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데미안은 루시아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려 했으나 번번히 셀레나에게 막혔다. 일개 시녀가 제 앞을 막다니, 말도 안됐다. 그러자 더 험악한 표정의 하우젠 대공이 벨루아 공작부인의 방에서 나왔다.
데미안의 눈썹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이혼하자던 이유가 눈앞의 남자 때문이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환자의 방에 들이닥치려거든 나부터 꺾어야 할 겁니다. 공작.”
분명, 경어였는데도 욕지거리를 들은 것처럼 불쾌함이 치솟았다. 에이든은 신분으로 상대를 누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아를 위해서 그가 못할 일은 없었다.
“대공 전하께서 부부의 일에 관여하시렵니까?”
데미안이 대공을 밀치고 들어서려던 순간 에이든이 그의 손목을 세게 쥐었다. 이대로 루시아를 만나면 무슨 소리를 지껄일지 몰랐다. 데미안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베일에 감싸인 대공은 그 실력을 숨기고 있던 모양이었다. 제국 제일의 기사인 제 손목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채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대치전이 끝도 없이 길어지려는 찰나 문이 열리고, 대공의 뒤에서 그가 아는 얼굴이 조금 창백해진 채로 나타났다.
“각하.”
호칭만은 지극히 낯선 채였다. 데미안은 어제부터 여자가 낯설었다.
“부인.”
에이든의 앞이라서 일부러 고른 호칭은 어쨌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했다. 이제는 대공이 제 얼굴의 불쾌한 표정 하나 숨기지 못했으니까.
“둘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데미안이 눈짓으로 대공을 가리켰다. 루시아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여 에이든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데미안의 턱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알았어. 앞에서 기다릴게.”
대공이 루시아의 어깨를 잡았다 놓았다. 루시아는 그런 손길이 익숙한 것처럼 굴었다. 데미안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걸 뒤따라온 기사들만 알았다. 아니 루시아는 알고도 모른 체했다. 소문이 빨리 돌수록 좋았다. 절차를 최대한 빨리 밟을 수 있다면 어떤 추문이라도 감당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더 떨어질 곳도 없었다. 방문이 닫히고, 복도에는 벨아의 기사들과 에이든이 남았다.
이방인. 외부자라는 위치가 지독히도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곧이었다. 이제껏 기다렸으니 조금 더 기다린다한들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과 별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고 싶은 저열한 충동은 여실했다.
“각하.”
“...그 호칭은 집어치우지 그래?”
루시아는 데미안이 이제와 이러는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 벨루아의 명예에 흠이라도 갈까봐 이러는 거겠지.
“이혼은 당신이 말할 게 아니지.”
감히. 데미안이 생략한 말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언제는 정략결혼이어도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남자를 사랑할 사유가 되었다. 이런 사람인 줄 모르고. 더는 그가 그녀의 3년을 모욕하게 둘 수 없었다.
“방출이어도 괘념치 않습니다.”
우선적으로 그녀를 내보내고, 이혼을 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아이를 못 낳는다는 명분도 있겠다. 얼마든지 데미안이 원한다면 공작부인의 자리에서 루시아를 내쫓을 수 있었다.
“그대는 내 아내야. 벨루아의 일원이고.”
으드득, 이가는 소리가 났다.
여자는 언제나 그가 이성을 잃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마리아와 달리.
“아이를 낳지 못하는 기혼 여성에게는 제국 법에 따라 결혼 취소를 청할 수 있지요.”
주치의의 진단서는 이미 받아놨다. 아니 이미 황궁으로 결혼 취소 서류와 하께 셀레나의 편으로 보냈다. 지금쯤 접수되었을 것이다. 늦어도 보름이면 지리멸렬한 싸움이 끝날 것이었다.
“무슨 짓을.”
“모든 걸 제자리로 돌리는 겁니다.”
