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벤자민을 찾아서

잃어버린 벤자민을 찾아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5
By:  하민오Ongoing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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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속에서 자란 사생아인 나는,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주던 남동생이 용에게 납치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직접 원정대를 꾸린다. 제국의 금기를 어기고 쫓기는 몸이 된 나는, 불사의 남자와 함께 여정을 이어가며 용의 흔적을 쫓는다. 그러나 끝내 마주한 진실은, 동생이 자의로 용과 함께 떠났다는 것.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흔들리던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고, 잃어버린 것은 동생이 아닌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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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 드완 가문의 첫째딸

네리나는 드완 가문의 첫째딸이었다. 바로 그 점이 새어머니가 그녀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이유였다. 드완 가문의 아이들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점은, 적어도 드완 경이 결혼생활 중 바람을 피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드완 가문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지역에 눌러 살던 토착민의 피가 섞여 있었다. 밀빛 피부에 다홍색 머리카락이 그 증거였다. 회색이 감도는 초록빛 눈동자만은 아버지를 닮아서, 쉬이 드완 가문에 입적할 수 있었다.

뚜렷한 토착민의 외모 덕분에, 새어머니는 개를 데리고 살 듯 네리나를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하암~.”

네리나가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응접실로 나가 보니 1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또 혼자야?”

볼을 부풀린 네리나가 살그머니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단란한 대화가 들려왔다.

“그래서요 아버님, 제가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수석을 했어요.”

“오, 그러냐? 수고 많았다.”

“샤인 너는 항상 1등이면서 뭘 또 자랑해.”

“내 마음이야, 케인!”

우아하게 식사를 음미하던 드완 부인이 말했다.

“벤자민, 멀뚱히 보고 있지 말고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렴.”

“어머니! 너무해요. 벤자민형을 끌어들이다니요!”

이어서 들리는 웃음소리까지. 완벽하게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앗차’

순간 식당에 앉아 있던 케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네리나에게 꺼지라는 제스처를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에게 키스를 날렸다.

“내 팔자에 가족이 있겠어? 아이구.”

네리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정원의 뒷뜰로 향했다.

가문에 입적된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네리나는 직접 저택 탐사에 나섰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뒷뜰의 개구멍은 그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히 넓었다.

병사들이 봤다면 기겁을 해서 그녀를 끌어 당겼겠지만, 고향 마을에서도 발이 조용하기로 소문났던 네리나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드완 가문의 서쪽은 울창한 밀림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금지된 숲과의 경계에 있어서 그런지, 가문은 특별히 서쪽 구역을 경계하지 않았다.

네리나는 밀림을 한시간 동안 쭉 걸어나갔다. 바닥에 깔린 무성한 잡초 사이 드문드문 보이는 타일을 따라 걸어가면 얕은 산이 나왔다. 

네리나는 그 속의 무너진 출입구로 들어갔다. 벽화가 즐비한 복도를 지나 뒷편에 조각상을 세워둔 가짜 문 앞에 걸터앉았다.

“휴,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볼까.”

문 너머로 보이는 조각상은 사람처럼 아름답고 생기가 가득했다. 네리나는 그를 친구삼아 가져온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차, 친구한테도 나눠줘야지. 자, 여기요. 한 입 해보세요.”

비록 문 뒤에 있어서 조각상의 입가에 직접 닿을 수는 없었지만, 냉대와 멸시가 없는 이곳은 네리나에게 더욱 집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케인은 샤인보다도 나를 더 미워해요. 둘이서 누가 더 나를 싫어하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드완 부인이 오늘은 인사를 받아줄까요?”

“아, 엄마 보고 싶다.”

“벤자민은 그래도 착해요. 나를 같은 사람으로 봐주거든.”

네리나는 조각상을 등지고 집에서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하나하나씩 꺼내어 놓았다. 그렇게 있으면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가곤 했다.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 침실에 없다면, 저녁 담당 하녀가 시녀에게 말할 것이고, 시녀는 시녀장에게, 시녀장은 드완 부인에게 자신의 행실을 일러바칠 테니 말이었다. 네리나는 자신에게 시녀가 배정되지 않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지 못했다.

