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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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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s by 도수정

신을 삼킨 소녀

신을 삼킨 소녀

신의 능력을 가진 소녀 마리타가 갑작스레 살해된 자신의 아버지와, 반신이되 학살자가 되었던 어머니 부루, 사건을 해결하느라 실종된 엘레오노라 베버의 사건을 해결하고 이능력자 폐기시설인 렘즈를 지키기 위해 연맹과 맞서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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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화 신은 나뭇잎에서 지켜본다.
“누구를 생각하시는지요, 미네르바.”율리아,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소년을 보기 좋게 꺾었던 여인이 다가왔다. 휠체어를 조용히 이끌어 어느새 옆에 자리 잡은 그녀가 미네르바와 시선을 같이했다. 마리가 있던 덩굴 담장을 바라봤다.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는 이미 모든 걸 알고서도 침묵해주는 것일까. 마리는 이런 사람과 매일 어떻게 놀 수 있다는 건지. 그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속을 털어놔야 함을 알았다. 어설프게 속이느니 열어버리는 것이 나을 상대였다. 그럼에도, 그래도. 이제와 모든 걸 포기하고 왔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미네르바는 마냥 소녀를 생경한 작품 보듯이 바라봤다.“봄 풍경이 어여쁘다 하여 들렀습니다.”“가을이 더 볼만하지요 이 곳은. 마리도 단풍을 더 좋아하고요.”화제를 마리로 바꿔버린 율리아가 슬쩍 미네르바에게 말꼬리를 돌렸다. 그는 굳은 표정을 겨우 풀고서 손 안에 있는 바구니를 들어보였다.“그래도 모처럼이라 곁들일 간식도 가져왔습니다.”그 애가 좋아한다던 간식의 종류도 다 눈앞의 사람에게 들어서 안 것이었다. 율리아는 미네르바가 가져온 간식을 보고 마리가 참 좋아하겠다며 능청스럽게 넘어갔다. 테오 선생이나 헤게 선생, 제레미를 포함해도 역시 렘즈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이 노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율리아의 부름에 마리는 금세 돌아왔다. 그녀의 옆에 누가 있건 전혀 개의치않는 것처럼 굴었다.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고갯짓으로 살짝 목례만 해오는 것이 더 그랬다.미네르바는 퍽 섭섭한 마음이 들어 자기 손에 들고 있던 간식을 몰래 숨기려 했다. 그러다가 마리가 재빨리 바구니를 잡았고 둘이서 말없이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율리아는 둘이 만났으니 됐다는 듯 금세 스카프를 마리에 목에 둘러주고는 낮잠을 자러 간다며 등을 돌렸다.“율,율리아!”마리가 그녀를 붙잡으려 남은 한손을 급하게 뻗었고, 한 손도 흔들리자 바구니는 균형이 깨져서 크게 흔들렸다. 미네르바는 천천히 쿠키와 티백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느
Last Updated: 2026-07-13
Chapter: 31화 마리가 있었다.
제레미가 무심하게 말을 남기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이 곳에서 살라는 뜻이었고 마리가 가진 능력을 실감하지 않았느냐 하는 비웃음이었다. 마리는 두 눈 가득 눈물이 차서 엘리의 옷자락만 잡고 어깨를 들썩였다. 엘리는 아이를 두고 간다는 선택지가 이미 결정된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다.그러나 제레미가 저렇게 완고하게 정한 일을 바꿀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제레미를 거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마음처럼 따르기만 하지 않았나. 그리고 수사관의 양심이 외쳤다.직접 눈으로 본 저 애의 능력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면, 누구도 안전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머무른 지가 벌써, 오 년이다. 아이는 최근에서야 자기 뒤를 따르던 꼬리표를 벗었다.아이가 크는 속도는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다.꽃잎이 구름처럼 몰려서 가지에 달려있었다. 텔레비전은 다른 지역에서 봄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침대 이불보를 대충 둘러메고 밖으로 나왔던 소녀는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 텔레비전 바로 앞에 달라붙었다.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이 이불같기도 했고 점점이 내리는 건 눈을 닮기도 했다. 마리가 사는 섬에는 저런 꽃이 없었고, 안타깝게도 렘즈에도 벚나무는 없었다.제레미가 싫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전이었다면 몰랐겠지만 지금이라면 알만했다.마리는 제레미가 잠든 방문을 잠시 바라봤다가 다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테오는 마리가 재판을 다녀온 후에 태도가 달라졌다.마냥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이유를 묻거나 대화를 먼저 시작하려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마리는 그의 변화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태도 덕에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제법 만족스러웠다. 가장 최근에 들은 이야기는 제레미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였다.처음 등산을 함께했을 때 들려준 이야기보다 조금 먼저 생긴 일이라는데 생각보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마리는 자기만의 일기에 작은 연표를 그려놓았다.연표는 굵직하게 마리, 제레
