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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Author: 도수정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24 03:55:42

데미안은 복도를 지나치다 대공을 만났다. 그쪽은 공작부인의 방이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곳에서 오지? 의뭉스러운 자였다.

"대공 전하."

데미안이 예를 갖췄고,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접이 융숭했던 탓인지 어제 저녁의 일로도 대공은 벨루아를 탓하지 않았다.

여상한 얼굴로 평온을 가장한 채 있었다. 데미안은 짐승같은 감으로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알았다. 굳이 마리아를 제 앞에서 들먹인 것도 분명 속셈이 있는 것같아 보였다. 황궁에 가서 물으니, 황제가 말하기를 하우젠 대공은 황후를 알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왜지? 왜 벨루아로 왔지? 나스의 잔존하는 황실 부흥 세력을 지원한 걸 들킨 건가. 그건 황제의 명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최대한 늦추려는, 기득권의 발악이었다. 데미안은 루시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녀의 가치는 논외 밖이었다. 후사도 볼 수 없었던 여자.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야했다. 하지만 어쩐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저를 두고 간다는 생각만 해도 어쩐지 손에 식은땀이 났다. 그가 어느새 끈적해진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건 조만간 찾아올 불길함을 미리 예측한 것인지도 몰랐다.

루시아가 웬일로 집무실에와 그를 찾았다. 데미안이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들라고 했다. 또각또각, 규칙적이고 정확한, 기계같은 걸음새. 아르테미스 백작가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인형이 그에게 말했다.

"각하."

데미안이 아니었다. 그가 못마땅한 마음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주치의에게 들었습니다. 더이상 제가 임신이 어려울 것같다고 들었습니다."

데미안도 얼마 전에 들은 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처사를 고민하던 찰나였다. 그때 루시아가 먼저 말했다.

"이혼해주십시오."

이혼이라. 그가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르테미스가 밀어넣은 뻐꾸기알이 이제는 스스로 내버려달라 청하다니.

"어찌 그러시오."

루시아는 그의 속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어차피 대를 이을 수도 없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라면"

사랑하지도 않는.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저를 탓하는 말인 것같았다. 그제야 성이 났다.

"이제와 시위라고 하겠다는 건가?"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아니오."

"위자료를 요구하기라도 하겠다고?"

데미안이 결혼 전에 작성한 결혼계약서의 내용을 순간적으로 떠올렸다. 이런 순간에도 계산적인 자신이 어쩐지 싫었다. 저는 이렇게나 혼란스럽게 해놓고 정작 평온한 루시아의 얼굴이 짜증났다.

"아닙니다. 위자료도 필요없습니다."

데미안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벨루아를 어디까지 망신주려고 그러오."

루시아는 정말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았다. 아기가 죽어도 찾아오지 않던 남자. 매일 황후의 정원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남자. 잠자리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 그런 남자의 아이를 낳아 평생 살아야만 한다고 외치는 엄마. 오빠. 그녀의 가문. 모든 게 이상했다. 그리고 루시아는 너무

"지쳤어요."

이제는 제 심정을 말로 내뱉을 수 있었다. 닳고 닳아 누구의 탓도할 수 없었던, 기원이 아주 오래된 뿌리부터 곪아버린 감정의 골을 파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심정이란 결국 마모되어버린 제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 좀 놔주세요."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허를 찔렸다. 데미안의 입이 벌어졌다. 루시아가 울고 있었다면 차라리 그보다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는 울지도 않고, 텅 빈 눈으로 저를 바라봤다. 손을 대면 연기처럼 눈앞에서 사라질 것같아서 손댈 수도 없었다.

놔달라는 한마디가 갑자기 그의 불안을 미친듯이 자극했다.

"그럴,순 없어."

그가 헐떡이듯 제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루시아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결말을 알 것같았다.

그녀가 저를 떠나리라는 확신.

"저를 막으실 순 없을 겁니다."

지금껏 모아놓은 유책사유로도 어차피 이혼은 가능했다. 제국에서 여자쪽에서 먼저 이혼을 청하는 일이 상당한 불명예로 남겠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벨루아가 당신 하나 못휘두를까."

루시아에게는 레이루나가 있었다. 차마 저버리지 못할, 사랑해 마지 않는 어머니. 그녀는 자신의 딸이 공작가의 일원이기를 바랄 것이다.