뭐,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식사가 줄어드는 것은 곤란했다.

“이만 갈게요. 또 올게요, 아저씨.”

네리나는 조각상에게 인사를 전하고 밀림을 다시금 빠져나왔다. 저택의 개구멍으로 살금살금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또 나갔다가 온거야?”

벤자민이었다. 신께서 직접 꿀과 우유, 설탕 따위를 함께 넣어 빚은 것만 같은, 볼 때마다 황홀하게 생긴 첫째 남동생이었다.

금발이 귓가에서 찰랑거렸고, 초록색 수정을 품은 눈은 그녀와 다르게 따뜻함이 넘실거렸다. 그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하루종일 찾아다녔잖아요.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야?”

“나를 기다렸어?”

“왜 처음 듣는 말인것처럼 굴지? 난 매일 기다려요. 나가는 건 누나잖아.”

네리나는 기다린다는 말을 음미하느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를 보는 벤자민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케인이야? 아니면 샤인이야?”

“응?”

“누나가 힘들 때마다 나가는 거 알아. 그래서, 오늘은 둘 중 누구야?”

“음.”

네리나는 당장이라도 벤자민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내 시야에 드완 부인이 들어왔다.

“드완부인을 뵙습니다.”

“….”

벤자민에게 아름다움을 물려준 이 여자, 그녀에게 이름을 허락하지 않는 드완 부인은 눈을 느리게 한 번 깜빡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가 네리나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드완부인은 곧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벤자민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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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완 가문의 첫째딸
네리나는 드완 가문의 첫째딸이었다. 바로 그 점이 새어머니가 그녀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이유였다. 드완 가문의 아이들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점은, 적어도 드완 경이 결혼생활 중 바람을 피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드완 가문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지역에 눌러 살던 토착민의 피가 섞여 있었다. 밀빛 피부에 다홍색 머리카락이 그 증거였다. 회색이 감도는 초록빛 눈동자만은 아버지를 닮아서, 쉬이 드완 가문에 입적할 수 있었다.뚜렷한 토착민의 외모 덕분에, 새어머니는 개를 데리고 살 듯 네리나를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하암~.”네리나가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응접실로 나가 보니 1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또 혼자야?”볼을 부풀린 네리나가 살그머니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단란한 대화가 들려왔다.“그래서요 아버님, 제가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수석을 했어요.”“오, 그러냐? 수고 많았다.”“샤인 너는 항상 1등이면서 뭘 또 자랑해.”“내 마음이야, 케인!”우아하게 식사를 음미하던 드완 부인이 말했다.“벤자민, 멀뚱히 보고 있지 말고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렴.”“어머니! 너무해요. 벤자민형을 끌어들이다니요!”이어서 들리는 웃음소리까지. 완벽하게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앗차’순간 식당에 앉아 있던 케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네리나에게 꺼지라는 제스처를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에게 키스를 날렸다.“내 팔자에 가족이 있겠어? 아이구.”네리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정원의 뒷뜰로 향했다.가문에 입적된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네리나는 직접 저택 탐사에 나섰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뒷뜰의 개구멍은 그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히 넓었다.병사들이 봤다면 기겁을 해서 그녀를 끌어 당겼겠지만, 고향 마을에서도 발이 조용하기로 소문났던 네리나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드완 가문의 서쪽은 울창한 밀림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금지된 숲과의 경계에 있어서 그런지, 가문은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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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경 지대 수비
