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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카피바라 1호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는 심은하의 눈빛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야 비로소 주재원이 장재경과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쩌면 장재경이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도움이 된 걸지도 몰랐다.

심은하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절대 주씨 가문에 폐를 끼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주재원은 눈빛이 어두워진 채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바래다줄게요.”

심은하가 알겠다고 하자마자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꺼내 보니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선배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선생님께서 많이 아프셔. 지금 경진병원에 계시는데 시간 날 때 병문안 한 번 와.]

그 문자를 본 순간 심은하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무슨 일이에요?”

심은하는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어두고 시선을 들어 주재원을 바라보았다.

“병원으로 데려다주시겠어요? 누구를 좀 만나려고요.”

“심씨 가문 사람인가요?”

심은하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 선생님이요.”

주재원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무심하게 물었다.

“내가 같이 가줄까요?”

심은하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아꼈다. 당시 심은하는 교향악단 일로 선생님을 크게 실망시켰고 그 뒤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심은하는 그때도 지금도 늘 선생님을 존경해 왔다.

“병원에 데려다줄게요.”

심은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재원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심은하의 손목을 쥐고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필요한 거 있으면 그냥 얘기해요. 내 아내는 이렇게 우물쭈물하면 안 돼요.”

손목을 통해 주재원의 온기가 느껴지자 심은하는 시선을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주재원은 소문과 달랐다.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던 심은하는 곁눈질로 차에 시동을 걸고 왼쪽 백미러를 바라보는 주재원을 바라보았다.

반쯤 내린 창문에 팔을 올리고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검지로 핸들을 가볍게 쥔 그의 모습에서는 무심함과 도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렇게 잘생겼어요?”

갑작스레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심은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시선을 거둔 뒤 침착하게 앞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으나 빨개진 귀가 그녀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주재원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의 아내는 꽤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30분 뒤, 주재원의 컬리넌이 병원 앞에 멈춰 섰다.

“정말 같이 안 가줘도 되겠어요?”

주재원의 까만 눈동자가 심은하에게로 향했다. 약간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눈빛이었지만 말투는 다정했다.

“괜찮아요.”

심은하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선생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고 무턱대고 주재원을 데리고 가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주재원이 오해할까 봐 걱정되었던 심은하는 그가 차를 타고 떠나기 전 한 마디 더 보탰다.

“선생님이 다 나으시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대표님을 소개해 줄 거예요.”

핸들을 잡고 있던 주재원은 잠깐 흠칫했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하려고 했을 때 심은하는 이미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장재경은 진짜 안목 없는 놈이네.’

주재원은 이미 여러 차례 장재경을 욕했다.

사실 그는 장재경의 신경을 긁고 싶어서 심은하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심은하는 적어도 외모만큼은 우월했고 반대로 장재경은 정말로 보는 눈이 없었다.

...

심은하는 주재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문자에 적힌 병실로 향했다. 그런데 노크하기도 전에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제자한테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면서 왜 그렇게 초조해하는 거야?”

환자복을 입은 유희선은 그 말을 듣고 소파에 앉아 있는 친구를 향해 눈을 흘겼다.

“내가 뭘 초조해했다고 그래? 그리고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희선아, 우리 몇 년 지기 친구인지 잊은 건 아니지?”

임유민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은하가 보러 와주길 바라서 걔 앞에서 그렇게 여러 번 강조한 거잖아.”

유희선은 침묵했다.

몇 초 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재능도 있고 앞날도 창창한데 그냥 포기해 버린 게 아쉽잖아. 걔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겨우 남자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겠대. 그 남자를 내조하며 현모양처로 살겠대.”

그 말에 임유민 또한 침묵했다.

유희선은 실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걔 진짜 오랫동안 노력했어. 걔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다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포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유민아, 나는 정말로 은하가 너무 안타까워.”

“어쩌면 그 사이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르...”

임유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희선이 말허리를 잘랐다.

“걔도 참 매정해. 내가 그때 화가 나서 채팅 기록도 전부 지워 버린 건 맞는데 그 뒤로 나한테 한 번도 연락을 안 했어. 정말 양심도 없지.”

...

심은하는 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한참 들었다.

유희선이 괜찮다는 걸 확인한 심은하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유희선 앞에 모습을 드러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면 유희선을 만날 용기가 생길지도 몰랐다.

결국 거듭 고민하던 심은하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을 돌리자마자 오른쪽에서 오던 사람과 부딪쳤고 그 탓에 난간에 허리를 부딪치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은하? 네가 왜 여기 있어?”

고개를 든 심은하는 장재경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어김없이 라서윤이 있었다.

“지인 병문안을 왔어.”

심은하는 장재경과 엮이고 싶지 않아 손으로 허리를 주무른 뒤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거기 서!”

장재경은 심은하가 자신을 무시하자 매우 불쾌해하며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까 나한테 혼인신고 하러 가자고 했잖아. 그런데 왜 날 따라온 거야?”

“이거 놔!”

심은하는 장재경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장재경은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장재경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고 따귀 소리에 장재경과 라서윤 모두 화들짝 놀랐다.

라서윤이 빠르게 장재경을 자기 곁으로 잡아당기면서 그의 얼굴에 남은 붉은 흔적을 보며 화를 냈다.

“심은하 씨, 미친 거예요? 그냥 말로 하지 왜 사람을 때려요?”

“말귀를 못 알아듣길래요.”

심은하는 웃음기 하나 없는 싸늘한 눈빛을 해 보였다.

“괜히 여기까지 와서 날 아는 척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뺨을 때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뺨을 때리면 내 손도 아픈데 내가 왜 굳이 그러겠어요?”

라서윤은 마음 아픈 얼굴로 장재경을 바라보았다.

장재경은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 자꾸만 느껴져서 곤혹스러웠다.

그는 심은하의 태도에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흥분되었다.

적어도 예전의 아무런 존재감이 없던 심은하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빛났다.

“심은하, 이제 화 풀렸어?”

장재경은 맞은 쪽 볼 안쪽을 혀로 누르면서 말했다.

“헤어지자고 했던 거 용서해 줄게. 조만간 다시 집에 돌아와. 네가 해준 밥을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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