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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Author: 주 한잔
소우연은 이육진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이육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늘 말이 나오는구나. 아버지께서 평서왕비를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그런데 말이다.”

그는 소우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만약 너를 다른 이에게 빼앗기고, 그곳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나는 반드시 널 다시 찾아올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 너를 억지로 참고 보내지 않을 거야.”

소우연은 살짝 웃었다.

“어머니께서 그러셨어요. 저는 정말 행운아라고. 부디 좋아하는 사람과 짝이 되어 살아가라고요.”

이육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나 또한 행운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아내로 맞았으니까.”

“네, 저도 그래요.”

“매일같이 곁에 있는 사람이 마음속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요.”

소우연은 그 말과 함께 살짝 그의 입가에 입을 맞췄다.

곧이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평서왕께서는 왕비마마를 왜 그렇게까지 몰아세운 걸까요?”

이육진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다만 어쩌면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지. 어마마마께서 세상을 떠나자마자, 평서왕비도 바로 병사했다니.”

“…정말, 너무 우연이네요.”

소우연은 마음 한구석이 뒤숭숭해졌다.

평서왕비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연민이 느껴졌다.

“그럼, 아바마마께서는 괜찮으신가요?”

소우연은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이육진은 가볍게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평서왕이 평서왕비의 사망 소식을 알리러 조정에 올랐을 때, 아바마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어. 당장이라도 평서왕을 갈가리 찢어버릴 기세였다.”

“…정말요?”

소우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둘 사이가 그렇게 날을 세우는데.”

“게다가 나 같은 확실한 태자가 있는데, 아버지께서 또 무슨 황태자니 어쩌니 생각할까 봐 두렵구나.”

소우연이 솔직하게 걱정하자, 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평서왕은 왜 그토록 무모하게 행동한 거죠?”

소우연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점점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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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5화

    “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소우연이 얼버무리며 말했다.“경문의 말로는 요 며칠 계속 더울 거라던데, 그래도 밤은 쌀쌀할 수 있으니 이불 잘 챙겨 덮으셔야 합니다.”“네, 오라버니. 그럴게요.”소우연을 봐서 그런가, 용강한은 전날의 우울감이 조금 가신듯한 기분이 들었다. 침을 맞아도, 좋은 약을 먹어도 전혀 호전이 되지 않았던 한기가 그녀와 함께 있을 때만 줄어들었다. 그랬기에 그에겐 소우연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특별했다.식사 후, 소우연과 용강한은 전날 잡은 일정대로 만안당으로 향했다. 이 의원은 멀어져 가는 자신의 고용주와 환자를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멍한 얼굴로 마당 한가득 널려져 있는 하인들만 바라보았다.가는 길, 마차 안엔 소우연과 용강한 그리고 정연이 함께 타고 있었다. 정연이 점점 더 몸을 부르르 떨며 추위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소우연이 말을 건넸다. “다른 가마를 타고 오너라.” “소인은….”“가, 얼른. 괜히 감기 들지 말고.”“태자빈 마마께서는 정말 안 추우세요?”정연이 물었다. 그러자 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괜찮아.”그녀는 정말 춥지 않았다. 오히려 쨍쨍한 햇빛에 조금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용강한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정연은 잠시 망설였으나, 차가운 바람에 사르르 몸이 떨리자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소우연의 분부에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강한은 태자와 태자빈에게 깊게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지를 좀 비운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한편 밖, 마차를 호위하며 따라오고 있던 경문과 우칠이 정연이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포착했다.경문은 별 생각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한기에 몸을 살짝 떨었지만, 우칠은 뭔가 거슬리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마차 안, 정연이 자리를 뜨자 소우연과 용강한은 자연스레 서로를 마주보게 되었다. 용강한은 불편한 침묵을 깨고자 외투 자락을 무의식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4화