“벤자민,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니? 이사벨라와 에스텔라가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단다.”“오늘은 네리나랑 시간을 보내려고 했어요 어머니. 물론, 네리나가 자리를 비운 바람에 이루지는 못했지만요.”“….”드완 부인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리나는 성질 더러운 쌍둥이 자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싶지 않았다.‘얼른 가. 애들이 기다린다잖아.’‘알겠어.’입모양으로 대화한 뒤, 벤자민이 떠날 채비를 했다. 그제야 드완 부인도 별채 뒤뜰에서 소리없이 발걸음을 옮겨 먼저 떠났다.“누나.”“왜.”“밥 잘 챙겨먹어. 굶지 말고. 그리고 알지? 누나 곁에는 내가 있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요.”“알아.”그렇게 대답하고는 네리나가 씨익 웃었다. 벤자민은 그녀의 눈에 슬픔이 서리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피고는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사랑이 온전히 느껴지는 아이였다.‘이 애가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야.’네리나는 이마를 문지르며 응접실로 향했다. 그녀가 하품을 쩌억 하며 창문을 열어 젖히자말자 하녀가 1인분의 식사를 챙겨왔다.“식사입니다, 아가씨.”“에휴. 지겨워.”또다시 혼자라는 사실에 네리나의 입이 비죽 튀어나왔다. 어머니와 함께 살 때의 식사시간은 항상 잔치처럼 북적였었다.웬일인지 하녀가 나가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머뭇대고 있었다.“무슨 일이야?”“내일 아침 식사 시간에 참여하라 하십니다.”“누가? 아버지가?”“네 아가씨.”네리나의 코에서 기쁨의 콧김이 숭숭 새어나왔다. 위아래 입술을 말아물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아버지 마음이 변했거나 국경지대 수비이거나.’“국경지대 수비다.”다음날 아침, 네리나가 불편함에 낑낑거리며 식탁 맨 끝에 앉자마자 아버지가 꺼낸 말이었다.드완 가문의 세 아들은 어느 정도 장성하자마자 국경지대를 수비하기 위해 집을 떠나곤 했다.“이번에는 일주일 주겠다.”“아버지, 일주일은 너무 짧아요. 저는 샤인보다도 더 멀리 가는 걸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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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일한 가족
“들어와요.”이때만큼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딸인 것처럼, 원래 그래왔던 것처럼 우아한 목소리를 뽐내는 네리나였다. 벤자민이 키득거리며 그녀의 옆에 와 앉았다.그는 자신과 동생들의 방에 비해 한없이 작고 초라한 방을 휘이 둘러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무슨 일이야, 벤자민?”“일은 무슨. 내가 떠난다니까 누나가 울고 있을까 봐 왔죠.”“떠난다고 말하지마. 나 진짜 울 것 같아.”어느새 네리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벤자민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짧게 웃고는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빨리 돌아올게.”“그럼 위험한 걸 발견했다는 거잖아.”“딱 맞춰 돌아올게. 일주일만 기다려요.”“…약속하는 거지?”“응. 다치지도 않을 거고 밥도 잘 챙겨먹을게.”“알았어.”“당장 내일 떠나는 것도 아닌데 왜 벌써 눈물일까?”벤자민이 가벼이 말하며 네리나의 눈꼬리를 훑었다. 아롱진 눈물방울이 벤자민의 손 끝에 맺혔다.“너는 내 가족이잖아. 유일한 가족.”“….”벤자민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네리나의 앞에서 신이 내린 밝은 미소를 지으며 네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맞아. 누나는 내 유일한 가족이지.”그렇게 말하는 벤자민의 얼굴에는 유독 쓸쓸함이 감돌았다.“벤자민, 어디있어?”“어디있어, 벤자민?”바깥에서 이사벨라와 에스텔라 쌍둥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리나가 끙, 하는 소리를 내고는 몸을 한껏 웅크리며 중얼거렸다.“어딨는지 알면서 왜 굳이 소리쳐서 물어본대.”“벤자민, 그 더러운 방에 있는 건 아니지?”“그건 아니지, 벤자민?”“아 벤자민~!”“빨리 나와~!”벤자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살풋 웃으며 그녀의 곁에서 몸을 일으켰다.“누나야말로 몸 건강히,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있어요.”“응, 알겠어.”“간다.”“잘가.”짧은 인사를 끝으로 벤자민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 밖에서 잠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멀어졌다.네리나가 끝내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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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 년 만의 드래곤
