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有

제8화

作者: 애월섬
“도망갈 생각 마.”

서현주는 이를 갈았다.

연지훈은 역시나 그녀를 유이영으로 착각하고 이토록 미쳐 발광하고 있었다.

그가 옷 속으로 손을 뻗으려 하자 서현주는 온몸으로 거부하며 팔꿈치로 그의 가슴팍을 내리쳤다.

“손대지 마!”

서현주는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

“역겨워 진짜.”

연지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곧이어 그의 거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뭐라고?”

서현주는 이를 갈았다.

“너 진짜 역겹다고, 연지훈!”

연지훈은 잠시 침묵하더니 곧바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 분노에 찬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닥쳐!”

이어서 서현주의 상의를 걷어 올리며 뜨거운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더듬었다.

서현주는 절망에 휩싸인 채 욕실 문에 머리를 맞댔다.

등 뒤에는 늑대처럼 달려드는 연지훈이 있어서 꼼짝달싹하지도 못했다.

설마 또 전생의 비극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하늘이 그녀를 돕는 건지도 몰랐다. 그때 마침 방 문이 자동으로 벌컥 열렸다.

그 순간 서현주는 온 힘을 다해 연지훈을 밀어내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는 문을 세게 닫았다.

정신없이 몇 걸음 뛰다가 유이영과 연채린과 마주쳤다.

유이영은 그녀를 보자 저도 몰래 목소리를 높였다.

“현주 씨,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서현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난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유이영은 불쑥 그녀의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다그치듯 물었다. 손톱은 살을 파고 들어갈 기세였다.

“현주 씨 입술이 왜 이렇게 빨개요? 지훈 씨랑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서현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난 절대 이영 씨 남자를 넘보지 않아요.”

연채린이 피식 웃었다.

“그걸 누가 장담해요? 현주 씨는 원래 뻔뻔스러운 여자잖아요. 내 말 틀려요?”

서현주는 그런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계속 유이영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연지훈 씨 지금 많이 힘들어하는데 들어가서 함께해주는 건 어때요? 어쩌면 오늘 밤이 지나면 두 사람 다시 합칠 수도 있을 텐데...”

유이영의 얼굴이 서서히 빨개졌다. 그녀는 곧장 손을 놓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연지훈이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서현주는 유이영이 그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문이 닫혔다.

예외가 없다면 오늘 밤 연지훈은 그가 항상 원하던 유이영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올 테니까.

그녀와 연지훈 사이의 악연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

이제 이 남자와 철저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서현주의 목표는 단 하나, 연하나의 목숨을 앗아간 인간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복수를 방해하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겨냥할 것이다.

그것이 연지훈, 더 나아가 연씨 가문일지라도.

서현주가 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연채린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다시 잡았다.

“현주 씨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서현주는 거침없이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신경 꺼요.”

연채린은 안색이 일그러졌다.

서현주가 달라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연채린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통제도 안 되고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연채린은 이유 없이 초조해졌다.

서현주는 방으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한참 머물렀다. 연지훈이 만졌던 곳을 씻고 또 씻었다. 하얀 피부가 빨갛게 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번 생은 마침내 달라졌다.

전생에 그녀는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연지훈의 창문에 비친 두 사람의 실루엣을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푹신한 침대에 홀가분하게 누워 있었다.

그렇게 편안한 하룻밤을 보낸 뒤, 서현주는 책가방을 메고 계단을 내려왔다.

아침 식탁에는 연동욱와 연채린만 있을 뿐 연지훈과 유이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의 대혼란으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서현주는 평소와 같이 연동욱의 옆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 좋은 아침이에요.”

연동욱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애로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오늘 개학이라고?”

서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동욱이 말했다.

“너랑 채린이는 같은 반이고 수능도 얼마 안 남았으니 서로 배우면서 좋은 대학에 붙어야지.”

연채린은 두 눈을 희번덕거렸지만 할아버지 앞이라 감히 뭐라 반박하진 못했다.

