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9화

작가: 주 한잔
“내가 걱정된다고?”

이육진이 소우연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자 소우연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두 발짝 다가갔고 이육진은 그대로 소우연의 턱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소우연의 고개를 아래로 잡아당기더니 이육진의 눈을 직시하게 했다.

“그럼 날 어떻게 걱정해줄 생각이야? 응?”

이육진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망가진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고 그 모습은 마치 저승길에 서있는 악마 같았다.

“저… 저에게 약이 있습니다. 왕야께서 그 약을 발라 보시기를 권합니다. 얼굴 상처가 많이 연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치신 다리도… 어쩌면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우연은 이육진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소씨 가문 둘째 딸이 의술을 조금 익혔다고 하던데 그럼 소우연이 가지고 있는 약도 동생한테서 얻은 건가?

이육진의 다친 다리와 얼굴의 흉터는 태의도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집에서 홀로 의술을 독학한 소씨 가문 둘째 딸이 고칠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될까?

이육진은 소우연의 턱을 꽉 잡은 채 좌우로 돌리며 빤히 쳐다보았다.

“난 똑똑한 척하는 여자를 싫어해.”

손을 놓은 이육진은 손가락을 툭툭 털어냈고 그런 이육진을 보며 소우연은 왠지 서러운 감정이 들었다.

“왕야, 전 왕야가 밖에 떠도는 소문처럼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밖에 어떤 소문이 떠도는데?”

흠칫하던 이육진이 이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고 소우연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최소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소설 속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이육진이 죽인 사람들은 전부 저택 안에 숨어있는 간첩들이었다.

“허허…”

이육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허허 웃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대체 누가 이런 말을 소우연에게 해준 걸까? 분명 이육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누군가에게서 이런 평가를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왕야, 전 영원히 왕야 편에 서있을 겁니다. 왕야께서 어떤 결정을 하시든 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왕야 곁에 서있겠습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반드시 상대방에게 진심을 보여야 한다.

이육진이 소우연을 확실하게 지켜줄 수만 있다면 소우연은 두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육진은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그는 한없이 약해 보이는 이 여자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소우연은 이육진의 추악한 외모에 전혀 겁을 먹지 않는 건가?

“왕야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이 자리에서 맹세를…”

“맹세까지 필요 없어.”

이육진이 소우연의 말을 딱 잘랐다. 만약 소우연이 3년 전 그를 구해준 사람이 아니라면 이육진은 절대 소우연을 멀쩡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전 왕야께서 저를 대하시는 태도가 다른 신부들과 다르다는 걸 압니다.”

이육진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며 눈앞에 있는 소우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여자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만약 남강에 수소문하러 간 호위병이 확실한 정보를 전해오지 않으면…’

생각에 잠겨 있던 이육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쳐다보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지금이라도 간절하게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소우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이육진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둘렀다.

“이만 물러가거라.”

소우연은 자리에서 멍하니 서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육진은 다른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회남왕과 다르고 소우연 그녀에게도 다르게 대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이육진은 소우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전생에 대체 왜 소우연의 시신을 거둬준 걸까? 그래도 명분이 이육진의 부인이라고 불쌍하게 여긴 걸까?

하지만 그것 또한 말이 안 된다. 황제가 하사한 혼인 상대가 한두 명도 아니고 전에 살해된 신부들의 시신은 하나도 거두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소우연이 입술을 살짝 깨문 채 큰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왕야, 제가 감히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감히? 소우연, 너 정말 겁이 없는 거야?”

소우연이다! 이육진 입에서 나온 이름은 소우희가 아닌 소우연이다!

충격에 입을 떡 벌린 소우연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자리에 굳어버렸고 이육진은 그런 소우연을 보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진원 장군은 참 대단해. 감히 아바마마를 속이고 신부를 몰래 바꿔?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지.”