‘드래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을 납치해갔다.’저택으로 돌아온 기사단장이, 병사들이 본 것을 그대로 읊었다. 드래곤이 나타나 모두가 엎드려 벌벌 떨고 있을 때, 벤자민이 홀로 일어섰고, 그 뒤에는 드래곤의 발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쓸모없는 녀석들.”드완경은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애써 침착하게 서 있던 드완 부인은 기사단장이 보고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쓰러졌다.“마님!!”근처의 시녀들이 호들갑을 떨며 그녀를 부축했지만, 드완경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응접실을 나가버렸다.‘벤자민이 납치되었다.’케인, 샤인 쌍둥이와 이사벨라, 에스텔라 쌍둥이는 벤자민의 방에 모여 구슬픈 울음을 울었다. 네리나는 문가에 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내 가족을 잃었다.’그 사실이 네리나의 슬픔을 더했다. 시녀들은 쌍둥이들을 위로하며, 드래곤이니 어쩔 수 없다는 둥, 딛고 일어서야 한다는 둥, 이미 벤자민을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네리나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구하러 가자.”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벤자민을 구하러 가자고!”쌍둥이들이 벌개진 눈을 들어 네리나를 쳐다보았다. 케인이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천 년 만의 드래곤이야. 드래곤에게 잡혀간 사람을 무슨 수로 구해?”샤인이 덧붙였다.“구하러 가는 사안의 현실성은 차치하고, 형을 구해왔을 때 드래곤의 분노는 누가 감당할건데?”‘겁쟁이들.’네리나가 혀를 즈려물며 생각했다. 벌써 그런 계산까지 마친 것이 퍽 귀족가의 도련님다웠다.“네가 구하러 갈 수 있어?”“무슨 수로?”“무슨 재주로?”이사벨라와 에스텔라가 번갈아가며 말했다. 네리나가 주먹을 꾹 말아쥐고는 뒤돌아 긴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아버, 지!”서재에 도착한 네리나가 처음 내뱉은 단어에 그녀 자신도 놀라고 드완경도 놀랐다. 그의 곁에는 드완 부인도 함께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네리나를 드완경이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는 것이 그 다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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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누군가는 찾아야 한다
서재를 나온 네리나가 터벅터벅 방을 향해 가자 어디선가 나타난 케인과 샤인이 그녀의 뒷통수를 한 대씩 때리고는 키득대며 사라졌다. 이사벨라는 조각상 뒤에 숨어 있다가 발을 걸어 넘어지게 했다.‘이게 일상이었지, 참.’벤자민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들 모두는 태연해 보였다.방으로 돌아온 네리나가 홀로 생각에 빠졌다.‘나 혼자 구하러 갈 수는 없어. 어디인지도 모르고.’문득 눈에 동화책 한 권이 들어왔다. 에스텔라가 네리나의 수준에 맞는 책을 줄 테니 서재에 얼씬도 말라며 두고 간 어린이용 동화책이었다.“용사 바숨과 7인의 기사들…. 맞아, 난 동료가 필요해!”네리나는 자신을 담당하는 하녀에게 사정사정하여 큰 종이 몇 장을 구해왔다.‘원정대 모집’“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마더라.”“형을 구하러 가려고?”“엄마야!”케인이었다. 그녀의 방에, 그것도 밤에,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네리나가 화를 내려 할 때였다.“원정대를 모집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그쪽은 빈털터리나 마찬가지고.”“나, 나도 알아.”“드래곤을 죽일 거야?”불쑥 들어온 물음은 제법 진지했다. 네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벤자민만 데리고 튈거야.”“그러면 드래곤 레어의 보물들을 보상으로 내걸 수는 없겠군.”“무슨 상관이야!”“내가 상관이 없는 사람 같아?”“그러면 네가 직접 가지 그래?”“…형님이 없으면 내가 후계자야. 나는 후계자로서 가문을 지켜야 해.”케인이 우물쭈물 말했다.‘겁쟁이’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네리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어쩔 수 없지. 세계 제일의 미인을 구하러 가는 것 자체를 명예로 여기는 머저리들을 데리고 갈 수밖에.”“아이디어 고맙다, 케인. 그러면 이제 좀 꺼져줄….”“내 이름 부르지마, 썩을.”“꺼져.”“응 그러려고.”케인이 혀를 낼름 내밀고는 쿵쾅거리며 그녀의 방을 나갔다. 네리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다음날 새벽, 드완령 곳곳에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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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원정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원정대와는 이틀 후에 만나야 했다. 네리나가 이를 꽉 물었다.“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네리나가 혼자 지하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만약 내게 소설처럼 끝내주는 남자 주인공이 있었다면 나를 꺼내줬겠지, 든든한 동료들이 달려와서 구해줬겠지, 어쩌면 가족들이 나를 몰래 꺼내줄수도, 아차. 