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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오늘만큼은,

Author: Doong_E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4 22:00:03

"계속 울 것 같은 얼굴이라."

그 담담한 한마디에 예원은 하마터면 쥐고 있던 얼음물 잔을 놓칠 뻔했다.

잔 속의 얼음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지만, 예원의 귓가에는 남자의 낮고 묵직한 음성만이 비현실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울 것 같은 얼굴.

가슴 한구석을 예리한 칼끝으로 찔린 듯한 기분이었다.

예원은 지난 석 달간 남편의 외도 흔적을 눈치채고도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운 적이 없었다.

어제 그 모욕적인 이혼 및 별거 합의서를 받아 들었을 때도, 텅 빈 집안에서 홀로 180일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오늘 아침에도 그녀의 눈물샘은 지독할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슬픔보다 분노가 앞섰고, 무너지는 대신 협상자가 되기를 선택했으니까.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고작 몇 분 시선을 교차한 남자가 그녀의 그 견고한 방어막을 뚫고 들어왔다.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아니,

애써 외면했던 그 짓눌린 감정의 밑바닥을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잘못 보셨네요."

예원은 애써 굳어진 표정을 갈무리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알코올 덕분에 달아올랐던 뺨이 오히려 서늘하게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난 오늘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거든요.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고 온 참이라서, 우는 게 아니라 후련해서 웃고 있는 중인데."

방어적인 가시가 돋친 목소리였다.

치열한 회의실에서 매일같이 변수와 싸우던 프로젝트 매니저의 방어 기제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남자는 예원의 날 선 반박에도 무안해하거나 변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손에 쥔 위스키 잔을 가볍게 흔들며,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예원을 응시할 뿐이었다.

"다행이네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오지랖이 넓었습니다. 홀가분한 기분을 망쳤다면 사과하죠."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떤 짐을 내려놓았는지 파고드는 무례함은 없었다.

그는 예원이 쳐놓은 선 앞에서 정확히 멈춰 섰고, 그의 무심한 배려가 예원의 곤두선 신경을 천천히 누그러뜨렸다.

그가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한층 더 밀도 높게 가라앉았다.

바 안에는 한동안 재즈 음악과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섞여 흘렀다.

어색한 침묵이라기보다는 묘하게 팽팽한 공백이었다.

예원은 잔을 매만지며 남자를 곁눈질로 살폈다.

희미한 조명 아래 드러난 단단한 턱선과 긴 손가락.

그리고 남자가 뿜어내는 빗기 어린 체취와 묵직한 위스키 향이 좁은 바텐더석을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금 전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던 그 시선이 남긴 잔상이 짙게 남아 있었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비즈니스 미팅에서 흔히 마주치던 계산적인 눈빛도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 잊고 있던 감각이었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 바라봐지는 느낌.

차재헌과 부부로 살아온 동안, 완벽한 아내이자 직장인으로 기능하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순수한 이성으로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대상이 되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도는 것처럼, 낯설고 위험한 설렘이 피부 밑을 간지럽혔다.

예원은 무의식중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기 위해 왼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바의 노란 간접 조명이 예원의 약지에 닿아 차갑게 번쩍였다.

백금 반지.

심장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한 현실 감각이 예원을 덮쳤다.

미세하게 달아오르던 취기와 설렘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손을 테이블 아래로 감췄다.

'별거 기간 동안 쌍방은 외부 교제를 제한하지 않는다.'

계약서의 기만적인 조항이 다시금 이성을 강타했다.

남편이 문서로 허락한 180일간의 자유.

하지만 이 차가운 금속 고리가 손가락에 묶여 있는 이상, 그녀는 법적으로 명백한 '차재헌의 아내'였다.

180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사회적 신분도, 법적 책임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서류상 외부 만남이 허용된 관계라 해도, 예원에게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낯설고 두려운 경계처럼 느껴졌다.

남자의 시선이 테이블 아래로 감춰진 예원의 왼손을 향해 아주 짧게 미끄러졌다가 거두어졌다.

찰나였지만, 그는 분명 반지의 존재를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는 척하거나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당황하며 거리를 벌리지도, 그렇다고 노골적인 시선으로 선을 넘지도 않았다.

그는 끝내 다가오지 않았다.

반지를 본 뒤에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거리를 지켰다.

"미안! 의뢰인이 갑자기 진상을 부려서."

그때, 테라스 쪽에서 소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화를 마친 소경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둘만 남겨져 있던 기묘한 고립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남자는 소경의 기척을 확인하더니, 바텐더에게 짧은 눈짓을 보내 계산을 마쳤다.

낯선 이방인으로서 그녀의 영역에 잠시 머물렀던 그가 다시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큰 체구를 올려다보았다.

묘한 아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교차했다.

"먼저 일어납니다."

남자가 흐트러짐 없는 동작으로 짙은 네이비 재킷 단추를 채우며 예원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아, 저기."

예원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불러 세웠다.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단지 낯선 텐션이 오갔던 이 짧은 만남을 아무 의미 없는 우연으로 흩어지게 두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앞섰다.

"…우울한 얼굴로 옆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비 오는 날 술 마시는 시간을 방해한 것 같네요. 꼴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

방어적인 자조가 섞인, 바보 같은 변명이었다.

금지된 선을 의식하고 급격하게 물러선 자신의 태도를 무마하려는 서툰 시도이기도 했다.

남자는 대답 대신 가만히 예원을 내려다보았다.

빗기를 머금은 깊은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 선을 따라 천천히 훑어 내렸다.

유부녀임을 알리는 반지를 확인하고도 섣불리 돌아서지 않는, 고요하지만 깊은 시선이었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너무 숨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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