"아니오. 누구도 그럴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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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교환   82화 完

    제국에서는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카이사르가 압송된 데미안 벨루아의 공작위를 압수하고 그 가신들의 작위와 재산을 몰수했다. 황권 복위 세력과 손을 잡고 전쟁에 가까운 무력행위 문제를 일삼았다는 이유에서였다.레이루나는 그런 처분이 날 때까지 가만히 차를 마셨다. 눈 앞에 황후가 있건 말건 말이다. 마리아 지젤은 여전히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가 예언서대로 이루어질 세계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 결말이 끝나 자신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었음에도 데미안과 카이사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주변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그러니까, 대부인이 대공비에게 연락을 넣어서 탄원서라도 받아내 주는 게 어떤가.”얼마 전에는 브리짓을 불러다 결국 하우젠 령으로 향하게 해서 루시를, 제 딸을 들쑤신 것을 모르지 않았다. 레이루나는 조용히 찻잔을 들어 홍차를 홀짝일 뿐이었다.그녀가 물렀던 탓이다. 아들의 결정이라고 하면, 그저 따르고 힘이 없다며 딸에게 어떤 위협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는가. 레이루나는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제 딴에는 계속해서 루시아를 위한 선택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으로는 그것들이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결국 루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뿐이었다.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단발머리를 하고 자유롭게 살아갈거라던 딸아이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레이루나의 낯이 어두웠다.“대부인?”레이루나는 눈앞의 멍청한 여자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황제와 독대를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여우처럼 이렇게 화로를 들쑤시는 자는 자신 하나로 족했다. 그리고 제 자식에게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 대상을 치울 생각도 있었다.하지만 여자는 황후였다. 이전처럼 루시아를 위한다는 생각이 다시 그녀의 발목을 잡을까 두려워져 레이루나는 선뜻 어떠한 선

  • 남편교환   81화 레이루나

    “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니?”루시의 물음에 에이든은 침음을 흘렸다. 그는 무어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여성인권에 대해 오히려 기득권층인 가신들이 역차별 따위의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실질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그 스스로 꺼내기에도 꽤나 부끄러운 이야기였다.“말그대로야. 루시. 신분제가 없어도 그들은 여전히 귀족처럼 살려고 해. 계층이 없어지지 않았어.”“그러면, 자선사업의 개념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구나?”사회사업의 책을 읽으며 신들의 세상이었던 지난 신화기의 역사를 읽고 루시는 여성들의 자선사업 개념으로만 사회사업이 이루어졌으리란 데에 예상이 미쳤다.그곳을 다시 방문한대도 그렇다면 기존에 해왔던 것과 다른 영향을 주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녀의 태에는 아이가 있었다. 저번처럼 바깥으로 나섰다가 데미안 벨루아같은 자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에이든이 그때처럼 구해주지 못한다면,루시의 얼굴이 사뭇 어두워졌다.“루시, 당장은 눈 앞의 일만 생각하자. 아이가 있고, 너는 야간대학에도 다니겠다고 했어.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하고 있어.”에이든은 루시아가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때로는 자신이 무언가를 하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때때로 그녀 혼자 밤에 산책삼아 거니는 후원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던 에이든이다.그는 그녀가 아직도 첫 아이를 완전히 잊지 못했고, 그래서 더더욱 자신보다 비참한 신세에 있는 이들을 도우려고 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디디. 하지만, 그 사람들한테는.”“이미 네가 시작한 제도들의 구상으로 여러 가지 사회부조 제도를 시범도입했어. 당분간은 쉬어도 괜찮아.”

  • 남편교환   80화 기여

    루시의 태에 있는 아이는 쑥쑥 자랐다. 에이든이 어떻게든 그녀가 하우젠 가의 안주인 노릇을 안하게끔 하고 싶어했기에 그녀도 일부러 나서는 일 없이 지냈지만 사실 루시는 자신을 바라보는 가신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황좌에 앉기를 거부하고서 공화정이라는 낯선 체제까지 끌어들인 유일한 이유였다는 외국인 여자.이제는 전 대공비 방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하는 여자. 사용인들이야 자신들에게 친절한 루시를 두고 다정하게 대해주지만 종종 집무실에서 지나칠 때면 책사 비요른과 직속 보좌관 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루시는 이제쯤에는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브리짓도 돌아갔고, 안정기에도 접어들었으니 시민들의 복지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야간 대학에 다니는 것은 개강까지 한달 여가 남았지만 그렇다고 내내 아무것도 안할 수 는 없었다.루시는 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렀다. 새벽마다 그곳에 들러 책을 빌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낮에 돌아다닌 일 자체가 드물어서인지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벨루아의 도서관에서 에이든을 만나 이렇게 그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불과 최근까지도 데미안 벨루아가 자신을 찾으러 오고, 브리짓 언니가 하우젠 령을 마구잡이로 들렀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적이 있나 싶었다.루시는 우선 개론과 사회사업과 관련한 책들을 몇 권 집었다. 하우젠 령의 역사나 경제와 관련된 책은 이미 탐독했기에 사회사업으로 전공을 결정하고 나서는 관련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셀리는 그 풍경이 자연스러워 곁에서 책 몇 권을 추천하며 루시하고 지적인 토론을 나누기도 했는데 정작 그 장면이 열린 틈 사이로 복도를 지나가던 가신들에게 어떻게 퍼져나가고 있는지는 아주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그러니까, 내가 아주 대단히 지적인 여성이라고?”