가족이 없구나.하지만 이것은 네리나의 이야기. 네리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견뎌냈다.네리나는 천장 쪽 벽돌 사이로 희미하게 드는 달빛을 보고 시간을 추정했다. 감옥에 갇힌 후 달빛이 두 번 감옥에 스몄다. 잠시 후면 곧 약속한 삼일째가 될 것이었다.‘벤자민….’동생을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드완 부인?”드완 부인이 몸의 실루엣이 훤히 비치는 슬립만을 입고 지하감옥으로 내려왔다. 네리나는 순간 첫번째 엘프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보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절망에 가득차 있었고,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네가 벤자민을 구하러 간다지?”네리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부인과의 첫번째 대화였다.“너만 벤자민을 구하러 가는구나.”눈물을 뚝뚝 흘러내린 드완 부인이 열쇠로 감옥의 문을 열었다. 네리나는 얼떨떨해하며 감옥 밖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희미한 달빛이 부인의 몸을 훑어내렸다. 자식을 잃은 어미는 짐승과도 같아서, 네리나는 그 어떤 음험한 생각도 할 수 없었다.“자, 받으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마련한 자금이다.”희고 고운 손이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금화와 크리스털화가 뒤섞여 있었다.“이걸 받아, 받고, 가서 벤자민을… 데리고 돌아와.”돌아오라고. 네리나가 입 속에서 그 말을 다시 굴려보았다. 그녀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머니를 받아들었다.부인도, 네리나도 알았다. 이것은 불가능한 퀘스트라는 것을. 하지만 둘 중 누구도 벤자민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감옥을 나선 네리나가 잽싸게 침실로 올라갔다. 드완부인은 자리에 잠시 비틀거리고는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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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지된 숲
“반가워요, 에녹.”“그러면 다 모인 건가? 더 이상 올 사람은 없는 것 같군.”“맞아요. 이제 출발할까요?”“그런데, 어디로? 아가씨는 알아?”긴의 말에 네리나가 숨을 허억 하고 들이쉬었다.그때 화살이 네리나의 발치에 꽂혔다.“이동을 중지하세요, 네리나양.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기사단장이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헤엑, 뭐야 진짜…. 왜 기사단장씩이나 보낸 거야.”네리나가 투덜거리며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화살 한 발이 더 발치에 꽂혔다.“이동을 중지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서 성으로 돌아오시죠.”“네리나양, 곱게 자란 건 아닌가보군.”“생긴 걸 보면 알잖아요.”“이런 상황에서 투덜거리는 용기가 있어? 놀랍군.”긴이 네리나에게 속닥거렸다. 오르하가 고개를 숙여 네리나에 귓가에 말했다.“이제 어떻게 할까요, 네리나양?”네리나는 엄연히 이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쉰 네리나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금지된 숲으로! 지금!”네리나가 가장 먼저 금지된 숲을 향해 뛰어갔다. 병사들은 생포가 목적인지, 화살을 무작정 쏘아대지는 않고, 말을 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헉, 헉.”가장 먼저 출발했지만 가장 뒤쳐진 네리나를 에녹이 들쳐멨다.“금지된 숲이라니, 이 원정대 싹수가 좋네.”긴이 네리나를 향해 들으라는듯 말했다.“금지된 숲? 인간들은 리르카의 숲을 그렇게 이르나 보군.”오르하가 전혀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들이 금지된 숲의 영역에 들어서자, 병사들은 더 이상 다가오기를 꺼려했다. 그들의 말조차도 자꾸만 머리를 훽 돌리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다.그때 숲이 그들을 감쌌다. 순식간에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에녹이 네리나를 내려주었다. 아직 그들은 금지된 숲의 초입인 듯했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던 네리나의 발치에 무언가 채였다.익숙한 문양의 타일이었다.“다들 나를 따라와요.”“오~ 이제야 대장같네.”“자, 자꾸 그렇게 네리나씨를 비꼬지 말아요.”“톰? 토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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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금지된 숲(2)
