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차재헌 씨 때문에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예원은 화면 속 메시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지체 없이 짧게 답장을 보냈다.
[네. 시간과 장소 보내주세요.]
혜린과 굳이 담판을 지어 이 껍데기뿐인 결혼의 결말을 내겠다는 거창한 결심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단지 혜린이 무엇을 그토록 확인하고 싶어 하는지, 차재헌이 바깥에서 어떤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예원 자신도 한 번쯤은 직접 마주하고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을 뿐이다.
먼저 연락해 온 외도 상대를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곳은 미온개발 본사에서도, 혜린의 법무법인 세림에서도 적당히 거리가 있는 평범하고 조용한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진혜린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차분했다.
만약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업무적인 미팅에서 마주쳤다면,
예원이 먼저 시혁의 셔츠 깃을 강하게 움켜쥐며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직후였다.그 단호하고 명백한 요구에, 무섭게 요동치던 시혁의 절제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그가 다시 한번 예원의 입술을 깊숙이 머금었다.조금 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텐션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두 사람의 숨결이 걷잡을 수 없이 얽혀 들었다.거실의 밝은 조명에서 시작된 짧고 거친 이동은 어느새 더 짙고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은 침실의 경계를 넘어섰다.하지만 시혁은 본능에만 내맡긴 채 무작정 속도를 높이거나 예원을 몰아붙이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욕망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예원의 호흡을 살폈다.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시혁의 시선이 예원의 얼굴에 머물렀다.예원의 호흡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의 움직임 역시 곧바로 느려졌다.예원은 그런 시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냈다.거칠게 몰아쉬던 호흡이 잠시 잦아들었을 때, 예원은 침대 위에서 시혁의 어깨를 가볍게 밀어냈다.시혁은 예원의 손길에 아주 미세한 힘만 들어갔을 뿐인데도, 조건 반사처럼 즉시 움직임을 멈췄다.왜 멈춰야 하느냐고 채근하거나 이유를 묻는 기색 따위는 없었다.그저 예원의 다음 행동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예원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혁을 향해 옅은 숨을 내뱉으며 작게 속삭였다."조금만, 천천히요."어색하거나 머뭇거리는 투가 아니었다.불편한 것을 숨기고 상대의 분위기에 억지로 맞추려는 수동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오직 지금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감각을 스스로 조정하고 표현하는 목소리였다.그 짧은 요구가 떨어지기 무섭게, 시혁의 움직임이 곧바로 느려졌다.그는 이유를 묻지도, 다시 재촉하지도 않았다.예원은 자신의 말 한마디
"시혁 씨."그 짧고 사적인 이름이 복도의 공기를 가르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정적이 무언가 끊어지듯 소리 없이 부서졌다.언제나처럼 깊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던 시혁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굳게 다물려 있던 턱 근육이 긴장으로 일그러졌고, 완벽하게 단정했던 그의 호흡이 처음으로 깊게 흐트러지며 무너지는 소리가 예원의 귓가에까지 고스란히 닿았다.시혁은 천천히 거리를 좁히다가 다시 멈췄다.한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서로의 숨결이 피부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는데도 마지막 한 뼘은 건너지 않았다.짙고 서늘한 그의 시선만이 예원의 눈을 파고들 듯 얽혀들었다.평소의 완벽했던 이성과 통제가 흔들리고 있는 징후가 그의 눈빛과 거친 호흡 속에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예원은 그 익숙한 멈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이 마지막 경계선 앞에서도 자신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시혁 역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하지만 이번에는 예원도 그 여백 속에서 더 이상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이번엔, 멈추지 말아요."조금의 떨림도 없는 단단한 목소리.지난번 어두운 복도에서 힘겹게 멈춰 섰던 그를 향한, 그리고 지금 다시 흔들리는 통제력으로 버티고 있는 그를 향한 명백한 욕망의 표현이자 요구였다.말을 내뱉고도 예원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이번에는 시혁이 먼저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했고, 그 말이 어떤 다음 장면을 불러올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심장은 귓가에 울릴 만큼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어둠 뒤에 숨거나 취기를 빌려 책임을 회피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오히려 직접 목소리를 내어 말하고 나니, 막연하게