Last Updated: 2026-07-13
Chapter: 30화 제레마이야 렘
끝에 갈수록 말소리가 작아졌다. 마리도 그게 충분히 위험한 줄을 알아서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그래, 들킬 것같지는 않더라, 내가 못느꼈으니까, 아무도 의심못했을거야. 그러면 결국 자이온에게 맡기고 기다리면 된다는 거야 지금은?”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제레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보다 더한 표정이다. 마리는 그에게 또 변명을 해야하나 하다가 그가 그냥 털썩 체어에 누워버리자 당황스러웠다.“쉬자 그럼. 일은 걔네가 하고, 우리는 쉬는거야.”“그래도 돼?”“응, 잘했어. 우리는 별도 보고, 하늘도 보고 그러자. 방에 창문도 없었다며.”사실은 그래서 불렀어. 오랜만에 좀 보라고. 덧붙인 말에 마리는 금세 걱정을 잊어버리고 같이 별을 구경했다.“대신 다음부터는 다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너를 내몰지는 말자. 마리타. 다들 걱정하느라 잠도 잘 못자고 그랬어.”“미안해, 그래도 이젠 괜찮을 거야.”마리는 정말 이제는 괜찮을 것을 알았다.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도 어쩌면 훗날 알았을 때 생각보다 괜찮을 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루가 그녀의 엄마라거나, 마리의 힘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별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곁에 있었고, 하늘에도 충분히 많았다. 섬에서 봤던 거리보다는 훨씬 가깝고, 따뜻하게. 앞으로는 몰라도 당장은 이걸로 충분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제레미는 천천히 그녀를 처음만난 날을 생각했다. 모포를 뒤집어쓴 아이가 엘리의 손에 이끌려 겨우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계단 턱을 넘을 때마다 한 번씩 머리나 몸이 기우뚱했다. 말랐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데 용케 눈을 뜨고 걸어 다닌다 싶었다. 아이는 엘 리가 쥐어주는 차를 꼭 쥐고서 마실 생각도 없이 인형처럼 앉아만 있었다. 인형, 정말로 인형 같았다. 어린 아이크기인 도자기인형처럼, 작고 표정도 없이 어린 아이라기보다는 모양만 본뜬 것같은. 그가 처음으로 아이에게서 받은 인상은 고작 그런 것이었다. 테오는 누이가 데려온 아이를 내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Last Updated: 2026-07-13
Chapter: 29화 당분간 식물은 괜찮아
당분간 식물은 괜찮다는 말에 마리도 그러냐고 웃었다. 둘만이 아는 일이었다. 둘은 꿈을 떠올리다가 그저 웃고 말았다. 오늘 배달한 빵의 대부분이 오래된 밀가루로 빚었는데 괜찮냐는 물음에 마리도 싱긋 웃었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둘 다 맑은 웃음이었다. 마침내 마리타는 제레미에게 불려갔다. 저녁을 먹고 테라스에서 보자고 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제레미는 예의 그 천장이 보이는 테라스에 먼저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 마시는 잔이 아침에 먹었던 것까지 합해 몇 잔인지 마리는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위험했어, 마리, 알지?”제레미는 슬쩍 자신의 계획을 짚고 넘어갔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시점에서 이미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잔소리는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레사한테는 조만간 사례할 생각이야.”‘그래.’하고 대답한 제레미는 마리의 사고에 아무런 문제를 못느끼는 것같았지만, 헤게였다면 물질로 누군가에게 보답하는 일이 여러 번 있어서는 안된다고 짚어줬을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감각이 없는 제레미였기에 둘은 또 다른 이야기만 했다.“힘을 크게 쓴 거 아니면.”“멋대로 미네르바에게 간 것부터 재판이랑 그 이후까지 전부.”“...”“그렇게 너를 함부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었어도 렘즈에 있는 식구들이 해결할 수 있었을 거야. 굳이 책을 헤게의 손으로 미네르바에게 넘길 필요도 없었어.”마리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계획했는지 제레미도 대충 간파하고는 있었다. 자기가 모르는 아버지와 그 ‘사람’의 관계를 알려면 그녀보다는 전문적인 조직이 움직이는 게 나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평범한 삶에서 멀어질 수 없으니, 과거는 그들에게 맡겨서 진실만 알아낼 셈이다.“욕심도 많지, 어리면서.”마리타가 밉지 않게 제레미를 노려봤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당해준 건 제레미도 마찬가지 아닌가.“미네르바가 적임자였어. 제법 많이 알고 있기도 했고, 나보다 돈도 많잖아 걔는.”“어린 부자가 최고다?”“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Last Updated: 2026-07-13
