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데미안은 복도를 지나치다 대공을 만났다. 그쪽은 공작부인의 방이었다.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곳에서 오지? 의뭉스러운 자였다.
"대공 전하."
데미안이 예를 갖췄고,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접이 융숭했던 탓인지 어제 저녁의 일로도 대공은 벨루아를 탓하지 않았다.
여상한 얼굴로 평온을 가장한 채 있었다. 데미안은 짐승같은 감으로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알았다. 굳이 마리아를 제 앞에서 들먹인 것도 분명 속셈이 있는 것같아 보였다. 황궁에 가서 물으니, 황제가 말하기를 하우젠 대공은 황후를 알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왜지? 왜 벨루아로 왔지? 나스의 잔존하는 황실 부흥 세력을 지원한 걸 들킨 건가. 그건 황제의 명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최대한 늦추려는, 기득권의 발악이었다. 데미안은 루시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녀의 가치는 논외 밖이었다. 후사도 볼 수 없었던 여자.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야했다. 하지만 어쩐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저를 두고 간다는 생각만 해도 어쩐지 손에 식은땀이 났다. 그가 어느새 끈적해진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건 조만간 찾아올 불길함을 미리 예측한 것인지도 몰랐다.
루시아가 웬일로 집무실에와 그를 찾았다. 데미안이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들라고 했다. 또각또각, 규칙적이고 정확한, 기계같은 걸음새. 아르테미스 백작가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인형이 그에게 말했다.
"각하."
데미안이 아니었다. 그가 못마땅한 마음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주치의에게 들었습니다. 더이상 제가 임신이 어려울 것같다고 들었습니다."
데미안도 얼마 전에 들은 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처사를 고민하던 찰나였다. 그때 루시아가 먼저 말했다.
"이혼해주십시오."
이혼이라. 그가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아르테미스가 밀어넣은 뻐꾸기알이 이제는 스스로 내버려달라 청하다니.
"어찌 그러시오."
루시아는 그의 속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생각을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어차피 대를 이을 수도 없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라면"
사랑하지도 않는. 그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저를 탓하는 말인 것같았다. 그제야 성이 났다.
"이제와 시위라고 하겠다는 건가?"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아니오."
"위자료를 요구하기라도 하겠다고?"
데미안이 결혼 전에 작성한 결혼계약서의 내용을 순간적으로 떠올렸다. 이런 순간에도 계산적인 자신이 어쩐지 싫었다. 저는 이렇게나 혼란스럽게 해놓고 정작 평온한 루시아의 얼굴이 짜증났다.
"아닙니다. 위자료도 필요없습니다."
데미안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벨루아를 어디까지 망신주려고 그러오."
루시아는 정말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았다. 아기가 죽어도 찾아오지 않던 남자. 매일 황후의 정원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남자. 잠자리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 그런 남자의 아이를 낳아 평생 살아야만 한다고 외치는 엄마. 오빠. 그녀의 가문. 모든 게 이상했다. 그리고 루시아는 너무
"지쳤어요."
이제는 제 심정을 말로 내뱉을 수 있었다. 닳고 닳아 누구의 탓도할 수 없었던, 기원이 아주 오래된 뿌리부터 곪아버린 감정의 골을 파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심정이란 결국 마모되어버린 제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 좀 놔주세요."
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허를 찔렸다. 데미안의 입이 벌어졌다. 루시아가 울고 있었다면 차라리 그보다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는 울지도 않고, 텅 빈 눈으로 저를 바라봤다. 손을 대면 연기처럼 눈앞에서 사라질 것같아서 손댈 수도 없었다.
놔달라는 한마디가 갑자기 그의 불안을 미친듯이 자극했다.
"그럴,순 없어."
그가 헐떡이듯 제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루시아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결말을 알 것같았다.
그녀가 저를 떠나리라는 확신.
"저를 막으실 순 없을 겁니다."
지금껏 모아놓은 유책사유로도 어차피 이혼은 가능했다. 제국에서 여자쪽에서 먼저 이혼을 청하는 일이 상당한 불명예로 남겠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벨루아가 당신 하나 못휘두를까."
루시아에게는 레이루나가 있었다. 차마 저버리지 못할, 사랑해 마지 않는 어머니. 그녀는 자신의 딸이 공작가의 일원이기를 바랄 것이다.
