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권시혁 씨. 당신과 차재헌, 7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전화기 너머가 잠잠해졌다.
미세한 백색소음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예원은 먼저 말을 덧붙이거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짧지도, 그렇다고 한없이 길지도 않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가라앉은 시혁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좋은 인연은 아닙니다."
악연.
그 담담한 인정은 재헌의 경고가 아주 틀리지는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건 알아요."
예원의 단호한 대답에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멈췄다.
"아버지 일도, 차재헌이 그 일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요."
예원은 탁자 위에 올려둔 손끝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내가 묻는 건 그 다음이에요. 내가 모르는 게 더 있냐고 묻고 있잖아요."
과거 사건의 전말을 다시 듣자고 건 전화가 아니었다.
「파일이 저장되었습니다.」회의실에서 시혁은 새로 받은 자료를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그 내용이 자신의 이름과 관련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불편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예원은 그 장면을 애써 지우려 하지 않았다.그렇다고 그 일 하나로 시혁을 만나고 싶은 마음까지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그날 저녁, 시혁에게 먼저 연락한 것은 예원이었다.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추고, 잠시 후 편안한 차림의 시혁이 거실로 걸어 나왔다.소파에 앉아 있던 예원은 무심코 들고 있던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그를 응시했다.예원은 이 집이 어느새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어디에 앉으면 편한지, 시혁이 물잔을 어디에 두는지,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어떤 침묵이 찾아오는지도 알고 있었다.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익숙한 생활의 흔적들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테이블 한쪽에는 예원이 전에 두고 간 책갈피가 놓여 있었다.시혁은 그것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예원은 손끝으로 책갈피를 살짝 밀었다.누군가의 집에 자신의 물건이 남아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다음에도 이곳에 올 수 있다는 조용한 약속처럼 느껴졌다.그런데 그 약속을 시혁에게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예원은 책갈피에서 손을 떼었다.하지만 익숙하다는 것이 영원히 곁에 머문다는 뜻은 아니었다.예원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시혁에게 다가갔다.시혁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원을 깊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예원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의 차가운 손등을 덮어 쥐었다.시혁이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낮게 물었다."괜찮겠습니까?"예
「문예원 씨에게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화면 위로 짧게 떠올랐다 사라진 알림창.예원은 자신이 읽은 문장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더듬어 확인했다.명백하게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다.순간, 주변의 공기가 서늘하게 가라앉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제 이름을 왜 알고 있죠?"예원의 물음에 시혁 역시 굳은 얼굴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모르겠습니다.""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저한테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 제 이름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거네요."예원은 시혁이 거짓말을 한다고 느끼지 않았다.적어도 지금은 제보자가 누구인지, 자신의 이름을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그도 정말로 모르는 듯했다.하지만 그 사실과 별개로, 예원은 자신이 이 불쾌하고 기묘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제외되기를 원하지 않았다."제 이름까지 나온 일이에요. 확인되는 게 있으면 저한테도 알려줘요."예원의 또렷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시혁은 잠시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그 시선에는 예원을 향한 염려와, 알 수 없는 발신자를 향한 날 선 경계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잠시 뒤 시혁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시혁은 화면을 확인하고 짧게 말했다."아까 그 번호입니다."그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손가락을 움직였다.예원은 화면에 무언가 새로운 창이 열리는 것만 어렴풋이 보았다."새로 온 자료예요?""그런 것 같습니다."시혁이 짧게 대답하며 화면을 응시했다.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몇 줄의 텍스트를 읽어 내려갔다.그러나 예원이 앉아 있는 맞은편 자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는지, 어떤 내용이 열렸는지 전혀
"당신은 늘 오늘만 말하네요."예원의 서운함이 담긴 짧은 문장이 행사장 구석의 공기를 갈랐다.시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예원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자신이 방금 내뱉은 말이 마음에도 없는 원망이나 가벼운 투정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시혁의 낮은 목소리가 뒤늦게 돌아왔다."알아요."예원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그래서 더 서운한 거예요."대화는 거기서 멈췄다.시혁은 예원의 감정을 가볍게 치부하지 않았고, 예원 역시 그가 무책임하게 현재로 도망쳤다고 비난하지 않았다.하지만 예원이 기다렸던 '미래'에 대한 대답은 끝내 돌아오지 않은 채, 두 사람 사이에는 해소되지 않은 묘한 감정적 거리가 맴돌았다.다음 날, 미온개발 회의실.루센 프로젝트 실무 회의가 끝난 뒤, 예원은 랩톱을 정리하며 맞은편의 시혁을 의식했다.공적인 공간에서는 한없이 반듯한 파트너.어제의 감정적인 엇갈림이 있었음에도 시혁은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예원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시혁의 휴대전화 화면이 짧게 켜졌다.무심코 화면을 확인하던 시혁의 손이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었다.예원은 랩톱을 덮으려던 손을 멈췄다.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던 시혁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고 날카롭게 돌변해 있었다."무슨 일 있어요?"예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시혁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낮게 대답했다."예전 사건과 관련해 연락이 왔습니다."예원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했다.예전 사건.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답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예원의 올곧은 시선 끝에서, 시혁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예원은 그가 자신의 질문을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재헌과의 180일 계약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말로 꺼내고 나니 막연하던 기대가 비로소 현실의 날짜와 맞닿았다.예원은 쉽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시혁이 어떤 대답을 하든 직접 듣고 싶었다.시혁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예원 씨."예원은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이어 할 말을 묵묵히 기다렸다."지금은…… 우리, 오늘만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예원이 미래를 물었는데, 시혁은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그 단순한 어긋남이 예원에게는 예상보다 깊게 닿았다.시혁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오히려 예원은 그가 말을 고르느라 애쓰는 것처럼 느꼈다.하지만 그가 왜 오늘이라는 말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다만 자신이 물은 날짜가 그의 대답에서 빠져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오늘이요."예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지금 예원 씨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분명합니다."시혁의 대답은 분명했다.지금 함께 있고 싶다는 말만큼은 망설이지 않았다.예원은 그 확신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기다리던 말이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럼 그 이후는요?"예원의 물음에 시혁의 시선이 다시 한번 아래로 가라앉았다.예원은 그의 말을 무책임하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대답이 없는 것은 분명했다."지금 당장 약속해 달라는 뜻은 아니에요."
