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남편이 허락한 바람 / 제6화 울 것 같은 얼굴이라

Share

제6화 울 것 같은 얼굴이라

Author: Doong_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4 19:50:16

허공에서 부딪친 시선은 기묘할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적막한 바 안에는 낮게 흐르는 재즈 선율과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가득했다.

예원은 왼손 약지를 감싼 차가운 백금 반지를 의식하면서도, 낯선 남자의 깊은 눈동자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남자 쪽이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텐더를 향해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위스키 한 잔을 주문했다.

짙은 네이비 수트 위로 빗방울이 미세하게 맺혀 있었다.

예원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작게 내쉬었다.

빈속에 연거푸 들이켠 독주 탓에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알코올 때문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처음 보는 남자의 시선 한 번에 이토록 날 선 긴장감을 느끼는 스스로가 당혹스러웠다.

‘외부 교제를 제한하지 않는다.’

서류에 적혀 있던 남편의 기만적인 허락이 또다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180일 동안 누굴 만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던 재헌의 오만한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막상 매력적인 낯선 남자의 시선을 받게 되자, 예원의 내면에서는 오랜 시간 학습된 기혼자로서의 경계심이 반사적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서류상으로 허락받았다 한들, 현실의 감각까지 그렇게 단숨에 뒤바뀌지는 않았다.

"여기, 마시던 걸로 한 잔 더 주세요."

예원이 복잡한 속을 씻어내리듯 빈 잔을 밀어내며 말했다.

취기가 올라 발음이 아주 미세하게 흩어졌다.

바텐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위스키 병을 집어 들려던 찰나였다.

"한 잔 더 마시면 꽤 취하겠는데요."

낮고 묵직한 음성이 예원의 귓가를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두 자리쯤 떨어져 앉아 있던 남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예원의 미간이 좁혀졌다.

오늘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감정에 빠져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무슨 상관이시죠?"

"상관할 생각은 없습니다."

남자는 예원의 날 선 반응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불쾌해하거나 당황하는 기색 없이, 그의 태도는 선을 넘지 않는 건조한 관찰에 가까웠다.

"다만 빗소리 때문인지 마시는 템포가 지나치게 빨라 보여서요. 빈속에 연거푸 독주를 들이켜는 것 같아, 물도 같이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말입니다."

마침 바텐더가 남자의 몫으로 얼음물이 담긴 유리잔을 내밀었다.

남자는 긴 손가락을 뻗어 그 잔을 예원 쪽으로 가볍게 밀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시선을 거두며 처음의 온전한 거리를 유지했다.

마시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바텐더의 행동을 가로막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제안을 건넸을 뿐, 새로운 독주를 마실지 아니면 얼음물로 속을 달랠지 최종적인 선택은 고스란히 예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예원은 자신 쪽으로 밀려온 얼음물 잔과, 무심한 표정으로 위스키를 기울이는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테라스로 전화를 받으러 나간 소경은 아직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낯선 남자와 단둘이 남겨진 이 바텐더석의 공기가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차재헌과 부부로 살아온 동안, 다른 남자의 호의나 관심은 언제나 자신과 무관한 것이었다.

다른 남자의 시선을 의식할 일도, 누군가 조심스레 내미는 호의를 굳이 분석할 이유도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왼손에는 여전히 '차재헌의 아내'임을 증명하는 백금 반지가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분명 그녀의 공간에 개입했지만, 취한 여자의 틈을 파고들거나 무례하게 치근덕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물러서서 그녀에게 안전한 거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자신이 내린 제안조차 그녀가 거절할 수 있도록 완벽한 선택권을 쥐여주는 태도.

경계심으로 팽팽했던 예원의 마음 한구석에, 처음으로 낯선 남자를 향한 아주 작은 호기심이 일었다.

남편이 문서로 던져준 자유가 아니라, 예원 자신이 스스로 열어보고 싶은 낯선 문이 생긴 기분이었다.