    “부군, 이제 그만 주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 시진 후면 조회에 나가셔야 하는데.”소우연이 이육진 품에서 살짝 몸을 떼며 한숨을 내쉬었다.“쉿….”하지만 그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그의 움직임에 속수무책 함락당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정신없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이육진은 마치 정사에 목숨 건 사람처럼 멈출 줄 몰랐고, 소우연은 격한 움직임에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피곤을 느끼기도 전에 매번 그가 다시 능수능란하게 불을 붙였고, 결국 그녀 또한 시간과 공간을 잊고 그에게 빠져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거의 날이 밝을 때쯤 행위를 멈추었다. “이따가 조회에 늦지 않도록 깨워라.”이육진은 간신히 내려오는 눈꺼풀을 견디며 잠들기 전 간석에게 말했다.“걱정 마십시오, 전하. 소인이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한숨을 내쉬었다.조회 시간까지 불과 반 시진 남았건만, 태자가 이토록 정열에 사로잡힐 줄은 그 역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휴, 남자란 원래 색욕에 미치면 정신을 못 차리나?’간석은 왠지 모를 착잡함을 느꼈다. 그는 평생 이러한 쾌락은 느낄 기회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더 환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영웅들이 미녀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며, 정사라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 해가 방 안을 비추자 소우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목소리를 내려다 목이 심하게 쉰 것을 깨닫고, 대신 방울을 흔들었다. 은은한 딸랑소리가 방 안을 채우기도 전에, 정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태자빈 마마, 기침하셨습니까? 소인이 얼른 따뜻한 물을 대령하라 하겠나이다.”“응.”소우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세안 준비를 할 동안, 소우연은 침상에서 일어나 익숙하게 정연의 시중을 받았다. 정연이 옷을 주며 시중들던 중, 소우연의 살갗에 어제의 정열을 증명하듯 피어난 붉은 자국들을 발견했다. 곧 어젯밤 일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기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3화

    이육진, 그는 분명 소우연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모든 감정을 공감할 수는 없었다. 특히, 전생에 그녀가 겪었던 고통은 더 그랬다. 용강한은 유일하게 그녀의 비참한 전생에 대해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소씨 집안 사람들에게 차갑게 대하는 것도, 이민수의 죽음도, 모두 그들이 받아야 할 대가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가을밤, 아직 한참 모기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을 시기, 얼마 가지 않아 세 사람은 짧은 산책을 마치고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본채로 돌아온 소우연은 이육진 얼굴에 여전히 가시지 않은 불쾌함을 보고 살짝 긴장했다. ‘설마 괜한 오해를 산 건 아니겠지?’“부군,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계십니까?”소우연이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침상에 앉아 있는 이육진을 바라봤다.그러자 그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연아, 용 감정에게 뭔가 좀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느냐?”“부족한 것이라뇨?”“부인 말이다.”그의 말을 들은 소우연은 잠시 놀란 듯 입을 벌렸다가, 곧 엄격한 흠천감의 규율을 떠올리곤 말했다.“그러고 보니, 확실히 옆에 부인이 있으면 오라버니를 돌봐 줄 수도 있고, 좋을 것 같긴 하네요. 하지만 분명 부군께서 전에 감정은 평생 혼인도 자식도 없을 운명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뭐, 그렇기는 하지만… 모든 것에 예외가 있지 않겠느냐?”이육진이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만일 훗날,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에게 혼인을 하사한다면 어떨 것 같으냐?”잠시 고만하던 소우연이 조심스레 대답했다.“오라버니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혼자이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글쎄, 과연 그럴까?”소우연은 이육진이 봐도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져도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여자를 앞에 두고 아무리 용강한이라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남자라는 생물은 원래 그러했다. 아무리 영엄한 승려라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누구보다도 이육진이 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2화

    ”연아, 이 의원은 맥상도 제대로 못 짚지 않았느냐? 과연 그가 용 감정의 도움이 될 거라 어찌 확신하느냐?”이육진이 다소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좀 전엔 당사자도 있는 자리에 차마 체면을 생각해 묻지 못했지만, 그의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소우연이 고개를 저으며 좀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이육진을 포함해 용강한과 가까이하는 모두가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위에 떨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녀만이 조금 서늘하다는 감각 외에 큰 영향이 없었다. 이 태의의 성격상 가족이라도 절대로 봐주는 법이 없는데, 자신의 당숙인 이 의원을 소개한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은 검증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태자도 있는 자리였다. 아무리 간덩이가 부었다 하더라도 감히 이런 방법으로 속이려 드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우연은 이 의원이 진맥을 못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원인은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내일 용 오라버니와 함께 만안당에 가보겠습니다. 임 의원이라면 다른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그제서야 용강한은 나지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인이 전하와 태자비께 괜한 폐를 끼쳐드리고 있는 것 같아 송구스럽군요.”그러자 소우연이 단호히 말했다.“용 오라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우리는 반드시 치료할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그리고는 이육진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육진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소. 그대는 우리 둘 모두에게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이지 않소.”소우연은 용강한을 친오라비 만큼 따랐고, 이육진 또한 그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다. 그 누구보다 흠천감의 규율을 아는 사람이, 자신의 명성을 고려하지도 않고 몇 번이나 아직 황위에도 오르지 않은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회남왕의 여식 대신 시집온 소우연을 만나려 하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우연의 몸에서 풍기는 약향 또한 눈치챘을 리 없었다. 그 외에도 참 여러 사건이 있었다. 모두 용강한의 도움 없이는 이뤄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1화

