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와 헤어졌더니 남편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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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하는 10년 동안 장재경 곁에서 라서윤의 그림자처럼 살아왔다. 심은하는 장재경이 청순한 스타일을 좋아해서 잘 어울리지도 않는 흰 원피스만 고집했고 그녀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도 싫다고 해서 피아노도 포기했다. 그러다 그가 짝사랑하던 라서윤이 귀국하던 날, 장재경은 라서윤을 품에 안고 심은하를 조롱했다. “심은하는 내 애완동물과 다름없어. 걔는 내가 서윤이랑 잘 때 옆에서 시중을 들라고 해도 좋다고 할 걸.”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장재경은 인간 말종이 틀림없었다. 다들 주재원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으나 오직 심은하만이 난폭하기로 소문난 주재원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만큼은 끔찍이 여긴다는 걸 알았다. “빨간 치마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은하 씨는 장재경 그 멍청한 놈과 만나기엔 너무 아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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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장재경은 선글라스를 낀 채 심은하가 입은 흰 원피스를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그 원피스 안 좋아했잖아.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그걸 입은 거야?”

솔직히 얘기하자면 심은하는 농염한 외모 때문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더라도 매혹적인 눈빛으로 사람들을 홀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긴 기장의 청순한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도 그녀가 보기 드문 미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심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3년 동안 연습해 온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 옷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한 번 입어 봤어. 예뻐?”

“야한데.”

장재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의 조롱에 심은하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심은하는 장재경이 순수하고 청초한 스타일을 좋아하지 자기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본인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난 3년 동안 일부러 청순한 스타일로 꾸미고 다녔다.

장재경의 모욕적인 평가를 들은 심은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매력적인 눈으로 청순하면서 맑은 눈빛을 해 보였다.

“마음에 안 들어?”

장재경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서윤이랑은 비교도 안 되지.”

심은하의 표정이 하마터면 흐트러질 뻔했다.

라서윤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심은하는 겉으로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

라서윤의 집안이 좋았더라면 그녀는 이미 일찌감치 장재경과 이어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심은하도 지금처럼 매일 연기를 하면서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재경이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알지만 심은하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재 자금난을 겪고 있는 심씨 가문을 도와주겠다고 한 건 장재경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심씨 가문은 장씨 가문에 의지하고 있었고 그 탓에 심은하도 장재경 앞에서는 늘 저자세로 나가야 했다. 3년 동안 장재경과 사귀면서 심은하는 장재경의 취향에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장재경의 마음을 흔들 수는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장재경은 단 한 번도 그녀를 공식적인 자리에 데리고 나간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약혼은 고사하고 그녀가 자신의 여자 친구라는 사실조차 단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었다.

심은하는 장재경이 요즘 부쩍 자신에게 냉담해진 걸 느꼈고 그래서 오늘 흰 원피스를 입은 것이었다. 라서윤이 자주 그런 스타일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장씨 가문의 지위 덕분에 장재경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지난 3년 동안 그의 곁에는 오직 심은하뿐이었다.

심은하의 눈이 라서윤의 눈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걸로 갈아입을게.”

조금이나마 기대를 품었던 심은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두 손으로 옷자락을 꼭 쥐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위로 난감한 표정이 드러났다.

흰 원피스로 장재경의 환심을 사려고 했는데 오히려 수모만 당한 심은하는 빠르게 자신의 감정을 갈무리하려고 했다.

“됐어.”

장재경은 그녀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이따가 나갈 거야.”

장재경은 평소답지 않게 차분히 셔츠깃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심은하는 그제야 거래처를 상대할 때도 늘 옷차림이 단정치 않던 장재경이 평소와 달리 아주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심은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늦었는데 어디 가?”

“서윤이가 귀국했거든. 서윤이 마중하러 나가려고.”

심은하의 손아귀에서 옷자락이 흘러내렸다. 겨우 몇 초 사이에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당시 라서윤은 장씨 가문에서 준 거액의 돈을 받는 대신 앞으로 절대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평생 해외에서 거주할 거라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라서윤이 왜 돌아온 것일까?

그 순간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심씨 가문이 장씨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심은하의 눈이 라서윤의 눈과 비슷하게 생겨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라서윤이 돌아온다면 심은하는 더 이상 장재경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심은하가 겁에 질린 것을 눈치챈 장재경은 경멸에 찬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뭘 그렇게 놀라? 걱정하지 마. 나랑 결혼할 사람은 너니까. 심씨 가문에도 계속 투자할 거야. 그 대신 너는 나랑 서윤이 일에 간섭하지 마.”

