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사랑을 상품처럼 판매하는 ‘남친 쇼핑몰’에서 완벽한 남자친구로 살아온 남자와, 사랑을 이야기로 쓰지만 정작 자기 마음에는 서툰 웹소설 작가가 만나, 서로를 ‘상품’도 ‘소재’도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는 현대 로맨스.
View More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확히는,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멀쩡했다.
단행본 제안을 받고처음으로 잡힌 미팅을 무사히 끝냈고,
페이지온 출판사 대표와 편집팀 앞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계약 관련 자료가 든 봉투까지 야무지게 챙겨 들고 나왔다.
그러니까 최소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나는 아주 평범하게 긴장한 웹소설 작가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이 열리는 순간, 그 평범함이 아주 산산조각 나버렸다.
안쪽에 서 있던 남자 때문이었다.
검은 셔츠에 짙은 코트를 걸친 남자.
손목 위로 드러난 뼈마디가 유난히 정돈돼 보였고, 어깨선은 지나치게 반듯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단정했는데,
이상하게 그게 답답해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더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가끔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잘생긴 걸 보면, 그 순간만큼은 자기 눈을 먼저 의심하게 된다.
‘저게 진짜 사람 얼굴이 맞나.’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저 얼굴을 알고 있다는 거였다.
분명 며칠 전에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선명하게.
그냥 스쳐 지나가듯 본 것도 아니고,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확대도 해보고, 옆모습 사진도 넘겨보고, 프로필 문구까지 읽었다.
믿기지 않아서. 세상에 저렇게 생긴 남자가 정말 있나 싶어서.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가까워질수록 더 비현실적이었다.
눈매는 날카롭기보다 길고 조용했고, 콧대는 반듯했으며, 입술은 생각보다 부드러운 선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차갑게 생겼는데, 또 이상하게 사람을 완전히 밀어내는 얼굴은 아니었다.
무심한데 선을 넘지는 않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굳이 친절한 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사람.
이상하게 그런 인상이 먼저 왔다.
나는 숨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 그제야 그의 목에 걸린 출입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줄 끝에 매달린 카드엔 처음 보는 로고와 영문이 작게 찍혀 있었다.
그땐 몰랐다. 내가 방금 미팅을 마치고 나온 출판사 건물 윗층에,
남친 쇼핑몰 운영 라운지가 같이 들어와 있다는 걸.
그는 내 앞에 멈춰 섰다.
“이도희 고객님 맞으시죠?”
그 순간, 며칠 전 휴대폰 화면이 번쩍 떠올랐다.
[남친 쇼핑몰]
[S급 프리미엄 파트너 / 도화준]
나는 아주 천천히 입을 벌렸다.
“…도화준?”
내 입에서 이름이 너무 솔직하게 튀어나왔다.
놀라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쯤 높았다.
남자는 내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온 게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지,
아니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건지, 아주 옅게 웃었다.
웃는 얼굴이 또 반칙이었다.
잘생긴 사람은 웃으면 좀 깨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인간적으로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저 남자는 웃는 순간마저도 지나치게 완성되어 있었다.
“네. 도화준입니다.”
내 머릿속이 아주 잠깐 하얘졌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간신히 삼켜졌다.
도화준.
그 남자를 처음 본 건 며칠 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연수라는 이름의 재앙이 내 인생을 제멋대로 흔들어놓은 그날 밤이었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별일 없었다.
누군가는 울고불고 매달리고, 누군가는 술잔을 던지고, 누군가는 적어도 비라도 쏟아져 줘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정작 내 연애가 끝나던 날 식탁 위에는 닭뼈 몇 개와 눅눅해진 튀김옷,
그리고 반쯤 식은 떡볶이만 남아 있었다.
치킨과 떡볶이.
웃기게도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합이었고, 동시에 내가 연재 중인 웹소설 제목이기도 했다.
‘치떡빠 : 치킨이 떡볶이에 빠진 날’
1년 넘게 연재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치킨을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과 떡볶이를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이,
밥 취향 하나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서로의 인생에 빠져드는 이야기.
내가 가장 잘 쓰고 싶었던 종류의 사랑.
달고, 맵고, 웃기고, 가끔은 괜히 눈물 나는 종류의 관계.
문제는 그 소설의 남자 주인공 모델이 지금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강치열이었다는 거였다.
“도희야.”