"아니오. 누구도 그럴 순 없습니다."
마리아는 요즘들어 자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같다고 느꼈다. 시녀들에게 물어도, 카이사르에게 재촉해도 아무런 일도 없고 그녀는 완전하게 안전하다고 이야기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이 세상은 항상 자신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렇다고 믿었다.자신이 ‘예언서’를 받고 거기에 적힌대로 그대로 실행해왔을 때, 결국 황제인 카이사르를 택하고, 데미안의 사랑을 저버리긴 했지만 원래 ‘남자주인공’이라는 카이사르가 데미안을 이기는 게 맞는 결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사실 루시아 벨루아는 여름에 죽은 아이를 낳고 절망하여 자진 시도를 하고 질투를 하다 미쳐간다. 결국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다가 데미안의 손에 살해당하는 것이 마지막 결말이었다. 그런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겨울의 왕’이 등장한 무렵부터였다. 그 남자는 마치 마리아 지젤이라는 인물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처럼 오직 루시아 벨루아를 위해서만 움직였고,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향해 매혹되던 것에도 당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벨루아 전 공작부인을 데려다가 자신의 아내로 삼기까지 했다.그렇게 루시아가 제국을 탈출하듯 도망치고 나서부터 마리아의 주변에 기묘한 일이 생겼다. 밤이면 그녀의 황궁에 그녀를 질투하다가 카이사르의 손에 죽었던 옛 후궁들의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고, 실제로 그런 환청을 마리아도 몇 번 들었다.정확하게‘마리아 지젤’이라고 연신 부르는 것을 시녀마저 듣고 그 다음날에 자신마저 들었을 때에는 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공포스러워 카이사르에게 몇 번이나 경비를 강화해달라고 했지만 그는 질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실제로 무언가를 해주지는 않았다. 마리아는 복도에서 데미안을 만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에게 그런 사정을 눈물 흘리며 이야기하곤 했는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게 원래 해왔던 일임에도 데미안은 갑자기 얼굴을 굳히고는 공작이라고 칭해달라며 자리에서 급하게 물러났다. 마치 무언가 떠오르고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어떤 과오들에서
데미안 벨루아는 ‘그’ 결혼식 이후의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미쳐가고 있었다. 루시아 아르테미스가 제 곁에 없다는 것 하나만이 유일한 변화였음에도.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번도 이 저택에서 존재감을 찾을 수 없던 여자의 부재가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를 점점 더 긁어내리고 있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았고, 아주 소량의 음식도 먹지 않은 채 술에만 의존했다. 자신조차 왜 스스로가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공작가의 의무만을 가주로서 이행하는 것 빼고 데미안 벨루아라는 인간은 철저하게 점점 더 메말라가고 황폐해져 갔다. 친우의 모습에 놀란 카이사르가 직접 그를 한밤중에 변복을 하고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황제는 그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리아에게, 자신도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황후에게 여전히 마음을 빼앗긴 이가 아니었던가. 보잘것없는 백작가의 여식 하나가 제국의 벨루아를 상징하는 남자를 무너뜨릴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녀가 전혀 의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이제 와 사랑이라도 하는 것같이 굴지마.”카이사르도 차마 지금껏 루시아에게 저질러 온 짓이 있어 이제와 데미안의 마음을 응원해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외국에 갔으니 그렇게 보내주고 데미안이 마음을 내려놓는 게 맞아 보였다.“사랑이 아니야.”데미안은 그것마저도 부정했다. 애초에 자신이 그런 하찮은 여자를 사랑할 리가 없었다. 그가 했던 사랑은 고귀한 마리아 지젤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 느끼는, 이 광증같은 것은 제 아래에 있던 소유물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불쾌함이다.“감히, 아르테미스 따위가 내 뒤통수를 친 데에 대한 분노일 따름이지.”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여자를, 그가 내내 부서지도록 망가뜨린 여자를 사랑이라도 한다고 한다면 그를 향한 저열한 혐오감이 치밀까봐 그게 싫어서 방어적으로 굴었다.그래서 남자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 루시아는 한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니 애초에 불공평한 게임이라고 생각