바텐더가 새로 따라준 위스키 대신, 예원은 남자가 밀어준 차가운 물을 집어 들었다.

시원한 얼음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몽롱했던 정신을 조금 일깨웠다.

반쯤 비워낸 잔을 내려놓은 예원은 남자를 향해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고맙네요. 덕분에 술은 좀 깼어요. 그런데 한 가지는 묻고 싶네요."

남자가 입가로 가져가던 위스키 잔을 멈추고 예원을 바라보았다.

검고 짙은 눈동자가 바의 희미한 조명 아래서 고요하게 빛났다.

"아까 들어올 때부터 왜 날 쳐다본 거죠? 남의 술 마시는 템포까지 관찰할 만큼 한가해 보이진 않는데."

공격적인 질문이었지만, 남자는 불쾌한 기색 없이 예원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빗기를 머금은 남자의 깊은 시선이 예원의 젖은 머리카락과 미세하게 달아오른 뺨을 지나, 흔들리는 눈동자 안에 오롯이 닿았다.

아주 찰나의 침묵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이윽고 남자가 테이블 위로 천천히 위스키 잔을 내려놓으며 낮게 입을 열었다.

"계속 울 것 같은 얼굴이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7화 왜 궁금한데?

    — "둘이 따로 있었어?"수화기를 넘어온 재헌의 목소리는 낮고 집요했다.오직 그 단 하나의 사실만을 확인하겠다는 듯이 팽팽하게 날이 선 음성이었다.예원의 귓가에 닿은 휴대전화 너머로 짧은 정적이 맴돌았다. 예원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아니,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쪽이 정확했다.과거의 문예원이라면 그 서늘한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입술부터 뗐을 것이다.현장 사람들이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다거나, 동선과 마감재를 확인하다보니 잠깐 둘만 남게 된 것뿐이라고.행여나 남편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 자신이 놓인 상황을 구구절절 해명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누구와 있었는가'를 묻는 남편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을 바치는 것은, 오랫동안 예원에게 굳어진 부부 사이의 당연한 의무였으니까.하지만 지금 예원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가 아니었다.'왜 이걸 묻지?'예원은 자신이 처한 물리적 상황을 변명하는 대신,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차재헌이라는 사람의 모순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동요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재헌아. 너 아까부터 묻는 게 이상한 거 알아?"— "뭐?""분명 루센 프로젝트 일 때문이라고 했잖아. 대표가 직접 남을 일이냐고, 업무 범위를 지적했고."예원은 조금 전부터 이어졌던 대화의 궤적을 차분하게 되짚었다."그런데 네 질문은 계속 권시혁 씨와 내가 몇 시까지, 얼마나 가까이, 어떤 상황에서 같이 있었는지에만 맞춰져 있어. 현장 진행 상황이 궁금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그 사람과 둘이 있었는지가 확인하고 싶은 거잖아."수화기 너머에서 흠칫 숨을 삼키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그 뒤로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6화 늦게까지, 둘이

    다음 날 오후, 미온개발 본사.오전 내내 밀려 있던 루센 프로젝트 관련 부서 회의를 마친 예원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모니터 옆에 올려둔 휴대전화의 화면이 밝아지며 진동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차재헌]어젯밤 통화 이후 하루 만에 다시 뜬 이름이었다.예원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 가만히 화면을 내려다보았다."내 일정 보고할 의무 없어."라고 선을 긋고 끊어냈던 어제의 통화가 떠올랐지만, 마음은 오히려 차분했다.그녀는 일정을 방어했다는 사실에 굳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되새기지 않은 채, 무미건조한 손길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어."— "바빠?"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재헌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화가 났다거나 어제의 통화를 따져 묻기 위해 벼르고 있는 어조가 아니었다."아니, 회의 끝나고 서류 정리하는 중이야."— "어제, 루센 현장에 늦게까지 있었다며."예원의 서류를 넘기던 손끝이 아주 잠시 멈췄다.어제 위치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건만, 재헌은 이미 사실의 일부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쩌다 루센 쪽 얘기가 나와서 들었어.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예원에게는 재헌이 정보의 출처를 대수롭지 않게 뭉뚱그려 넘기려는 것처럼 들렸다.그의 말대로 출처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예원은 목소리의 높낮이를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랬어. 프로젝트 관련해서 현장 확인할 게 있었으니까."사실을 부인하거나 핑계를 댈 이유는 없었다.그러나 예원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주 짧고 미묘한 뜸 들이는 시간이 이어졌다.&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5화 보고할 의무 없어