이때 연동욱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설령 좋은 대학에 못 가더라도 괜찮아. 너희 둘 유학 보낼 능력은 있으니.”

서현주는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안타깝게도 전생에 연동욱은 그녀가 연지훈의 아이를 임신한 걸 알게 된 후, 학교에 나가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해외 유학은 물론이고 정상적인 수능조차 치르지 못했다.

그녀가 여유 있게 아침을 먹을 때, 위층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미난 쇼를 구경하는 마음으로 서현주가 고개를 들었다.

방 문 앞에서 연지훈이 조심스럽게 유이영을 부축하며 밖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왔다.

두 사람 모두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유이영은 기운이 빠진 듯 부축을 받고서야 겨우 계단을 내렸고 연지훈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서현주가 시선을 돌리자 연채린의 야유 섞인 눈빛과 마주쳤다.

그녀는 눈썹을 치키고 연채린에게 미소를 날렸다.

이에 연채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연지훈은 어느덧 유이영을 부축하여 식탁 옆, 서현주 맞은편에 앉았다.

연채린은 야릇한 눈길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오빠, 이영 언니, 두 사람 어젯밤에 뭐 했어요? 혹시 화해했나요? 밤새도록 안 나오더니.”

엄진경은 두 사람이 함께 방에서 나온 걸 본 뒤로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유이영의 창백하던 얼굴도 연채린의 질문에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아니에요, 그런 거. 채린 씨,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연채린은 계속 더 캐묻고 싶었다.

“말해봐요, 오빠. 어젯밤에 뭐 했어요 둘이?”

연지훈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뭘 자꾸 물어? 얼른 밥이나 먹어.”

그럼에도 연채린은 여전히 웃음을 띠고 있었다.

“분명 뭔가 있는데... 안 그러면 왜 말을 안 하겠어.”

유이영의 얼굴은 더 붉어졌고 머리를 거의 식탁에 파묻을 지경이었다.

연동욱는 늘 젊은이들의 일에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한 번 묻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밥 먹던 서현주가 언제 연지훈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뜬금없이 불똥이 튀었다.

연지훈이 수저를 내려놓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따 학교 데려다줄게.”

순간 연채린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좋아요.”

“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넌 차 기사가 데려다줄 거야.”

연채린의 젓가락이 손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럼 누구를 학교에 데려다준다는 거예요?”

서현주는 죽을 한 입 떠먹었다.

“거절해도 되나요?”

연지훈이 답했다.

“그럴 자격 없어.”

그도 그럴 것이 연씨 저택이 산 중턱에 있어 버스 정류장과 거리가 꽤 멀었다. 서현주는 외출하려면 이 저택의 기사 차승빈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연지훈이 학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니 그녀 또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차에 탄 그녀는 온몸이 불편했다.

연지훈의 옆에 앉아 방어적으로 책가방을 앞으로 안아서 꽉 움켜쥐었다.

연지훈은 금테 안경을 끼고 태블릿으로 업무 자료를 보고 있었다. 태블릿의 푸른빛이 얼굴에 비치자 턱선이 더 날카롭게 보였다.

연지훈은 묵묵히 서류만 검토했다.

가능하다면 서현주는 그가 한 길 내내 입을 다물길 바랐다.

불현듯 연지훈이 안경을 벗고 태블릿을 끄고서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내가 역겨워?”
この本を無料で読み続ける
コードをスキャンしてアプリをダウンロード