Chapter: 28화 허수아비
레사는, 마리를 꽤 좋아했다. 별로 사교적이지도 않지만 그녀가 만든 크로아상 말고 다른 걸 못 먹는 점이 귀엽기도 했고 어찌됐든 그녀와 아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도와준 건 마리였다. 죽을 뻔했던 사람을 되살리는 것도, 사람의 영역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능력자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일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굳이 따지자면 마리가 레사가 생각하는 신과는 가장 맞닿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꿈에 나왔던 건 그 유명한 포르베 사건의 재판이 열리기 며칠 전이었다. 마리가 평범하지는 않으니 레사도 당황하지는 않았다.“왔어?”단조로운 반응에 소녀가 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무언가 할말이 있는 건 분명했는데 애꿎은 발만 움직이고 시선을 바닥에만 두다가 말했다. 결심이 서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노엘은 아직 어리고, 또 그 애한테 비밀을 얹고 싶지는 않았어.”마리는 자기 정체가 알려진 순간부터 단둘일 때는 서로 말을 놨다.“응, 고마워. 네 그런 점에 감사해.”갑작스러운 인사에 마리가 그런 건 칭찬이 아니라고 했다. 레사는 물론 그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신은 나뭇잎에서도 지켜본댔지, 레사.”레사가 일전에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었다. 자기를 구해줘서 고맙다며, 신이 있긴 한 모양이라던 말간 웃음이 생각났다. 아들의 손을 잡은 엄마의 미소는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마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렘즈에서도 이 미소를 대신할 무엇을 얻을 뿐, 영영 가질 수 없을 것을 알았다. 마리의 신은 그런 걸 지켜보고 싶었나보다 나뭇잎에서. 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낮게 하나로 묶은 갈색 머리가 어깨 아래로 내려간다. 마리는 애써 시선을 떼고 자기 할 말에 집중했다.“근데 내 신은 나뭇잎이 아니라 광장에 있어줘야 해. 그러니까 레사가 했던 말이 틀린 거니까 책임 져.”어리광같았으나 저가 어린 애가 아니면 뭔가 싶어 마리는 일부러 어깨를 세우고 당당하게 굴려고 했다. 물론 어려워서 금세 포기했지만. 레사는 그걸 보는 것도 재밌어서 일부러 시간을
Last Updated: 2026-07-13
Chapter: 27화 방법(5)
한때 저 사실이 기사로 빼곡하게 찼던 시절이 있었다. 헤게도 테오도 기억하리라. 배심원들도 아는 사실을 수사관은 한 번 더 읊었다. 그러나 판사는 제법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이때 변호사가 다시 일어났다. 발언권이 아직 오지 않았을 차례였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해야했으나, 그에게도 사실 할만한 것들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 느린 속도로 누군가 등장했다. 분명 본인은 빨리 걸었지만 걸음이 느려 아직도 자기 자리의 절반도 가지 못한, 어린 소녀였다. 멜빵 치마를 입고 굽이 없는 구두를 신은 아이는 테오와 헤게가 이곳에서 무수히 찾던 얼굴이었다. 마리타 마르샬라로 자리에 선 소녀가 자리에 앉았다. 판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배심원들도 실제로 ‘소문의 마르샬라’를 보는 건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채였다. 최고위험군이고, 이미 폐기시설에서 지내는 아이. 자기를 감싼 수식에 비해 지나치게 가녀린 소녀가 그들을 바라봤다. 담담한 표정에서 어떤 결과도 감내할 듯한 비장함마저 느껴졌다.긴 침묵을 지속하던 마리가 입을 열었다.“마리타 마르샬라입니다. 변호사님 대신 말해도 될까요.”마리는 변호사와 대충 목례로 인사를 하고, 판사를 바라봤다. 차분한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봤고, 판사도 그러라고 했다.“저희 아버지는 이아고 마르샬라입니다. 고모는 나미엘 마르샬라고,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항상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차를 마실 때면 기분이 좋으셨지만 아닐 때가 많아 제 몸에 손을 대신 적이 많았고, 섬에는 마땅히 저를 받아줄 어른이 안계셨던 관계로 아버지는 고모로부터 저를 떼어내기 위해 감옥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간수인 아버지의 곁에 있으면 안전했으니까요.”마리는 고개를 다시 천천히 들며 말했다. 조곤조곤하게 그러나 또박또박 한 글자도 잘못 전달되어서는 안됐다.“마리타 양이 그런 상황이었다는 건 이미 증거로 입증됐습니다.”판사가 같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 덧붙였다. 그러나 마리는 그 말을 들을 생각이
Last Updated: 2026-07-13
남편교환

남편교환