심은하는 시선을 내려뜨리며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앞으로 그녀는 장재경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도 그저 참고 견뎌야 하고, 그에게 모욕당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비굴하고 조용하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원래도 아름다운 심은하의 얼굴에 실망이 드리워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입은 흰색 원피스는 심은하를 마치 바람 따라 힘없이 흔들리는 흰장미처럼 보이게 하여 저도 모르게 보는 이의 연민을 자아냈다.

장재경은 시간을 확인한 뒤 더는 지체하지 않고 떠나려 했다.

“갈게. 기다리지 마.”

장재경은 차갑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는 3년 만에 보는 자신의 첫사랑 라서윤을 만나러 갔다.

장재경이 떠나자마자 심은하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소파 위에 풀썩 주저앉아 몸을 덜덜 떨었다.

라서윤이 돌아왔다. 3년 동안 노력했음에도 끝내 장재경의 마음을 얻지 못했으니 그녀는 앞으로 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다들 심은하가 장씨 가문의 권세를 노린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심은하의 친아버지마저 심은하를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심은하는 애초에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심은하와 장재경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심은하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일찌감치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동생을 낳았다. 심은하는 심씨 가문에서 마음 편히 지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인 데다가 여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우월한 외모의 소유자였기에 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 여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남학생들은 그녀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부적절한 말로 그녀를 희롱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양아치 같아 보이던 장재경이 다른 친구들이 심은하를 화장실 안에 가두었을 때 그들에게 오물을 뿌렸다.

심은하는 당시 신처럼 나타난 장재경의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늘 희고 깨끗한 흰색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날은 오물 때문에 교복이 엉멍이 되어 있었다.

“난 널 구하려던 게 아니야. 그냥 저 자식들이 꼴 보기 싫었을 뿐이야.”

심은하는 장재경이 쑥스러움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날 장재경은 자신의 교복으로 심은하의 얼굴을, 친구들에게 짓밟혀진 그녀의 자존심을 가려주었다. 사실 그녀는 일찌감치 그의 교복을 깨끗이 세탁했으나 돌려줄 기회를 찾지 못하여 지금까지 쭉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 장재경은 입이 거친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심은하는 그에게 설렜다. 심은하는 심씨 가문이 장씨 가문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재경이 당시 라서윤과 만나고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마음을 깊이 숨겼다.

그러다 라서윤은 장씨 가문 사람들 때문에 해외로 떠났고 장씨 가문은 장재경을 위해 신붓감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도 심은하는 감히 헛된 희망을 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장재경이 갑자기 심은하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라서윤과 똑같이 생긴 그녀의 눈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심은하는 너무 기뻐서 보기 드물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뒤 웃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굴던 심은하가 말이다.

사실 심은하의 아버지는 결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장씨 가문의 권세가 대단하긴 하지만 장재경은 누가 봐도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바람둥이상이었고 심현수는 그런 장재경이 심씨 가문에 이득을 가져다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심현수의 예상과 달리 지난 3년 동안 장재경은 심씨 가문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심은하의 눈이 라서윤의 눈과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사실 앞으로 쭉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해도, 매일 장재경에게 조롱당한다고 해도 심은하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라서윤이 돌아왔다. 심은하는 장재경의 여자 친구라는 신분을 밝힐 수 없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다른 여자를 질투하는 아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처량한 법이다. 장재경과 라서윤 사이에 심은하의 자리는 없었다.

이젠 지쳤다. 기나긴 짝사랑을 이어 나가는 것도 질렸다.