소우연은 입만 뻥긋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육진은 그녀가 소우희가 아니라 소우연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혼인 첫날밤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침대보에 피를 묻혀서 소우연의 체면과 목숨을 지켜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소우연은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은 채 머리를 조아렸고 이육진은 그저 그 모습을 조용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목숨을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감사 인사를 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데?”

이르다고?

소우연은 이육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만 나가!”

이육진이 다시 한번 내쫓자 소우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바닥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진규와 정연이 소우연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고 본채로 돌아가는 길에 소우연은 근심이 많은 얼굴이었다.

결국 이육진에게 자신을 데리고 궁으로 갈 것인지도 묻지 못했다.

“왕비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한숨은 왜 그렇게 쉬시는 겁니까?”

소우연은 고개를 돌려 정연을 쳐다보았다. 정연은 저택에 있는 다른 시녀들과 달랐고 정연과 얘기하고 있으면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소씨 가문도 모함과 시기 질투가 가득한데 회남왕 관저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칫 말실수라도 하게 되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다.

“난 왕야께 주상을 찾아 뵙는 일에 관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쫓겨났어.”

말을 하던 소우연은 조용하게 정연의 표정을 살폈고 정연은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왕야께서 바삐 처리할 일이 있으셨을 수도 있지요.”

“그렇지. 바빠 보였지.”

병서를 공부하느라 바빴겠지. 어쩌면 이 세상 남자들은 누구든 그 자리에 한 번쯤은 앉아보고 싶을 것이다.

한편, 서재에서.

이육진은 한과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머릿속에는 조금 전 영원히 자신의 편에 서겠다던 소우연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황제가 이 혼인을 하사하고 나서 이육진은 소씨 가문의 움직임을 주의하고 있었고 호위무사들은 소씨 가문에서 신부를 바꿀 계획을 하고 있다고 이육진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를 했었다.

소씨 가문의 첫째 딸인 소우연은 애초에 평서왕의 아들 이민수와 혼약이 맺어졌고 심지어 이민수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이민수를 마음에 깊이 품고 있던 소우연이 조금 전 그런 맹세를 한 게 말이나 될까? 그녀는 이런 달콤한 말들로 이육진을 홀리고 이민수를 위해 이육진의 기밀을 파내려는 게 분명하다.

‘허허… 소씨 가문에서 둘째 딸 대신 원치 않는 결혼까지 시켰는데 소우연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랑하는 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네… 멍청하기는!’

이민수에게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몸이 망가진 폐인의 비위까지 맞추다니.

역시, 어마마마가 말한 것처럼 얼굴이 예쁜 여자일수록 거짓말과 위장을 잘하는 게 확실하다.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댓글 (28)
goodnovel comment avatar
dx j
첫날이라 어찌해야 계속 볼수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시는분 알랴주세요 ㅠ
goodnovel comment avatar
dx j
어쩌다 보게됐지만 줄거리가 궁ㅈ금해 지네요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희승
뒷내용이 넘 궁금해용 ㅎ
댓글 모두 보기