제국의 홀대받는 공작부인 루시아,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과거에 구해줬던 소년 디디라고 칭하며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겨울의 왕, 하우젠 대공 에이든. 전남편 데미안 벨루아.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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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2화 完
제국에서는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카이사르가 압송된 데미안 벨루아의 공작위를 압수하고 그 가신들의 작위와 재산을 몰수했다. 황권 복위 세력과 손을 잡고 전쟁에 가까운 무력행위 문제를 일삼았다는 이유에서였다.레이루나는 그런 처분이 날 때까지 가만히 차를 마셨다. 눈 앞에 황후가 있건 말건 말이다. 마리아 지젤은 여전히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가 예언서대로 이루어질 세계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 결말이 끝나 자신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음에도 데미안과 카이사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주변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그러니까, 대부인이 대공비에게 연락을 넣어서 탄원서라도 받아내 주는 게 어떤가.”얼마 전에는 브리짓을 불러다 결국 하우젠 령으로 향하게 해서 루시를, 제 딸을 들쑤신 것을 모르지 않았다. 레이루나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홍차를 홀짝일 뿐이었다.그녀가 물렀던 탓이다. 아들의 결정이라고 하면, 그저 따르고 힘이 없다며 딸에게 어떤 위협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는가. 레이루나는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제 딴에는 계속해서 루시아를 위한 선택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으로는 그것들이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결국 루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뿐이었다.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단발머리를 하고 자유롭게 살아갈거라던 딸아이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레이루나의 낯이 어두웠다.“대부인?”레이루나는 눈앞의 멍청한 여자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황제와 독대를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여우처럼 이렇게 화로를 들쑤시는 자는 자신 하나로 족했다. 그리고 제 자식에게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 대상을 치울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여자는 황후였다. 이전처럼 루시아를 위한다는 생각이 다시 그녀의 발목을 잡을까 두려워져 레이루나는 선뜻 어떠한 선
Last Updated: 2026-07-30
Chapter: 81화 레이루나
“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니?”루시의 물음에 에이든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무어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여성인권에 대해 오히려 기득권층인 가신들이 역차별 따위의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실질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그 스스로 꺼내기에도 꽤나 부끄러운 이야기였다.“말그대로야. 루시. 신분제가 없어도 그들은 여전히 귀족처럼 살려고 해. 계층이 없어지지 않았어.”“그러면, 자선사업의 개념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구나?”사회사업의 책을 읽으며 신들의 세상이었던 지난 신화기의 역사를 읽고 루시는 여성들의 자선사업 개념으로만 사회사업이 이루어졌으리란 데에 예상이 미쳤다.그곳을 다시 방문한대도 그렇다면 기존에 해왔던 것과 다른 영향을 주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녀의 태에는 아이가 있었다. 저번처럼 바깥으로 나섰다가 데미안 벨루아같은 자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에이든이 그때처럼 구해주지 못한다면,루시의 얼굴이 사뭇 어두워졌다.“루시, 당장은 눈 앞의 일만 생각하자. 아이가 있고, 너는 야간대학에도 다니겠다고 했어.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하고 있어.”에이든은 루시아가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때로는 자신이 무언가를 하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때때로 그녀 혼자 밤에 산책삼아 거니는 후원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던 에이든이다.그는 그녀가 아직도 첫 아이를 완전히 잊지 못했고, 그래서 더더욱 자신보다 비참한 신세에 있는 이들을 도우려고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디디. 하지만, 그 사람들한테는.”“이미 네가 시작한 제도들의 구상으로 여러 가지 사회부조 제도를 시범도입했어. 당분간은 쉬어도 괜찮아.”