강치열이 나를 불렀다.
나는 치킨 무 통을 닫다가 멈췄다. 평소보다 조금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미세한 변화 앞에서 이상하게 둔감해진다.
아니, 둔감해지는 척한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도 일부러 못 들은 척한다.
듣는 순간 진짜가 되어버릴까 봐.
“응?”
“우리 헤어지자.”
나는 손에 쥔 치킨 무 통을 그대로 놓쳤다.
플라스틱 통이 식탁 위에서 달그락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상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치고는 너무 가벼워서.
“뭐?”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도화준은 늘 밤과 차와 바깥 공기 쪽의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집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갑자기 훨씬 현실적인 남자로 다가왔다. 그 역시 방 안에 있고, 어딘가 기대 앉아 내 목소리를 듣고 있고, 오늘의 나처럼 조금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생생해졌다.나는 아주 천천히 물었다.“오늘….”그리고 잠깐 멈췄다.‘뭐라고 물어야 하지.’‘후회하냐고?’‘괜찮냐고?’‘나 때문에 지금도 안 자는 거냐고?’결국 내가 고른 말은 너무 단순했다.“오늘 좋았어요?”전화 너머가 몇 초쯤 조용했다.그리고 도화준이 아주 낮게 대답했다.“이도희 씨는요.”“제가 먼저 물었잖아요.”“그래서 먼저 듣고 싶습니다.”나는 괜히 웃었다.이 남자는 늘 이런 식이다.자기 얘기를 하기 전에 꼭 나부터 먼저 열게 만든다.나는 한참을 망설였다.그러다 결국, 더는 예쁘게 포장할 힘도 없어서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너무 좋았어요.”말이 떨어진 뒤,부엌의 조용한 공기가 갑자기 너무 또렷해졌다.나는 조리대 모서리를 손끝으로 살짝 문질렀다.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도화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리고 나는 그 침묵이 아주 좋아서, 오히려 더 떨렸다.마침내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았다.“저도 그랬습니다.”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그 짧은 대답이 너무 깊었다.‘좋았다. 너무 좋았다.’그건 이제 더는 설렘을 포장한 문장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가 한 모든 말과 거리와 손끝과 침묵을, 그 한마디로 전부 받아주는 느낌이었다.나는 결국 아주 작게 물었다.“도화준 씨.”“네.”“아까….”손끝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왜 더 안 했어요.”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심장이 크게 한 번 떨어졌다.이건 너무 노골적이었다.그런데도, 정말 그게 궁금했다.도화준은 잠깐 숨을 골랐다.“이도희 씨가 후회할까 봐서요.”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안 한다고 했잖아요.”“네.”“근데요?”그는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로 답했
오연수는 한참 내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어디서 만났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 그 전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 나는 처음엔 대충 얼버무리다가, 결국 거의 다 말하고 말았다. 앱 밖에서 보자는 제안, 내가 왜 무서웠는지, 밖에서도 똑같이 좋으면 어떡하냐는 생각, 그리고 막상 만나보니 앱 안과는 전혀 다른 공기였다는 것까지.다 듣고 난 오연수는 아주 길게 한숨을 쉬었다.“야.”“왜.”“너 지금 완전 제대로 빠졌네.”나는 쿠션에 턱을 묻은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응.”오연수는 그 대답이 너무 예상 밖이었던 모양인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뭐?”나는 그대로 웃었다.“아니라고 하려다가, 이제 좀 지쳐서.”그 말에 오연수도 결국 웃었다.“그래. 그게 낫다. 맨날 아닌 척하는 것도 피곤하지.”나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그러다가 아주 작게 말했다.“근데 무서워.”“뭐가 또.”“너무 빨라.”오연수는 이번엔 장난치지 않았다.“그건 맞지.”“아직 3일 남았어.”“뭐가.”“무료 체험.”전화 너머가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그리고 오연수가 천천히 물었다.“그 얘기 했어?”“아직.”“왜.”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분위기 다 깨질 것 같아서.”“야, 그건 깨져도 해야 되는 얘기 아냐?”“알아.”“근데?”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왜 못 하겠지.’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도화준과 나 사이에 지금 흐르는 건 분명히 진짜에 가까운데, 그 한가운데에 무료 체험 종료라는 문장을 꺼내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게 너무 우스워질까 봐. 마치 지금의 감정이 전부 시스템 안에서만 가능한 일처럼 다시 느껴질까 봐.그런데 그렇다고 안 꺼낼 수도 없는 얘기다.‘3일 뒤면 현실이 되니까.’“야.”오연수가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좋은데 무서운 거, 그거 진짜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니까 피하지 마.”그 말은 예상보다 더 크게 들렸다.“네가 지금 제일 무서워하는