"왜 말 안 해요?"예원의 질문이 행사장 한구석의 공기를 갈랐다.감정을 억누르며 스스로 말을 삼켜버린 시혁을 향해 던진 직설적인 물음이었다.시혁은 오랫동안 예원의 두 눈을 깊게 마주 보았다.방금 전까지 그가 끝내 뱉어내지 못한 감정의 무게가 짙은 눈동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라서요."낮게 가라앉은 대답이 조심스럽게 돌아왔다.예원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곧바로 되받았다."나도 쉽게 들으려던 거 아니에요."시혁의 시선이 예원의 얼굴 위에서 잠시 멈췄다.그의 단단한 턱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알고 있습니다."시혁은 더 이상 다른 변명을 덧붙이거나 말을 잇지 않았다.비록 그가 구체적인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예원은 그가 어떤 진심을 삼켰는지 이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그런데 정작 그 말을 듣고 나면 무엇이 달라질까.예원의 머릿속에 전에 없던 낯선 감각이 번졌다.두 사람은 서로를 원한다는 마음을 말보다 행동으로 확인해 왔다.루센 프로젝트의 위기 앞에서 시혁은 예원의 판단을 지지했고, 재헌이 그녀를 아내로 소개한 자리에서는 자신의 감정 때문에 예원이 불편해지지 않도록 거리를 지켰다.예원은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물었다.그런데 이제는 오늘의 확신을 넘어 내일의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졌다.오늘도 자신을 바라보고, 내일도 만나고, 그다음 날에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온전히 곁에 있어 주는 것.그것은 단지 현재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두 사람의 감정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굳건한 약속을 바라는 일이었다.그때, 공식 행사의 주요 식순이 모두 끝났음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라운지를 울렸다.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며 행사장 밖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소란이 잦아드는 행사장 가장자리로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예원은 두 사람 사이에 단단하게 놓인 현실적인 경계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차재헌과 맺은 180일 계약.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외부 교제를 허용하기로 한
"자격을 준다면요?"질문은 낮았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선명하게 공기를 갈랐다.시혁의 눈동자가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깊게 가라앉았다.그는 예원의 도발적이고 주체적인 초대를 피하거나 적당히 넘기지 않았다.얽힌 시선 사이로 숨 막히는 긴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그 말."시혁의 목소리가 억눌린 듯 갈라졌다."가볍게 듣고 싶지 않습니다.""가볍게 한 말 아니에요."예원은 물러서지 않았다.시혁이 조심스레 선을 긋고 서 있다면, 자신이 먼저 그 선을 지워줄 생각이었다.하지만 시혁은 예원이 내어준 자리를 덥석 차지하며 성급하게 다가오지 않았다."예원 씨가 제게 어떤 자격을 주려는 건지 압니다."그의 시선이 예원의 입술 끝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짙은 눈을 향해 올라왔다."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단지 질투하고 화를 내도 된다는 허락만은 아닙니다."예원의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질투를 표현할 권리, 그 이상을 원한다는 선언이었다."그럼 뭔데요?"시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예원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두 사람이 처음 관계의 규칙을 정할 때, 명시적으로 합의했던 단 하나의 금지어가 있었다.'사랑한다는 말은 아직 하지 맙시다.'그때는 그 말 없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재헌과 맺은 180일 계약과 얽힌 현실 속에서, 오히려 그 단어를 배제하는 것이 서로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어막이라고 여겼다.감정의 끝을 확인하지 않는 선에서 머무르는 것.그것이 스스로 다치지 않는 방식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안전선이라 믿었던 그 규칙이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