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구원이자 파멸이었던 황태자 아이아스와 황녀 아델. 오직 아델 앞에서만 무릎을 꿇는 오만한 황태자. 천진난만한 미소 뒤에 잔혹한 소유욕을 감추고 그의 영혼을 잠식해가는 지배자, 아델. 찬란한 황금빛 제국,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추악하고도 매혹적인 '금기'가 흐르고 있다.
Ver más이 거대한 궁정의 밤은 언제나 균열 없이 완벽했다.
창밖으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은 황금빛 황궁을 유령처럼 차갑게 비추었지만, 이 빛조차 닿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레위는 홀로 침잠했다.
그의 처소는 침실이라기보다 거대한 관(棺)에 가까웠다.
마흔이 넘은 나이의 황제.
제국의 가장 강력한 심장인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끓어오르는 권력의 열기가 아닌, 영원히 녹지 않는 빙하의 냉기였다.
16년 전 그날, 유리디체 황후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그때 레위의 영혼도 함께 부서져 내렸다.
세상은 유능하고 냉철한 황제의 가면만을 보았지만, 그 가면 아래의 실체는 매일 밤마다 들이키는 독한 술과 진정제의 쓴맛으로 겨우 지탱되는 공허한 허물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에 앉아 황제는 늘 그렇듯 텅 빈 허공을 응시했다.
황태자 아이아스와 똑같이 차가운 하늘색 눈이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심해처럼 허무함만이 맴돌았다.
깊은 피로로 인해 왼쪽 눈 밑의 흉터는 더욱 선명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흉터는 단순한 육체의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이성의 경계에 내려앉은 균열이었고, 그의 정신병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어두운 표식이었다.
“...유리디체.”
환영이었다.
혹은 유령.
발코니의 난간끝에 위태롭게 서서 길고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던 그녀의 모습.
그리고 그 차가운 얼굴에 드리웠던, 그를 향한 뼛속 깊은 증오와 경멸.
그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서 선명하게 재현되었다.
레위는 목이 타는 갈증에 허우적거리며 협탁 위의 술잔을 집어 들었다.
알코올이 타는 듯한 고통을 주며 식도를 넘어갈 때마다 환영은 잠시 희미해졌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진정제를 잔뜩 삼켜야만 그는 겨우 몇 시간의 피폐한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침실은 생명력이 모두 빨려나간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아침 해가 궁정의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황제의 처소를 깨우는 순간이 있었다.
레위가 겨우 생기를 되찾는 순간.
그것은 오직 아델 드 에스테반 황녀를 만날 때뿐이었다.
아델은 그의 황궁에 드리워진 긴 밤을 끝내는 새벽별과 같았다.
레위는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딸의 처소로 향했다.
성년이 된 아델은 실로 눈부셨다.
레위를 전혀 닮지 않고, 죽은 황후를 그대로 빼다 박은 외모.
길게 구불치는 밤하늘처럼 검은 흑발, 빛나는 회색 눈, 그리고 흠잡을 데 없이 눈처럼 새하얀 피부.
레위는 그녀를 볼 때마다 과거의 죄와 현재의 구원을 동시에 느꼈다.
만약 유리디체가 선황의 학대를 받지 않고, 그에게 강간당하는 비극을 겪지 않았다면.
이토록 귀한 황녀로 애지중지 자랐다면, 아마도 아델처럼 찬란하게 빛났을 것이다.
“아바마마!”
아델이 해맑게 웃으며 그에게 달려왔다.
표정과 손짓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사랑스러움과 천진난만함이 레위의 공허한 눈동자에 잠시나마 생기를 불어넣었다.
우아하고 가냘픈 몸은 훌쩍 자랐지만, 여전히 그에게는 손 안의 작은 새와 같았다.
레위는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딸을 안아 올렸다.
“잘 잤니, 나의 아델. 밤새 악몽은 꾸지 않았고?”
“네! 아바마마께 선물해주신 예쁜 인형이랑 같이 잤더니 좋은 꿈을 꿨어요.”
레위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평소처럼 화장대 앞에 앉혔다.
오늘 아침, 다른 시녀들은 모두 물러났다. 레위가 직접 딸의 머리를 만져줄 차례였다.
그는 빗을 들어 조심스럽게 아델의 흑발을 빗었다.