심은하는 이제 그만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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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장재경은 선글라스를 낀 채 심은하가 입은 흰 원피스를 쳐다보았다.“예전에는 그 원피스 안 좋아했잖아.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그걸 입은 거야?”솔직히 얘기하자면 심은하는 농염한 외모 때문에 무표정한 얼굴을 하더라도 매혹적인 눈빛으로 사람들을 홀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었다.그런 그녀가 자신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긴 기장의 청순한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도 그녀가 보기 드문 미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심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3년 동안 연습해 온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오늘 옷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한 번 입어 봤어. 예뻐?”“야한데.”장재경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의 조롱에 심은하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심은하는 장재경이 순수하고 청초한 스타일을 좋아하지 자기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본인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난 3년 동안 일부러 청순한 스타일로 꾸미고 다녔다.장재경의 모욕적인 평가를 들은 심은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매력적인 눈으로 청순하면서 맑은 눈빛을 해 보였다.“마음에 안 들어?”장재경은 눈을 가늘게 떴다.“서윤이랑은 비교도 안 되지.”심은하의 표정이 하마터면 흐트러질 뻔했다.라서윤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심은하는 겉으로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속은 무너지고 있었다.라서윤의 집안이 좋았더라면 그녀는 이미 일찌감치 장재경과 이어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심은하도 지금처럼 매일 연기를 하면서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장재경이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알지만 심은하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재 자금난을 겪고 있는 심씨 가문을 도와주겠다고 한 건 장재경이 유일했기 때문이다.심씨 가문은 장씨 가문에 의지하고 있었고 그 탓에 심은하도 장재경 앞에서는 늘 저자세로 나가야 했다. 3년 동안 장재경과 사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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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날이 어두워지기 전 심은하는 빠르게 본가로 돌아왔다. 장재경과 함께 살게 된 이후로 심은하의 방은 창고가 되었다.“아빠, 전 장재경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심현수는 심은하를 힐끗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얘기했었지. 장재경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3년 동안 널 실컷 가지고 놀았으면서 너랑 결혼할 마음은 없다는 거지?”심현수의 말이 비수가 되어 심은하의 마음에 꽂혔다. 심은하는 그저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심현수의 예상은 틀렸다. 장재경은 심은하와 결혼하겠다고 했으나 심은하는 이제 그와 결혼하기 싫었다.“아뇨. 제가 안 하려는 거예요.”심은하의 말을 들은 순간 심현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심현수와 심은하의 어머니는 정략결혼이었고 둘 사이에 사랑은 없었다. 그래서 심현수는 심은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딸의 결혼보다는 돈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예전에는 심은하가 그에게 장재경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었다.“내 능력으로 장씨 가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심현수가 냉소를 흘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그들이 널 원한다면 넌 반드시 그 집안 사람이 되어야 해.”심은하는 심현수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심현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아빠, 주씨 가문에서 제 동생을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주씨 가문이라면 아마 저를 장재경에게서 빼앗고 싶어 할 거예요.”주씨 가문은 장씨 가문과 수십 년 동안 앙숙이었다. 심현수와 달리 주씨 가문에서는 장씨 가문의 제안을 거절할 능력도 있고, 또 기꺼이 그러려고 할 것이다.심은하는 며칠 전 주씨 가문에서 아들의 신붓감을 고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안 형편이나 외모가 아니라 사주였다.그렇게 깐깐히 따져 보니 심씨 가문의 두 딸이 가장 적합했다. 당시 심은하는 장재경과 만나고 있었기에 주씨 가문은 당연하게도 심은하의 동생을 노렸다.그러나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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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장재경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심은하를 대충 내쫓았다.그는 심은하가 질투 때문에 그러는 거로 생각했다. 심은하는 장재경이 자신을 위해 라서윤을 포기할 거로 생각했던 것일까?심은하는 결국 그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를 제외하고 누가 무능력한 심현수에게 투자하려고 하겠는가?심은하가 룸을 나서기도 전에 장재경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가 깨어났을 때 룸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예전에는 심은하가 늘 취한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왜 오늘은 오지 않은 것일까?어젯밤 마셨던 술이 별로였던 것인지 장재경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심은하에게 어디에 있는 거냐며 따져 묻기도 귀찮아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심은하는 짐이 많지 않았기에 일찌감치 짐 정리를 마치고 집에서 나온 상태였고 장재경도 집의 물건이 줄어들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그 대신 거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교복이 눈에 띄었다.교복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수놓여 있었는데 교복을 펼쳐본 장재경은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건 그의 고등학교 때 교복이었다.