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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애월섬
연채린은 비웃는 표정으로 편지를 한 글자씩 읽어내려갔다.

“지훈 오빠, 저는 항상 뒤에서 오빠를 지켜보고 있어요. 이런 저를 뒤돌아 봐줄 수 있나요?”

연채린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현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것은 확실히 그녀가 쓴 것이다. 환생하기 전에, 연지훈에게 허황한 환상을 품고 있을 때 쓴 편지였다.

다만 그녀는 늘 연애편지를 잘 숨겨두었기에 연지훈의 방에 편지를 둘 리가 없었다.

단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누군가가 훔쳐서 연지훈의 방에 넣은 것이었다.

그건 연채린일 수도 있고 유이영일 수도 있다.

“됐어, 그만해.”

연지훈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분노가 잠겨 있었고 눈가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연채린은 차갑게 웃으며 입을 다물고 혐오스러운 듯 편지를 서현주의 품에 찔러 넣었다.

환생한 서현주조차도 연지훈의 이런 눈빛을 보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온몸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서현주, 뭐라고 설명해봐야지?”

이때 유이영이 갑자기 연지훈의 팔을 잡아끌며 부드럽게 말했다.

“현주 씨가 아직 애라서 그래요, 지훈 씨.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화 좀 풀어요. 다만...”

유이영이 연민이 스친 눈빛으로 서현주를 쳐다봤다.

“현주 씨 공부에 집중하고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도록 잘 가르쳐 줄 필요는 있겠네요.”

연지훈은 냉랭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현주, 제발 그런 더러운 생각 좀 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 주제넘게 굴지 마.”

서현주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난 이 편지 이 방에 둔 적 없어요. 딴 사람 짓일 거예요.”

연채린이 실소를 터트렸다.

“뭐라고요? 이 집에서 현주 씨처럼 뻔뻔한 인간이 또 어디 있는데요? 이런 짓거리로 오빠랑 이영 언니 떼어놓으려는 수작이잖아요.”

서현주는 그녀의 말을 아예 무시했다.

그러고는 연지훈의 싸늘한 눈빛을 똑바로 쳐다봤다.

“연지훈 씨! 제가 잘못했어요. 이런 오해가 없도록 명확하게 말했어야 하는데.”

연지훈은 여전히 냉랭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잘 들어요. 난 진짜 연지훈 씨한테 관심 없어요. 더는 지훈 씨 안 좋아한다고요.”

유이영의 어깨에 얹었던 연지훈의 손가락이 살짝 꿈틀거렸다.

유이영은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 남자가 서현주를 빤히 쳐다보자 유이영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서현주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전에는 내가 잘못했어요. 눈이 멀어서 그토록 뻔뻔스럽게 지훈 씨를 좋아했나 봐요. 이제 반성하고 고칠 거예요. 앞으로는 절대 이런 역겨운 생각 따위 안 해요. 지훈 씨랑 무조건 안전거리 유지하고 귀찮게 굴지도 않을게요.”

연지훈을 향한 마음이 역겹다고 직접 인정하니 서현주는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줄곧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어리가 쑥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연지훈을 쳐다보다가 본인마저 잊고 있던 연애편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남자 앞에서 직접 갈가리 찢었다.

연지훈은 꼭 마치 뒤이은 그녀의 말을 막으려 하는 듯했다.

“현주야.”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요. 앞으로 연지훈 씨랑은 선을 확실히 그을게요.”

말을 끝낸 그녀는 연지훈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 바람에 이 남자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놀란 기색이 스친 눈빛과 굳게 다문 입, 찌그린 눈썹까지...

다시 허리를 펴자 유이영과 연채린이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방 안에는 오직 그녀와 연지훈만 남았다.

서현주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제야 그녀는 이 사건 뒤에 숨겨진 음모를 깨달았다.

잽싸게 몸을 돌렸지만 방 문이 쾅 닫히고 방 전체가 침묵에 잠겼다.

