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이때 하예정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는데 남편한테 걸려 온 전화인 듯싶었다.휴대폰을 꺼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남편 전태윤이었다.“남편 전화에요.”그녀는 두 언니에게 말했다.심효진은 센스 있게 자리를 비켜주며 서가에 가서 채 못 읽은 소설을 펼쳤다.한편 성소현은 배시시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나도 이만 돌아가야겠어. 계약서 문제없으면 내일 바로 사람 시켜서 이장님들과 함께 계약 체결하라고 할게. 그럼 우리 프로젝트도 곧 시작할 수 있어.”그녀는 말하면서 제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하예정은 활짝 웃으며 전태윤의 전화를 받았다.“여보.”전태윤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하예정은 애쓰는 그의 모습이 별로였는지 몸을 움찔거리며 미소 지었다.“태윤 씨, 할 말 있으면 바로 해요. 끼 부리지 말고.”“...”“뭘 웃고 있었어? 방금 전화 받을 때 당신 웃음소리 들었는데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즐겁게 웃어?”전태윤이 정상적인 말투로 되물었다.사랑하는 아내가 일부러 부드러운 척 플러팅하는 걸 싫어하고 자연스러운 그의 본모습만 선호하니까.“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바빠요?”“30분만 지나면 퇴근이야.”전태윤은 이제 곧 퇴근 시간이라고 아내에게 알렸다.“식사하러 돌아오게요? 아침에 나갈 때 점심 약속 있다면서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요.”전태윤은 미간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오전 내내 바삐 돌아치느라 살짝 지친 모습이었다.“예정아, 나랑 함께 약속 장소 가줘.”하예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나 아직 완벽하게 습득한 것도 아닌데 만에 하나 태윤 씨 따라갔다가 실수라도 하면 태윤 씨 얼굴에 먹칠하는 거 아니에요?”“이모님 따라다니면서 한동안 배웠으니 이젠 실전에 나설 때도 됐어. 연회 장소의 매너는 내가 가르쳐줄게. 걱정 마, 내 얼굴 마음껏 먹칠해도 돼.”전태윤이 다정한 말투로 그녀를 달래며 함께 약속 장소에 나가자고 했다.하예정도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네, 다들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다가 마침 할아버지랑 두 큰아버지, 그리고 사촌오빠들과 마주쳐서 한바탕 싸웠어요. 주서인 모녀가 빗자루를 챙겨 들고 할아버지네를 내쫓아버렸고 하지문의 차 바퀴를 또 찔러버렸어요. 이번엔 주서인 씨가 그랬어요.”전태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주 씨네에서 어쩌다가 사람다운 일을 했네. 내가 다 속이 후련해.”하예정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할아버지는 아마도 우리 아빠가 친자식이 아니니 우리더러 부동산 상속을 먼저 포기하라고 말하려고 찾아온 것 같아요. 우리가 포기 안 하면 아마 협상할 생각이었을 거예요. 소송을 안 걸치고도 엄마, 아빠 부동산을 가져올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죠.”하 영감이 진짜 협상할 의향이 있다면 하예정은 선뜻 협상할 수 있다.하지만 두 자매에게 유산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나랑 할아버지 유전자확인 검사 결과가 요 이틀에 나와요. 결과가 나오거든 뭐라고 계속 지어낼지 지켜봐야겠어요.”“내일이면 나와. 나랑 함께 결과서 가지러 가.”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네.”“사모님.”“예정아.”이때 두 경호원이 예를 차리며 그녀를 불렀고 시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려왔다.하예정은 의외라는 듯이 문밖을 내다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어머니 장소민이 에르메스 가방을 팔에 걸치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전태윤이 전화기 너머로 그녀에게 물었다.“여보, 누구야? 목소리가 왜 우리 엄마 목소리 같지?”고부가 함께 지낸 시간이 짧다 보니 전태윤은 엄마가 서점으로 찾아갈 줄은 전혀 몰랐다.“어머님 오셨어요, 여보, 이만 끊을게요.”하예정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전태윤이 작별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바로 꺼버리곤 바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더니 몸을 일으켜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그녀는 활짝 웃으며 시어머니를 반겼다.“어머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왜? 내가 안 반갑나 보네?”장소민이 웃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그럴 리가요. 그냥 조금 의외라서요. 얼른 앉으세요, 어머님.”
