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일이 무엇인지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슬그머니 은전을 꺼내 진우와 위진규의 손에 쥐어주려 했다.그러나 두 사람은 금성에게서 거리를 두며 한 걸음 물러났다.‘위험한 자로군.’주진우와 위진규, 둘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특히 주진우는 정연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떠올라, 더욱 쉽게 마음을 놓지 못했다.그 냉랭한 반응에 금성은 잠시 민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때, 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듣자 하니, 얼마 전 가게에서 조광충의 아내였던 상연에게 화장품을 사줬다지.”금성은 눈을 피하며 어물쩍거렸다.“그게… 그날은 여러 사람에게 대금을 대신 치러줬던 날이라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덧붙였다.“상연이가 사라졌다. 그건 알고 있느냐?”“그건 전혀 몰랐습니다. 애초에 그 여인과는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진우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다. 큰일은 아니니, 안심하거라.”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금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안심이라… 대체 무엇을 두고?’은전도 통하지 않자, 금성은 이내 조용히 몸을 돌려 저택으로 돌아갔다.염부 본관.금성이 돌아오자, 염만은 방 안을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우리가 만든 것은 고작 혈충인간일 뿐이잖느냐!”“정체가 드러난 것도 아닌데, 어찌 이리도 많은 어림군이 몰려온단 말이냐!”“안 되겠다, 자수하러 가야겠다. 지금 당장이라도!”금성은 차분히 말했다.“자수라니요.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우리가 만든 그 혈충인간, 그걸 황제께 진상하면 어떻겠느냐. 수천, 수만 마리만 되면, 야랑이며 변강이며 그냥 휩쓸고 다닐 수 있을 것이야. 게다가 고보도 있지 않느냐. 장수를 돕는 물건이라 들었지. 황제가 그걸 마다하겠느냐?”그 말을 듣는 금성의 눈빛은 서늘하게 식어갔다.하지만 염만이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순한 눈으로 돌아가
이육진은 콧웃음을 흘리며 질투 섞인 말투로 말했다.“연아, 너는 영이한테만 뽀뽀해 달라 하고, 정작 부군인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느냐.”이영이 두 팔을 가슴에 안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맞받아쳤다.“아바마마, 부끄러운 줄 아셔야죠!”소우연은 그런 이영의 뺨에 연신 입을 맞추며 그녀를 품에 안고 이육진이 상소문을 검토하고 있는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정연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말했다.“폐하, 마마, 그럼 저는 먼저 금융궁으로 가 다른 부인들과 함께하겠습니다.”이육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소우연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조금 뒤에 곧 따라가도록 하마.”“예, 마마.”정연은 예를 다한 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그 모습을 지켜본 이육진이 이영을 보며 말했다.“그래도 네 어미는 날 먼저 챙길 줄 아는구나. 그래야 정실부인이지.”이영은 눈썹을 찌푸리며 삐진 듯이 말했다.“아바마마는 너무 욕심 많으세요. 어마마마는 온종일 아바마마 곁에만 계시잖아요. 저랑은 노는 시간도 거의 없고요.”“제가 공주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아바마마도 어마마마도 절 사랑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을 거예요.”“쓸데없는 소리 말거라. 이 귀한 아기를 누가 사랑 안 하겠느냐. 우리 연아랑 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말이다.”이영은 꺄르르 웃었다.“저는 오라버니가 더 좋아요!”이육진도 함께 웃으며, 소우연의 품에 안겨 있던 이영을 받아 안았다.“자, 이제 나와 같이 상소문 구경을 하자구나.”이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댔다.“방금 상서방에서 돌아온 참인데요. 정 태부께서 오늘도 숙제를 잔뜩 내주셨어요.”“학문을 싫어해선 안 된다. 그러다간 예전에 부군이 너한테 약속한 것도 없던 일이 될지 모른다.”이영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한다.“지금도 아바마마께 뭘 받아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그녀가 가본 곳이라야 태자부와 경성 안 상점들뿐.심지어 경성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정작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이영은 지금처럼
