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차별 속에서 자란 사생아인 나는, 유일하게 나를 사랑해주던 남동생이 용에게 납치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직접 원정대를 꾸린다. 제국의 금기를 어기고 쫓기는 몸이 된 나는, 불사의 남자와 함께 여정을 이어가며 용의 흔적을 쫓는다. 그러나 끝내 마주한 진실은, 동생이 자의로 용과 함께 떠났다는 것.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흔들리던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고, 잃어버린 것은 동생이 아닌 ‘나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View More네리나는 드완 가문의 첫째딸이었다. 바로 그 점이 새어머니가 그녀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이유였다. 드완 가문의 아이들보다도 나이가 많다는 점은, 적어도 드완 경이 결혼생활 중 바람을 피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드완 가문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지역에 눌러 살던 토착민의 피가 섞여 있었다. 밀빛 피부에 다홍색 머리카락이 그 증거였다. 회색이 감도는 초록빛 눈동자만은 아버지를 닮아서, 쉬이 드완 가문에 입적할 수 있었다.
뚜렷한 토착민의 외모 덕분에, 새어머니는 개를 데리고 살 듯 네리나를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하암~.”
네리나가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응접실로 나가 보니 1인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또 혼자야?”
볼을 부풀린 네리나가 살그머니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단란한 대화가 들려왔다.
“그래서요 아버님, 제가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수석을 했어요.”
“오, 그러냐? 수고 많았다.”
“샤인 너는 항상 1등이면서 뭘 또 자랑해.”
“내 마음이야, 케인!”
우아하게 식사를 음미하던 드완 부인이 말했다.
“벤자민, 멀뚱히 보고 있지 말고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렴.”
“어머니! 너무해요. 벤자민형을 끌어들이다니요!”
이어서 들리는 웃음소리까지. 완벽하게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앗차’
순간 식당에 앉아 있던 케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네리나에게 꺼지라는 제스처를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에게 키스를 날렸다.
“내 팔자에 가족이 있겠어? 아이구.”
네리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정원의 뒷뜰로 향했다.
가문에 입적된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네리나는 직접 저택 탐사에 나섰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뒷뜰의 개구멍은 그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히 넓었다.
병사들이 봤다면 기겁을 해서 그녀를 끌어 당겼겠지만, 고향 마을에서도 발이 조용하기로 소문났던 네리나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드완 가문의 서쪽은 울창한 밀림으로 뒤덮인 곳이었다. 금지된 숲과의 경계에 있어서 그런지, 가문은 특별히 서쪽 구역을 경계하지 않았다.
네리나는 밀림을 한시간 동안 쭉 걸어나갔다. 바닥에 깔린 무성한 잡초 사이 드문드문 보이는 타일을 따라 걸어가면 얕은 산이 나왔다.
네리나는 그 속의 무너진 출입구로 들어갔다. 벽화가 즐비한 복도를 지나 뒷편에 조각상을 세워둔 가짜 문 앞에 걸터앉았다.
“휴,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볼까.”
문 너머로 보이는 조각상은 사람처럼 아름답고 생기가 가득했다. 네리나는 그를 친구삼아 가져온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차, 친구한테도 나눠줘야지. 자, 여기요. 한 입 해보세요.”
비록 문 뒤에 있어서 조각상의 입가에 직접 닿을 수는 없었지만, 냉대와 멸시가 없는 이곳은 네리나에게 더욱 집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케인은 샤인보다도 나를 더 미워해요. 둘이서 누가 더 나를 싫어하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드완 부인이 오늘은 인사를 받아줄까요?”
“아, 엄마 보고 싶다.”
“벤자민은 그래도 착해요. 나를 같은 사람으로 봐주거든.”
네리나는 조각상을 등지고 집에서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하나하나씩 꺼내어 놓았다. 그렇게 있으면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가곤 했다.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가야 했다. 자신이 침실에 없다면, 저녁 담당 하녀가 시녀에게 말할 것이고, 시녀는 시녀장에게, 시녀장은 드완 부인에게 자신의 행실을 일러바칠 테니 말이었다. 네리나는 자신에게 시녀가 배정되지 않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지 못했다.
뭐,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식사가 줄어드는 것은 곤란했다.
“이만 갈게요. 또 올게요, 아저씨.”
네리나는 조각상에게 인사를 전하고 밀림을 다시금 빠져나왔다. 저택의 개구멍으로 살금살금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또 나갔다가 온거야?”
벤자민이었다. 신께서 직접 꿀과 우유, 설탕 따위를 함께 넣어 빚은 것만 같은, 볼 때마다 황홀하게 생긴 첫째 남동생이었다.