Last Updated: 2026-07-28
Chapter: 80화 기여
루시의 태에 있는 아이는 쑥쑥 자랐다. 에이든이 어떻게든 그녀가 하우젠 가의 안주인 노릇을 안하게끔 하고 싶어했기에 그녀도 일부러 나서는 일 없이 지냈지만 사실 루시는 자신을 바라보는 가신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황좌에 앉기를 거부하고서 공화정이라는 낯선 체제까지 끌어들인 유일한 이유였다는 외국인 여자.이제는 전 대공비 방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하는 여자. 사용인들이야 자신들에게 친절한 루시를 두고 다정하게 대해주지만 종종 집무실에서 지나칠 때면 책사 비요른과 직속 보좌관 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루시는 이제쯤에는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브리짓도 돌아갔고, 안정기에도 접어들었으니 시민들의 복지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야간 대학에 다니는 것은 개강까지 한달 여가 남았지만 그렇다고 내내 아무것도 안할 수 는 없었다.루시는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새벽마다 그곳에 들러 책을 빌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낮에 돌아다닌 일 자체가 드물어서인지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벨루아의 도서관에서 에이든을 만나 이렇게 그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불과 최근까지도 데미안 벨루아가 자신을 찾으러 오고, 브리짓 언니가 하우젠 령을 마구잡이로 들렀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적이 있나 싶었다.루시는 우선 개론과 사회사업과 관련한 책들을 몇 권 집었다. 하우젠 령의 역사나 경제와 관련된 책은 이미 탐독했기에 사회사업으로 전공을 결정하고 나서는 관련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셀리는 그 풍경이 자연스러워 곁에서 책 몇 권을 추천하며 루시하고 지적인 토론을 나누기도 했는데 정작 그 장면이 열린 틈 사이로 복도를 지나가던 가신들에게 어떻게 퍼져나가고 있는지는 아주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그러니까, 내가 아주 대단히 지적인 여성이라고?”
Last Updated: 2026-07-27
Chapter: 79화. 브리
사흗날 아침이 밝았다. 브리짓은 지난 이틀 내내 그랬던 것처럼 아주 편안하고 말간 낯으로 루시아의 앞에 섰다.“루시.”그 사이 두 사람은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응, 언니.”“잘 지내.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카의 출생 과정을 볼 수는 없을 것을 알았기에 브리짓은 다만 그저 건강하라고 했다.루시도 그걸 알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슬퍼서 눈물이 쏟아질 것같았지만 티내지 않기로 했다. 아주 편안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헤어지고, 언젠가 된다면 그녀의 장례식에 참여해 그렇게 그녀를 보내줘야지.루시는 문득 생각난 것을 말하듯 브리짓에게 덧붙였다.“언니, 그때 나더러 왜 아버지 앞을 막아섰냐고 했잖아.”브리짓이 첫날의 기억이 생각이 난 듯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우울한 기억이었다. 그녀가 저를 동정했다고 하는 것은. 그런데 루시아가 덧붙인 말은 놀라웠다.“나같아서 그랬어. 고작 이 좁은 새장에 갇혀 내내 남자들 때문에 삶이 휘둘리는 게 나 같아서. 그렇게 예쁘고 똑똑한 사람인데, 브리짓 언니는. ”브리짓이 또 울기 시작했다. 또르륵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루시아는 당황하여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정작 건넨 것이 아이를 위해 만들어둔 가제 수건이라 그녀가 수를 놓은 것이었다. 실력은 형편없었지만.“아, 그건 아이 때문에 만든 건데.”루시아가 부연설명을 하려고 하자 브리짓이 아주 환하게 웃으며 루시아에게 말했다.“내가 가져도 되겠니, 이것?”수많은 구혼자에게 어떤 금은 보화를 받았을 때에도 저런 표정은 아니었다. 루시아는 문득 브리짓의 저런 환한 미소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고작 그걸로 되겠어?”못생긴 꽃 한 송이를 수놓은 손수건이었다. 그런데도 브리짓이 그걸 양손으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꼭 껴안고 있어서 루시아는 어쩐지 부끄러웠다.“그렇게 대단한 물건도 아니고.”브리짓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너무 기뻐.”순수하게 그렇게 기
Last Updated: 2026-06-30
Chapter: 78화 대학에 가기로 했어.