셀레나는 벙 찐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에이든이 루시아의 곁에서 어느 때보다 말간 얼굴로 웃고 있는 꼴이 꼭 그들의 어린 시절 같았다.“결혼식은 어떻게 할까. 루시.”그는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추방일까지 고작 5일 남았다는 걸 전혀 생각지 않는 듯이.루시아는 반면 살짝 우려스러운 얼굴이었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단순한 문제로 고민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는 듯이.“셀레나에게 설명은 했어, 디디?”그제야 아 하고 그가 입을 벌리며 뒤늦게 설명을 했다.“그러니까, 루시가 에이든과 결혼해서 망명 절차를 밟자는 거죠?”계획을 세운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셀레나가 이마를 짚었다. 이런 일을 그녀와 상의도 안하고 저지르는 건 에이든이나 그럴 줄알았건만 루시아까지 말려든걸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거라기에는 루시아의 기분이 썩 나빠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벨루아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안색이 좋아졌다.에이든이 타운하우스의 집사에게 말해 식단을 챙기기 시작한 것도 있었고 꼬박 꼬박 그가 루시아의 산책을 챙기기도 해서였다.셀레나는 매일 바쁠 그가 그녀를 들여다봐주는 게 고마웠다. 적어도 그녀의 조국에 있는 어떤 공작보다는 나아보였다.“오늘은 날이 조금 흐리다, 디디.”산책은 하지 말자는 뜻을 돌려만한 것었다. 사실 에이든과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지만 매일 산책을 가는 일이 조금 체력에 부치던 루시아였다.“그럼 온실을 갈까?”물론 그가 여기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하우젠은 추운 지방이었다. 지금보다 체력이 붙지 않으면 분명 병치레가 잦아질 것이었다. 에이든은 벨루아 공작저에서 쓰러졌던 루시아를 생각하고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그걸 본 루시아가 자신이 산책을 가지 않으려 하자 그가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오해를 했다.“음, 에이든.”그의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에이든이 셀레나에게 두었던 시선을 바로 거둬들이고 루시아를 들여다봤다.“왜, 루시?”아까 살짝 찌푸렸던 인상은 어디로 갔는지 아주 해사한 미소였다. 어쩐지 그게 눈부시
총리 나다니엘은 ‘대공’의 편지를 받고 뒷목을 잡았다. 국경에서 갈등이 있은 지 벌써 며칠이었다. 아내를 납치해갔다는 공작의 증언을 대공이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가 국민의 신망을 살수록 공화정파는 그를 경계했으나 그렇다고 자신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인물이 이렇게 인망을 잃는 걸 바라지도 않았다. 벨루아 공작 부인을 대공의 곁에서 치워야 할까. 총리는 고민했다. 하지만 에이든 하우젠의 말을 무시했다가는 그의 목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황제 자리를 제 발로 찬 ‘겨울의 왕’의 분노를 사봐야 좋을 게 없으므로.고로 망명 절차는 흠 없이 진행되어야 옳았다. 하지만 보름이 넘도록 한없이 길어졌다. 결국 면담도 하지 않고 절차가 중단되었다. 망명을 담당하는 이민청 자체는 독립기관이라서 총리의 입김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이민청은 제국의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대공마저 꼬셨다는 벨루아의 악처. 그녀가 나스에 있어서 좋을 게 뭐란 말이냐고, 남성위원들 사이에서 말이 나왔다. 여론전에 능한 벨루아가 미리 로비를 하고 허를 찌른 것이었다.불허가 통지서를 받은 루시아의 손이 덜덜 떨렸다. 망명이 불가하다는 도장이 선연하게 찍혀있었고 그 붉은 색이 꼭 제가 제국을 돌아가 흘릴 피의 색 같기도 했다. 일주일 내로 돌아가야 했다. 아니면 강제추방행이었다.에이든은 요 며칠 바빠졌는지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도 미처 예상치 못한 결과였던 듯 싶었다. 총리에게 따져 묻는 전화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진 그가 루시아에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그는 마른 세수를 여러 번 하다가 코트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며칠 째였다.“루시.”셀레나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괜찮을거야.”루시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망명을 불허받은 외국인, 그것도 여성.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이토록 무력하게 느껴질 줄 몰랐다. 제 악명을 신경 쓴 적은 없었는데이제야 후회가 되었다. 제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어떻게 해야 했을까.루시는 타운하우스의 서재를 찾았다. 이민법에 관한 내용을 밤새 뒤