정연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다가도 결국 참았다.소우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궁 안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한 것이냐?”정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마마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네요.”“나라도 궁금했을 것이다.”소우연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주진우, 위진규, 그리고 임세안은 모두 염부 밖을 지키고 있다.”“역시 염가가 벌인 짓이군요?”“그래, 틀림없이 그들이 벌인 짓이겠지.”정연은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자꾸 가슴이 답답해요. 어서 이 일이 다 끝났으면 좋겠어요.”“내 생각도 같다.”어차피 정연과 우옥명은 요 며칠 궁 안에 머물며 외부로 새는 말도 없을 터라, 소우연은 지난밤의 일을 두 사람에게 모두 털어놓았다.물론 정연과 우옥명은 애초에 궁을 배반할 인물들이 아니었다.우옥명은 얼굴빛이 바래며 외쳤다.“정말 더럽고도 비열합니다! 짐승이나 다름없네요!”정연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제가 그날 관아에 갔을 땐, 정말 멀쩡한 여인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원래도 고단한 삶을 살았을 텐데, 어찌 그리 가혹한 장난을 당해야 하는 건지.”정연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그 여인들은 정말 아직 살아 있을까요?”소우연은 예전에 정중이 고충에 걸린 후 며칠 못 가 온몸이 터져 죽은 걸 떠올렸다.그 여인들도 어쩌면 혈충을 낳고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그만 울거라. 내가 괜히 이런 말을 전했구나. 아직 둘은 몸도 성치 않거늘…”소우연은 말을 흐리며 약간 후회했다.정연은 눈물을 닦고 마음을 다잡았다.“마마, 걱정 마십시오. 저는 약하지 않아요. 그저 그 여인들, 그리고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플 뿐입니다.”“그 아이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요?”우옥명은 심초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그런 사악한 고술이라면, 아이들 역시 그 일환일 것이다.”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염만과 그의 배후가 드러나야 비로소 진상이 밝혀질
용강한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간석과 함께 물러났다.이육진은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소우연에게 다가오더니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연아.”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고개를 숙여 턱을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소우연이 고개를 돌리며 그를 바라봤다.“왜 그러십니까?”“너, 용강한에게 너무 잘해주는 것 아니냐.”그 말엔 질투가 엿보였다.소우연은 가볍게 웃었다.“폐하께는 더 잘하지 않습니까? 함께 아이도 낳았고, 오랜 세월 같은 이불을 덮고 지내지 않았습니까.”“연아…”이육진은 소우연의 말을 끊으며 입술을 굳혔다.“설마 그런 걸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혹시 너도 그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냐?”“폐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소우연은 분노가 치밀어 손으로 그의 팔을 탁 때렸다.“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그런 농담은 삼가셔야지요. 오라버니는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혈충 문제를 해결하느라 애쓰고 계시는데요.”“알았다, 알았어! 그만하마.”이육진은 급히 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했다.소우연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오라버니가 또 야위셨더군요. 폐하는 모르셨습니까?”어찌 모르겠는가.용강한은 고충이 도술을 억누르는 걸 막기 위해, 때로는 태극구도 몸에 지니지 않았다.하지만 그 태극구에 담긴 고충이 정말 그에게 해가 없을지는, 염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소우연은 피로가 스며든 어조로 말했다.“요 며칠 많이 피곤하셨으니, 일찍 쉬시지요.”“흠, 그런데 말이다. 지금 둘만 있는데 왜 나를 ‘부군’이 아니라 ‘폐하’라 부르느냐.”이육진은 그녀가 순간적으로 존칭을 쓴 걸 놓치지 않았다.가슴 한편이 허전해진 듯, 그는 조용히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연아, 내게 화내지 마라. 그러면 내 마음이 얼마나 무너지는지 아느냐.”소우연은 다시 한숨을 쉬며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겼다.아까 그녀는 그를 폐하라 불렀다.이육진은 이 사실이 맘에 들지 않은 것이다.사실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그 순간마