그녀는 연지훈의 반응을 살필 겨를 없이 문 앞으로 달려가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돌리며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몇 번 돌리자 문고리가 갑자기 떨어져 나가 그녀의 손안에 꽉 잡혔다.

문고리가 또 고장 나다니.

전생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서현주는 심장이 쿵쾅대고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뒤에서 연지훈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정말이지 유이영은 완벽하게 시간을 조절했다.

연지훈의 몸 안에서 약효가 발작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서현주는 좀 전에 입장 표명도 명확하게 했고 마셨던 주스도 전부 토해낸 걸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그녀는 몸을 돌려 문에 등을 기댄 채 경계하는 눈길로 연지훈을 바라보았다.

연지훈은 침대 가장자리에 기대앉아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귀밑까지 붉어지고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으며 발작하는 약효를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서현주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경계심을 품고서 문손잡이를 꽉 잡았다.

만약 연지훈이 달려든다면 그녀는 손안의 문고리로 세게 내리칠 생각이었다.

“지훈 씨, 문이 고장 나서 열리지 않아요. 곧 사람들이 와서 문을 열어줄 테니 진정하고 있어요.”

연지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찡그린 미간을 보자 서늘했던 남자의 눈가에 핏기가 돌았다. 그는 입술을 앙다물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나 중독된 거 알고 있었어?”

대놓고 의심하는 그의 눈빛에 서현주는 불편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날 의심할 바엔 주스를 준 유이영 씨나 의심하세요!”

연지훈은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충혈된 두 눈과 이마에 튀어 오른 실핏줄, 그는 마치 이성을 잃어가는 짐승 같았다.

서현주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은 점점 더 세게 쥐었다.

오랜 침묵 끝에 연지훈이 고개를 숙이고 마디가 선명한 손가락을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손등에 튀어 오른 실핏줄도 애써 무언가를 참는 것만 같았다.

서현주는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유이영은 분명 맹독한 약을 탔을 것이다. 이런 약은 연지훈처럼 절제력이 강한 사람조차도 약효 때문에 이성을 완전히 잃게 된다.

지금으로선 유이영이 빨리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시간이 1분 1초 흘렀지만 연지훈은 오랫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서현주는 겨우 안심하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조용한 방에서 기침 소리가 유독 더 크게 들렸다.

다음 순간, 연지훈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두 눈이 충혈된 채 먹이를 쫓는 야수처럼 그녀를 째려보다가 긴 다리를 뻗어 한 걸음씩 서현주에게 다가갔다.

서현주는 두 눈을 부릅뜨고 문손잡이를 번쩍 들었다.

곧이어 연지훈이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안쪽을 세게 꼬집었다.

격렬한 고통에 그녀는 손을 놓았고 문손잡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때 연지훈이 그녀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이어서 침대에 쾅 하고 내던졌다.

서현주는 재빨리 일어나서 자신에게 덮쳐드는 연지훈을 향해 베개를 던졌다.

“진정해요, 나 현주예요, 서현주라고요!”

하지만 연지훈은 갑자기 달려들어 커다란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몸으로 그녀를 짓눌렀다.

어둠 속에서 연지훈의 혼란스럽고 붉게 물든 눈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꾹 눌러댔다. 뜨거운 혀가 두 입술을 갈라놓았다.

그 순간, 서현주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연지훈의 배를 걷어찼다.

이 남자가 고통스러워할 때 서현주는 힘껏 꿈틀거리며 그의 몸 아래에서 기어 나와 욕실로 달려갔다.

문손잡이에 손이 닿는 순간, 연지훈이 뒤에서 달려들어 그녀를 문에 밀어붙였다.

그가 허리를 더듬자 서현주는 이를 악물었다.

“지훈 씨,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연지훈은 목소리가 다 잠겼고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뺨에 전해졌다. 그는 큼직한 두 손으로 서현주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왜 도망쳐?”

서현주는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요? 나 유이영 아니에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연지훈의 뜨거운 뺨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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