“네, 점심 약속 있다고 하더라고요.”장소민은 곧바로 대답했다.“그럼 못 간다고 말해. 우리 간만에 외식하고 쇼핑하는데 태윤이가 이런 거로 나랑 질투하진 않을 거야.”많은 사람들이 하예정과 장소민의 고부 사이가 안 좋아서 매번 연회에 참석할 때마다 하예정이 이경혜와 함께 가는 거라고 쉬쉬거린다. 평상시에도 리조트에 돌아와 시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고 고부가 공개석상에서 함께 밥 먹고 쇼핑한 적도 없다고 한다.장소민은 이런 소문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녀와 하예정의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아니까.다만 고스톱 치러 가서까지 관심하는 척 여쭈는 사람들 때문에 장소민은 기분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결국 그토록 좋아하는 고스톱도 마다하고 며느리를 찾아와 명품 매장으로 쇼핑 가서 실제 행동으로 유언비어들을 깨트리려고 했다.이게 바로 장소민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목적이다.“네, 그럴게요.”하예정이 막 전화하려 할 때 마침 전태윤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녀는 어머님 앞에서 남편 전화를 받았다.“여보, 엄마가 거긴 왜 갔어?”전태윤은 엄마가 와이프를 괴롭힐 거란 걱정은 없었다.장소민은 전에 하예정이 제 아들에게 버금가지 못하여 썩 내키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며느리 앞에서 꼽준 적은 없었고 난처하게 몰아붙인 적은 더더욱 없다.남들이 장소민한테까지 전화해서 하예정이 오지랖 넓게 남 일에 간섭한다고 뭐라 할 때 그녀는 고고한 사모님 이미지까지 내려놓고 며느리를 옹호하며 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로써 전씨 일가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걸 제대로 각인시켜 주었다.고부간의 갈등은 없지만 전태윤은 끝내 엄마가 왜 갑자기 와이프의 서점으로 찾아간 건지 알지 못했다.“그게... 어머님 바꿔드릴게요.”하예정이 웃으며 휴대폰을 어머님께 건넸다.“어머님이 직접 태윤 씨한테 말씀하세요.”장소민은 휴대폰을 건네받고 아들에게 말했다.“태윤아, 예정이 데리러 올 거 없다. 내가 네 와이프 좀 빌려야겠어. 반나절이면 돼.”“엄
하예정은 전태윤과 두어 마디 나눈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2분도 채 안 돼 그녀의 휴대폰에 계좌 입금 문자가 도착했다.전태윤은 생활용 카드에 묶은 전화번호를 그녀의 휴대폰 번호로 수정했다. 안 그러면 매번 카드를 긁을 때마다 전태윤 앞으로 문자가 와서 그녀를 다소 불편하게 만드니까.본인 돈이어도 하예정이 마음껏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그야말로 전태윤의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는 행동이다.생활용 카드에 묶은 전화번호를 하예정의 전화번호로 바꾼 이후로 그녀는 카드를 긁을 때 훨씬 홀가분해졌다.전태윤은 생활용 카드에 돈을 입금하여 그녀가 어머님과 함께 쇼핑할 때 마음껏 카드를 긁을 수 있도록 했다.몇 분 후 하예진이 도착했다.조카를 언니에게 넘겨주고 나서야 하예정도 안심하고 어머님과 함께 밥 먹으러 나갔다.점심부터 오후, 저녁 무렵까지 고부는 줄곧 함께 시간을 보냈다.장소민은 전씨 일가의 안방마님으로서 평소 명품 매장들만 골라 다니며 쇼핑하는데 일정한 신분과 지위가 없이는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들이다.재벌가의 사모님들과 따님들도 꽤 많이 만났는데 고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쇼핑하면서 구매한 물건들은 전부 경호원들에게 맡겼다. 크고 작은 쇼핑백들을 한가득 들고 뒤따라오는 광경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하예정은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도 사 먹었고 장소민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며느리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부가 실제 행동으로 불화설을 일축했다.다음 날 전씨 일가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고부가 함께 쇼핑한 장면들이 파파라치에게 찍혀 연예부 뉴스에 실렸고 이를 본 이경혜가 남편에게 말했다.“우리 딸 사람 보는 눈이 참 탁월하네요. 그저 아쉽게도 태윤이랑 인연이 닿지 않았을 뿐이죠. 전 사모님도 결국 며느리인 예정이가 신경 쓰여서 함께 쇼핑하며 불화설을 일축한 거잖아요. 우리 예정이가 며느리로서 백 퍼센트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예정이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것도 충분히 느껴지네요.”이경혜는 칭찬 외에도 아쉬움이 살짝 스쳤다.
