 잡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소홍범은 고개를 돌려 소현준을 바라보았다.소현준은 말없이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소우연을 직접 만나야 하나… 아직은 이르다.’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머뭇거리던 그 순간.이민수가 옷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서자, 소현우가 갑작스레 그의 등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9화

    “누구지?” 임진숙이 물었다.“평서왕부의 세자저하, 그리고 스스로 둘째 아씨의 지기라 밝힌 여인입니다.”소현우가 곧장 말했다. “어머니, 우희와 친하다고 했던 그 손수건 친구입니다. 어제 시신 수습을 도왔던 그 아가씨예요.”임진숙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모셔라. 우희의 친구라니... 잘 모셔야 한다. 알겠느냐?”“예.”소현우는 급히 나가 마중을 나갔다.지금의 소씨 가문에겐 더 이상 발버둥칠 힘도, 핑계도 없었다.평서왕 세자 이민수, 한때는 소우희의 혼처 상대였던 사내. 소우연만 아니었다면, 소씨 가문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일도, 우희가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자신이 직접 여동생의 목을 조르는 죄를 짓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이민수가 도착하자, 병중에 있던 소홍범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맞았다.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다.태자부는 이제 발붙일 수 있는 곳도 없었고, 의지할 곳도 아니었다.소씨 가문이 마지막으로 기대어볼 곳은 오직 평서왕부뿐.본래부터도 세상은 소씨 가문이 평서왕부의 그늘 아래 있다고 여겨왔다.“소 장군께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다시 뵙는 자리가 이리도 쓸쓸할 줄은 몰랐습니다.”소홍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얼굴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휠체어에 앉아 있던 소한준은 냉랭하게 내뱉었다.“소우연만 없었더라면, 우희는 진작에 세자저하의 곁에 있었을 겁니다. 이런 참변도 없었겠지요.”이민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 다 지켜주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형식적인 위로가 몇 마디 오간 뒤, 아령은 이민수의 배려로 이당에 남아 임진숙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소홍범과 이민수, 소현우, 소현준은 서재로 향했고, 소한준은 하인의 부축을 받아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임진숙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한참을 흐느꼈다.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같았다.‘우리 우희가 왜 이리 비참하게 갔을까… 우리 집안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그녀는 끝없는 자책과 회한 속에 빠져 있었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8화

    “그때는 정말로 믿었어. 그 은인이 우리 어머니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그런데 우리가 피를 말리며 상운국에 도착했을 땐 외가 쪽은 이미 떠난 뒤였지. 나중에야 들었어. 멀리 남강으로 이사했다는 걸 말이야. 그 은인은 어머니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했나 봐. 결국 어머니를 다시 백화루에 팔아넘겼어. 그리고 나도… 결국 기생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지.”아령은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로 조용히 혜주를 바라봤다.“넌 어떻게 생각해? 내 이모인 임진숙이라는 사람… 참 무섭지 않아? 그런 사람은 죽어 마땅하지 않아? 왜 그 사람은 고귀한 장군 부인으로 살아가고, 우리 어머니는 천한 기생이어야 해? 왜 그 사람 자식들은 다들 한 자리씩 가질 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천한 신분이었던 걸까? 우리 어머니가 그걸 참지 못했어. 나도 마찬가지였고.”아령의 눈빛은 억눌린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그래서 맹세했어. 어머니랑.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꼭 그 사람과 그 사람 가문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겠다고.”그녀는 눈물을 훔친 뒤, 환하게 웃었다.그 미소는 해맑았지만, 그 속에 담긴 결심은 날카롭고 서늘했다.“그게 바로 내가 살아 있는 이유야.”그 이야기를 들은 혜주는 마음 깊은 곳이 흔들렸다.‘그랬군요… 그래서…’소 부인 임진숙. 겉으론 다정하고 자애로워 보였지만, 어린 동생을 백화루 문 앞에 유기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분명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중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소우희 아씨가 그렇게 악랄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군요.’‘진짜… 그 어머니에 그 딸이었네요…’“그 진홍색 비단함, 꼭 잘 보관해. 그 안엔… 언젠가 그 집안 사람들의 뼛가루를 담게 될 거야. 그래야 어머니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테니까.”아령은 혜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너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았잖아. 그 마음, 나도 잘 알아. 평서왕부로 돌아가면 널 풀어줄거야. 그때 내가 준 돈으로 아무도 널 모르는 곳에 가서… 조용히, 너답게 살아.”그 말을 들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7화