금발이 귓가에서 찰랑거렸고, 초록색 수정을 품은 눈은 그녀와 다르게 따뜻함이 넘실거렸다. 그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하루종일 찾아다녔잖아요.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거야?”
“나를 기다렸어?”
“왜 처음 듣는 말인것처럼 굴지? 난 매일 기다려요. 나가는 건 누나잖아.”
네리나는 기다린다는 말을 음미하느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를 보는 벤자민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케인이야? 아니면 샤인이야?”
“응?”
“누나가 힘들 때마다 나가는 거 알아. 그래서, 오늘은 둘 중 누구야?”
“음.”
네리나는 당장이라도 벤자민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내 시야에 드완 부인이 들어왔다.
“드완부인을 뵙습니다.”
“….”
벤자민에게 아름다움을 물려준 이 여자, 그녀에게 이름을 허락하지 않는 드완 부인은 눈을 느리게 한 번 깜빡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가 네리나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드완부인은 곧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벤자민에게 말을 건넸다.
“젠장, 괜히 금지된 숲이 아니라고.”“긴, 긴말하지 말고 네리나부터 보호해요.”긴이 투덜대자 오르하가 그에게 핀잔을 주고는 픽 웃었다.“긴말하지 않는 긴.”“웃기냐?”그때 네리나가 인간의 덫에 걸려 절뚝거리고 있는 사슴을 발견했다. 뿔은 온통 밧줄에 걸려 있었고, 뒷다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사슴이 도와달라는 듯 느린 울음을 토해냈다.“제가 저 사슴 좀 구해주고 와도 되죠?”“금지된 숲에, 인간의 덫에 걸린 사슴이라고? 수상해….”긴이 그녀를 말렸다. 에녹도 합세했다.“위험해.”“그래도 심하게 눈에 다친게 보이는 걸요. 치료를 해줄 순 없어도, 저 덫이라도 없애줘야겠어요.”사슴은 네리나의 말을 알아들은 듯, 그녀의 앞으로 와 털썩 주저앉았다. 일행들은 네리나가 덫을 해제하는 걸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참 갸륵한 마음씨를 가졌군, 네리나양은.”오르하가 이렇게 덧붙일 뿐이었다. 조세르는 알수없는 미소를 지으며 네리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또다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운 곳이었다.일행이 네리나를 보호하듯 빙 둘러싸고는 방어 태세를 취했다. 네리나가 어깨를 팔로 감싸고는 덜덜 떨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벤자민?”벤자민이 팔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로 서 있었다. 무어라 입을 뻐끔거리며 말하는 듯한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벤자민!”기어코 네리나가 벤자민을 향해 뛰어갔다. 힘껏 그의 품에 안긴 것 같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네리나는 드완 가족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네리나가 어머니과 함께 있다가 갑자기 드완 저택으로 오게 된 날이었다. 낯선 아저씨와 아주머니, 온통 금발인 아이들까지. 네리나는 괜히 자신의 다홍색 머리카락을 매만졌다.“네리나라고 했니? 네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드완 경이 물었지만 네리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머리가 멍했다.“너는 이 집안의 첫째란다.”드완경의 목소
네리나가 덧붙이자 톰이 고개를 움찔 떨고는 눈 앞의 그림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유색 구슬끈, 짙은 빨간색 홍옥수, 밝은 파란색 라피스, 석영과 유약을 칠한 동석이 모두 그의 것이다.”“네? 그림이 글자라도 되나봐요.”“맞습니다. 이건… 고대에도 고대였던 왕국의 글자입니다, 네리나씨.”그렇게 대답한 톰이 거의 중얼거리다시피 글을 읽어내렸다.“…하여 조세르가 무사히 저승길을 건너가 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조세르…?”네리나가 무심결에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가짜문 너머,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황금빛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에녹이 네리나를 품에 안고는 뒤돌아, 빛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했다. 네리나를 제외한 일행들이 검을 꺼내고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심지어 톰마저도 부들거리는 다리를 땅 속에 박아넣을 기세로 버티고 있었다.“안녕.”빛 속에서 능글맞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리나는 아직 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안녕.”재차 의문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아,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톰이 어리숙하게 인사를 받자마자 네리나는 저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 버렸다. 에녹이 한숨을 쉬었다.“이름을 불러줘.”의문의 남자가 말했다. 톰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네리나씨, 아까 제가 말한 이름을 다시 불러보시는게….”한참 망설이던 네리나는 빛 속에서 조각상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조각상이 아니었다. 한 남자가 가짜문 너머에 서 있었다.“조세르?”그러자 빛무리가 가짜문에 새겨지듯 스며들었다. 네리나는 조각상이 있던 자리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벤자민과 견주어도 될 만큼, 위험하게 아름다운 남자였다. 검은 머리에 다홍색 눈을 한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새파란 옥으로 만든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맞아.”남자가 씨익 웃으며 가짜문을 열고 나왔다. 네리나는 기절할 만큼 놀랐다. 분명 벽에 모양만 새겨져 있던 가짜문이었는데, 웬 남자가 그 문을 열어버린 것이었다.