그 시각.하예정은 연예 기사가 뜬 걸 보고 나서 한참 침묵한 후 친구에게 말했다.“신분이 달라지니 사소한 일도 바로 연예 기사에 오르네.”전씨 일가 사모님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연예 기사에 실렸다.심효진은 이런 가십거리 기사들을 진작 봐와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태윤 씨는 관성 상업계의 거물 전태윤 도련님이잖아. 너랑 너희 시어머님 평소에 딱히 접촉이 없었고 네가 또 최근에 이모님과 함께 각종 행사에 참석해서 다들 오해한 거겠지. 전에 한 사모님이 너희 시어머님께 전화해서 네가 오지랖 넓게 남 일에 참견이라고 며느리 단속 잘하라고 말한 거 너도 기억나지? 그 사람들 네가 시어머니한테 구박받길 원하고 있을 거야. 갑부 전씨 일가에 시집간 네가 엄청 부럽겠지. 정남 씨가 그러는데 전 씨 할머니랑 너희 시어머님이 집안에서 가장 위엄 있대. 한 분은 어르신이고 또 한 분은 현재 안방마님이시니 전 씨 일가에선 그 두 분이 모든 주도권을 차지하고 계신대.”“전 씨 할머니가 널 얼마나 예뻐하시는지는 더 말할 것도 없지. 내가 볼 땐 자기 손주들보다 널 더 예뻐하시는 것 같아. 게다가 넌 할머니가 태윤 씨한테 소개해 준 신붓감이잖아. 할머니의 은혜를 대신 갚는 거라면서 태윤 씨더러 너랑 결혼하라고 부추겼다면서. 결국 할머니가 널 전씨 일가에 발 들이게 한 거야. 그러니까 널 예뻐하는 것도 당연한 거지. 할머니 앞에서 이간질하는 건 전혀 불가능한 일이야. 할머니는 내가 본 어르신 중에 가장 현명한 분이셔. 항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걸 결정하시고 또 결국 다 할머니 결정대로 좋은 결실을 보잖아.”심효진은 소정남이란 남친이 생긴 이후로 현재 핫이슈를 거의 빼놓지 않고 장악하고 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가십거리는 전씨 일가 사모님인 하예정보다 훨씬 더 많을 지경이다.하예정은 애초에 남 일에 관심 없어 관성의 수많은 소식들을 심효진을 통해 엿듣는다.심효진은 친구에게 계속 분석해 주었다.“할머니를 배제하니 다들 너희 시어머니로 타깃을 바꾼 거야. 너희 시
하예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태윤에게 걸려 온 전화인 걸 보더니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역시 양반은 못 되네.”심효진은 그런 그녀를 구박했다.“행복한 줄 알아. 태윤 씨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짬짬이 너한테 연락하는 것 봐. 진짜 널 아끼고 있다는 증거야. 물론 우리 정남 씨도 뒤처지진 않지만, 어머, 아직 우리까진 아니지. 나한테 프러포즈한 건 아니니까.”하예정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 나 가는 길이야. 십 분만 기다려. 금방 도착해.”“이리로 온다고요?”하예정은 남편이 왜 갑자기 오는지 몰라 살짝 당황했지만 곧장 알아챘다. 유전자확인 검사 결과서를 가지러 가야 하는데 전태윤이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시간을 보니 어느덧 오후 두 시 반이었고 한창 전태윤의 근무 시간이었다.그는 막중한 업무를 뒤로한 채 그녀와 함께 결과서를 가지러 가기로 했다. 하예정과 관련된 일이라면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그에게 전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누군가에게 이토록 사랑받는다는 건 달콤한 캔디보다 더 사르르 녹아내리는 법이다.“나 혼자 가면 되는데, 당신 일하느라 바쁘잖아요.”전태윤이 전화기 너머로 대답했다.“괜찮아, 금방이면 되는데 뭘.”“기다릴게요.”“그래.”하예정은 휴대폰에 대고 뽀뽀했고 고스란히 듣고 있던 전태윤은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여보, 나한테 뽀뽀해야지 휴대폰에 대고 하면 어떡해.”하예정은 웃으며 전화를 끊은 후 심효진에게 말했다.“우리 이이는 너희 그이보다 달래기 어렵다니까.”하예정은 휴대폰에 대고 뽀뽀하는 걸 심효진한테 배웠다.애초엔 제법 잘 먹혀서 전태윤을 싱글벙글하게 했는데 이젠 썩 소용이 없다. 그는 진짜 뽀뽀를 원하고 있다.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태윤 씨가 얻은 게 많고 더 달콤한 것들을 맛보았으니까 당연히 원하는 게 점점 더 많아질 거 아니야.”하예정의 얼굴이 저도 몰래 빨갛게 물들었다.“너랑 정남 씨는 대체 언제쯤 결혼할 건데?”그녀는 화제를 돌렸다.“내심 기대하고 있단 말이야.”하예정과