    비좁은 자재 샘플실 안을 가르며 날카로운 진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예원의 시선이 손에 들린 휴대전화 액정 위로 떨어졌다.화면 위에서 점멸하고 있는 세 글자, [차재헌].불과 몇 초 전까지 권시혁의 체온이 닿았던 손끝의 낯선 감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당도한 이름이었다.예원은 발신자 이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다른 남자와 좁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들킨 것 같은 죄책감이나 당혹감은 아니었다.그저 묘한 타이밍이었다.조금 전까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고 믿었던 법적 남편이라는 현실이, 이 작은 기기 하나를 통해 너무도 쉽고 당연하게 자신의 사적인 시공간으로 틈입해 들어오려 한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느껴졌다.시혁은 예원의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거나 누구냐고 캐묻지 않았다.그는 들고 있던 마감재 샘플 보드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 걸음 더 물러났다.예원에게는 그 짧은 움직임이 자신이 통화할 공간을 남겨주는 것처럼 느껴졌다.예원은 짧은 심호흡과 함께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디야?"인사조차 생략된,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질문이 수화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다급한 용무가 있거나 화가 잔뜩 난 음성이 아니었다.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내의 위치를 묻는 것에 어떤 거리낌도 없는 평온한 어조였다.과거의 문예원이라면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아무런 의심 없이 대답했을 것이다.'루센 현장이야.' '지금 퇴근하는 길이야.' '누구와 같이 있어.'남편이 자신의 행방을 묻는 데에 어떤 자격이 필요한지, 그가 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알아야만 하는지 단 한 번도 반문해 본 적이 없었다.부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그 오래된 습관을 의무로 여기며 살아왔으니까.질문을 받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4화 손끝에 걸린 반지