  • 남편교환   79화. 브리

    사흗날 아침이 밝았다. 브리짓은 지난 이틀 내내 그랬던 것처럼 아주 편안하고 말간 낯으로 루시아의 앞에 섰다.“루시.”그 사이 두 사람은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응, 언니.”“잘 지내.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카의 출생 과정을 볼 수는 없을 것을 알았기에 브리짓은 다만 그저 건강하라고 했다.루시도 그걸 알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슬퍼서 눈물이 쏟아질 것같았지만 티내지 않기로 했다. 아주 편안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헤어지고, 언젠가 된다면 그녀의 장례식에 참여해 그렇게 그녀를 보내줘야지.루시는 문득 생각난 것을 말하듯 브리짓에게 덧붙였다.“언니, 그때 나더러 왜 아버지 앞을 막아섰냐고 했잖아.”브리짓이 첫날의 기억이 생각이 난 듯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우울한 기억이었다. 그녀가 저를 동정했다고 하는 것은. 그런데 루시아가 덧붙인 말은 놀라웠다.“나같아서 그랬어. 고작 이 좁은 새장에 갇혀 내내 남자들 때문에 삶이 휘둘리는 게 나 같아서. 그렇게 예쁘고 똑똑한 사람인데, 브리짓 언니는. ”브리짓이 또 울기 시작했다. 또르륵 흐르던 눈물이 어느새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루시아는 당황하여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정작 건넨 것이 아이를 위해 만들어둔 가제 수건이라 그녀가 수를 놓은 것이었다. 실력은 형편없었지만.“아, 그건 아이 때문에 만든 건데.”루시아가 부연설명을 하려고 하자 브리짓이 아주 환하게 웃으며 루시아에게 말했다.“내가 가져도 되겠니, 이것?”수많은 구혼자에게 어떤 금은 보화를 받았을 때에도 저런 표정은 아니었다. 루시아는 문득 브리짓의 저런 환한 미소를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고작 그걸로 되겠어?”못생긴 꽃 한 송이를 수놓은 손수건이었다. 그런데도 브리짓이 그걸 양손으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꼭 껴안고 있어서 루시아는 어쩐지 부끄러웠다.“그렇게 대단한 물건도 아니고.”브리짓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너무 기뻐.”순수하게 그렇게 기

  • 남편교환   78화 대학에 가기로 했어.

    “생활은 어떠니? 사람들은 잘해주고?”“아, 언니. 음......”브리짓이 어떻게 생각할까, 순간적으로 루시아는 망설였다. 귀족으로 평생을 살아온 브리짓이 야간대학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래도 좋은 소식이니까 브리짓에게도 전하고 싶었다.“나, 야간 대학에 다니기로 했어. 오는 봄에.”야간 대학? 브리짓이 귀를 의심했다. 그렇다면 공부를 이어서 하겠다는 뜻인가? 아니 애초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이어서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은.“그렇구나. 드디어, 할 수 있게 됐구나.”브리짓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평생 자신으로 인해 스스로를 하자품처럼 여기기만 했을 아이가 우뚝선 나무처럼 듬직하게 자라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의 곁에는 이제 그녀만의 사람들이 있었다. 더는 벨루아에서처럼 그녀가 자신같아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무슨 공부가 하고 싶니?”고작 야간 대학에 다니겠다는 말 한다미에 이렇게 오열을 할줄은 몰랐던 루시아가 브리짓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사회사업. 여성들을 위한 사회사업을 공부해보려 해.”훗날 사회복지가 되는 분야의 그 이전 이름이었다. 루시아의 말에 브리짓이 그것 또한 그녀 답다며 방긋 웃었다. 하우젠 령에 온 뒤로 아니 어쩌면 그녀가 올해에 가장 환하게 웃는 걸지도 몰랐다. 진심으로.루시아는 고작 자신이 대학에 간다는 이야기에 그토록 우는 브리짓을 보며 복잡다단한 심정으로 침실에 왔다. 이미 다 씻고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에이든이 어느새 지나간 사흘 동안의 이야기를 물었다.일부러 언니와 시간을 보내라며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던 그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그가 밤에도 조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족하다고 하는 만큼 루시아가 채워줘야 했다.“어땠어, 루시?”그가 새하얀 베개를 베고 루시아에게 팔을 내어준 채로 물었다.“음, 어떤 게 궁금한데?”루시아가 물으니 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싸우거나 괴롭히지는 않아?”브리짓이 아직도 그런 인상으로 남았나. 처형이라고 부를 땐 언제