십 분 후.하예정은 경적을 듣고 친구에게 몇 마디 당부한 후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챙기고 카운터를 돌아 밖으로 나갔다.몇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오더니 가방을 챙기면서 말했다.“태윤 씨가 선물한 가방 깜빡할 뻔했네. 본인이 준 가방을 안 들고 다니면 또 뭐라 할 거야.”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행복한 줄 알아.”하예정은 전태윤이 선물한 명품 백을 들고 서점을 나왔고 두 명의 경호원은 도련님이 경호팀을 거느리고 사모님을 모시러 온 걸 보더니 눈치껏 더는 뒤 따라오지 않았다.차에서 내린 전태윤은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으로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아내에게 꽃다발을 건넸다.“여보, 선물이야.”“고마워요, 남편.”하예정은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으며 그의 볼에 입 맞추고 나서야 차 안에 들어갔다.전태윤은 뽀뽀한 곳을 어루만지며 눈웃음을 짓더니 잇따라 차에 탔다.“여보, 오후 디저트로 두 박스 챙겨왔어. 먹어 얼른.”전태윤은 디저트 두 박스도 그녀에게 건넸다.하예정은 웃으며 박스를 건네받고 남편을 칭찬했다.“우리 여보 점점 더 자상해지네요.”그녀는 가까이 다가가 재빨리 또 한 번 뽀뽀하고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죽을 만큼 사랑해요.”전태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똑같이 귓가에 속삭였다.“나도 죽을 만큼 사랑해.”조수석에 앉은 강일구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도련님... 솔로인 저도 신경 좀 써주시면 안 될까요?’종일 도련님과 사모님의 알콩달콩한 모습만 보고 있자니 강일구를 비롯한 미혼의 동료들마저 연애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하예정은 꽃다발을 옆에 내려놓고 디저트 박스를 열었다.“함께 드실래요?”“여보 먹어. 난 디저트를 별로 안 좋아해. 당신이 직접 해주는 거면 모를까.”그가 안 좋아하는 걸 잘 알기에 하예정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의 사랑스러운 눈빛 속에서 그녀는 맛있게 디저트를 먹었다.“우리 할아버지랑 다들 지금 어느 호텔에 묵고 있는지 알아요? 결과서 받으면 바로 찾
“뭐라고 적혔어?”전태윤은 아직 결과서를 확인하지 못했고 하예정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바삐 돌아치는 모습만 지켜볼 뿐이었다. 정색한 그녀의 표정에 괜히 장인어른이 친자가 아닌 건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결과서에 아빠랑 할아버지는 혈연관계가 있다고 적혔어요. 친자가 맞는다는 거죠.”“진짜였네... 다들 너희 가족을 너무 표독스럽게 대해서 난 또 친자가 아닌 줄 알았어.”하예정은 남편을 바라보며 실소를 터트렸다.“왠지 당신은 우리 아빠가 친자가 아니길 더 바라는 것 같네요.”전태윤은 겸연쩍게 말했다.“그 사람들이 너무 무자비하게 나왔잖아. 아버님이 마치 친자식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 친자식임에도 이렇게 하는 건 진짜 너무 슬픈 일이야.”“나랑 언니는 그래서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어요. 아마 이번 생은 그 인간들과 화해할 일이 없을 거예요.”하예정은 결과서를 가방에 넣었다. 언니가 답장이 없는 걸 보니 수면 보충 중인 듯싶었다.하루 토스트 장사가 잘되어 돈을 버는 것도 사실이지만 힘에 부치는 것도 면치 못한다. 아침 장사는 일찍 일어나는 게 필수라 하예진은 매일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가 되면 우빈이를 데리고 잠시 눈을 붙인다.저녁 무렵에 깨어나 간단하게 저녁을 차려 먹고 또다시 다음 날 아침 장사를 위해 식자재를 구매하고 모든 세팅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토스트에 필요한 식자재만 준비하려 해도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하예정은 짬짬이 언니를 도와 식자재를 마련하여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바로 꺼내서 토스트를 만들 수 있으니까.전태윤은 하 영감 일행이 현재 묶은 모텔을 알고 있어 하예정과 함께 경호팀을 거느리고 그리로 향했다.하지문만 모텔에 없었고 하 영감 부자 3인과 장손 하지명은 전부 안에 있었다.네 사람은 침대에 앉아 고스톱을 치다가 노크 소리에 하지명이 패를 손에 든 채로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다.“누구세요?”“나야, 예정이.”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하 씨네 가족은 전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하지명이 문을 열자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