에이든은 마차에 오를 때조차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평소처럼 다정했다. 마치 그들이 아무런 일을 겪지 않은 것처럼. 그것이 루시아에게는 어쩐지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남자는 더없이 외로워보였다.“다 왔어. 루시.”그가 그녀를 내려준 곳은 넓고 투명한 호숫가였는데 그 옆에 자그마한 비석이 놓여있었다. 오래된 듯 희미하게 바랜 글씨로 에드윈 나스 하우젠이라고 적혀있었다.“에드윈 하우젠. 이게 진짜 디디의 이름이구나......”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혹시라도 황족인 게 들킬까봐 내내 입을 다물던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형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 하던 그녀의 소년은 이제 이곳에 묻혀 바람이 머물다 가는 호수의 풍경을 매일 감상할 것이었다.“나스라는 중간 이름 조차 받지 못했지. 두 번째 황후였던 어머니의 태에서 났지만 황태자인 티베리우스가 반대했다는 이유로.”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황족인데 반쪽짜리 취급을 받았다는 것 아닌가?“어째서요?”에이든이 쓸쓸하게 웃었다.“내가 그 애를 아꼈거든.”그건 일종의 인질이었다. 자주 앓고 유난히 건강이 안좋았던 에드윈의 약을 제조해주는 대신 이러저러한 전투에 그를 내보내는 일이 잦았고, 그러한 공은 결국 황태자인 티베리우스에게 돌아갔다.에드윈이 국경 바깥으로 납치되어 아르테미스 가에 갔을 때 에드윈을 찾기 위해 하우젠 령에 직접 가기로 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기적적으로 돌아온 에드윈의 상기된 뺨이 생각난다. 아직도 그 어린 아이의 몸집이 품에 안길 것처럼 생생하다.“루시아, 네 덕에 나는 내 동생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어.”돌아오고 나서 다시 가을을 맞지는 못했다. 병석에 누워있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가족들의 곁에 돌아와 있던 시기가 너무나 좋았다고 했다. 에드윈이 열에 들떠 새벽 내내 지새우더라도 꼭 아침 식사는 다 함께 하자며 고집을 부려대는 통에 다같이 아침 식사를 했었다.그러면 에드윈이 대개 루시아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루시아의 검은 머리가 밤하늘처럼 탐스러웠다. 그녀를 안고 밤새 나스로 향하는 국경을 달리고 싶어 전후처리도 하지 않고 왔지만 이미 그녀의 손에는 벨루아의 반지가 껴진 후였다.루시아는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애초에 레이루나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분명 자신에게 구혼을 한 남자는 데미안 벨루아 뿐이라고.“하지만, 어머니는 벨루아 공작 밖에는 구혼을 하지 않았다고......”에드윈의 존재를 알고도 루시아의 명예에 흠이 갈까 일부러 침묵했던 당시의 레이루나가 그들의 계획에 방해가 될 에이든의 존재를 루시아에게 알렸을 리 없다.“네가 여름에, 사경을 헤맸다고 했을 때 차라리 내가 목을 매달테니 살려달라고 신께 빌었다면 믿어줄거니?”그는 비가 내리는 호우를 뚫고 벨루아 저택을 갔었다. 벨루아 저택의 앞까지 가서도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지내며 다만 신문에 루시아가 쾌차했다는 소식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스로 돌아왔다.그 모든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했다.“나는 에드윈이 아니지. 너의 디디가 아니야. 네 소년은 될 수 없었어. 그럴 기회도 없었고, 그럴 운명도 아니지. 하지만 루시아. 그 애만큼이나 오랫동안, 나도 너를 바라왔다면 두 번째 기회를 줄 순 없을까?”그가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었다.그리고 그녀의 손등에 다시 조용히 이마를 갖다댔다. 아주 성스러운 무언가를 만지듯이.“에드윈의 묘에, 가고싶어요.......”그는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가슴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난 것같았다. 온 세상이 뒤집히는 것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상황은 달라진 게 없이 다만 그저 눈앞의 여자가 저에게 자신의 곁을 허락했을 뿐인데 말이다.“날이 밝으면, 함께 가자. 호수에 있어.”루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이든과 똑같이 꿇어앉아 시선을 맞추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어느새 에이든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루시아.”“잘자요, 디디.”그는 그녀가 정말로 저를 죽