    이 의원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공손히 말했다.“태자빈 마마, 소인이 다시 한번 진맥해봐도 되겠습니까?”소우연이 자리를 내어주자, 이 의원은 다시 신중히 용강한의 맥을 짚었다. 반면, 이육진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그를 지켜보았다.‘이 태의의 당숙이라고 했던가? 꽤 온유한 인상에 온 몸에 약냄새가 배어 있는 것을 보아 의원은 맞긴 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믿음이 안 가지? 설마 반쪽짜리 의원을 데리고 온 건 아니겠지?’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도 담담히 미소 짓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용강한이었다. 그는 자신의 맥이 오직 소우연이 짚을 때만 다르게 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이 의원, 소우연, 둘 모두 잘못된 진맥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오직 소우연이 닿을 때만 혈류가 원활 해지며 기묘한 감각이 돌았다. 솔직히 그는 이 감각에 중독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한 순간이라도 그녀와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이 기이한 병도 서서히 나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이 의원은 진맥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결과에 점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어떠한가?”이육진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러자 이 의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몸을 숙이며 답했다. “소인의 의술이 부족하긴 하지만, 진맥만큼은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다시 확인해 보아도, 소인의 소견은 태자빈 마마와 다릅니다. 용 대인의 맥상은 미약하며 느리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인은 태자빈 마마께 의술을 배울 자격이 되지 못할 듯하옵니다.”이 의원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솔직하게 말했다. 비록 태의원의 관직엔 오르지 못했으나, 다년간 진료해온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이 진맥을 잘못 짚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 감히 태자빈의 진료를 부정하거나 오판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법, 자신의 거취는 태자와 태자빈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50화

    소우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임 어의도 괜찮지만, 그는 지금 만안당에서 진료를 보고 있어요.”“게다가 임 어의의 제자들은 아직 제대로 수련을 마치지 못한 듯했습니다.”“걱정 마라.”이육진이 다정히 덧붙였다.“이태의가 알아서 믿을 만한 인재를 구할 것이다.”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육진 내외와 용강한은 함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나누던 중, 정연은 한 명의 의원을 데리고 돌아왔다.그 의원은 삼십을 갓 넘긴 듯한 남성이었고, 들어서자마자 조심스럽게 몸을 낮춰 큰절을 올렸다.“소인은 이태의의 숙부입니다. 이 대부라 부르시면 됩니다. 어릴 적부터 의술을 배워왔습니다. 비록 재능은 부족하지만, 침술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오는 길에 정연이 귀띔해준 말이었다.태자비가 직접 침술을 지도해줄 것이며, 아주 귀한 분을 돌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요즘 경성에서 가장 전설처럼 회자되는 것은 태자비의 뛰어난 의술이었다.그녀는 불구였던 태자 전하의 다리를 치료하고, 깊은 흉터마저 말끔히 없앤 신화 같은 인물이었다.그 태자비에게 의술을 배울 수 있다니, 삼생을 빌려도 갚지 못할 은혜였다.그는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소인, 목숨을 걸고 태자비 마마께 의술을 배우겠습니다!”그러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소우연은 깜짝 놀라 손을 들어 만류했다.“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이만 일어나거라.”첫 번째 절은 군주를 향한 경례, 두 번째 절은 스승이 되어 줄 이에게 올리는 청원. 그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이 대부는 기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제야 서늘한 기운이 주변에 스며드는 것을 깨달았다.지금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 늦더위가 여전한 시기였건만 주변 공기는 이상하게 싸늘했다.태자부라면 당연히 얼음을 들여 시원하게 했으리라 짐작했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얼음 하나 보이지 않았다.그때 소우연이 부드럽게 제안했다.“이 대부도 명문가 출신이니 의술은 당연히 능하겠구나.”“한 번 용 대인의 상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49화

