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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보다 차가운 결혼
남극보다 차가운 결혼
작가: 작은춤결

제1화

작가: 작은춤결
나는 혼자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꾸역꾸역 먹느라 위는 더부룩할 만큼 찼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협의이혼 신청서와 이혼합의서를 출력했다.

막 서명하려던 때, 핸드폰이 울렸다.

임지영이 화면 녹화 영상을 보내왔다.

영상 속 임지영과 주서언은 호화 크루즈 갑판에 나란히 서 있었다.

다른 화면에서는 두 사람의 공통 지인들이 감탄을 쏟아내고 있었다.

“남극 여행? 이거 최소 2천만 원은 넘는 코스잖아. 서언이는 정작 자기 와이프는 200만 원짜리 여행도 데려간 적 없지 않나?”

“돈이 가는 데에 마음도 있는 거지.”

“제수씨 이번엔 난리 안 쳤다며? ‘좋아요’까지 눌렀다던데?”

임지영이 일부러 혀 짧은 목소리를 냈다.

“난리 치긴 했어. 서언이한테 이혼하자고 했대.”

영상 너머에서 지인들이 혀를 찼다.

“제수씨도 예전엔 투정 좀 부리는 정도였는데, 이혼까지 말한다고? 진짜는 아니겠지?”

“진짜일 리가...”

주서언의 목소리는 무심했다.

“내가 빨리 돌아가서 옆에 있어 달라는 뜻이야. 어차피 돌아가려고 했는데, 나는 협박이 제일 싫거든.”

“그래서 영이랑 며칠 더 놀다 갈 거야.”

“...”

주서언의 눈매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러다 바람에 헝클어진 임지영의 앞머리를 정리하는 주서언의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화면 너머 공통 지인들이 ‘또 사랑하는 척한다’ ‘둘이 사귀어라’ 하며 야유를 보냈다.

“서언아, 이참에 그냥 와이프랑 헤어져. 누가 몰라? 그때 네가 우리 영이 덕분에 와이프랑 만난 거잖아. 영이도 돌아왔는데 네 와이프의 자리를 남길 이유가 있냐?”

“맞아, 영이야. 서언이 좀 봐라, 이제 연봉 2억 넘는 임원인데. 너 향한 마음은 예전이랑 하나도 안 변했잖아.”

주서언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뭔가 말하려던 참이었다.

임지영이 갑자기 주서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서언아, 얘들 말 못 하게 해 줘. 이러다 우리 순수한 우정 모욕당하겠다.”

“게다가 전업주부는 집에만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잖아. 네가 좀 져줘. 아니면 내가 죄인이 되겠어.”

주서언의 눈에서 무언가 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소를 비틀어 올렸다.

“걱정 마. 내 와이프는 나랑 이혼 못 해.”

“그 사람은 나 없으면 돌아갈 집도 없어. 겁나서 못 하지.”

나는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주서언을 바라보았다.

나의 가장 약한 곳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남자.

그제야 우리 사이가 정말 끝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왜 마음은 비틀어 짜인 듯 시리고 답답한 걸까?

아마도 나는 주서언을 오래도록 내 인생의 빛이자 구원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해, 대학원 1학년이던 주서언이 내게 고백했다.

주서언은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혼자 몰래 주서언을 짝사랑하던 후배였다.

나는 엄마를 일찍 여의었다.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린 뒤로는 새엄마와 새아버지 같은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어릴 때부터 남의 집 처마 밑을 전전하며 눈치를 봤고, 그 뒤로 내게 집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주서언은 말했다. 너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서언이 한없이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영이야’ 하고 불렀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

엄마가 떠난 뒤로 내 이름을 그렇게 불러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울다 보니 웃음이 났다.

정처 없이 부유하던 내 마음이 처음으로 닻을 내린 듯했다.

졸업 후,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아무 망설임 없이 주서언을 따라 호람시로 갔다.

주서언이 내게 집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주서언은 일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렵게 받은 입사 제안을 거절하고, 주서언과 가정을 꾸려 살림과 일상을 맡았다.

나는 4년 동안 주서언과 버텼고, 마침내 주서언의 커리어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주서언은 곧바로 품질 좋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 와서 나에게 프러포즈했다.

주서언은 말했다.

“영이야, 넌 그럴 자격 있어.”

결혼 후에도 주서언은 늘 바빴다. 그래도 가끔 값비싼 주얼리를 사다 주었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면 주서언은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여전히 같은 말을 했다.

“여보는 그럴 자격 있지.”

보석이 반짝이던 그때마다 나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믿었다.

내가 드디어 운명에게 한 번쯤은 편애받았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집을 얻었다고 믿었다.

한 달 전 임지영이 귀국하기 전까지는.

임지영은 주서언이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지만 끝내 갖지 못한 여자였다.

날카로운 가시처럼 돌아온 임지영은, 내가 믿어 온 모든 행복을 산산조각 냈다.

주서언이 내게 고백한 날, 임지영은 해외에서 남자친구와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그가 처음 내게 입 맞춘 날, 임지영은 SNS에 손잡은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나에게 프러포즈한 이유는 임지영이 약혼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내게 준 반지와 주얼리는 전부 임지영이 좋아하던 디자인이었다.

주서언이 수없이 다정하게 ‘영이야’라고 부를 때, 그 마음속에는 온통 내가 아닌 ‘임지영’이 있었다.

...

내가 행복이라고 믿었던 모든 지점에는... 주서언의 미련과 분함이 묻어 있었다.

알고 보니 나는 한 번도 그럴 자격이 없었다.

툭-

눈물 한 방울이 이혼합의서 위로 번졌다.

떠올릴수록 나 자신이 우스운 농담처럼 비참했다.

주서언은 내가 주서언 없이 살 수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갈 곳은 있었다.

나는 펜을 들고 서명했다.

검은 글자가 흰 종이 위에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주서언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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