“반가워요, 에녹.”“그러면 다 모인 건가? 더 이상 올 사람은 없는 것 같군.”“맞아요. 이제 출발할까요?”“그런데, 어디로? 아가씨는 알아?”긴의 말에 네리나가 숨을 허억 하고 들이쉬었다.그때 화살이 네리나의 발치에 꽂혔다.“이동을 중지하세요, 네리나양.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기사단장이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헤엑, 뭐야 진짜…. 왜 기사단장씩이나 보낸 거야.”네리나가 투덜거리며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화살 한 발이 더 발치에 꽂혔다.“이동을 중지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서 성으로 돌아오시죠.”“네리나양, 곱게 자란 건 아닌가보군.”“생긴 걸 보면 알잖아요.”“이런 상황에서 투덜거리는 용기가 있어? 놀랍군.”긴이 네리나에게 속닥거렸다. 오르하가 고개를 숙여 네리나에 귓가에 말했다.“이제 어떻게 할까요, 네리나양?”네리나는 엄연히 이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쉰 네리나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말했다.“금지된 숲으로! 지금!”네리나가 가장 먼저 금지된 숲을 향해 뛰어갔다. 병사들은 생포가 목적인지, 화살을 무작정 쏘아대지는 않고, 말을 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헉, 헉.”가장 먼저 출발했지만 가장 뒤쳐진 네리나를 에녹이 들쳐멨다.“금지된 숲이라니, 이 원정대 싹수가 좋네.”긴이 네리나를 향해 들으라는듯 말했다.“금지된 숲? 인간들은 리르카의 숲을 그렇게 이르나 보군.”오르하가 전혀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들이 금지된 숲의 영역에 들어서자, 병사들은 더 이상 다가오기를 꺼려했다. 그들의 말조차도 자꾸만 머리를 훽 돌리며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다.그때 숲이 그들을 감쌌다. 순식간에 병사들이 보이지 않았다. 에녹이 네리나를 내려주었다. 아직 그들은 금지된 숲의 초입인 듯했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던 네리나의 발치에 무언가 채였다.익숙한 문양의 타일이었다.“다들 나를 따라와요.”“오~ 이제야 대장같네.”“자, 자꾸 그렇게 네리나씨를 비꼬지 말아요.”“톰? 토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원정대와는 이틀 후에 만나야 했다. 네리나가 이를 꽉 물었다.“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걸까.”네리나가 혼자 지하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만약 내게 소설처럼 끝내주는 남자 주인공이 있었다면 나를 꺼내줬겠지, 든든한 동료들이 달려와서 구해줬겠지, 어쩌면 가족들이 나를 몰래 꺼내줄수도, 아차. 가족이 없구나.하지만 이것은 네리나의 이야기. 네리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견뎌냈다.네리나는 천장 쪽 벽돌 사이로 희미하게 드는 달빛을 보고 시간을 추정했다. 감옥에 갇힌 후 달빛이 두 번 감옥에 스몄다. 잠시 후면 곧 약속한 삼일째가 될 것이었다.‘벤자민….’동생을 생각하던 바로 그때였다.“드완 부인?”드완 부인이 몸의 실루엣이 훤히 비치는 슬립만을 입고 지하감옥으로 내려왔다. 네리나는 순간 첫번째 엘프가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보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절망에 가득차 있었고,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네가 벤자민을 구하러 간다지?”네리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부인과의 첫번째 대화였다.“너만 벤자민을 구하러 가는구나.”눈물을 뚝뚝 흘러내린 드완 부인이 열쇠로 감옥의 문을 열었다. 네리나는 얼떨떨해하며 감옥 밖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희미한 달빛이 부인의 몸을 훑어내렸다. 자식을 잃은 어미는 짐승과도 같아서, 네리나는 그 어떤 음험한 생각도 할 수 없었다.“자, 받으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마련한 자금이다.”희고 고운 손이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금화와 크리스털화가 뒤섞여 있었다.“이걸 받아, 받고, 가서 벤자민을… 데리고 돌아와.”돌아오라고. 네리나가 입 속에서 그 말을 다시 굴려보았다. 그녀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머니를 받아들었다.부인도, 네리나도 알았다. 이것은 불가능한 퀘스트라는 것을. 하지만 둘 중 누구도 벤자민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감옥을 나선 네리나가 잽싸게 침실로 올라갔다. 드완부인은 자리에 잠시 비틀거리고는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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