교복은 오래전 잃어버렸다.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 뒤로는 겉옷을 입고 다닐 수가 없었고 그 탓에 담임 선생님께 몇 번이나 꾸중을 들었었다. 그런데 잃어버렸던 교복이 왜 갑자기 그의 집에 나타난 것일까?그러나 장재경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머리가 너무 아파 위층으로 올라가지도 않고 소파에 누운 채 잠이 들었다. 어젯밤 그는 라서윤을 마중 나가려 했지만 집안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공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그를 막았다.또 장재경은 집에 돌아와 심은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친구들을 불러 같이 술을 마셨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라서윤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오늘 밤 만나야겠어.’그는 라서윤을 꼭 만날 생각이었다. 심은하가 어디로 가는지는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그들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죽어도 상관없었다.거울 앞에서 심은하는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었다. 옷이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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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라서윤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비록 겉으로는 나무라는 듯했지만 장재경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3년 동안 쭉 해외에 있었는데도 아무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었다. 장씨 가문에 시집은 못 가더라도 장재경은 앞으로도 계속 그녀를 좋아할 것이다.“난 널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늘 차갑게 굴어.”라서윤을 달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심은하에게 항상 차가웠었다.라서윤과의 재회로 잠깐 즐거웠지만 식사가 끝나기도 전에 장재경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재경아, 나 새우 까 줘.”라서윤이 젓가락으로 새우 하나를 집어 장재경의 그릇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장재경의 앞에서 라서윤은 늘 응석을 부리며 제멋대로 굴었고 장재경은 그런 그녀에게 기꺼이 맞춰 주었다. 그러나 오늘 장재경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그릇 위에 놓인 새우를 바라보았다. 애정 가득하던 그의 목소리가 조금 차갑게 가라앉았다.“서윤아, 나 해산물 알레르기 있잖아. 잊었어?”장재경은 곱게 자랐고 해산물 알레르기가 심한 편이라서 해산물을 조금만 만져도 바로 두드러기가 생겼다. 반대로 심은하는 해산물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와 3년 동안 만나면서 밖에서조차 해산물을 먹은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그가 해산물의 비린내를 맡을까 봐 말이다.“어머, 깜빡했다.”라서윤은 귀엽게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평소처럼 장재경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교를 부렸다.“괜찮아. 일회용 장갑 끼고 하면 되지. 나 네일 새로 했는데 내가 이 손으로 새우 까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아니지?”3년은 꽤 오랜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장재경은 라서윤의 생활 습관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그러나 정작 라서윤은 알레르기 같은 중요한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고, 그에게 해산물 알레르기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여 새우를 까달라고 요구했다. 심은하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장재경은 밖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단 한 번도 심은하를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하필 라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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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장재경은 심은하에게 문자를 보낸 뒤 샤워하러 갔다. 그러나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을 때까지도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했다.예전이었다면 심은하는 장재경의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답장을 보냈을 것이다. 지금 장재경은 새우껍질을 깐 손이 매우 간지러웠고 자꾸 긁어서 붉은 흔적까지 남았다. 그러나 라서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걸 보았음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심은하였다면 안절부절못하면서 마음 아파했을 텐데 말이다.‘아니지.’마음 아파하는 것보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에게 문제가 생기면 심씨 가문에서 투자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게 되니 말이다. 심은하가 단순히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해도 장재경은 그런 반응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오늘 몇 번이나 심은하에게 심한 말을 했던 걸 떠올린 장재경은 사람을 달래는 데 소질이 없음에도 결국 먼저 심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곧 들려오는 안내음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진짜 화가 났다는 거지.’심은하가 그의 번호를 차단해 버릴 줄은 몰랐다. 오늘 밤 그녀가 곁에 없어서인지 장재경은 왠지 모르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일 회사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이제는 정말로 자야 했다.장재경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이튿날 운전해서 회사로 향하는 길에 장재경은 길가에서 눈에 익은 사람을 보았다. 3년 내내 봐왔으니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에게 다가가 아는 척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입은 빨간 치마는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잠깐 보기만 해도 눈이 시릴 것만 같았다. 장재경은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 뒤에야 확신했다.“심은하!”장재경은 심은하를 위아래로 여러 차례 훑어보았다. 예전에 그는 화려한 색을 가장 싫어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보기 좋았다.“너 그 치마 입으니까...”