최신 챕터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480화

    어제 저녁, 도문군은 경씨 관저의 마차를 봤다. 심정도 그 마차에 타고 있었다.“알겠다.”이진이 말했다.도문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진이 돌아가려 하자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마마…”“무슨 일이지?”“이 패 말입니다…”이진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했다.“상인호 같은 반역자들도 이제 얼마 못 가. 형부에 가서 그 자를 보고 싶다면, 다녀오너라.”‘여자는 마음이 약해 큰일을 못 한다고?’‘그렇다면 그 마음을 더 단단하게 벼려야지.’“내가 준 이 패는 네가 세상 앞에 당당해질 수 있는 힘이자, 권력이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거나 법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이 패는 네 호신부가 되어줄 것이다.”“제가 무슨 덕이 있어 감히 이런 은혜를…”이진은 잔잔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냥 너여서 주는 것이다.”“진주에서 1등을 한 것도 너였고, 하필 그런 너라서 누군가의 표적이 되었던 거고…”도문군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지만, 끝내 단정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천한 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참 다행입니다.”“그래, 복과 화는 언제나 함께 오는 법이지.”이진은 그녀를 또렷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폐하께서 하려는 일이 있다. 그 일엔 수많은 여인의 힘이 필요해. 그렇기에 너처럼 강한 여인들이 함께 버텨주어야 한다.”“그러니 내가 너를 돕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돕는 것이고, 이 세상 수많은 여인들을 돕는 일이기도 하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그래.”서원을 나서자,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고 있었다.미래도 오늘처럼, 이렇게 유쾌하길 바라며, 이진은 맑고 환한 하늘을 올려다봤다.곁에 서 있던 주익선이 그녀가 생각에서 돌아오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국공부로 갈 거야?”그의 조심스런 추측이었다.이진이 되물었다.“어제 연희 언니랑 경장명이 약속이 있어 나갔다면서? 그런데 오늘은 왜 서원에 안 나온 거지?”“연희 언니뿐 아니라, 교은이도 안 보이고.”“혹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이진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479화

    “안 무서워.”“전장은 칼과 창이 날아다니는 곳이고, 형세는 매 순간 바뀌지.”“하지만 네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널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겠어?”주익선의 말은 담담했지만, 이진은 전쟁이 결코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다행히 진동 장군이 부장으로 함께 간다잖아.”주익선은 손을 들어 이진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월성국도 진주나 형주와 크게 다르지 않아.”“아무리 넓다 해도, 형주 두 개나 진주 하나쯤 되는 크기일 테니까.”“게다가 황제 폐하께서 오만 대군을 내리셨잖아. 그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두 사람은 자연스레 식당으로 들어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들이 차려낸 아침상이 정갈하게 올려졌다.이진은 반찬을 한 입 머금고 나서야 문득 오늘의 본래 목적이 떠올랐다.“그 향 말이야, 어땠어?”“향? 괜찮더라.”“괜찮다니? 특별히 느껴지는 건 없었어?”“그 향이 정말 오라버니에게 조금이라도… 속세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주익선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 꿈, 혹시 그 향 때문이었을까?“…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어쩌면? 확실하게 말해 봐.”이진은 눈빛을 단단히 굳히며 재차 물었다.“확신하긴 어렵지만… 이상하게 그 향을 피우면 네 생각이 많이 나.”“그냥 생각나는 게 아니라, 유독 특별하게… 너만 떠올라.”“내 생각?”이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응. 아주 또렷하게, 너만.”“우린 본래 서로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지.”“하지만 오라버니는 감정 같은 건 없는 사람인데... 그런 오라버니한테도 효과가 있을까?”주익선은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레 답했다.“나도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지.”“다행히 향은 언니에게 보냈어.”“언니가 곱게 포장해서 오라버니한테 줄거래.”“설마 뭐가 이상하다고 의심하시겠어?”이진은 속삭이듯 말하며 눈웃음을 지었다.“이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돼.”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조심스러운지, 주익선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478화