바사의 시내는 트램이 다녀서 마차가 다니기 좋지 않았다.에이든과 셀레나, 루시아가 마차에서 내리고 마부였던 에이든의 사람이었던 남자는 자신을 윌이라고 소개하고는 타운하우스에 가 있겠다고 했다.“그럼 우리도 가볼까?”에이든이 로브를 뒤집어 쓰고 앞장 섰다. 그가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사진관이었다.“여긴?”카메라는 제국에서도 황실에서나 쓸법한 물건이었다. 그게 나스에서는 보급됐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이토록 발전한 곳이라니.“네 증명사진이 있어야 해서. 루시.”그럴 줄 알았다면 미용실이라도 다녀올 걸 그랬다. 태어나서 처음 찍는 사진이었다.“디디, 나 머리가.”“예뻐.”“괜찮아.”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에 루시아가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눈가의 눈물을 훔친 그녀가 카메라 앞에 섰다. 벨루아나 아르테미스에서 어떤 짓을 할지 몰라 한가하게 미용실이나 옷가게에 들를 수 없는 게 에이든은 내내 아쉬웠다.나스의 편안한 여성복 스타일은 분명 루시아의 마음에도 쏙 들 것이었다. 추운 하우젠으로 가기 전에 겨울 옷도 몇 벌이나 사야했다.“다 찍었습니다. 반나절 후에 오시면 됩니다.”사진은 금방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정도면 빠른 편이었다. 어색하게 미소를 짓던 루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금세 셀레나도 사진을 찍었다. 이제야 한숨 돌릴 차례 였다. 사진만 나오고 나머지 절차는 그의 신분으로 보증하면 순식간에 해결되리라.에이든이 셀레나와 루시아를 데리고 가장 번화한 바사의 마샬 거리를 걸었다. 루시아는 에이든을 말리고 싶었고, 셀레나는 어깨를 펴고 다녔다. 가는 가게 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달라는 말을 하고 다니니 허영심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같았다.“디디, 이렇게 돈을 많이 쓸 필요 없어.”셀레나가 입을 쭉 내밀며 불만을 조용히 표시했다. 루시아의 말에도 에이든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내내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다음날 드레스는 드레스대로, 바지와 상의, 자켓과 겨울용 외투와 신발까지 전부 타운하우스로 배달되었다.
황제의 명이 떨어진 이상, 공작이 딴지를 걸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다. 떠나는 날이 언제라고 말은 해야 되어서 일러주었더니, 저택 문이라도 막으려는지 기사들이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셀레나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저번에 사용한 비밀 통로로 루시아와 에이든을 안내했다.등불에 의지해 건너는 길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걸 두 사람이 잡아주었다. 루시아는 하녀복 차림이었다. 에이든도 제국에서 평민 차림새로 갈아입었다. 셋 다 로브를 뒤집어 쓴 채였다.공작저와 영지에 딸린 숲의 경계에 마차가 있었다.“기다렸습니다. 전하.”에이든의 사람이었다. 그가 고개를 까딱였다. 절도 있는 동작을 한 남자가 마부 자리에 올라탔다.셀레나와 에이든, 루시아 세 사람이서 같은 마차를 탔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운송용 마차를 빌려서 사실상 귀족이 타는 마차같은 승차감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냥 짐칸에 올라탄 수준이었다.“너무 형편없나.”에이든이 루시아의 눈치를 봤다.루시아는 그런 그가 귀여운지 그저 싱긋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나스에서는 나 진짜 돈많아. 루시.”그러냐고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유치한 논쟁이라 셀레나는 하늘에 뜬 달이나 쳐다봤다. 이대로 가는 길이 평화롭기를 바랐다.바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길목 마다 벨루아의 기사들이 수배지를 들고 서 있었다. 에이든이 검 위로 손을 들려는 찰나였다. 마차를 세운 기사들이 수색을 시작하려는 사이, 얼굴을 가린 괴한들이 들이닥쳐 기사들을 공격했다. 그 저택에서 평생을 보내다시피한 루시아만이 그들을 알았다. 아르테미스의 기사들이었다.레이루나의 안배였을 것이다. 루시아는 모질지 못한 어머니를 알았다. 떠나는 딸조차 자신의 핏줄이라 또 다시 구해준 것이다. 그 뜻을 이루라고.에이든이 마부로 가장한 남자에게 명령했고, 마차가 출발했다. 벨루아의 기사들이 쫓기 전에 수도를 벗어났다.나스로 가려면 이틀을 더 가야했다. 수도를 벗어나자, 하우젠 대공의 가문 상징이 그려진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디디,