最新チャプター

  •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제151화

    “저 좀 보지 말고 조심해요. 이영 씨가 또 금방 더위 먹을 것 같으니까요.”그녀는 유이영을 향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이영 씨, 제 말 맞죠?”유이영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지기 시작했다.그야말로 장관이었다.돌아가는 길, 서현주는 역시나 장미연이 보낸 자료를 받았다.그녀는 재빨리 자료를 작성한 후에 다시 장미연에게 보냈다.강혜인이 옆에서 궁금해하며 물었다.“대회가 언제야?”서현주가 대답했다.“다음 달.”강혜인이 의아해하며 말했다.“그렇게나 빨리? 연습할 시간은 충분해?”서현주는 멈칫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충분해.”전생에 그 힘들던 시절, 그녀에겐 피아노조차 없었다. 피아노 살 돈도 없었고, 딸을 학원에 보낼 돈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낡은 휴대폰으로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바닥에 피아노 건반을 그렸다.그 뒤로는 휴대폰에서 나오는 피아노곡에 맞춰 딸 앞에서 정말로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연기했다.순수하고 귀여운 딸은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까르르 웃으며 열심히 손뼉을 쳐 주었다.그 시절, 땅바닥에 그려놓은 피아노 건반으로 연습하고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게 그녀의 유일한 행복이었다.서현주는 정말 오랫동안 연습했다. 자주 연습하다 보니 땅바닥에 작은 구멍이 생기기도 했다.오늘날까지도 그녀는 자기 손가락이 땅에 닳아 굳은살이 두껍게 생겼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의 부드러운 손과는 완전히 달랐다.강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학교에 피아노가 한 대 있는데 아마 빌릴 수 있을 거야. 그거로 연습해.”서현주가 웃으며 말했다.“너는 참 생각이 깊어.”그녀는 고개를 돌렸다가 자기가 타고 있는 버스가 마침 서점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그녀의 눈빛은 갑자기 반짝이더니 머릿속에 전에 떠올랐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서현주는 바로 강혜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다음 역에서 내리자.”강혜인이 의아해하며 말했다.“왜?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어?”서현주가 신비롭게 말했다.“암

  •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제150화

    장미연이 다시 한번 이름을 부르자 서현주는 마침내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돌아서서 평온한 표정으로 장미연을 바라보았다.“장 선생님, 선생님이 사실을 모르고 저한테 화내신 건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이런 식으로 모욕당할 이유도 없고요.”장미연은 다급히 말을 이었다.“알아요. 그래서... 그에 대해 보상하고 싶어요.”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내가 루체 피아노 콩쿠르 출전권을 하나 갖고 있어요. 단 한 자리뿐인데 그걸 현주 씨에게 주고 싶어요. 받아줄래요?”그 말에 모든 시선이 한순간 서현주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유이영은 억지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를 꽉 물었다.‘그걸 그냥 이렇게 준다고?’그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왜 서현주가 그 자격을 얻어? 대체 뭘 했다고? 지훈 씨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대회 자리까지 노리는 거야?’그때 유이영은 갑자기 몸을 바로 세우며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현주 씨, 조금만 더 생각해봐요. 아직 고3이잖아요. 지금은 공부에 집중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덧붙였다.“장 선생님과의 오해는 내가 설명해 드릴게요. 괜히 이런 일로 서로 어색해질 필요는 없잖아요?”겉으로는 친절한 듯 들렸지만 말끝마다 ‘넌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어’라는 의도가 뻔히 묻어 있었다.서현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런 상황을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어. 주인공이 오해를 풀고 사과 선물을 받을 때 뭐라고 했더라?’“필요 없어요.”보통 주인공들은 그런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고 쿨하게 돌아선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다 놀라고 주인공은 더 빛났다.하지만 서현주는 고개를 살짝 들고 부드럽게 웃었다.“받을게요.”좋은 걸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그녀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이었다.게다가 그 대회는 서현주가 정말 간절히 원하던 무대였는데 안 받을 이유가 없었다.그 말에 유이영은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고