굵고 풍성한 검은 머리채가 그의 거친 손가락 사이로 비단처럼 흘러내렸다.
이 의식은 레위에게 단순한 부성애를 넘어선, 과거와의 연결고리이자 속죄의 행위였다.
옛날에, 아주 어릴 적에, 유리디체의 머리를 땋아주던 때처럼.
증오와 멸시만이 가득했던 죽은 아내의 얼굴이, 지금은 순수한 애정과 신뢰로 가득한 아델의 얼굴로 바뀌었다.
레위는 천천히 그러나 섬세하게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황제의 서명을 휘갈기던 손이 아닌, 과거의 상실과 현재의 헌신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손과 같았다.
“오늘 다과회에 미하엘이 온다고 했지. 불편하면 말하렴. 짐은 억지로는 네 곁에 누구도 두지 않을 것이다.”
아델은 그의 손길을 즐기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바마마. 미하엘은 좋은 사람인걸요. 하지만... 저는 평생 아바마마와 오빠 곁에서 함께 살고 싶어요.”
그녀의 말은 순수한 애교였지만 레위의 심장에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평생...
딸에게는 이 제국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레위에게 그 말은 절대적인 헌신을 향한 족쇄이자 그가 살아야할 유일한 이유였다.
아델의 부탁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심지어 이깟 황제의 자리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다.
레위가 잠들지 못하는 밤.
황궁의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아스 드 에스테반 황태자가 깨어 있었다.
갓 스물을 넘긴 아이아스는 아버지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
훤칠하게 큰 키와 차가운 인상.
그러나 레위보다 조금 더 호리호리한 체형이었고, 아버지처럼 눈 밑에 깊게 패인 흉터가 없다는 점만이 그들을 구분하는 유일한 차이였다.
아이아스의 밝은 하늘색 눈은 레위의 눈을 그대로 빼닮았으나 공허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고귀한 혈통과 황태자의 지위에서 우러나는 우아함, 오만함, 그리고 냉랭함만이 가득했다.
그의 성격은 아버지를 닮아 총명하고 냉철했지만, 레위가 가진 어딘가 천박하고 무례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태생부터 완벽한 황태자였다.
그의 방은 서늘했다.
아이아스는 창가에 기대어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어둠에 잠긴 정원에 멈추지 않고, 언제나처럼 멀리 떨어진 아델의 처소에 닿아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애정과 다정함을 쏟는 대상은 하나뿐인 여동생 아델뿐이었다.
그의 아델을 향한 애정은 이제 잘못된 집착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들었다.
극도로 화가 났을 때 때조차, 아이아스는 아델에게만큼은 완벽하게 자상하고 다정한 오빠를 연기했다.
아버지에게는 철저하게 예의를 갖추고 ‘폐하’라고 부를 뿐 친부자 사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냉담했지만, 아델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불렀다.
아이아스는 길쭉한 손가락을 천천히 펴보았다.
이 손으로, 그는 매일 밤 그녀의 침실에 몰래 들어갔다.
달빛이 비추는 아델의 침실은 신전처럼 고요했다.
아델은 새하얀 이불 속에 파묻혀 깊은 잠에 빠졌다.
아이아스는 그녀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눈은 여동생의 자는 얼굴을 응시하며 끓어오르는 갈망과 갈증으로 채워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소중한 것을 만지듯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 끝에 닿은 아델의 입술은 붉은 장미의 꽃잎처럼 섬세하고 보드라웠다.
나의 아델.
아이아스의 심장은 고요한 정욕 속에서 폭주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순수하며 너무나 자신에게만 의존했다.
이 완벽한 존재를 향한 그의 갈망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렬했다.
그것은 순수한 오빠의 감정을 넘어선, 소유욕과 독점욕으로 뒤섞인 어둠이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위험한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의 냉철한 이성을 마비시켰다.
“나는 네가 필요해, 아델.”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낮고 쉰 목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는 손가락을 천천히 떼어냈고, 공허한 만족감과 더욱 커진 갈증을 동시에 느끼며 아델이 깨기 전에 그림자처럼 그녀의 방을 떠났다.