네리나가 덧붙이자 톰이 고개를 움찔 떨고는 눈 앞의 그림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유색 구슬끈, 짙은 빨간색 홍옥수, 밝은 파란색 라피스, 석영과 유약을 칠한 동석이 모두 그의 것이다.”“네? 그림이 글자라도 되나봐요.”“맞습니다. 이건… 고대에도 고대였던 왕국의 글자입니다, 네리나씨.”그렇게 대답한 톰이 거의 중얼거리다시피 글을 읽어내렸다.“…하여 조세르가 무사히 저승길을 건너가 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조세르…?”네리나가 무심결에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가짜문 너머,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황금빛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에녹이 네리나를 품에 안고는 뒤돌아, 빛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네리나를 제외한 일행들이 검을 꺼내고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심지어 톰마저도 부들거리는 다리를 땅 속에 박아넣을 기세로 버티고 있었다.“안녕.”빛 속에서 능글맞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리나는 아직 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안녕.”재차 의문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아,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톰이 어리숙하게 인사를 받자마자 네리나는 저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 버렸다. 에녹이 한숨을 쉬었다.“이름을 불러줘.”의문의 남자가 말했다. 톰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네리나씨, 아까 제가 말한 이름을 다시 불러보시는게….”한참 망설이던 네리나는 빛 속에서 조각상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조각상이 아니었다. 한 남자가 가짜문 너머에 서 있었다.“조세르?”그러자 빛무리가 가짜문에 새겨지듯 스며들었다. 네리나는 조각상이 있던 자리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벤자민과 견주어도 될 만큼, 위험하게 아름다운 남자였다. 검은 머리에 다홍색 눈을 한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새파란 옥으로 만든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맞아.”남자가 씨익 웃으며 가짜문을 열고 나왔다. 네리나는 기절할 만큼 놀랐다. 분명 벽에 모양만 새겨져 있던 가짜문이었는데, 웬 남자가 그 문을 열어버린 것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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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금지된 숲(3)
“젠장, 괜히 금지된 숲이 아니라고.”“긴, 긴말하지 말고 네리나부터 보호해요.”긴이 투덜대자 오르하가 그에게 핀잔을 주고는 픽 웃었다.“긴말하지 않는 긴.”“웃기냐?”그때 네리나가 인간의 덫에 걸려 절뚝거리고 있는 사슴을 발견했다. 뿔은 온통 밧줄에 걸려 있었고, 뒷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사슴이 도와달라는 듯 느린 울음을 토해냈다.“제가 저 사슴 좀 구해주고 와도 되죠?”“금지된 숲에, 인간의 덫에 걸린 사슴이라고? 수상해….”긴이 그녀를 말렸다. 에녹도 합세했다.“위험해.”“그래도 심하게 눈에 다친게 보이는 걸요. 치료를 해줄 순 없어도, 저 덫이라도 없애줘야겠어요.”사슴은 네리나의 말을 알아들은 듯, 그녀의 앞으로 와 털썩 주저앉았다. 일행들은 네리나가 덫을 해제하는 걸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참 갸륵한 마음씨를 가졌군, 네리나양은.”오르하가 이렇게 덧붙일 뿐이었다. 조세르는 알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네리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또다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운 곳이었다.일행이 네리나를 보호하듯 빙 둘러싸고는 방어 태세를 취했다. 네리나가 어깨를 팔로 감싸고는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벤자민?”벤자민이 팔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로 서 있었다. 무어라 입을 뻐끔거리며 말하는 듯한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벤자민!”기어코 네리나가 벤자민을 향해 뛰어갔다. 힘껏 그의 품에 안긴 것 같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네리나는 드완 가족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네리나가 어머니과 함께 있다가 갑자기 드완 저택으로 오게 된 날이었다. 낯선 아저씨와 아주머니, 온통 금발인 아이들까지. 네리나는 괜히 자신의 다홍색 머리카락을 매만졌다.“네리나라고 했니? 네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드완 경이 물었지만 네리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머리가 멍했다.“너는 이 집안의 첫째란다.”드완경의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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