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차체가 출렁거리며 튀어 나갔다.
한 시간 후-
이솔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썩소를 날렸다.
동호와 내가 나란히 앉아 있기 때문일 거다.
"뭐야. 나는 선배랑 단둘이 데이트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이솔의 눈길을 피하며 자리를 가리켰다.
"앉아."
그렇게 셋이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동호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형님, 어떡하죠. 제 여친이 지금 당장 오라는데…"
그 말에 이솔이 바로 받았다.
"어떡하긴, 당장 가야지. 동호 너 여친 무섭잖아."
동호는 우리에게 굽신굽신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이솔과 단둘이 남겨졌다.
이솔은 눈치 빠르게 화제를 이것저것 바꾸며 대화를 이어갔다.
영화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요즘 소속사 분위기.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저 사람… 유혁이 아닌가.
나는 잠깐 잘못 본 거라 생각하고 다시 눈을 모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레스토랑 입구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 들어오는 사람, 분명히 유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키가 크고 얼굴이 반반한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저녁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저 사람인가.
나를 빨리 내쫓은 게 저 남자 때문인가.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휙 고개를 돌렸다.
못 본 척하려 했다.
그런데 이솔이 먼저 손을 들었다.
"어머, 유 탐정님 아니세요?"
"아… 이솔 님, 여기서 뵙네요."
유혁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나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굳어지는 표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유혁도 잠깐 굳은 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그랬다.
그가 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나도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옆에 이 잘생긴 분은 누구세요?"
이솔이 유혁 옆의 남자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유혁이 남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며 말했다.
"아, 친구입니다. 인사해."
"안녕하십니까. 송희찬이라고 합니다."
"와, 무슨 일 하세요?"
"지… 지금 인턴입니다."
"어머, 의사세요?"
"아직은 아닙니다."
"뭐, 의사나 다름없죠!"
이솔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유 탐정님. 오늘은 저희가 막 나가는 참이라."
유혁이 다시 고개를 숙여보였다.
너무나 담담한 인사.
난 그렇지 않은데.
유혁은 바로 송희찬과 나란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와- 선배! 봤어요? 저 친구분, 모델 해도 되겠는데. 의사래요."
"야, 입가에 침 좀 닦아."
"어머, 선배는 농담도!"
이솔이 내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나는 웃는 척했다.
그런데 속이 왜 이렇게 뒤틀리는지.
#
테이블에 가 앉자마자 나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여기에서 차우석을 만나다니.
"누나!"
맞은편에 앉은 희찬이 나를 불렀다.
나는 손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쉿.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게. 그냥 집에서 라면 먹자고 했잖아."
"야, 고시원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너한테 어떻게 라면을 먹여. 여기 사장님이 무료 시식권 두 장 줬거든. 이때 써야지."
우석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희찬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나는 애써 씩씩하게 말했다.
"그런데 아까 저 두 사람 잘 알아? 둘 다 잘나가는 배우잖아. 나 윤이솔 보고 심장 멎는 줄 알았어. 실물이 더 예쁜걸."
"여기 주인이 발 넓은 개그맨이야. 연예인들 많이 오는 곳인데 내가 깜빡했네."
"우리 옷차림이 좀 그렇긴 하다."
헐렁한 편한 차림을 내려다보며 희찬이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손을 저었다.
"뭐 어때. 신경 쓰지 마. 먹고 싶은 거 실컷 시켜. 사장님이 나한테 무지 고마워하거든."
"도대체 무슨 일을 해줬길래."
"스토킹 건 해결해줬어. 말마, 저 세상 갈 뻔…"
말을 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희찬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미간이 좁아지고, 눈이 내려깔렸다.
"우리 형편에 괜히 내가 의사 된다고 해서 누나가 더 힘들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해."
