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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2화

Author: 주 한잔
이후 강원보는 더는 궁 안의 무의미하고 고된 나날을 견딜 수 없었다.

벼르던 끝에, 그는 궁을 나서 사부 수현을 찾았다.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희망이 있었다.

사부라면 다시 한번, 그를 궁으로 끌어줄 수도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냉정했다.

“난 이제 힘이 없다. 궁으로 돌아갈 생각은 마라. 차라리 여기서 내 곁에 머물며 말년을 함께 보내자꾸나.”

남은 생을 수현 곁에서 소박하게 늙어가는 삶. 혹은 궁에 남아 발에 차이며 치욕을 견디는 삶.

강원보는 끝내 후자를 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금성을 만났다.

금성은 그에게 아낌없이 금전을 내주었고, 강원보는 그 대가로 사부에게 금성을 소개했다.

“강 도령, 아직도 믿지 못하시겠습니까?”

금성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물었다.

강원보는 정신을 차린 듯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믿습니다. 진심으로요.”

그는 염만이 지은 약을 복용한 뒤로,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하는 걸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되살아날 거야.’

금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그 사부님 말입니다… 그분은 조정을 철석같이 믿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그 개 같은 이육진에겐 맹목적입니다. 저희가 앞으로 벌일 일을 그분에겐 절대, 절대 알려져선 안 됩니다. 작은 실수 하나가 모든 걸 망칠 수 있으니까요.”

강원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사부님도 염만 술사에게서 받은 금단이 있습니다. 그걸 알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배신을 하겠습니까?”

금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닙니다. 예전 선제도 양탕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끝내 이아령 같은 이들에게 문을 열지 않았지요. 주군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하인의 품성도 결정됩니다. 약 하나로 그분의 충정을 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강원보는 할 말을 잃었다.

맞았다. 수현은 뼛속 깊이 황실의 개였다.

잠시 후, 금성이 시 한 구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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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9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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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981화

    이육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품 속에서 작은 약병을 하나 꺼냈다.“이 의원에게 받은 약이다. 보혈에 좋고 기운을 돋운다 하더구나. 너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그는 약병을 작은 받침대에 조용히 내려두었다.용강한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폐하 감사합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이육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부디 이번 혈충의 화가 하루속히 거두어지기를 바란다. 그리되면 이 빙섬충과 형화충은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하거라.”용강한이 무언가 더 말하려 했으나, 이육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도술보다 중요한 것은 네 목숨이다.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귀하다. 너도 알고 있겠지. 나와 황후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네가 무사하다는 것뿐이다.”그 목소리는 따뜻했으나, 황제로서의 현실과 무게가 실려 있었다.한 사람을 아끼면서도, 결국은 그를 나라를 위해 써야만 하는 처지를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만일 지금 네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해도, 나는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이육진은 단단한 눈빛으로 용강한을 바라보며 말했다.용강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폐하, 신이 해온 모든 일은 신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그것이 황후 마마를 위한 것이든, 폐하를 위한 것이든, 백성들을 위한 것이든… 신은 그저, 기꺼이 감당했을 뿐입니다.”그는 담담히 입꼬리를 올렸다.“그러니 폐하께서 신을 향해 빚이라 생각하시진 마시옵소서. 신은 한 번도 그렇게 여긴 적 없습니다.”이육진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그렇다 해도, 네 말만 믿고 수년 간의 정을 가볍게 넘길 순 없다.”“너는 나에게, 연아에게 그저 신하가 아니다. 오래도록 함께해온 소중한 벗이다.”용강한은 눈을 떨구며 낮게 말했다.“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이육진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지나치게 마음을 썼구나. 나도, 연아도, 너의 충심 때문만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 그 자체를 염려하는 것이다.”“연아는 진심으로 너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980화

    용부.용강한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몸에서 태극구를 풀어내며 경문에게 말했다.“숯불과 얼음을 준비하거라.”그는 오늘 밤, 자신을 먼저 집어삼킬 것이 차가운 냉기일지, 뜨거운 열기일지 알 수 없었다.경문이 태극구를 힐끗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대인, 지금도 몸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태극구까지 내려놓으시면, 도저히 버티시지 못할 겁니다.”“하룻밤뿐이다.”용강한의 목소리는 핏기 하나 없는 얼굴만큼이나 담담했다.경문은 더 말하려다 그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그 눈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리고, 물 한 대야 준비해다오. 피가 묻은 손수건을 씻어야 하니.”“예.”경문은 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용강한은 태극구를 열어 안쪽에 있던 붉은색 결정 몇 개를 조심스럽게 꺼냈다.그것은 고충이 분비한 파편이었다.이게 어떤 효능을 지니고 있는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다만 오늘, 무리하게 도술을 사용한 탓에 몸에 큰 무리가 왔고, 지금 상태로는 고충을 억제할 수조차 없어 당분간은 봉인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영화궁.해가 지기도 전, 이육진은 물을 준비시켰다.직접 소우연의 몸을 씻겨주며 중얼거렸다.“재수가 없어서 말이다.”소우연은 곁눈질로 그를 바라봤다.이육진은 투덜대듯 계속 말했다.“그 혈충이란 것 말이다. 진심으로 혐오스럽더구나.”이육진은 본래 결벽증 기질이 있었기에 더욱 민감해졌다.소우연은 그가 이렇게 요란을 떠는 것도 익숙했기에 별 말 없이 내버려두었다.문제는 이육진이 목욕을 핑계 삼아 꼭 다른 짓을 곁들인다는 것이었다.한 시진이 지난 뒤.소우연은 다시금 이육진에게 안겨 욕조로 들어가게 되었다.이번엔 정말로 목욕을 마친 후였다.이육진이 말했다.“그 손수건을 가져오지 않았더구나.”소우연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이미 더러워졌을 테니… 용 대인께서 버리셨을 겁니다.”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더럽혀졌으니 아마 버렸겠지.’그는 소우연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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