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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넥타이 핀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5 01:42:00

“어이, 한서경! 목석! 집에 없어?! 물 한 잔 가져와!”

펜트하우스 거실 복도를 가로질러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오는 강진우의 거친 고함과 발소리.

드레스룸 안의 공기가 일순간 영하의 냉기 속으로 얼어붙었다.

서경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입술은 붉게 부르터 있었고, 얇은 실크 잠옷은 어깨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려 있었다.

전신에 남겨진 태하의 붉은 키스마크들이 심장 박동과 함께 욱신거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꼴은 방금 전까지 다른 남자에게 안겨 탐닉당한 음란한 아내 그 자체였다.

심장이 흉곽을 뚫고 튀어나올 듯 거칠게 요동쳤다.

“어, 어떡해요…… 권 비서…… 남편이……!”

서경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아일랜드 수납장에서 내려오려 버둥거렸다.

만약 이 자리에서 남편에게 들킨다면, 3년간 가문을 위해 버텨온 모든 것이 파멸하고 피비린내 나는 참극이 벌어질 터였다.

하지만 태하는 서경의 떨리는 어깨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남자의 깊은 눈동자에는 단 한 치의 당황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맹수처럼 서늘한 침착함이 서경의 공포를 짓눌렀다.

“진정하십시오, 사모님.”

태하가 서경의 흐트러진 잠옷 끈을 신속하고 정갈하게 올려 매어주었다.

남자의 뜨거운 엄지손가락이 서경의 입가에 번져 있던 타액과 붉은 기운을 조심스럽게 훔쳐냈다.

“옷장에 걸린 캐시미어 가운을 목 끝까지 여미고 나가십시오. 차가운 얼음물을 한 잔 건네고 소파에 쓰러지게 만드시면 됩니다.”

“권 비서는요……? 여길 어떻게 나가려고……!”

“드레스룸 비밀 금고실 안쪽에 비상 점검용 도어가 있습니다. 제가 알아서 빠져나갑니다. 그러니…… 제 걱정은 마십시오.”

태하가 서경의 차가운 뺨을 감싸 안으며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남자의 숨결이 그녀의 귓전을 델 듯이 달구었다.

“안쪽 문으로 나가겠습니다. 남편분이 이상한 기색을 보이면 제게 연락하십시오.”

태하는 바닥의 안경과 넥타이를 집어 재킷 안에 넣었다.

서경이 가운을 꺼내는 사이, 재킷을 걸친 남자는 드레스룸 안쪽 그림자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서경은 떨리는 손으로 긴 캐시미어 로브를 걸쳐 입고 목 끝까지 여몄다.

그리고 떨리는 발걸음으로 주방 냉장고에서 얼음물을 따라 거실로 걸어 나갔다.

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도 얼음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거실에 가까워질수록 서경은 걸음을 늦췄다.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고 나서야 유리잔에서 시선을 떼었다.

거실 소파에는 강진우가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역겨운 싸구려 술 냄새와 담배 냄새, 그리고 다른 여자의 저열한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물 가져왔어요.”

서경이 유리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다.

진우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더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서경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너…… 오늘따라 낯짝이 왜 이렇게 붉어? 목석같은 년이 웬일로 볼에 혈색이 도네?”

남편이 비열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서경의 목덜미를 쥐려 했다.

하지만 서경은 본능적으로 남편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

탁—!

“술 냄새 지독하니까 씻고 주무세요. 상간녀 냄새 풍기면서 만지지 말고요.”

서경의 서늘하고 당당한 일갈에 강진우가 흠칫하며 굳어졌다.

3년 동안 폭언을 들으면 고개를 숙이고 떨기만 하던 아내의 눈빛이 아니었다.

서경의 눈동자 속에는 남편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는 오만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남편의 손길이 역겹다는 듯 차갑게 돌아선 서경의 뒷모습에 강진우는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년이…… 요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진우가 헛기침을 하더니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남자는 샤워를 하기 위해 안방 드레스룸으로 휘청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서경이 뒤따라 드레스룸 문 앞에 섰다.

이미 태하의 인영은 완벽하게 사라진 뒤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세면대 앞에서 셔츠 단추를 풀던 강진우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우뚝 멈추어 섰다.

“……응? 이게 뭐야?”

진우가 허리를 굽혀 대리석 바닥 구석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은빛 조명을 받아 차갑게 번쩍이는 최고급 백금 넥타이 핀.

그 뒷면에는 남자의 이니셜이 정교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K.T.H]

강진우의 눈동자가 의구심과 살기로 붉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권태하 넥타이 핀이잖아? 이게 왜 내 마스터 침실 드레스룸 바닥에 떨어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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