심은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장재경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심은하는 평소에 늘 들어왔던 그 말을 내뱉었다.“싸구려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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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는 심은하의 눈빛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야 비로소 주재원이 장재경과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어쩌면 장재경이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도움이 된 걸지도 몰랐다.심은하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알겠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절대 주씨 가문에 폐를 끼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주재원은 눈빛이 어두워진 채 계단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집에 바래다줄게요.”심은하가 알겠다고 하자마자 가방 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꺼내 보니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선배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선생님께서 많이 아프셔. 지금 경진병원에 계시는데 시간 날 때 병문안 한 번 와.]그 문자를 본 순간 심은하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무슨 일이에요?”심은하는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어두고 시선을 들어 주재원을 바라보았다.“병원으로 데려다주시겠어요? 누구를 좀 만나려고요.”“심씨 가문 사람인가요?”심은하는 고개를 저었다.“저희 선생님이요.”주재원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면서 무심하게 물었다.“내가 같이 가줄까요?”심은하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아꼈다. 당시 심은하는 교향악단 일로 선생님을 크게 실망시켰고 그 뒤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그러나 사실 심은하는 그때도 지금도 늘 선생님을 존경해 왔다.“병원에 데려다줄게요.”심은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주재원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심은하의 손목을 쥐고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필요한 거 있으면 그냥 얘기해요. 내 아내는 이렇게 우물쭈물하면 안 돼요.”손목을 통해 주재원의 온기가 느껴지자 심은하는 시선을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었다.주재원은 소문과 달랐다.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던 심은하는 곁눈질로 차에 시동을 걸고 왼쪽 백미러를 바라보는 주재원을 바라보았다.반쯤 내린 창문에 팔을 올리고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검지로 핸들을 가볍게 쥔 그의 모습에서는 무심함과 도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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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심은하는 그의 말에 헛웃음이 터졌다.그녀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두 사람과 더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에 빠르게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그들과 같이 있는 매 순간이 역겨웠다.장재경은 심은하가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따를 거로 생각하여 굳이 그녀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그가 이만큼이나 봐주었으니 심은하는 틀림없이 다시 돌아와 그를 위해 밥을 해줄 것이다.그때가 돼서 심은하를 잘 달래주면 심은하는 또 한 번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라서윤은 장재경이 자신이 아닌 심은하에게 계속 신경을 쓰자 은근히 불쾌했다.“재경아, 나 아직도 컨디션이 안 좋은데 일단 가서 의사 선생님께 진료 받아보자.”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장재경은 라서윤의 허리를 감싸안고 그녀를 데리고 예약해둔 병실로 향했다.심은하는 병원에서 나온 뒤 택시를 타고 본가로 돌아갔다.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심현수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심지연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소파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은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리더니 동시에 미소를 거두었다.“언니, 왔어?”심지연은 심은하가 주재원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즐거워했다.“언니, 주 대표님이랑 결혼한다면서? 결혼식 하게 되면 내가 꼭 큰 선물을 해줄게.”심은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심지연을 힐끗 본 뒤 말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아빠, 언니가 기분이 안 좋은 걸까요?”고개를 돌린 심지연은 붉어진 눈시울로 심현수를 바라보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언니는 주 대표님과 결혼하는 게 내키지 않는 걸까요? 그럴 만도 하죠. 주씨 가문은 대단한 집안이니까 결혼한 뒤에 당연히 그 집안에서 홀대받겠죠. 주 대표님도 아마 언니가 예뻐서 결혼에 동의한 걸 거예요. 나중에 언니한테 질리게 되면...”심현수는 버럭 화를 냈다.“걔가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돼? 시집갔으면 당연히 남편을 잘 모셔야지.”위층으로 올라가던 심은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심지연의 눈빛에서 의기양양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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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심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심은하가 말한 목걸이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이 심은하의 어머니가 남긴 물건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러나 심지연이 그 목걸이에 손을 댈 이유는 없었다. 비싼 것도 아닌데 말이다.심지연은 심은하가 예전처럼 참지 않고 바로 심현수에게 고자질하자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빠, 저는 그런 목걸이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언니 혹시 장 대표님에게 거절당해서 그 일로 충격을 받아 정신이 어떻게 된 건 아닐까요?”