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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

Penulis: 박쏭쏭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7-15 19:45:07

계단 아래까지 내려가 그가 골목을 걸어 내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걸음이 느렸다.

서두르지 않는 걸음이었다.

정말 신기하다.

방금 전까지 차우석이 내 옥탑방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는 게.

실화인가.

나는 방 안으로 들어와 그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봤다.

방석 위에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을 것 같았다.

텅 비어 있는데도, 어딘지 그 자리만 다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깐 이상한 세계에 들어갔다가 현실로 돌아온 느낌.

아니, 그보다 그와 끊겼던 과거가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는 느낌이 어쩌면 더 어울릴지도.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아버지 친구분들이 어떻게 내가 여기 사는 걸 알았을까.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삶이 무너진 사람들.

그분들 앞에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그냥 줄행랑을 친 거다.

골목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분들이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곳에 차우석이 나타나다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길고 짙은 코트를 벗어 내 어깨 위에 조용히 덮어주던 그.

눈물이 맺힌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말없이 코트 깃을 여며주던 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차우석.

당신은 왜 자꾸 나의 앞에 이렇게 나타나는 거지?

날 전혀 기억도 못하면서.

눈내리는 골목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

강아지를 잃어버렸다니.

예삐는 지금 동호네 집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있다. 멀쩡하게.

나는 눈길 위를 걸으며 혼자 피식 웃었다.

아니, 웃음이 나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뭐라도 구실을 만들어서 다시 만나고 싶었던 나.

그게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내가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유혁은 

남자다. 남자라고.

생각에 빠져 걷던 발이 그 순간 쭉— 미끄러졌다.

미끄덩!

뒤로 벌러덩 넘어가기 직전,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가까스로 버텼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혼자 웃어버렸다.

흐흐흐흐흐.

미친 사람처럼.

눈 쌓인 골목에서 혼자서.

이 와중에도 쪼그리고 앉아 귀를 틀어막고 있던 유혁의 얼굴이 떠오른다는 게 문제였다.

눈가에 맺힌 눈물, 내 코트 깃을 쥐던 손가락.

그 빨갛게 얼어 있던 손끝이.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 대 남자로 자꾸 마주치다 보면 이런 감정 따위는 저절로 사라지겠지.

차에 올라타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동호야. 예삐는?"

"안 그래도 내일 형 집에 데려다 놓으려고요."

"아니, 됐어. 당분간 네가 더 데리고 있어."

"네? 형 예삐 없어도 되겠어요?"

아니, 보고 싶다. 솔직히.

그래도 거짓말을 쳤으니 당분간은 동호네에 맡겨두고, 적당한 시점에 찾았다고 해야 한다.

나는 멋쩍게 통화를 끊었다.

지이잉—

끊자마자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윤이솔이었다.

"응, 이솔아."

"선배, 제가 소개한 유 탐정은 잘 만났어요?"

"응, 잘 만났어."

"맡긴 일은 잘 해결됐어요?"

"으응, 잘 됐어."

"다행이네요. 그랬잖아요, 능력 있다고."

이솔이 생색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말했다.

나는 시동을 걸며 짧게 받았다.

"그래, 네 말대로 능력 있더라. 근데 그거 물으려고 전화한 거야?"

"아니, 그냥 전화도 못해요? 같은 소속사 식구끼리."

같은 소속사 식구끼리.

나는 이솔의 마음을 안다.

계속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여자.

예쁘고 당찬 여자다.

예전의 나였다면 진작 받아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여자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심드렁해졌다.

그래서?

그래서 혹시 이젠 남자를…

아니. 아니다.

나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저랑 오늘 저녁 먹을래요?"

"저녁?"

"그래요. 사실 선배가 저한테 사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좋아. 내가 살게. 이태원으로 나와."

"와! 좋아요 선배!"

이솔이 뛸 듯이 좋아했다.

나는 전화를 끊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눈이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 얼어 있던 손끝—

다시 떠오르는 유혁의 모습.

당분간 남자 대 남자로 자주 마주치면 된다고 했잖아.

나는 고개를 젓고 액셀을 세게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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