"불은 끄지 말아요."조명 스위치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던 시혁의 커다란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예원의 또렷한 목소리가 복도의 적막을 깬 직후였다.아주 잠시 팽팽한 정적이 흘렀고, 이내 스위치에 닿기 직전이던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어째서 불을 켜두고 싶어 하는지, 어둠 뒤에 숨지 않겠다는 결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태여 따져 묻지 않았다.그저 예원의 단호한 말 한마디에 자신이 내리려던 어둠을 조용히 거두었을 뿐이었다.시혁이 예원을 향해 몸을 돌렸다.둘 사이에는 이제 한 걸음 남짓한 거리만 남아 있었다.밝은 조명 아래 씻겨진 민낯 같은 정적 속에서, 예원은 오롯이 자신을 담아내는 시혁의 짙은 시선을 고스란히 받으며 서 있었다.그 노골적인 시선 아래 놓이자, 자신이 직접 내뱉은 두 마디의 무게가 뒤늦게 감각을 파고들며 뺨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안 갈래요. 불은 끄지 말아요.그 문장들이 내포하고 있는 선명하고 투명한 욕망은, 어떤 변명으로도 덮을 수 없을 만큼 적나라했다.막상 입 밖에 내고 나니 스스로가 내린 결정의 농도가 새삼스럽게 실감 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하지만 이 낯선 부끄러움은 자신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섣부른 선택에 대한 자기혐오와는 거리가 멀었다.그저 타인의 시선이나 분위기에 떠밀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깊고 내밀한 욕망을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내뱉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순수한 신체적 반응에 가까웠다.예원의 뺨 위로 옅은 붉은 기가 번져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혁이 먼저 침묵을 깼다."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으면 말해요."강압이나 유혹의 색채가 완전히 배제된, 서늘할 만큼 차분한 목소리였다.그 말은 예원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늘 돌아갈 겁니까?"고요한 거실의 공기를 가르는 낮고 차분한 질문.시혁의 목소리는 어떤 강요나 유혹의 색채도 띠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단 한 줄의 질문 뒤에도 예원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흔들리거나 망설이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현관문을 열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등 뒤에 열려 있었고, 그 사실을 두 사람 모두가 정확히 알고 있었다.반지가 빠져나간 예원의 텅 빈 약지 위로 시혁의 짙은 시선이 한 번 닿았다가 다시 예원의 눈동자로 올곧게 얽혀들었다.그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예원은 똑바로 그를 마주 본 채 아주 짧은 호흡을 뱉었다."안 갈래요."어떠한 핑계나 변명도 덧붙이지 않은, 단호하고 선명한 대답이었다.시간이 너무 늦어서, 피곤해서, 혹은 분위기에 떠밀려서라는 식의 얄팍하고 기만적인 이유는 필요 없었다. 지금 예원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할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취기가 올라 판단력이 흐려진 것도 아니었고, 남편이 던진 오만에 화가 나 저지르는 맹목적인 충동이나 복수심도 아니었다.그저 지금 이 순간, 권시혁이라는 남자의 곁에 남고 싶다는 것.오롯이 맨정신으로 내린 자발적이고 분명한 선택이었다.누구의 강요도 없었고, 이 선을 넘은 뒤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할 생각도 없었다.예원의 대답이 허공에 흩어졌지만, 시혁은 즉시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그는 거칠게 허리를 끌어당기지도 않았고, 거리를 좁혀 숨을 삼키며 입을 맞추지도 않았다.그저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문 채, 예원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무겁고 짙은 시선으로 옭아맬 뿐이었다.그 찰나의 멈춤이 오히려 예원의 선택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시혁은 다가오지 않았다. 재촉하지도 않았다.예원이 방금 내놓은 대답을 다시 거둘 수도 있을 만큼의 거리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었다.예원은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대답이 가진 무게를 다시 한번 느꼈다.그래도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예원의 시선이 소파 한쪽에