그런데 사람이 좋아하는 감정 앞에서 완전히 행복해지기만 하지는 않는다.기쁨이 너무 커질수록, 그만큼 불안도 같이 붙는다.앱은 3일 뒤면 끝난다.우리는 아직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다.개인 연락처 하나 제대로 주고받지 못했고, 서비스 바깥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른다.그럼에도 지금은 손을 잡았고,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이 상태가 너무 예쁘고, 그래서 더 위태로웠다.버스가 크게 한 번 흔들렸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가, 다시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도화준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잘 들어갔냐고 묻고 싶었고, 아까 마지막에 한 말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고, 사실은 방금 헤어졌는데도 벌써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겨우 손을 잡은 상태에서 어떻게 헤어져야 덜 위험한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바로 연락부터 해버리면, 그 조심스러움이 너무 우스워지지 않을까. 아니, 정확히는 그 조심스러움조차 핑계였던 것처럼 드러나지 않을까.나는 결국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그리고 그다음 순간, 가방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심장이 너무 쉽게 반응해서 어이가 없었다.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화면을 켰다.도화준‘정말, 미치겠다.’메시지는 아주 짧았다.‘버스 타셨습니까.’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그대로 웃고 말았다.이 남자는 대체 왜 이런 타이밍까지 정확할까. 내가 연락하고 싶어지는 순간, 꼭 한 박자 먼저 들어온다. 지나치게 잘 맞춰서 오히려 얄미울 정도였다.나는 창밖 어두워지는 거리를 한 번 보고, 아주 천천히 답장을 쳤다.‘네. 방금 출발했어요.’보내고 나서도 손이 금방 떨어지지 않았다.결국 한 줄을 더 덧붙였다.‘도화준 씨는요.’답장은 거의 바로 왔다.‘저는 아직 조금 전에 서 있던 데 근처입니다.’나는 그 문장을 보고 그대로 멈췄다.‘아직 거기 근처.’그러니까 나와 헤어진 뒤에도
앱 안에서는 없던 접촉.서비스 안에서는 허용되지 않던 거리.설정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닿는 첫 순간. 나는 그 사실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그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도화준의 손은 생각보다 더 따뜻했고, 생각보다 더 안정적이었다.이상하게도, 심장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손은 오히려 안심이 됐다.도화준이 아주 낮게 물었다.“괜찮으십니까.”나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바로 덧붙였다.“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요.”그는 그 말에 아주 짧게 웃었다.“그럼 저랑 비슷한 상태이십니다.”나는 결국 웃고 말았다.손을 잡은 채 웃는다는 게 이렇게 민망한 일인지 몰랐다.잠깐의 웃음이 지나가고 나자, 둘 사이엔 다시 아주 조용한 공기가 내려앉았다.이번엔 어색한 침묵이 아니었다.오히려 조금만 더 가면 위험해질 것 같은 침묵. 나는 그걸 본능적으로 느꼈다.도화준도 아마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그는 내 손을 잡은 채, 아주 천천히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이제는 정말로 너무 가까웠다.그가 숨을 쉬는 템포까지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대로 고개를 들었다.도화준은 내 얼굴을 아주 잠깐 내려다보더니, 이번엔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도희 씨.”“…네.”“하나만 더 확인해도 됩니까.”나는 대답하지 못했다.도화준은 내 손을 잡은 채,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오늘 여기 나오신 거.”그는 한 박자 쉬었다.“후회 안 하십니까.”그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들어왔다.나는 그를 바라봤다.이 사람은 늘 이런 식이다.분위기를 만들고, 사람을 흔들고, 그 끝에선 꼭 다시 나를 먼저 확인한다.네가 괜찮은지.네가 원한 게 맞는지.네가 후회하지 않을지.그게 너무 다정했다.그리고 동시에 너무 치명적이었다.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안 해요.”도화준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풀렸다.나는 그걸 보고, 이번엔 내가 먼저 아주 작게 덧붙였다.“도화준 씨는요.”“네.”“후회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