    주건은 걸음을 멈추며, 오늘따라 이 어린 장군의 기세가 지나치게 드세다고 느꼈다.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소년이 처음으로 몽정을 겪었으니, 당연히 부끄럽고 난처했을 터였다. 그는 서둘러 도련님의 체면을 세워주기로 했다.“그럼 저는 바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도련님께서 부르시면 들겠습니다.”말을 마치자, 주건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고, 문은 ‘딸깍’ 소리를 내며 닫혔다.주익선은 눈썹을 찌푸린 채 알 수 없는 감정에 잠식된 듯한 얼굴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여전히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똑똑똑…“도련님.”“꺼져!”주익선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주건, 저 자식 또 반항심이라도 생긴 건가?“주익선, 지금 누구더러 꺼지라 한 거야?”화가 섞인 이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익선은 온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진… 진이니? 나는 주건인 줄 알았어. 네가 온 줄 몰랐지.”“내가 왜 왔겠어? 어제 분명 약속했잖아. 향을 꼭 피우라고.”“아, 그… 그게… 조금만 기다려.”주익선은 재빨리 몸을 씻어내고, 단정히 옷을 챙겨 입은 뒤 문을 열었다.문밖에는 연둣빛 치마를 입은 소녀가 웃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일부러 화난 듯 투정을 부렸다.“날 보고도 ‘꺼져’라고 하다니.”“아니야, 정말 주건인 줄 알았어.”주건은 죄인 마냥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하, 난 그냥 죽어야 할 놈이지…’“주건이 뭘 잘못했는데, 그렇게 화를 내?”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건 편을 들었다.“어릴 때부터 제일 네 편이었던 애야. 지금 네가 장군이 되었다고 해서, 사람을 때리기나 하고 윽박지르는 거야?”주건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이진을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장군님의 요즘 성질, 정말 너무 심하십니다. 공주마마,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봐, 주건도 감히 진심을 못 말하잖아!”이진이 다시 말했다.주익선은 주건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언제 너를 때린 적이 있었니?”주건은 깜짝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477화

    혼례…?주익선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침실은 혼례 날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사방 벽엔 ‘쌍희 희’ 자가 가득 붙어 있었고, 붉은 천과 과실들이 방 안을 온통 장식하고 있었다.이진이 살짝 입술을 삐쭉이며 그를 올려다봤다.“내가 싫으면, 왜 나랑 혼례를 하겠다고 했어?”“그게… 그런 게 아니라…”“그럼 왜 그랬는데? 혼례날 밤에 특별한 걸 보여주겠다며. 너만의… 보물 말이야.”쿵, 쿵, 쿵.주익선은 가슴을 움켜쥐었다.“싫은 게 아니야… 정말로.”“어마마마께서 그러셨거든. 여자가 혼례 첫날밤엔 상대방이랑 함께 자야 한다고. 그리고… 남자가 내 몸을 아껴주는 건 좀 아프다던데…”“날 부드럽게 대해줘야 해.”“…응.”소녀의 손이 그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그의 옷깃을 풀어냈다.주익선은 저항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몸을 기울여 그녀의 붉은 입술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촉촉하고 따뜻한 감촉.그 입술은 너무도 현실 같았다.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달아올랐고, 머릿속은 하얘졌다.처음이었다.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그저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 뛰어든 장수처럼, 되돌릴 수 없는 길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었다.몸은 뜨겁게 타올랐고, 갈피는 잡히지 않았다.“익선아… 네 보물을 보고 싶어.”이진의 부끄러운 투정에, 그녀의 손이 그의 손을 잡고 아래로 이끌었다.그리고 또 한 손으론 그의 옷 속을 파고들었다.“나한테만 보여줘. 응?”맑고 순진한 그 목소리는 오히려 너무 순수해서, 주익선의 숨을 멎게 만들었다.“도련님! 도련님, 어서 일어나세요!”눈을 번쩍 뜨자, 시야에 들어온 건 얼굴에 미묘한 표정을 띤 주건이었다.“…도련님, 벌써 정오입니다.”“오늘 아침, 어르신은 조정에 나가셨고, 마님께선 도련님이 진주에서 돌아와 고단하실 거라며 좀 더 쉬게 하라 하셨습니다.”“그런데 정오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으시다니요.”“밖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려 들어와 보니, 도련님 얼굴은 홍시처럼 붉고, 이불 아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476화