차재헌과의 결혼반지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오랜 시간 손가락을 짓누르고 있던 금속의 무게가 사라진 손바닥은 이상하리만치 텅 비고 가벼웠다.예원은 손바닥 위에 놓인 작고 둥근 쇳덩어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감정을 담아 노려보거나 미련을 가지는 시선은 아니었다.잠시 후, 예원은 테이블 위로 천천히 손을 뻗어 거실의 유리 테이블 한쪽에 그것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끔찍했던 과거를 혐오하며 반지를 던지거나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격렬한 행동은 없었다.그저 더 이상은 자신의 몸에 두지 않겠다는, 아주 조용하고도 분명한 선택의 마무리였다.반지가 몸을 떠나자, 예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빈 왼손 약지로 향했다.은은한 간접 조명 아래로 드러난 손가락에는 오랜 시간 제자리를 지켰던 물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억지로 밀어 올리느라 붉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 유독 하얗게 눌려 있는 옅은 자국.햇빛에 닿지 않아 주변보다 창백하게 남은 그 자국은 깊게 파인 상처나 피가 맺힌 흉터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 선명한 단차와 색의 대비는 조금 전까지 이곳에 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더욱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었다.예원은 가만히 자신의 빈 손가락에 남은 자국을 응시했다.반지를 빼냈다고 해서 서류에 찍힌 도장과 남은 시간들까지 마법처럼 한순간에 증발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은 것은 아니었다.손가락은 홀가분해졌지만, 법적으로 자신은 여전히 차재헌의 아내라는 현실은 1밀리미터도 변하지 않았다.하지만 예원은 그 명백한 불일치 앞에서 낡은 죄책감을 꺼내거나 도덕적인 잣대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았다.감정적으로는 이미 끝난 결혼과, 아직 끝나지 않은 법적인 현실.지금은 그저 그 두 가지가 완벽하게 어긋난 채
거실과 주방을 잇는 경계선. 물잔을 들고 걸어 나오던 시혁이 그곳에 멈춰 서 있었다.언제부터 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짙고 서늘한 그의 시선은 예원의 얼굴이 아니라, 예원이 스스로 제 손가락의 반지를 빼내려 고군분투하던 두 손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 끝내려 했던 일을 하필이면 그에게 목격당했다는 당혹감보다, 설명하기 힘든 기묘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거실의 고요한 공기를 먼저 집어삼켰다.예원은 반지를 잡고 있던 오른손의 힘을 서서히 풀며 숨을 삼켰다.시혁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섣불리 예원을 다그치거나 무슨 짓이냐고 캐묻지 않았다.소파 쪽으로 다가온 그는 예원의 앞 테이블에 들고 있던 물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손을 뻗으면 당장이라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하지만 시혁은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그는 피부가 붉어진 예원의 손가락을 잡아채지도, 억지로 반지를 향해 손을 뻗지도 않았다.그저 완벽하게 통제된 자세로 예원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예원은 자신을 묵묵히 내려다보는 시혁의 짙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다가, 다시 두 번째 마디에 완강하게 걸려 있는 자신의 왼손 약지로 시선을 내렸다.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고, 온전히 자신 스스로 이겨내고 덜어내야 할 현실의 무게였다.하지만 억지로 힘을 주어 빨갛게 부어오른 피부와 쉽게 빠지지 않는 반지를 보자, 아주 잠깐 누군가의 힘을 빌리고 싶다는 얄팍한 충동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차재헌과의 혼인이라는 지독한 족쇄를 내 힘으로 뺄 수 없다면, 차라리 눈앞의 이 남자가 대신 앗아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그가 잡아 빼준다면 최소한 이 완강하고 차가운 쇳덩어리에서 조금 더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것이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오래된 의존의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원은 아주 잠시 그 나약함에 흔들렸다.예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시혁과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조용히 입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