다음날 오후, 황궁 정원의 작은 벤치에 아델과 레오노라가 앉았다.아델은 아이아스가 선물한 자수 책을 펼쳐 보며 레오노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레아, 이 금실 색깔 좀 봐. 정말 아름답지 않아? 오빠는 어떻게 이런 걸 다 구했을까?”아델은 레오노라를 ‘레아’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거리낌 없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레오노라에게 이 친근함은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 귀한 것이었다.“네, 황녀님. 황태자 전하께서는 황녀님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 없는 것도 만들어내실 분이니까요.”레오노라는며 아델의 반응을 살폈다.그녀의 헤이즐넛색 눈동자는 아델의 해맑은 얼굴을 쫓았지만, 그 시선 속에는 아이아스에 대한 미묘한 질투의 씨앗이 숨겨져 있었다.레오노라의 사랑은 아델에게만 향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델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는 두 남자, 황제와 황태자 아이아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이아스의 독선적인 태도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있잖아, 레아. 아바마마는 어릴 적에 내 머리를 매일 땋아주셨어. 오빠도 어릴 적에는 내 장난을 다 받아줬는걸.”아델은 행복하게 웃으며 과거를 회상했다.그녀에게 아버지와 오빠의 맹목적인 애정은 공기처럼 당연했고, 그들의 헌신은 당연하게 끝없이 샘솟는 샘물과 같았다.“폐하께서 매일 황녀님의 머리를 땋아주셨다니, 정말 엄청난 사랑이에요.”레오노라는 진심으로 감탄했다.그녀는 그 깊고 병적인 부성애와 형제애의 본질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것은, 아델이 이 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뿐이었다.아이아스는 정원의 문 가까이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그는 레오노라와 공식적인 약혼식을 앞둔 약혼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다정한 눈길을 준 적이 없었다.그에게 레오노라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약혼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의 시선은 오직 아델에게만 고정되었다.아이아스의 차가운 눈빛이 레오노라에게 닿았다.레오노라는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황태자는 그녀를 아델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
밤이 다시 찾아왔다.화려한 외관과 무관하게, 황제의 침소는 늘 차갑고 축축한 어둠 속에 잠겼다.황제는 서재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그 유능함은 오직 낮의 가면을 위한 것이었다.일을 끝낸 그의 정신은 곧장 심연으로 추락했다.레위의 처소에는 흑단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침대가 놓였다.그는 그 침대에 기댄 채 술과 진정제가 담긴 은쟁반을 노려보았다.독한 술은 그의 혀를 태웠고 진정제는 신경을 마비시켰다. 이 두 가지 물질만이 그의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그의 눈동자는 아이아스와 똑같은 밝은 하늘색이었으나, 피로와 고통으로 빛을 잃고 텅 비었다.마치 고요한 얼음 호수 아래 모든 생명체가 질식해 죽은 것처럼.눈 밑 흉터는 짙은 그림자가 되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졌다.공허한 눈빛은 그의 이성이 무너지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장이었다.“내가... 널 어떻게 해야 했지, 유리디체.”그는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메말랐다.황제는 가득 채운 술잔을 들어 목구멍에 들이부었다.불타는 듯한 감각이 잠시나마 그의 마음속 공허함을 채워주었다.술잔을 내려놓았을 때, 눈앞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이 아른거렸다.유리디체.그녀의 머리칼은 밤의 벨벳처럼 짙었고 길게 물결쳤다.아델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달랐다.아델의 얼굴이 순수한 햇빛이라면 유리디체의 얼굴은 달빛처럼 차가운 그림자였다.회색 눈동자는 그를 향한 절대적인 멸시와 경멸로 빛났다.“영원히 너를 저주한다, 레위.”환청이 귓가에 울렸다.레위는 괴로운 신음과 함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는 이 환영이 진정제에 취한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허상임을 알았지만, 그 목소리의 생생함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거짓말 마라! 나는 널 사랑했다! 너를 그 더러운 지옥에서 구원해 내려고 했지!”레위가 소리쳤다. 그의 외침은 텅 빈 처소에 메아리쳤고, 황제의 위엄을 산산조각 냈다.환영 속의 유리디체는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구원? 당신의