  •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제149화

    지금은 시골집 앞마당도 대부분 시멘트 바닥이라 흙 묻은 발로 밟으면 반드시 자국이 남는다.잠시 후, 서현주는 근처에서 그 자국을 발견했다. 작은 발자국 하나가 어른들의 발자국 사이에 섞여 있었지만 오히려 더 눈에 띄게 도드라져 있었다.그녀와 강혜인은 그 발자국을 따라 걸었고 이내 한 집 앞에 멈춰 섰다. 안에서 남자아이의 즐겁고 시끄러운 웃음소리, 그리고 엄마의 걱정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천천히 좀 뛰어. 넘어지겠다!”그 말에도 아이는 오히려 더 크게 소리치며 뛰어다녔다.그 집도 평범한 시골집이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일곱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맨발로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옷은 온통 먼지와 흙투성이, 거기다 옷자락에는 시든 튤립 꽃잎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아이의 근처에 짓밟혀 짜부러진 튤립들이 넓게 퍼져 있었고 끈적한 꽃 꿀이 시멘트 위에 번져 있었다.서현주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꺼내 아이와 짓밟힌 튤립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촬영을 마친 뒤, 그녀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그녀는 굳이 장미연을 위해 해명해 줄 의무도, 그런 마음도 없었다.물론 장미연이 사실을 몰라서 괜히 화를 낸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참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건 분명 억울한 일이었고 서현주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진실을 밝혀내는 건 사실 간단했지만 장미연은 애초에 알아볼 의지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진심으로 진상을 알고 싶어 하진 않았다. 그들이 조금만 신중했더라면 그렇게 급하게 몰아세우며 서현주를 범인 취급하진 않았을 것이다.만약 이번에도 전생처럼 아무 말 없이 참고만 있었다면 그들은 그 틈을 타서 끝까지 그녀를 몰아붙였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고 서현주는 먼저 한 수를 되돌려줬다.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을 켜서 차단해 두었던 연지훈의 번호를 잠시 풀었다. 그리고 방금 찍은 사진과 영상을 그에게 보냈다. 전송이 완료되자 다시 그의 번호를 차단 목록에 넣어버렸다.숙소로 돌아

  •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제148화

    유이영은 평소처럼 얌전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저는 괜찮아요, 선생님. 다만 선생님께서 그동안 정성껏 기르신 튤립이 이렇게 망가져서 속상하실까 봐 걱정돼요.”그녀는 한 박자 쉬고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만약 현주 씨가 정말 선생님께 불쾌감을 드린 거라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그 말에 겨우 누그러졌던 장미연은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유이영의 말 몇 마디가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장미연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녀의 시선이 서현주를 향했고 상대방을 꿰뚫는 듯한 눈으로 거짓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듯했다.한편 서현주는 유이영의 눈가에 스친 짧은 미소를 놓치지 않았고 속으로 비웃음이 번졌다.‘유이영 씨는 일부러 튤립 이야기를 꺼낸 거야. 장미연 선생님을 다시 화나게 만들어서 자기 대신 나를 몰아세우게 하려는 계산이겠지.’“그쪽이 한 짓이죠?”장미연의 낮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서현주는 맞은편에 있는 사람들을 훑었다.연지훈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무심한 표정이었고 시선은 허공에 던져져 있었지만 묘하게 유이영의 등 뒤를 향하고 있었다.‘역시 유이영 씨 때문에 같이 온 거겠지.’서현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장미연을 똑바로 마주했다.“그 사람들이 저를 언제 봤다고 하던가요?”“점심 1시쯤이었어요.”“제가 떠난 건 몇 시라고 했죠?”“두 시 정도랬어요.”서현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그럼 선생님은 언제 튤립이 망가진 걸 아셨어요?”“아침 8시쯤 알았어요.”서현주는 쓰러진 튤립 한 다발을 집어 들며 천천히 말했다.“그럼 중간에 열여덟 시간이나 비어 있네요.”그녀는 고개를 들고 장미연을 바라봤다.“그런데 어떻게 제가 그 일을 했다고 확신하신 거죠?”그 말에 장미연의 안색이 서서히 돌아왔다.서현주 옆에 서 있던 임주은은 팔짱을 낀 채 차갑게 말했다. 평소의 명랑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저도 어제 오후 두세 시부터 계속 같이 있었는데 우리가 언제 그런 짓을 했다는 거예

