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말을 해준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말 안 한 거랑 다를 바 없는 방식.
그런데 문제는, 나는 이제 그 말투가 조금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였다.
이 남자는 원래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아주 얇은 힌트만 남기고, 나머지는 상대가 상상하게 둔다.
“진짜 미치겠네….”
그때였다.갑자기 강도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오후의 카페, 차분한 말투, “작가님이 누구 때문에든 흔들리고 있다면, 굳이 혼자 버티려고만 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하던 목소리.그 장면이 떠오른 순간, 나는 손끝을 아주 잠깐 멈췄다.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도화준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정확히는 이 사람이 그 얘기를 들으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졌다.나는 잠깐 망설였다.이건 별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그냥 오늘 누구를 만났고, 어떤 얘길 들었는지 말하는 것뿐이다.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게 전혀 별 의미 없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누군가에게 다른 남자의 존재를 꺼내는 순간, 대화의 공기는 아주 미세하게 바뀐다.나는 결국, 아주 가볍게 시작해보기로 했다.‘오늘 출판사 대표님 만났거든요.’보내고 나서 손끝이 조금 굳었다.‘너무 갑작스러운가.’‘이건 뜬금없나. 아니면 그냥 정말 별 의미 없이 흘러갈까.’도화준의 답은 이번엔 조금 늦었다.아주 짧은 공백이었는데도, 이상하게 더 길게 느껴졌다.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확실히 느꼈다.‘나 지금, 이 사람 반응을 기다리고 있구나.’답장이 도착했다.‘강도윤 대표님 말씀하시는 겁니까.’나는 그 문장을 읽고 그대로 눈을 깜빡였다.‘뭐야. 왜 이름까지 알아?’심장이 아주 미묘하게 내려앉았다.나는 바로 답장을 쳤다.‘이름은 어떻게 알아요?’이번엔 답장이 조금 빨랐다.‘이도희 씨가 생각보다 자주 말씀하셔서요.’나는 그 문장을 읽고 입을 벌린 채 멈췄다.‘…내가? 그랬나?’나는 머릿속으로 최근 대화를 아주 빠르게 되짚었다.출판사 대표님이 연락 왔다고 한 적은 있었고, 미팅 얘기를 흘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자주였나? 아니, 정말로?그리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웃음이 먼저 났다.이건 조금 묘했다.도화준은 분명 아주 평범한 문장처럼 보냈다.그런데 어딘가 미세하게 결이 달랐다.‘생각보다 자주 말씀하셔서요.’
‘네. 생각보다 더요.’도화준의 그 답장을 읽은 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노트북 화면에는 방금 전까지 쓰고 있던 원고가 그대로 떠 있었고,커서는 여전히 문장 끝에서 깜빡이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내 시선은 그쪽으로 전혀 가지 않았다.손안의 핸드폰만이 너무 선명했다.문자 몇 줄이 사람을 이 정도까지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우스우면서도,동시에 너무 진짜라서 조금 무서웠다.그 남자도 나처럼 이 밤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조금 전까지는 혼자만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내가 버스에 타고 돌아오는 동안 창밖을 보며 같은 장면을 떠올렸던 것처럼,도화준도 아마 어딘가에
그 사실이 스스로도 너무 어이없어서, 나는 결국 솔직하게 털어놨다.[오후 10:44] 나그냥…좀 오늘은 위험했어. 닿을 듯 말듯 했다랄까답장은 거의 즉시 왔다.[오후 10:44] 오수연미친[오후 10:44] 오수연야 그게 제일 위험한 거야[오후 10:45] 오수연닿은 것보다 안 닿은 게 더 오래감나는 그 문장을 읽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러니까.’그걸 나도 지금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문제였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몸이 아직 정류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고, 습관처럼 가방을 소파 위에 내려놓았는데도,모든 동작이 조금씩 늦었다. 손이 평소보다 굼뜨고,시선은 자꾸 허공에 멈췄다. 방 안은 늘 그렇듯 조용했는데,오늘은 그 조용함이 이상하게 낯설었다.조금 전까지는 분명 사람의 체온과 목소리와 시선이 너무 가까운 데 있었는데,그게 한순간에 싹 걷히고 나니 집 안의 공기가 너무 평평하게 느껴졌다.나는 그대로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도화준의 손이 멈췄던 거리.닿지 않았던 그 몇 센티미터.그리고 마지막에 들었던 말.‘지금 더 있으면 선을 넘습니다.’그 문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도화준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가, 다시 정리됐다.그 짧은 변화가 더 크게 느껴졌다.그도 지금, 완전히 흔들리지 않는 상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그는 잠깐 숨을 고른 뒤, 아주 천천히 손을 들었다.나는 그 움직임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손끝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속도를 일부러 늦춘 것처럼, 조심스럽게.그 손이 어디로 향하는지,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닿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나는 숨을 멈췄다.이 거리에서는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가 크게 느껴진다.손목을 잡아도, 머리카락을 넘겨도,혹은 더 가까운 쪽으로 와도, 전부 같은 무
보행자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는 순간, 길 위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고,정류장 앞에 서 있던 나는 그대로 멈춰 있었다.길 건너편, 가로등 아래에 서 있던 도화준이 신호에 맞춰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평소처럼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걸어오는데,이상하게 그 평범함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나는 그가 가까워지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조금 전까지는 분명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였는데,이제는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점점 형태를 갖추며 다가오고 있었다.어깨의 선, 걸음의 리듬, 고개를 들고 시선을 맞추는 타이밍까지전부 또렷해질수록, 심장은 오히려 더 조용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