심지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심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언니를 병원에 보내서 검사를 받게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심지연!”심은하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지금 당장 나한테 목걸이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설마 진짜 절도죄로 연행되고 싶은 건 아니지?”심지연은 심은하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일부러 몸을 움츠리며 심현수의 옆에 숨었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훌쩍대며 말했다.“언니, 내가 그렇게 꼴 보기 싫다면 앞으로 언니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하지만 그런 거짓말로 날 모함하지는 말아 줘.”“심은하! 주씨 가문에 시집간다고 해서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심현수는 심지연이 불쌍해서 심은하에게 화풀이를 했다.“별 같잖은 목걸이 때문에 소란을 피워? 네가 잘 보관하지 못한 걸 왜 지연이 탓을 해? 계속 그렇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말 같지도 않은 소리? 같잖은 목걸이?’심은하는 경멸 어린 눈빛으로 심현수와 심지연을 바라보았다.“쓸데없는 말이 많으시네요.”그녀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꺼내 신고하려고 했다.심은하가 예전처럼 순순히 굴지 않자 심현수는 더욱더 언짢아졌다. 그가 심은하에게서 휴대전화를 빼앗으려던 순간 집사가 위층으로 올라와 그에게 보고했다.집사는 그들을 쭉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찾아오셨어요.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장 대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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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심은하는 엄마의 목걸이를 돌려받고 싶었고 이곳에서 장재경과 더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장재경, 나 헤어지자고 한 거 진심이었어.”진심이라는 말에 심은하를 바라보던 장재경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심은하. 오늘 한 말 똑똑히 기억해. 앞으로는 네가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야. 알아서 처신 잘해.”장재경은 그렇게 얘기한 뒤 바로 떠났다.심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왜 쓸데없이 장 대표 심기를 건드리고 그래?”장재경의 태도를 보니 심은하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닌 듯했다. 장재경을 멋대로 주무를 수만 있다면 심씨 가문에는 이득이었다.심은하는 그런 심현수의 생각을 금방 꿰뚫어 보았다.그녀의 시선이 차가워졌다.“심씨 가문이 주씨 가문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장재경도 이용하려고 한다는 걸 주재원 씨와 장재경이 알게 된다면 그 두 사람이 어떤 짓을 벌일지 걱정되지도 않으세요?”심현수의 안색이 곧바로 바뀌었다. 그는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옆에 있던 류해정이 말했다.“은하야, 주씨 가문에서 너와 주재원의 결혼을 허락한다고 해도 너도 결국엔 친정의 힘이 필요할 때가 올 거야. 그런데 너는 지금 마치 우리가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하네?”심은하는 류해정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고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심은하는 심지연에게 말했다.“넌 내가 목걸이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심지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심현수가 옆에 있어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심은하는 아직 심씨 가문에 도움이 되었다.심지연은 심현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현수는 평소 자잘한 문제에서는 늘 그녀를 감싸주지만 심씨 가문에 영향을 주는 일 앞에서는 늘 이익을 먼저 따졌다.심현수는 이미 돈에 눈이 멀어서 돈을 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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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주재원,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장재경은 차가운 눈빛으로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면서 경멸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심은하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걔는 내가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당장 내 앞으로 달려와서 내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해. 내가 주 대표한테서 멀어지라고 한다면 심은하는 틀림없이 주 대표를 피해 다닐 거야.”쾅!술잔이 테이블과 부딪치면서 소리를 냈다.주재원은 몸을 뒤로 젖히며 소파에 몸을 기댄 뒤 다리를 꼬았다. 그는 팔을 소파 손잡이 위에 올린 뒤 무심하게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는데 셔츠 소매가 살짝 위로 올라가서 비싼 시계가 언뜻언뜻 보였다.그가 내뿜는 차가운 기운에서 은근히 압박감이 느껴졌다.“장 대표, 자만은… 좋지 않아.”주재원은 팔꿈치를 세워서 턱을 괴더니 느긋한 어조로 협박했다.“심은하 씨는 장 대표가 키우는 강아지가 아니야. 장 대표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존재가 아니라고.”주재원은 오늘 밤 두 번째로 심은하를 편들었다.심은하는 이미 그와 혼인신고를 마쳐서 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남편으로서 당연히 그녀를 지켜줘야 했다.장재경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주재원, 갑자기 왜 착한 척이야?”그들은 성격이 많이 다르긴 해도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장재경은 주재원이 아주 깨끗하고 청렴결백한 사람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심은하에게서 멀리 떨어져.”장재경은 주재원과 다투기 귀찮아져 떠나기 전 한마디 했다.“능력이 있으면 내 걸 한 번 빼앗아 보든가.”장재경은 떠나기 전 진시우를 시켜 심은하를 모욕했던 남자를 혼쭐내줬다.“주 대표님, 심은하 씨가 마음에 든 거라면 저희가 도와드릴게요.”룸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장재경이 떠난 뒤 주재원에게 아부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모두 입이 무거워요. 절대 주 대표님과 심은하 씨의 관계를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거예요.”주재원은 그들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심은하 씨는 건드리지 마.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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