  • 남편교환   77화 진통제

    브리짓은 셀레나가 돌아가고 나면 루시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다 늘어놓을 것을 알았다. 애초에 그렇게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기만 하는 아이였으니,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그게 제 동생에게는 좋은 시녀를 둔 셈이니 더 낫긴 했다. 정작 바보같은 자신의 동생은 셀레나를 두고 친구라고 말하겠지만. 그 점이 자신과 루시아가 다른 점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자신이 어둠 속에 있어도 저를 구하러 와줄 하우젠 대공 같은 백마탄 왕자나 셀레나 같은 사람이 없는 거겠지. 하물며 레이루나같은 어머니조차도.문득 그 사실이 서러워 눈물이 흘렀다. 루시아가 자신을 동정했다는 사실보다 그저, 스스로가 비참해 무너지기도 했다.그러던 그녀에게 찾아온 이는 다름 아닌 하우젠 대공이었다. 그는 지독한 수면초 향에 눈살을 찌푸리며 들어왔다.“이정도일 거라고는 몰랐습니다만. 황후도 참 지독한 여자군요.”이미 공공연하게 귀족 사회에 아서 남작부인의 질병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 있을 텐데도 일부러 그녀를 보낸 마리아 지젤이라는 여자는 그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악질인 것이 분명했다.“그런 걸 말하려고 온 건 아닐텐데요. 대공.”“의사를 불렀습니다.”저택의 주치의를 동반하고 나타난 그가 그녀가 진찰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의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이미 손 쓸 단계를 지났다고 했잖아요.”브리짓이 이것 보라는 듯 팔을 들어 짓무른 피부를 보여주었다.면보를 쓴 에이든이 브리짓에게 물었다.“그렇다면 적어도 마지막으로 멀쩡하게 동생과 추억을 쌓고 싶지는 않으십니까?”그가 듣기로는 내내 서로 반목하느라 제대로된 추억 하나 쌓지 못한 자매 사이라고 들었다. 루시아는 그걸 내내 아쉬워했고, 브리짓도 아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라도 루시아를 보려고 그래야 안심이 되어서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해줄 수 있는 일도 있다면 나름 있었다.“젠슨, 그녀가 하우젠 령에 머물 동안 통증을 줄일 방법이 있나.”주치의에게 물으니 그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조심스레 말했다.“아

  • 남편교환   6화

    셀레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디디라는 걸 알았다. 황자 신분을 숨긴 게 괘씸했지만, 어쨌거나 루시아를 보러와줬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갔을 땐 이미 두 사람이 회포를 푸는 중이었다."셀레나 오랜만."디디가 손을 흔들었다."나스의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셀레나는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이젠 그럴 필요 없대도."그의 말은 무시한 채로 셀레나가 루시아에게 다가갔다. 아무 일이 없었는지 확인하려고."여기는 제국이고, 듣는 귀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전하."셀레나의 말에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 남편교환   5화

    그러니, 지금의 만남은 따지자면 에이든의 입장에서는 10년만에 만나는 두번째 만남이자, 의식이 있는 루시와는 처음으로 나누는 대화였다."안녕하십니까, 공작 부인."루시아는 눈을 뜨자 저를 보고 있는 푸른 눈동자의 놀랐다. 공작부인이 잠든 걸 지켜보는 외국인 대공?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 그녀가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사람들은 물렸습니다."그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전한 조심스러운 성격이 반가웠다."그렇군요, 그런데 어쩐 일이신가요, 하우젠 대공 전하."그와 거리를 두려는 듯 강조하는 대공 전하라는 호칭이

  • 남편교환   4화

    그것마저 귀여워 디디가 푸흐흐 웃자 루시도 같이 웃었다. 셀레나는 곁에서 미소지으며 둘을 지켜봤다. 루시가 저렇게 마음 편하게 웃는 걸 언제 보았나. 친구로서 디디라는 소년이 너무 고마웠다.그는, 점점 돌아가지 않을 생각도 했다. 제국으로의 망명을 생각했다. 루시의 곁에 남아 그녀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를 따르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두고온 이들은 살아있을까? 고작 열 살짜리 소년을 믿고 목숨을, 충성을 바치던 어리석은 그의 사람들은.루시는 종종 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걸 알았다.

  • 남편교환   3화

    루시아는 벨루아 특유의 웅장한 저택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제국에서도 손꼽힐만한 명작을 갖춘 저택의 미술관이나 도서관을 무척 좋아했다. 하루 종일 식사를 않고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기도 했다. 최근, 자꾸 새벽에 깨어나 잠이 부족했던 건지 루시아는 도서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한쪽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새소리와 창 밖으로 웅웅대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누군가 제 어깨 위에 겉옷을 얹어주는 게 느껴졌다. 셀레나인가. 무어라 말도 건넨 것같았는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대답하지 못했다. 무척이나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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