다음날 오후 황녀궁의 백합 온실에서 소규모의 다과회가 열렸다. 아델의 생일 즈음을 기념해 황제가 또래의 귀족 영애들을 모아 열어준 자리였다.레위와 아이아스가 준 생일 선물만으로도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지경이라 아델은 선물을 뜯어보는 일에 이미 지쳐버렸다.그녀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선물의 가치보다,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남자—아버지와 오빠—가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광적인 애정과 헌신 그 자체였다.온실은 만개한 백합 향으로 가득했다. 아델의 바로 옆에는 그녀의 놀이친구이자 황태자 아이아스의 약혼녀인 레오노라 폰 밀라이터가 앉았다.“황녀님께서는 정말 축복의 별 아래에서 태어나신 분 같아요.”레오노라가 아델을 향해 말했다. 그녀의 커다란 헤이즐넛색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동경과 열렬한 애정이 담겼다.레오노라는 아델보다 키가 조금 작았지만, 오빠 미하엘을 닮은 긴 금발 곱슬머리가 햇빛 아래서 빛나는 미인이었다.그녀의 상냥한 성품은 아델의 해맑음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레아, 재미있는 표현이네. 정말 그렇게 보여?”아델이 상냥하게 대꾸하며 레오노라의 손을 잡았다.“네. 아델님은 천사처럼 아름다우시고... 제국에서 가장 고귀하신 분이시니까요.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께서는 황녀님이 원하신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실 분이시잖아요. 황녀님의 남편이 되실 분은 이 제국에서 가장 행운아이실 거예요.”레오노라의 목소리에는 한 점의 질투도 없었다. 오직 순수한 숭배만이 존재했다.사실, 레오노라는 아이아스와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나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그녀의 모든 애정과 열망은 오직 아델 황녀에게만 쏠렸다.아델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녀의 가족이 될 수 있다면 아이아스의 차가운 무관심이나 어떤 굴욕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그녀에게 아이아스는 아델에게 다가가는 ‘통로’에 불과했다.“어머, 나는 평생 아바마마와 함께 살고 싶은걸.”아델이 농담처럼 말했다.레오노라는 웃었지만 그 웃음 뒤로 미묘한 안도감을 느꼈다.아델이 결혼을 늦추거
이 거대한 궁정의 밤은 언제나 균열 없이 완벽했다.창밖으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은 황금빛 황궁을 유령처럼 차갑게 비추었지만, 이 빛조차 닿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레위는 홀로 침잠했다.그의 처소는 침실이라기보다 거대한 관(棺)에 가까웠다.마흔이 넘은 나이의 황제.제국의 가장 강력한 심장인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끓어오르는 권력의 열기가 아닌, 영원히 녹지 않는 빙하의 냉기였다.16년 전 그날, 유리디체 황후가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그때 레위의 영혼도 함께 부서져 내렸다.세상은 유능하고 냉철한 황제의 가면만을 보았지만, 그 가면 아래의 실체는 매일 밤마다 들이키는 독한 술과 진정제의 쓴맛으로 겨우 지탱되는 공허한 허물이었다.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에 앉아 황제는 늘 그렇듯 텅 빈 허공을 응시했다.황태자 아이아스와 똑같이 차가운 하늘색 눈이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심해처럼 허무함만이 맴돌았다.깊은 피로로 인해 왼쪽 눈 밑의 흉터는 더욱 선명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다.흉터는 단순한 육체의 상처가 아니었다.그것은 그의 이성의 경계에 내려앉은 균열이었고, 그의 정신병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어두운 표식이었다.“...유리디체.”환영이었다.혹은 유령.발코니의 난간끝에 위태롭게 서서 길고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던 그녀의 모습.그리고 그 차가운 얼굴에 드리웠던, 그를 향한 뼛속 깊은 증오와 경멸.그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서 선명하게 재현되었다.레위는 목이 타는 갈증에 허우적거리며 협탁 위의 술잔을 집어 들었다.알코올이 타는 듯한 고통을 주며 식도를 넘어갈 때마다 환영은 잠시 희미해졌다.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진정제를 잔뜩 삼켜야만 그는 겨우 몇 시간의 피폐한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그의 침실은 생명력이 모두 빨려나간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아침 해가 궁정의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황제의 처소를 깨우는 순간이 있었다.레위가 겨우 생기를 되찾는 순간.그것은 오직 아델 드 에스테반 황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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