“일리가 있구나.”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간석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 강이라는 자를 잡아들여 직접 심문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이육진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진우 일행이 염가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그는 눈빛을 바짝 세우며 말을 이었다.“그 외의 자들, 특히 오늘 모였던 대신들이 돌아가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지켜보아야 하겠지.”“염가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라면 오늘 밤은 그야말로 불면의 밤이 될 것이다. 불안에 시달리다 보면 무심코 실수하게 마련이고, 그 실수가 결국 꼬리를 드러내게 된다.”“강이는 당장 건드리지 말고, 수현이 머무는 집만 조용히 감시하거라.”잠시 말을 멈췄던 이육진은 이내 다시금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수현은 선황께 충성심이 지극했던 자다. 내 그가 감히 국체를 해할 일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소우연과 용강한, 간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공감했다.수현은 거의 황궁을 자신의 집처럼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배신을 꾀한다니, 선뜻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늦은 밤,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용강한이 입을 가리고 기침을 몇 차례 했다.그 기침 소리에 소우연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시선도 그에게로 자연스레 쏠렸다.“오라버니, 저에게 손 좀 보여주세요.”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용강한은 급히 손을 저었다.“마마, 괜찮습니다. 염려 마십시오.”그러나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소우연은 그의 손등 위, 새로 생긴 상처를 보았다. 또다시 스스로를 다쳐가며 고충을 기른 것이다.그 고충은 염만이 준 것이었다.지금 어전 안엔 외부인이 없었다. 소우연은 작게 물었다.“오라버니, 염만이 준 고충 말입니다. 몸에는 아무런 해가 없는 게 맞나요?”용강한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그 고충은 그저 제 도술을 일부 억제할 뿐, 제게 해를 끼치진 않았습니다.”“그런데도 전 괜히 마음이 불편하네요.”“염만은 처음부터 우리의 신임
“귀 좀 내밀어 주시겠습니까, 폐하?”“……”소우연이 고개를 갸웃했다.“왜 저만 빼고 말씀하시나요? 어째서 두 분만 그렇게 비밀스럽게…”“제가 듣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이육진도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용강한에게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용강한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말해보아라.”용강한은 고개를 살짝 돌려 이육진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가 말을 이어갈수록, 이육진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고, 끝내는 잿빛이 되다 못해 철같이 굳어졌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우연은 호기심을 억누르기 힘들었다.‘오라버니는 늘 나를 생각해 주시는 분인데, 어쩐지 이번 일만은 나한테 숨기시네…’“역겹구나!”이육진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탁 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몸을 약간 떨기도 했다.용강한은 차분하게 말했다.“그러니 모든 일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염금성, 그자가 바로 이 일의 핵심 열쇠입니다.”“오늘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니, 절대 빠져나가진 못할 것이다.”이육진이 굳은 어조로 말했다.용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육진의 은위들이 이 일에 관해 자신에게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임세안, 위진규, 주진우 셋이서 황실 수비군을 이끌고 염가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을 터였다.“콜록, 콜록…”용강한이 기침을 몇 차례 더 터뜨렸다.소우연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라버니, 안색이 더 창백해지신 것 같아요. 예전에도 희긴 하셨지만, 요즘은 정말 그 은빛 머리카락처럼 빛이 날 정도예요.”“태자빈 마마의 걱정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용강한은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요 며칠 몸이 좀 허해져서 그렇지, 크게 염려하실 정도는 아닙니다.”“추워진 날씨에 빙섬충과 형화충을 지니고 계시다 해도, 겉옷은 꼭 더 챙기셔야 합니다.”“명심하겠습니다.”용강한과 소우연의 이런 다정한 대화를 지켜보던 이육진은 말없이 질투를 삼켰다.그는 괜히 소우연의 손을 살짝 쥐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했다.반 시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