  •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제147화

    마을에서 튤립을 기르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서현주는 굳이 물어볼 것도 없이 바로 장미연이 기른 튤립밭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직 활짝 피지 않은 형형색색의 튤립들이 푸른 들판 위로 선명하게 돋보였다.서현주와 강혜인은 조심스럽게 좁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 튤립 옆에 섰다.“여기 봐봐.”강혜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쥐가 갉아먹은 흔적이 많아.”서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봤는데 튤립뿐만 아니라 밭의 다른 작물들에도 여기저기 쥐가 물어뜯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근처 농민들에게 들으니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다고 했다. 겨우 잡았다 싶으면 또 어디선가 새 무리가 나타나서 끝이 없다고 한다.쥐를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놈들이 굴을 몇 개나 파놨는지도, 어디 숨었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서현주는 밭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고 강혜인도 마찬가지였다.그래서 둘은 그냥 멍하니 튤립을 바라보기만 할 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둘은 결국 현장에서 휴대폰으로 검색까지 해봤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역시 아무리 우리가 머리를 굴려도 평생 밭을 지켜온 농부들만큼은 못 따라가겠지...’서현주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그때 강혜인이 그녀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우리 여기 있어 봐야 답 안 나와. 내 친구한테 물어볼 테니까 내일 다시 와서 생각해 보자.”“그래.”서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바로 임주은의 집으로 돌아가 자세히 물었는데 임주은도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쥐들은 번식력이 너무 세서 말이지, 한번 들면 진짜 답이 없어.”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서현주는 하루 종일 피곤했던 탓에 저녁을 먹자마자 잠들었다.그런데 이른 아침, 누군가가 임주은의 집 대문을 요란하게 두드렸다.쿵쿵쿵.서현주는 그 소리에 잠에서 깨 비몽사몽한 채로 나갔다. 그러다가 복도에서 마찬가지로 부스스한 머리로 나온 임주은과 강혜인을 마주쳤다.세 사람은 함께 밖으로 나가 문을 열

  •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제146화

    장미연의 물음에 정서아는 표정이 굳더니 곧 이를 악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래는 곧 약혼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한 여자 때문에 다 망가졌죠.”장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이영이의 남자 친구가...”정서아가 급히 말을 이었다.“지훈 씨 잘못은 아니에요. 연씨 가문에서 키운 양녀가 하나 있는데 어릴 때부터 지훈 씨한테 들러붙었어요. 지훈 씨가 이미 약혼할 사람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붙어다니고 뻔뻔하게 굴었죠. 그리고 그 연씨 가문의 양녀가 이영이랑 지훈 씨가 약혼 발표하는 날에 그 자리에서 난동을 부려서 이영이가 크게 다칠 뻔했어요.”“연씨 가문의 양녀라...”장미연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어렴풋이 기억나. 운전기사의 딸이었지, 아마?”이때 정서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녀는 약혼식 날의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다르게 알고 있었다. 다들 그 일의 배후가 서현주라고 믿었다.“맞아요. 선생님도 그 사람을 본 적이 있으실 거예요.”장미연은 고개를 들었다.“누구야?”“아까 여기 왔던 두 여자 중 한 명이에요. 서현주.”그 말에 장미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그 시각, 담장 밖에 서 있던 서현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강혜인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일단 돌아가자. 저 선생님의 성격을 보니까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통할 거 같아.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서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이대로 버틴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몇 걸음 가지도 않았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무거운 짐을 한가득 들고 오는 게 보였다.손에도, 어깨에도, 팔에도 이것저것 걸려 있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서현주는 망설임 없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아저씨, 저희가 좀 도와드릴게요. 어디 사세요? 저랑 친구가 같이 옮겨드릴게

続きを読む
無料で面白い小説を探して読んでみましょう
GoodNovel アプリで人気小説に無料で!お好きな本をダウンロードして、いつでもどこでも読みましょう!
アプリで無料で本を読む
コードをスキャンしてアプリで読む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