    이영은 웃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 안엔 분명한 분노가 번지고 있었다.“그만해, 제발.”그가 일부러 저런 짓을 벌이는 이유쯤은 이영도 잘 알고 있었다.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하지만 그래서 더 아팠다.그가 괜찮지 않다는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조금만 방심하면 거칠게 기침을 쏟아냈다.“누님.”심초운이 조심스럽게 부르자, 이영은 그의 입술 위에 조용히 손가락을 얹었다.“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난 다 안다. 감추려 하지 말거라.”“날 안심시키겠다고 거짓말하지도 말고.”그녀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그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깊고, 진지했다.“우린 그냥 스쳐 지나갈 사이가 아니지 않느냐. 평생을 함께할 사이지.”심초운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멈칫했다.그녀의 말과 눈빛이 가슴을 짓누르듯 다가왔다.그는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외삼촌께서 주술 부작용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 봤다.”“외삼촌은 그나마 도술 실력이 깊으셨지만, 넌 아니지 않느냐.”“그런 위험한 도술을… 다시는 절대로 쓰지 마라.”이영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빛엔 떨림 하나 없었다.그 진심이 가슴을 파고들자, 심초운은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깊은 눈동자가 서서히 감정으로 물들어가며, 따스한 빛을 머금었다.“알겠습니다, 누님.”…..주도독부.주익선은 도독부로 돌아오자마자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잠들기 전, 그는 곁에 있는 주건을 불러 단단히 일렀다.“내일 아침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날 깨우지 마라.”“어머니, 아버지가 오셔도… 절대.”주건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그럼... 만약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요?”“무슨 일이란 게 뭔데?”“그, 그 향 말입니다. 정 대인께서 주신 거라 해도…”“혹시 도련님께 안 맞으면 어쩝니까?”주익선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이 녀석… 아주머니 아들이 아니었으면, 진작 다른 놈으로 바꿨을 텐데.’“됐고, 이만 물러가거라.”“그럼 아침까지 아무도 들이지 않겠습니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475화

    “당안아.”이영이 부르자, 곧 당안이 부채를 들고 들어왔다.“여기 있습니다, 폐하.”“조왕부의 열쇠와 집문서를 모두 월왕에게 주도록 하거라.”“예.”이진은 고개를 들어 이영을 바라보았다.“언니, 어째서 벌써 열쇠를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집을 수리하고 들어가기로 하지 않았나요?”“걱정 마라. 내 어찌 너를 소홀히 대하겠느냐.”“고맙습니다, 언니.” 말을 마친 이진은 하품을 하였다.잠시 뒤 당안이 집문서와 열쇠를 가져오자, 이진은 열쇠 두 개를 툭 던져주며 말했다.“어서 손봐줘. 서둘러야 한다. 알겠지?”“예.” 당안이 고개를 숙였다.긴 여정 끝에 돌아오자마자 또 사방으로 뛰어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친 이진은 이영 앞에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언니도 피곤하시죠? 얼른 쉬세요.”“전 그럼 이만 물러갈게요.”이영은 그녀를 흘겨보다가 피식 웃었다. 어릴 적부터 얌전함이라고는 모르던 아이가, 이렇게 예법을 차려 인사하는 모습이 도리어 낯설었다.숨을 길게 들이쉬며 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 위에 올려진 작은 상자를 집어 들었다.“이것을 어서 태의원에 전하거라. 이 원사에게 친히 명해, 이 향과 단향을 섞어 나의 이름으로 오라버니에게 올리도록 하여라.”“아미산 꼭대기에서 도를 닦은 고승이 직접 조제한 향이라, 몸에 이롭고 도를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전하거라, 꼭.”당안이 잠시 멈칫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예, 곧 다녀오겠습니다.”이영이 침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당안은 향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향이라면서 굳이 단향을 섞으라 하신다니… 그것도 도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니. 폐하와 월왕, 황부까지 모두 천왕 전하의 혼사를 두고 애를 태우는데, 어찌 수련을 돕겠단 말인가.’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를 뜨는 당안을 뒤로 하고, 이영은 침전에 들어서자마자 불현듯 끌려 들어갔다. 거친 숨결이 곧장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그리 오래 얘기할 일이었습니까.”“오라버니와 연희의 일이지 않느냐.”심초운이 가볍게 그녀의 입술을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