"야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니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느 주말 오후, 채사장 사무실에 들렀다.요즘은 결혼 전보다 오히려 더 자주 찾아뵙게 됐다."채사장님, 저 왔어요."문을 열고 들어서니, 채사장이 낡은 안경을 쓰고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어, 왔나. 우석이는?""오늘 촬영 있어서, 저 혼자 왔어요.""그래, 앉아."나는 익숙한 소파에 앉으며, 채사장이 끓여주는 차를 받았다."요즘 사업은 어떠세요?""뭐, 그럭저럭. 이제 나도 나이가 있어서, 일을 좀 줄이고 있어."채사장이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사무실, 후배한테 넘길까 생각 중이야.""정말요?""응. 나도 이제 쉴 때가 됐지. 대신—"채사장이 씩 웃으며 나를 봤다."가끔 놀러 와. 손주 보듯, 얼굴이라도 봐야지."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아, 그리고— 나문희 씨 소식 들으셨어요?"채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상담 계속 받고 있다지. 얼마 전엔, 봉사활동도 시작했다고 들었어.""봉사활동이요?""응. 청각장애인 시설에서. 딸 생각이 나서 그런지, 요즘 거기서 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일상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사무실에 복귀한 첫날, 미선이 책상 가득 서류를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변호사님, 신혼 재미 보시는 동안 저 진짜 고생 많았어요!""고마워요, 미선 씨. 다음 달엔 보너스로 갚을게요.""오, 정말요?"미선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이후, 나는 변호사 업무와 연기 수업을 병행하는 나름의 균형을 찾아갔다.평일 낮엔 사무실에서 의뢰인을 만나고, 저녁엔 근처 연기 학원에 다녔다.처음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두 가지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오늘 연기 수업은 어땠어?"저녁마다, 우석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오늘은 발성 연습만 계속했어요. 목이 다 쉬었어요.""그래도 재밌어?""네, 힘든데— 재밌어요."그 대답에, 우석이 흐뭇하게 웃었다.몇 달 뒤, 정훈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희우 씨! 저희 아기 태어났어요!"전화기 너머로, 정훈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정말요? 축하드려요!""딸이에요. 유희 닮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형도가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는데, 시작부터 눈물바다였다."신랑 신부님과 저는, 정말 오래전부터 함께해왔습니다. 형이 힘들 때도, 좋을 때도— 늘 곁에서 지켜봤는데요. 오늘처럼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처음입니다."형도의 진심 어린 인사말에, 하객석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이어서, 정훈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저는 희우 씨한테 정말 큰 빚을 진 사람입니다. 제 여동생 사건, 희우 씨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 있었을 거예요."정훈이 옆에 앉은 유희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리고 저희 부부도, 희우 씨랑 우석 씨 덕분에— 다시 만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두 분, 정말 축하드립니다."박수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엔 노래방 여주인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는— 변호사님 덕분에, 9년 만에 처음으로 편히 잠들 수 있었어요.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여주인의 목소리가 떨렸다.나는 그 말에 결국 다시 눈물이 터졌다.우석이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줬다.식사가 시작되고,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누는데— 이솔이 다가와 반갑게 웃었다."희우 씨, 정말 예뻐요! 축하드려요.""고마워요, 이솔 씨. 감독님이랑은 잘 지내세요?"
이른 아침, 신부 대기실 거울 앞에 앉아 있는데— 손이 떨렸다.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자꾸 눈물이 차올라 애를 먹었다."변호사님, 눈물 참으셔야 해요. 메이크업 번져요!"미선이 울다 웃다 하며 티슈로 눈가를 톡톡 두드려줬다."미안해요, 자꾸 눈물이 나서.""저도 자꾸 눈물 나는데요, 뭐."문이 열리고, 정장을 갖춰 입은 채사장이 들어왔다.평소의 낡은 점퍼 차림이 아니라, 말끔한 슈트를 입은 모습이 낯설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채사장님...""뭘 그렇게 봐. 나도 이럴 때 입을 옷은 있어."채사장이 무뚝뚝하게 말하며, 내 옆에 다가와 섰다."준비됐나?""...네.""긴장하지 마. 그냥, 네가 살아온 것처럼 당당하게 걸어가."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숨을 골랐다.식장 입구,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문이 열리고,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렸다.채사장의 팔짱을 끼고, 나는 한 걸음씩 버진로드를 걸었다.저 멀리, 턱시도를 입은 우석이 서 있었다.그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6년 전 강원도에서 처음 만난
결혼식 날짜가 다음 달 셋째 주 토요일로 정해졌다."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내가 걱정하자, 우석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더는 못 기다려. 이미 6년이나 기다렸는데."그 말에, 나는 웃으며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정신없이 흘러갔다.드레스를 고르러 간 날, 미선이 함께 따라와 이것저것 골라줬다."이거 어때요, 변호사님? 완전 잘 어울려요!"거울 속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눈물이 날 만큼 벅찼다."예쁘다...""그쵸? 우석 씨 보면 완전 반하겠는데요."미선의 장난스러운 말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식장을 정하는 날엔, 채사장이 함께 따라나섰다."여기, 이 정원 있는 곳이 낫겠구먼. 야외 결혼식 하기 딱 좋아."채사장이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며 조언해주는 모습이, 정말 아버지 같아서— 나는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채사장님, 저 결혼식 때 정말— 아버지 자리에 서주시는 거죠?"채사장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확답은 안 했다.""에이, 벌써 정장까지 새로 맞추셨다면서요. 형도 씨한테 다 들었어요.""그 자식, 입이 방
한국으로 돌아온 첫날, 공항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형도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마중 나와 있었다."형수님! 아니, 이제 진짜 형수님 되시는 거죠?"형도의 호들갑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형도 씨도 참.""저 진짜 반지 고르는 거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마음에 드셨어요?""네, 완전요.""그거 봐요, 형! 제가 추천한 게 딱이라니까요."형도가 우석을 향해 으쓱거렸다.공항을 나서니, 오랜만에 맡는 한국의 공기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나는 휴대폰을 열어 밀린 메시지들을 확인했다.채사장, 미선, 희찬, 노래방 부부까지— 다들 약혼 소식을 듣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와 있었다.채사장: 드디어! 내가 조카 이름 지을 자격, 잊지 않았지?그 메시지에, 나는 웃음이 났다.희찬: 누나! 축하해!!동생의 메시지엔, 눈물이 핑 돌았다.사무실에 도착하니, 미선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를 맞았다."변호사님, 축하드려요! 저 진짜, 이 소식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고마워요, 미선 씨. 그동안 사무실 지켜주느라 고생 많았어요.""아니에요! 사건들도 다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