    루센 현장 실사가 마무리되고 며칠 뒤.예원과 시혁은 현장 사무실 뒤편에 마련된 작은 자재 샘플실에 들어와 있었다.벽면 양쪽으로 마감재 샘플 보드와 사인물, 각종 자재 박스가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여 있는 탓에, 통로는 성인 한 명 반 정도가 간신히 지나갈 만큼 비좁았다.적어도 예원은 그 비좁은 거리를 처음부터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며칠 전 사적인 저녁 식사 이후 시혁을 향한 경계가 조금 느슨해졌고, 현장에서 그의 판단을 묵직하게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예원은 선반 위를 훑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요청한 메인 라운지 미디어 월 마감 샘플이 이쪽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텍스처를 먼저 확인해 보는 게 좋겠어요.""A구역 선반 쪽에 있을 겁니다."시혁 역시 평소와 다름없는 건조하고 이성적인 태도였다. 두 사람은 도면과 자재 리스트를 대조하며 비좁은 통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아, 저기 있네요."예원의 시선이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선반 위에 놓인 짙은 회색의 샘플 보드에 멎었다.그녀가 까치발을 들며 그것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도면을 확인하던 시혁 역시 예원이 찾던 것과 같은 샘플 보드를 향해 동시에 손을 뻗었다.가죽 장정된 두꺼운 보드 모서리 위로, 두 사람의 손이 겹쳐졌다.아니, 정확히는 얽히거나 겹쳐진 것이 아니었다. 아주 찰나, 두 사람의 손끝이 가볍게 스치듯 닿았을 뿐이었다.예원의 움직임이 일순간 멎었다. 닿은 건 정말이지 손끝뿐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짧은 찰나에 닿은 타인의 온도가 지나치게 선명했다.늘 서늘하고 이성적이라고만 생각했던 권시혁이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체온을 가진 한 '남자'로 감각되는 낯설고 강렬한 순간이었다.당황한 예원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3화 현장은 도면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날카로운 기계음과 둔탁한 파열음이 뒤섞인 루센 프로젝트 시공 현장.임시 가림막 너머로 흩날리는 흙먼지 속에서, 예원은 안전모의 턱끈을 단단히 조이며 발걸음을 옮겼다.며칠 전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채우고 있던 고요하고 따스한 공기는 온데간데없었다.두 사람은 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완벽하게 사적인 온도를 지워내고, 미온개발의 총괄 PM과 아크온의 대표 건축가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며칠 전의 편안했던 분위기를 핑계로 친밀한 농담을 건네거나 사적인 미소를 짓는 일은 없었다.예원 역시 그를 '며칠 전 저녁을 함께 먹은 남자'가 아니라 현장을 책임지는 파트너로만 상대했다."문 PM님, 2층 메인 라운지 진입 구간 실측 결과입니다."현장 소장이 태블릿 화면을 띄우며 보고를 시작했다."도면상 설계된 대로 진입로 폭 2.5미터 정확하게 확보했습니다. 법적 소방 기준이나 통행 규격에도 전혀 문제없습니다."예원은 소장이 건넨 태블릿의 수치와, 바닥에 임시로 그어진 붉은색 마스킹 테이프의 간격을 번갈아 확인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오차가 없었다. 하지만 마스킹 테이프가 그어진 실제 공간 안에 직접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예원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소장님. 도면상 폭이 확보됐다는 것과, 실제로 사람이 쾌적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예? 하지만 기준치에 완벽하게 맞춘 건데……."예원은 현장 바닥의 한 지점을 안전화 끝으로 가리켰다."이곳은 루센의 메인 라운지로 들어가는 핵심 진입로입니다. 주말 피크 시간대 대기 인원의 동선과, 내부 F&B 매장을 오가는 대형 서비스 카트의 동선이 정확히 이곳에서 교차합니다."예원의 시선이 도면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게다가 이쪽 벽면에 예정된 대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2화 생각보다 편한 사람

    —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됩니까?"로비를 감싸던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던져진 질문에, 예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데이트'라는 단어를 자신이 먼저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하지만 그 단어에 선을 긋거나 서둘러 부정하고 싶은 마음 역시 들지 않았다.잠시 침묵을 지키던 예원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가볍게 대답했다."적어도 업무 미팅은 아니죠."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절도 아니었다.그리고 약속된 금요일 저녁.예원이 고른 레스토랑은 회사에서 차로 이십 분쯤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 골목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지나치게 고급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고, 테이블 간격이 널찍해 대화 나누기에 적당한 곳이었다.예원은 창가 쪽 자리로 안내를 받아 앉았다.메뉴판을 펼쳐 들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글자 위를 겉돌 뿐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늘 두 사람 사이에는 도면, 예산안, 루센 프로젝트, 차재헌의 이름, 혹은 7년 전의 과거가 놓여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정갈하게 놓인 물잔과 메뉴판, 그리고 두 사람의 가벼운 옷차림뿐이었다.'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사회생활에 능숙한 30대 PM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권시혁과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 앉아 나누어야 할 대화의 결은 낯설었다.하지만 그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시혁은 분위기를 억지로 띄우려 들거나 침묵을 어설픈 말로 채우려 애쓰지 않았다.그는 메뉴판을 조용히 훑어보더니, 먼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여기로 정하신 이유가 있습니까.""조용해서요. 업무 이야기 없이 저녁만 먹기에는 적당할 것 같아서요.""좋은 기준이군요."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