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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втор: 주 한잔
“내가 걱정된다고?”

이육진이 소우연을 향해 손을 살짝 흔들자 소우연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두 발짝 다가갔고 이육진은 그대로 소우연의 턱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소우연의 고개를 아래로 잡아당기더니 이육진의 눈을 직시하게 했다.

“그럼 날 어떻게 걱정해줄 생각이야? 응?”

이육진이 실눈을 살짝 뜬 채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망가진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고 그 모습은 마치 저승길에 서있는 악마 같았다.

“저… 저에게 약이 있습니다. 왕야께서 그 약을 발라 보시기를 권합니다. 얼굴 상처가 많이 연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치신 다리도… 어쩌면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우연은 이육진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소씨 가문 둘째 딸이 의술을 조금 익혔다고 하던데 그럼 소우연이 가지고 있는 약도 동생한테서 얻은 건가?

이육진의 다친 다리와 얼굴의 흉터는 태의도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집에서 홀로 의술을 독학한 소씨 가문 둘째 딸이 고칠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될까?

이육진은 소우연의 턱을 꽉 잡은 채 좌우로 돌리며 빤히 쳐다보았다.

“난 똑똑한 척하는 여자를 싫어해.”

손을 놓은 이육진은 손가락을 툭툭 털어냈고 그런 이육진을 보며 소우연은 왠지 서러운 감정이 들었다.

“왕야, 전 왕야가 밖에 떠도는 소문처럼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밖에 어떤 소문이 떠도는데?”

흠칫하던 이육진이 이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고 소우연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최소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소설 속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이육진이 죽인 사람들은 전부 저택 안에 숨어있는 간첩들이었다.

“허허…”

이육진이 어이없다는 듯이 허허 웃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대체 누가 이런 말을 소우연에게 해준 걸까? 분명 이육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누군가에게서 이런 평가를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왕야, 전 영원히 왕야 편에 서있을 겁니다. 왕야께서 어떤 결정을 하시든 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왕야 곁에 서있겠습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려면 반드시 상대방에게 진심을 보여야 한다.

이육진이 소우연을 확실하게 지켜줄 수만 있다면 소우연은 두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육진은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그는 한없이 약해 보이는 이 여자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소우연은 이육진의 추악한 외모에 전혀 겁을 먹지 않는 건가?

“왕야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이 자리에서 맹세를…”

“맹세까지 필요 없어.”

이육진이 소우연의 말을 딱 잘랐다. 만약 소우연이 3년 전 그를 구해준 사람이 아니라면 이육진은 절대 소우연을 멀쩡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전 왕야께서 저를 대하시는 태도가 다른 신부들과 다르다는 걸 압니다.”

이육진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며 눈앞에 있는 소우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 여자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만약 남강에 수소문하러 간 호위병이 확실한 정보를 전해오지 않으면…’

생각에 잠겨 있던 이육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우연을 쳐다보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지금이라도 간절하게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네?”

소우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이육진이 귀찮다는 듯 손을 내둘렀다.

“이만 물러가거라.”

소우연은 자리에서 멍하니 서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육진은 다른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회남왕과 다르고 소우연 그녀에게도 다르게 대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이육진은 소우연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전생에 대체 왜 소우연의 시신을 거둬준 걸까? 그래도 명분이 이육진의 부인이라고 불쌍하게 여긴 걸까?

하지만 그것 또한 말이 안 된다. 황제가 하사한 혼인 상대가 한두 명도 아니고 전에 살해된 신부들의 시신은 하나도 거두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소우연이 입술을 살짝 깨문 채 큰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왕야, 제가 감히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감히? 소우연, 너 정말 겁이 없는 거야?”

소우연이다! 이육진 입에서 나온 이름은 소우희가 아닌 소우연이다!

충격에 입을 떡 벌린 소우연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자리에 굳어버렸고 이육진은 그런 소우연을 보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진원 장군은 참 대단해. 감히 아바마마를 속이고 신부를 몰래 바꿔?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지.”

소우연은 입만 뻥긋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육진은 그녀가 소우희가 아니라 소우연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혼인 첫날밤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침대보에 피를 묻혀서 소우연의 체면과 목숨을 지켜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소우연은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은 채 머리를 조아렸고 이육진은 그저 그 모습을 조용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목숨을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감사 인사를 하기엔 아직 너무 이른데?”

이르다고?

소우연은 이육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만 나가!”

이육진이 다시 한번 내쫓자 소우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바닥에서 일어나 서재를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진규와 정연이 소우연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했고 본채로 돌아가는 길에 소우연은 근심이 많은 얼굴이었다.

결국 이육진에게 자신을 데리고 궁으로 갈 것인지도 묻지 못했다.

“왕비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한숨은 왜 그렇게 쉬시는 겁니까?”

소우연은 고개를 돌려 정연을 쳐다보았다. 정연은 저택에 있는 다른 시녀들과 달랐고 정연과 얘기하고 있으면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소씨 가문도 모함과 시기 질투가 가득한데 회남왕 관저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칫 말실수라도 하게 되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곳이다.

“난 왕야께 주상을 찾아 뵙는 일에 관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쫓겨났어.”

말을 하던 소우연은 조용하게 정연의 표정을 살폈고 정연은 그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왕야께서 바삐 처리할 일이 있으셨을 수도 있지요.”

“그렇지. 바빠 보였지.”

병서를 공부하느라 바빴겠지. 어쩌면 이 세상 남자들은 누구든 그 자리에 한 번쯤은 앉아보고 싶을 것이다.

한편, 서재에서.

이육진은 한과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머릿속에는 조금 전 영원히 자신의 편에 서겠다던 소우연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황제가 이 혼인을 하사하고 나서 이육진은 소씨 가문의 움직임을 주의하고 있었고 호위무사들은 소씨 가문에서 신부를 바꿀 계획을 하고 있다고 이육진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를 했었다.

소씨 가문의 첫째 딸인 소우연은 애초에 평서왕의 아들 이민수와 혼약이 맺어졌고 심지어 이민수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렇게 이민수를 마음에 깊이 품고 있던 소우연이 조금 전 그런 맹세를 한 게 말이나 될까? 그녀는 이런 달콤한 말들로 이육진을 홀리고 이민수를 위해 이육진의 기밀을 파내려는 게 분명하다.

‘허허… 소씨 가문에서 둘째 딸 대신 원치 않는 결혼까지 시켰는데 소우연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랑하는 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네… 멍청하기는!’

이민수에게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몸이 망가진 폐인의 비위까지 맞추다니.

역시, 어마마마가 말한 것처럼 얼굴이 예쁜 여자일수록 거짓말과 위장을 잘하는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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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17)
goodnovel comment avatar
고혜영
아무생각없이 읽다가 빠져들었어요^^
goodnovel comment avatar
lovemia1225
재밌어요 궁금하네요
goodnovel comment avatar
송미진
뒷내용이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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