덜덜 떨리는 어깨와 루시아의 것처럼 하얗게 질린 낯빛은 마치 루시아가 비참한 일이라도 겪은 것처럼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 그래, 레이루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 순간에도 그녀의 백금발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제레미가 물려받은 레이루나의 백금발과 달리 까마귀처럼 검기만한 부친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싫었다. 제레미가 자꾸만 루시아가 백작을 닮았다고 할 때마다 아버지의 폭력성을 닮을까봐 스스로를 내리누르고 깎았다. 그럼에도 진한 혐오감은 어쩔 수 없었다. 정작 아르테미스 백작을 갈수록 닮아가는 건 제레미 였는데도.“루시. 황제 폐하께 말씀드리자꾸나. 아니 내가 공작을 만날까?”레이루나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말했다.“옷부터 다시 입자. 코르셋은 어디 갔니? 셀레나가 챙겨주지 않았니?”머리를 쓰다듬으며 루시아를 품에 안았다. 어머니라면 응당 할법한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루시아의 의사는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녀에게 괜찮냐고도 묻지 않았다. 레이루나는 이런 사람이었다.“어머니.”“응, 루시.”“제가 그런 거에요.”어머니의 눈이 황금색 눈동자가 커졌다.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바라보는 듯 하다. 아주 예전에 그녀가 바지를 입고 다닐 때, 머리를 스스로 잘랐을 때, 코르셋이 싫다고 했을 때. 벨루아와 결혼하기 싫다고 했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지금 네가 무슨,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니?”레이루나가 애써 만든 결과물을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녀가 이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 만든 자리인데. 어떻게 키워낸 딸인데. 백작의 경멸어린 태도와 바람기를 이겨내고, 그 장례식에서 함께 울지 않고 너는 나의 가장 가까운 존재로 남기로 했잖아.미처 내뱉지 못한 말이 어머니의 입안에 담겨 있었다. 원망의 눈빛이 고스란히 루시아에게로 꽂혔다.“나스로 갈거에요.”그건 무엇보다 충격이었는지 레이루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아니야, 갈 수 없어. 루시.”그녀가 어깨를 훑듯이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엄마의 손끝이 차가웠다.아르테미스 백작에게 쓸모없는 상품이라며 맞고
데미안은 여자의 텅 빈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저택에는 껍데기만 남은 듯 했다.“외국인을 고를 줄은 몰랐는데.”대공을 두고 한 말이었다. 루시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 변화가 데미안의 분노를 부채질 했다.“그 남자가 대공비의 자리라도 준다던가?”나스가 비록 신분제를 폐지했을지 언정 사람들에게 관습적으로는 계급의식이 남아있었다.“당신이 주지 못한 전부를 주기로 했죠.”루시아가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인형 같기만 하던 여자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나. 그건 데미안때문이 아니었다. 오로지 하우젠 대공때문이었다. 충동적으로 손을 올렸다. 그가 그대로 루시아의 뺨을 내리치려던 찰나 점점 높아지는 언성에 불안하던 에이든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날래게 몸을 날려 데미안과 루시아 사이에 끼어들어 대신 뺨을 맞았다. 철썩 소리가 났다. 데미안의 눈이 놀라 커졌다.붉게 물든 뺨이 어느새 부어올랐다. 알싸한 통증이 번졌다. 에이든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제국에서는 아픈 아내에게 손을 올리기도 하나 보군요.”데미안이 에이든을 노려보다가 그대로 방을 나갔다. 이 이상의 대립은 외교문제로 번질 것이었다. 물러나야 했다.“디디!”루시의 눈이 눈물로 그렁그렁했다. 맞는 것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에이든이 미소지었다.“응, 루시.”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셀레나는 오후 늦게 돌아왔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벨루아 저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뒷문으로 다니느라 그랬다.“다녀왔어, 루시.”그녀가 왔더니, 에이든의 뺨에 루시아가 연고를 발라주는 중이었다. 셀레나는 굳이 설명을 듣지 않고도 공작의 짓인 걸 알아차렸다. 애초에 저 고귀한 남자를 때릴만한 신분은 그 밖에 없기도 했다. 자꾸 루시아의 방에 머물면 일이 터질 거라고 셀레나가 몇 번이나 경고를 한 뒤였다. 무색했지만. 그러자 에이든이 고개를 저었다.“내가 아니었어.”공작이 노린 건 루시 였다는 소리다. 셀레나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씨근덕거렸다. 루시아가 조용히 하라며 입술에 손가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