    하지만 정작 주인께서는 태자비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이야말로 가장 곤란한 일이었다.이육진은 배나무 별채에 도착했다.간석에게는 따라오지 말라고 명했다.그는 홀로 안으로 발을 들였다.그리고 그 광경을 보았다.소우연은 단아한 자세로 속살을 드러낸 용강한에게 침을 놓고 있었다.남자의 피부는 병색이 짙어 창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부드럽고 하얗게 빛났다.가을바람이 살랑 불어오며, 소우연의 머리카락과 용강한의 긴 머릿결이 함께 흩날렸다.소우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감돌았다.평온하고 고요한 풍경이었다.마치 세상이 멈춘 듯, 두 사람을 감싼 햇살은 금빛으로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어쩐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이육진의 심장이 뻐근하게 조여왔다.마치 사랑하는 여인이 지금 당장이라도 다른 이에게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이육진은 일부러 발걸음을 크게 내디뎠다.“태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간석이 소리쳤다.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이른 귀환이었다.원래 같으면 소우연이 침을 모두 놓은 후에야 돌아오는 시간이었다.소우연이 고개를 들었다.그는 검은 관복 차림을 한 채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지만 둘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 이육진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조용히 불렀다.“연아.”이육진은 성큼성큼 다가가 용강한 앞에 섰다.“어때, 좀 나아졌느냐?”용강한은 가볍게 웃었다.“태자 전하와 태자비 마마께서는 정말 마음이 잘 통하십니다.”“태자비 마마께서도 매일 똑같이 물으십니다.”이육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래서?”“태자비 마마의 침술 덕분에 고통이 많이 줄었습니다.”용강한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소우연에게서 용강한의 병세를 들은 터였다.“침 치료로 완화된다면, 언젠가는 완전히 나을 수도 있겠지.”“태자 전하, 감사드립니다.”“너무 격식 차릴 것 없지 않느냐.”사실 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48화

    경문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정연을 바라보았다.“왜 그런 걸 묻는 거죠?”정연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공자님,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태자비 마마께서 말씀하시길, 방법만 있다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용 대인의 병을 고치겠다고 하셨습니다.”“태자비 마마께서 시켜서 절 여기로 데리고 온 것입니까?”“네.”정연은 숨기지 않았다.“태자비 마마께서는 정말로 용 대인께 마음을 쓰고 계십니다. 태자 전하와 태자비 마마께 용 대인은 소중한 친구이자 지기 같은 분이니까요.”경문은 살짝 웃었다.태자비 마마는 결국 여전히 주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하지만, 주인께서는 분명히 당부했었다.이 치료법은 절대, 절대로 누구에게도 밝혀서는 안 된다고.그것이 들키는 순간 태자, 태자비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가 피할 수 없는 난처함과 곤란함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었다.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경문은 부드럽게 말했다.“태자비 마마와 태자 전하께 대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혹시…”정연은 애타는 눈빛으로 물었다.“혹시 방법이 정말로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약재가 아무리 귀하고, 치료가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습니다.”“어떻게든 태자비 마마께서 다 감당하실 거예요.”경문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없습니다.”“태자비 마마께서 이토록 마음을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대인께서는 충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만약 정말로 대인께 도움이 되고 싶다면, 매일 빠짐없이 침을 놓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침 치료는 분명히 대인께 효과가 있는 듯 합니다.”경문은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용 대인은 오직 태자비처럼 그와 운명을 함께하는 사람만이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었다.정연은 경문의 말과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그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표정 어딘가에는 망설임과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비쳐 있었다.그때, 웅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거기서 뭐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447화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운 말이지만, 소우연은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용강한은 이제 자신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매일매일 침을 놓아야만 그의 병세가 완화되었다.소우연은 조용히 물었다.“이런 상태가 꽤 오래됐을 텐데요.”“제가 침을 놓아드리기 전에는 어떻게 버티셨습니까?”“그렇게 참으면서 병세가 더 악화되지는 않았나요?”용강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짧은 시간 안에는 크게 악화되진 않았습니다.”지금 그는 이미 천기를 엿보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그로 인해 반작용으로 생긴 병도 더 이상 심해지지 않았다.그럼에도 이 극한의 한기는 그의 삶을 지옥처럼 만들었다.본인은 이 고통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거라 생각했었다.하지만 소우연은 끝내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여전히 예전처럼 따뜻하고 선한 마음으로 자신을 치료해주고 있었다.덕분에 이제 그는 하루에 두세 시진 정도만 고통을 견디면 되었다.“일단 맥을 짚어봅시다.”“네.”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소우연은 슬쩍 옆을 보았다.정연이 경문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두 사람은 슬며시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그리고 그녀는 다시 용강한을 바라보았다.남자는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정연과 경문이 사라질 때까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그는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둘의 눈빛이 정면으로 마주쳤다.소우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맥은 전과 다름없어요. 꽤 괜찮습니다.”손을 거두며 부드럽게 덧붙였다.용강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자리를 조금 옮겼다.소우연 쪽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자 했다.그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었을 뿐.별다른 의도는 없었다.“약상자를 가져오겠습니다.”정연이 없으니, 소우연은 직접 약재방으로 향하려 했다.“수고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마마.”용강한이 정중히 인사했다.“무슨 말씀이세요, 오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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