    그녀가 한때 이민수의 침소를 지키던 몸이었다는 사실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그랬군요...”소현우는 장정답지 않게 눈가가 붉어졌다.멀찍이서 하인들이 수레를 끌고 오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저건...”“우희 언니에요.”아령은 숨김없이 고백하며, 눈가를 눌렀다. 슬픔을 삭이는 듯한 손짓이었다.소현우에게는 낯선 장면이었다.소우희에게 이런 절절한 마음을 나누던 벗이 있었던가.그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소현준은 그리 쉽게 믿지 않았다.여인의 말은 빈틈이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그럼에도 혜주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있었다.소현준은 혜주를 일으켜 세우며 눈을 맞췄다.“정말... 둘째를 원망하지 않느냐?”혜주는 힘 있게 고개를 저었다. 그 눈빛엔 감사와 충성이 담긴 듯 보였다.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그녀는 소우희를 증오했다. 결국 바랐던 대로 소우희는 혀를 잃고,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그것으로 충분했다. 모든 것이 보상받은 기분이었다.소현우는 그런 혜주의 내면까지는 읽지 못한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어릴 적부터 함께한 사이니... 주인과 종이라도 정이 있었겠지.”사실 혀를 자른 것도 그날 격분한 소홍범의 지시였다.이제 소우희는 죽었고, 더는 이 하녀에게 뭐라 할 이유도 없었다.소현우는 이마를 짚으며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아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고맙다. 혜주가 그대 곁에서 지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우희가 남긴 인연이라 생각한다.”아령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오라버니... 아니, 장군님. 죄송해요. 순간 감정이 북받쳐서...”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치 실수라도 한 듯 웃어 보였다.소현우는 손을 내저었다.“우희의 벗이라면, 오라버니라 불러도 괜찮다.”잠시 후, 소씨 가문의 하인들이 아령 일행의 수레 대신 소우희의 시신을 직접 실었다.이제 그녀를 보내는 건, 가족의 몫이었다.소현준은 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형은 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6화

    전날엔 폭우가, 오늘은 뙤약볕이 내리쬐었다.이런 날씨 속에서, 소우희의 시신은 또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을까.강직한 무장이자 소씨 가문의 주인인 소홍범조차 그 앞에선 중심을 잃을 뻔했다.말을 꺼내려다 삼킨 그는, 결국 큰아들 소현우와 둘째 소현준에게 시신을 찾으러 가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난장골.산바람은 살을 찌를 듯이 뜨겁고, 공기마저 눅눅하게 달아올라 있었다.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숙취에 시달리던 소현우는 동생과 함께 난장골에 도착했다.주위를 둘러보니, 시신을 찾아 이곳을 헤매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그중 한 무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희고 단정한 옷차림의 소녀가 한 대의 수레를 따라가고 있었고, 수레 위엔 희미한 천이 덮인 시신 하나가 실려 있었다.소녀의 눈가엔 희미한 붉은 기가 맴돌았다.썩은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소현준은 코끝을 막으며 얼굴을 찌푸렸다.호위병 하나는 이미 참지 못하고 옆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소현준은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며 말했다.“둘째 아씨 시신부터 찾아라.”차가운 명령이 떨어지자, 하인들은 이를 악물고 악취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때였다.하얀 옷의 소녀와 그 일행이 소씨 가문의 마차 앞으로 다가왔고, 소녀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실례합니다. 혹시 소씨 가문의 도련님들이신지요?”마차 안에 있던 소현우는 움직이지 않았다.마차 옆에 서 있던 소현준만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그리고 그 소녀 옆에 선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혜주였다.혜주는 곧장 무릎을 꿇으며 조용히 예를 올렸다.그 눈동자엔 아련한 빛이 어려 있었고, 그리움과 슬픔이 섞인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소현준은 미간을 좁히며 소녀에게 물었다.“너는 누구냐?”시선은 혜주에게 있었지만, 질문은 분명 그 소녀에게 향한 것이었다.소녀는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몸을 낮추며 답했다.“아령이라 합니다. 예전에 소우희 아씨를 몇 차례 뵌 적이 있고, 개인적인 은혜를 입은 바 있습니다. 서로 손수건을 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5화