루시아가 진실을 알게 되고서 이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혼인이었다. 아르테미스 가문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벨루아에서 저를 빼오고 싶어했던 에이든을 위해서도. 그곳에서 시들어가던 자신을 위해서도. 이제 막 야간대학의 꿈을 키우는 셀레나를 위해서도그래서 루시아는 다음날 새벽에 침실로 오지 않는 에이든을 찾아갔다. 요즘 며칠째 집무실에서 엎드려 자며 그녀가 머무는 대공부부의 침실에는 오지 않는 그를 찾아.“에이든.”그녀는 더이상 그를 디디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어쩐지 차라리 속이 시원해진 에이든은 눈을 감은 척 하면서 계속 엎드려 있었다.“눈 뜬 거 알아요. 일어나요.”에이든은 조용히 팔로 기지개를 펴며 그녀에게 능청스럽게 굴었다.“무슨 일이야, 루시?”“당신하고 할 얘기가 있어요.”그라고 해서 긴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그걸 티 냈다가는 정말로 루시아에게 조금의 여지라도 줄까봐. 그는 확신이 있는 척 꾸며내었다. 그녀가 그의 곁에 남아야 이득이 있을 테니 절대 떠날 리 없는 것처럼. 사실은 서슬퍼런 안색으로 겁에 질려 떨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나 애를 쓰면서.그녀가 더이상은 이런 연극은 못하겠다고 할 까봐, 처절하게 붙잡고 싶은 주제에.“에이든, 계약서를 썼으면 해요.”에이든은 귀를 의심했다. 계약서?루시아가 제법 비장해보이는 표정으로 서 있어서 그는 그녀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혼인계약서를 말하는 건가?”그가 미세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루시아는 그걸 놓치지 않고 덧붙였다.“당신하고의 혼인을 무르겠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무엇을?그는 감히 물어보고 싶었다.그럴 주제가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마음 속을 파헤치고 싶었다.“에드윈의 존재에 대해 묵인했던 걸 사과받고 싶은 거라면....”그는 언제든 그것에 대해 대가를 치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루시아는 그녀의 손에 쥐어
갑자기 눈물을 흘리던 루시아로 인해 하우젠 령의 가정 방문 조사는 내일로 미뤄졌다.“무슨 일일까.”윌에게 에이든이 문득 중얼거렸다. 루시아는 괜찮다는 듯 하지만 쓸쓸한 표정으로 그에게 손을 내저었다. 한순간에 느껴지는 거리감에 저절로 섭섭함이 밀려왔다.“부인께서 무언가 바쁘신 일이라도 생각나셨나 봅니다.”윌은 으레 그렇듯 별거 아닐 거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답변이 되지 않을 정도의 무신경한 대답이었다. 그에 에이든이 미세하게 눈을 찌푸렸지만, 윌은 역시 개의치 않았다.에이든은 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실은 그는 에드윈으로부터 루시아에 대해 전해듣고 환상을 가지고 사랑에 빠졌을 따름이지 기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걸 알기에는 두 사람은 열렬히 서로를 향한 자신의 감정에 취해있어서 에이든은 다만 한숨을 삼키고 저녁에 루시아를 한번 더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할 밖이었다.***어둑어둑한 새벽, 루시아는 에이든에게 침실을 오늘만큼은 따로 쓰자고 말해두었다. 그마저도 에이든에게 셀레나가 찾아와 대신 전달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는 어디가 아픈 거라면 의사를 부르겠다고 했지만, 루시아는 그저 됐다고 하며 저녁도 물렀다. 친구의 얼굴에 미세하게 그늘이 졌다. 루시아는 그걸 알고도 그저 슬프게 웃었다.낮에는 도서관에 있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3황자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러니까 루시아가 추측하건대 아마도 진짜 그녀의 ‘디디’일 그 아이에 대해서.족보는 멀지 않은 칸에 있었다. 티베리우스가 첫째, 에이든이 둘째. 그리고 막내, 에드윈 하우젠.살아있었던 연도가 적혀있었다. 세상을 떠난 지 겨우 10년 안팍이었다.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책은 적어도 그렇게 말했다. 루시아는 족보를 책상 위에 소리나지 않게 놓아두고 숨죽여 울었다.안쓰러운 그 애를 생각하며. 그리고 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생각하며.그리고 새벽, 복도에 가려진 천을 힘껏 거둬 내린 루시아가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