“생활은 어떠니? 사람들은 잘해주고?”“아, 언니. 음......”브리짓이 어떻게 생각할까, 순간적으로 루시아는 망설였다. 귀족으로 평생을 살아온 브리짓이 야간대학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래도 좋은 소식이니까 브리짓에게도 전하고 싶었다.“나, 야간 대학에 다니기로 했어. 오는 봄에.”야간 대학? 브리짓이 귀를 의심했다. 그렇다면 공부를 이어서 하겠다는 뜻인가? 아니 애초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이어서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은.“그렇구나. 드디어, 할 수 있게 됐구나.”브리짓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평생 자신으로 인해 스스로를 하자품처럼 여기기만 했을 아이가 우뚝선 나무처럼 듬직하게 자라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의 곁에는 이제 그녀만의 사람들이 있었다. 더는 벨루아에서처럼 그녀가 자신같아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무슨 공부가 하고 싶니?”고작 야간 대학에 다니겠다는 말 한다미에 이렇게 오열을 할줄은 몰랐던 루시아가 브리짓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사회사업. 여성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공부해보려 해.”훗날 사회복지가 되는 분야의 그 이전 이름이었다. 루시아의 말에 브리짓이 그것 또한 그녀 답다며 방긋 웃었다. 하우젠 령에 온 뒤로 아니 어쩌면 그녀가 올해에 가장 환하게 웃는 걸지도 몰랐다. 진심으로.루시아는 고작 자신이 대학에 간다는 이야기에 그토록 우는 브리짓을 보며 복잡다단한 심정으로 침실에 왔다. 이미 다 씻고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에이든이 어느새 지나간 사흘 동안의 이야기를 물었다.일부러 언니와 시간을 보내라며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던 그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가 밤에도 조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족하다고 하는 만큼 루시아가 채워줘야 했다.“어땠어, 루시?”그가 새하얀 베개를 베고 루시아에게 팔을 내어준 채로 물었다.“음, 어떤 게 궁금한데?”루시아가 물으니 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싸우거나 괴롭히지는 않아?”브리짓이 아직도 그런 인상으로 남았나. 처형이라고 부를 땐 언제
Last Updated: 2026-06-30
Chapter: 77화 진통제
브리짓은 셀레나가 돌아가고 나면 루시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다 늘어놓을 것을 알았다. 애초에 그렇게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기만 하는 아이였으니,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그게 제 동생에게는 좋은 시녀를 둔 셈이니 더 낫긴 했다. 정작 바보같은 자신의 동생은 셀레나를 두고 친구라고 말하겠지만. 그 점이 자신과 루시아가 다른 점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자신이 어둠 속에 있어도 저를 구하러 와줄 하우젠 대공 같은 백마탄 왕자나 셀레나 같은 사람이 없는 거겠지. 하물며 레이루나같은 어머니조차도.문득 그 사실이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루시아가 자신을 동정했다는 사실보다 그저, 스스로가 비참해 무너지기도 했다.그러던 그녀에게 찾아온 이는 다름 아닌 하우젠 대공이었다. 그는 지독한 수면초 향에 눈살을 찌푸리며 들어왔다.“이정도일 거라고는 몰랐습니다만. 황후도 참 지독한 여자군요.”이미 공공연하게 귀족 사회에 아서 남작부인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있을 텐데도 일부러 그녀를 보낸 마리아 지젤이라는 여자는 그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악질인 것이 분명했다.“그런 걸 말하려고 온 건 아닐텐데요. 대공.”“의사를 불렀습니다.”저택의 주치의를 동반하고 나타난 그가 그녀가 진찰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의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이미 손 쓸 단계를 지났다고 했잖아요.”브리짓이 이것 보라는 듯 팔을 들어 짓무른 피부를 보여주었다.면보를 쓴 에이든이 브리짓에게 물었다.“그렇다면 적어도 마지막으로 멀쩡하게 동생과 추억을 쌓고 싶지는 않으십니까?”그가 듣기로는 내내 서로 반목하느라 제대로된 추억 하나 쌓지 못한 자매 사이라고 들었다. 루시아는 그걸 내내 아쉬워했고, 브리짓도 아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라도 루시아를 보려고 그래야 안심이 되어서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있다면 나름 있었다.“젠슨, 그녀가 하우젠 령에 머물 동안 통증을 줄일 방법이 있나.”주치의에게 물으니 그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레 말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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