    반 시진이 지나고, 어느덧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붉게 타오른 노을이 하늘 끝에 걸려 있었고, 맑고 푸른 하늘은 마치 물로 씻어낸 듯 투명했다.그 풍경은 마치 소우연의 마음과도 같았다.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가볍고 평온했다.소우희는 죽었다.이 세계의 여주인공은 사라졌고, 남주는 더 이상 남자 구실을 할 수 없었다.모든 이야기는 이제 완전히 새로 쓰일 터였다.진원 장군부.소현우는 돌아오자마자 술을 들이켰고, 그날 밤을 고스란히 의식을 잃은 채로 보냈다.그리고 다음 날, 해가 지기 직전에서야 겨우 눈을 떴다.헝클어진 머리에 단추도 제대로 잠그지 못한 채, 그는 하인에게 명했다.“소씨 가문 사람들을 전부 정청으로 불러라.”며칠째 앓고 있던 소홍범은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군의 업무는 거의 대부분 부장들에게 넘긴 상황이었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이육진이 그의 군권을 서서히 회수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그러나 어찌할 수 없었다.지금 그의 수하 중 대부분은 본래 이육진의 옛 부하였다.이육진은 별다른 수를 쓰지 않아도, 그저 말 한마디면 모두가 따랐다.그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소홍범, 그리고 그의 아들들마저도 과거엔 모두 이육진의 군 아래 있었다.5년 전, 국경에서 벌어진 전투.이육진이 매복을 당해 위기에 처했을 때, 소현우는 전방에서 적과 싸우며 지원 한 번 받지 못한 채 중상을 입었다.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그 순간, 그를 구해낸 사람은... 소우희가 아니었다.소우연이었다.소홍범은 이를 악물었다.소우희를 미워했다.믿고 싶었지만, 결국 기대를 저버린 딸이었다.소우연이 그의 큰아들을 살려냈다고 해서, 그에게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가족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하지만 그게 소우희의 자리를 대신할 이유는 아니었다.결국 일을 망쳤다.감히 소우연을 건드려, 집안 전체가 흔들리는 사태를 자초했다.정청에 모두가 모였다.눈이 퉁퉁 부은 임진숙이 조심스레 물었다.“어머님은 안 오는 거니...? 혹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374화

    ‘세상에 진심이란 없어.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야.’그 말이 또렷이 귓가에 맴돌았다.마지막까지 아령의 목소리가 소우희의 머릿속을 울렸다.‘날 미워하지 마. 미워할 거면 너 자신을 미워해. 네가 소씨 집안의 자식이라는 걸. 네 어머니가 악독한 여자였다는 걸. 그 여자가 내 어머니 인생을 망쳤고, 그래서 난 태어나자마자 천민이 되었어.’‘난 바라는 거 없어. 단 하나, 너희 소씨 집안이 완전히 무너지는 걸 두 눈으로 보는 것. 그것만이 내 삶의 이유야.그리고 지금 난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어.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소우희는 그녀가 정말로 복수가 성공하길 바랐다.여자의 숨소리가 멎었다.소현우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비틀거리며 주저앉을 뻔한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우희의 콧날 아래를 짚어보았다.숨이 없었다.정말로 죽은 것이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오라버니’라 불렀던 여동생. 그 목소리가, 그 웃음이, 아직도 귓가를 떠나지 않았건만.소우희는 정말로 죽었다.그는 허둥지둥 감방을 뛰쳐나왔다.밖에서 기다리던 임진숙이 그 얼굴을 보고 다급히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니?”소현우는 눈을 피하며 단호히 말했다.“아무 일 아니에요. 어서 돌아가요. 어머니, 어서요.”말을 재촉한 뒤, 급히 달려가는 소씨 가문의 마차를 바라본 옥졸은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불안한 기운에 곧장 감방으로 달려가 안을 들여다보았고, 그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소우희가 죽어 있었다.그녀는 움직일 수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몸이었다.그렇다면 가능한 건 단 하나.소현우 장군.그는 자신의 손으로 친여동생의 목숨을 거두었다.옥졸은 온몸이 얼어붙었다.어떻게 이런 일을 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한단 말인가.더욱이 태자에게...그는 급히 의원을 불렀지만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소우희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옥졸은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로 직접 태자부로 달려갔다.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었고, 금세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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