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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주 한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소우연은 의서를 읽고 있었고 정연은 곁에서 찻잔을 정리하면서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오늘 아침 덕빈 마마께서 저택을 떠나시면서 왕야께 왕비님을 모시고 궁으로 들어가 주상께 인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주상?

소우연은 오늘 아침 정연이 이육진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말을 소우연 앞에서 한번 더 꺼내는 걸까?

소우연이 정연을 힐끔 쳐다보자 정연은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찻잔 정리에 집중했다.

조금 전까지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던 소우연은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소설 속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덕빈은 아들 이육진을 끔찍이 아낀다고 했는데 이렇게 소우연을 데리고 궁에 들어오라고 한 걸 보면 단순히 인사만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닐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만약 이육진이 소우연을 데리고 궁에 들어가기 싫어한다면 그것은 곧 이육진이 소우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이육진이 소우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덕빈은 절대 소우연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소설 원작에 덕빈이 소우연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지 확실하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신부를 함부로 바꾼 소씨 가문뿐만 아니라 소우연도 저번 생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이육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런 생각에 소우연은 고개를 들고 정연을 쳐다보았다. 보통 시녀와 달리 얼굴도 예쁘장한 정연은 남다른 기품이 느껴졌고 말과 일 처리도 깔끔하고 확실했다.

“정연, 혹시 내가 지금 서재에 왕야를 만나러 가도 되겠느냐?”

소우연의 물음에 정연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대답했다.

“왕야께서 왕비님은 뭐든 하셔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씨 가문의 장녀가 시녀한테까지 말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한다고?

정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고 소우연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정연에게 물었다.

“혹시 부엌에 다과 같은 건 있느냐?”

“있습니다. 왕야께 드리실 겁니까?”

“그래.”

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연이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한편, 혼자 남은 소우연은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어찌어찌 지금까지 살아남기는 했지만 이 소설의 남자주인공은 이민수이다.

이 소설 속 최대 악역인 이육진은 결국 이민수 손에 살해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회남왕비인 소우연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소우연은 마음이 무겁고 착잡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소우연은 이번 생에 회남왕 저택에서 도망치지도 않았고 덕빈 마마에 의해 손발이 잘려 소씨 저택 대문 앞에 버려지지도 않았는데 그렇다면 혹시 이육진과 소우연 그녀의 결말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소우연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왕비님, 이건 왕야께서 평소에 즐겨 드시는 한과입니다.”

이때, 정연이 한과를 담은 그릇을 들고 방에 들어왔고 소우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밖으로 향했다.

“그럼 이제 서재로 가야지.”

정연은 한과를 손에 든 채 소우연의 뒤를 따랐고 가는 내내 길을 안내했다.

한편, 서재 밖을 지키고 있던 진규는 소우연과 정연을 보자 살짝 의아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왕비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진규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올리자 소우연이 차분하게 말했다.

“왕야를 만나 뵈러 왔다.”

고개를 끄덕인 진규는 돌아서서 문을 두드렸다.

“왕야, 왕비님께서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소우연은 왠지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육진이 거절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들라 하거라.”

차가운 이육진의 목소리가 서재 안에서 울려 퍼졌고 진규는 이내 문을 열었다.

소우연은 돌아서서 정연 손에서 한과 그릇을 받은 뒤,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불빛이 반짝이고 있는 서재 안에서 뭔가 굉장히 익숙한 향이 느껴졌고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던 소우연은 이게 바로 자신이 만든 진정향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소우연은 단 한번도 이 진정향을 시중에 판매한 적이 없는데 이육진은 어디에서 이 진정향을 구한 것일까?

소우연이 주위를 훑으며 생각하고 있을 때, 이육진의 날카로운 시선이 소우연에게 꽂혀 있었다.

‘지금 뭘 저렇게 자세하게 훑어보고 있는 거지? 난 분명 성격이 난폭하고 잔인한 사람이라고 널리 알려졌는데 왜 저 여자는 날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지?’

“부인, 뭘 그렇게 찾으시는 건가?”

서늘한 이육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소우연은 재빨리 다가가 손에 한과를 든 채 인사를 올렸다.

“왕야께 인사를 올립니다. 조금 전에는 잠시 딴 생각하느라 실례를 범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의자에 앉은 이육진은 취조하듯 소우연에게 물었고 덜컥 겁이 난 소우연은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왕야께 감사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소우연은 뭐든 상관없었다. 만약 이육진이 정말 소문처럼 그리 난폭하고 잔인하고 악한 사람이었다면 저번 생에 소우연의 시신을 거둬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

눈썹을 살짝 들썩이며 흥미진진한 목소리로 묻던 이육진은 소우연이 들고 있던 한과를 힐끗 쳐다보고는 물었다.

“그 한과는 부인이 직접 만든 것이오?”

“아, 아닙니다. 부엌에서 만든 것입니다.”

“우리 부인은 이런 식으로 감사 인사를 하는 건가?”

이육진의 말에 소우연은 난감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음에는 제가 직접 만들어서 드리겠습니다.”

소우연의 맑은 눈망울에 멈칫하던 이육진은 바로 고개를 돌리며 대충 대답했다.

“그래.”

소우연은 그제야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았고 이육진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병서에 집중한 채 더 이상 소우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 남자가 병서를 읽고 있네?’

소설 속 내용에 의하면 회남왕 이육진은 현재 왕위에 계신 황제의 유일한 아들로서 당연히 황위계승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육진은 얼굴이 망가지고 두 다리도 영원히 걸을 수 없게 되었기에 황제는 평서왕 이남진을 황태제로 임명해야 할지 아니면 이남진의 아들 이민수를 황태자로 임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황제는 아직 마흔 살 초반밖에 되지 않은 나이라 아들을 더 낳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황위계승 자격이 가장 충분한 이육진은 몸이 망가진 탓에 황위를 물려받지 못한 것에 원망과 불만이 생겨 남자주인공인 이민수와 싸우다가 결국 이민수의 손에 살해된 것이다.

소우연은 눈앞에 앉아있는 이육진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만약 이육진이 본래의 얼굴을 되찾고 다리도 나아진다면 이민수를 이기고 소설 결말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혼인 첫날밤 회남왕 관저에서 도망치다가 결국 소씨 가문 대문 앞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소우연도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말이다!

“더 할 말이 남은 것이오?”

이육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앞에 조용하게 서있던 소우연을 쳐다보았고 소우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왕야께서 다치신 다리나 얼굴 흉터를 제대로 치료받아본 적 있으십니까?”

팍!

이육진이 병서를 탁자 위에 던지더니 언성을 높였다.

“부인은 이제야 내가 몸을 제대로 못 쓰는 불구자인 게 생각난 것인가?”

이육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쳐다보자 소우연은 잔뜩 겁을 먹은 채 연신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전 그저 왕야가 걱정돼서 물어본 말입니다.”

이육진은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소우연을 보며 그녀를 점점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저렇게 겁을 먹고 이육진 그를 이토록 무서워하면서 왜 자꾸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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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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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민
너무 재미 있네요 남자 주인공 이욱진이 정말 멋진 남자일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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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lla Lee
재밌게 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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