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새엄마도 엄마라지만 우빈은 엄마라고 부르지 않을 텐데 그런 말을 하면 다들 기분만 나빠지잖아.”서현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하예진의 셋집이 있는 빌딩에서 나온 후 곧장 차에 올랐다.주형인도 따라 차에 오르며 물었다.“여보, 쇼핑하러 갈까?”“그럼 운전 안 하고 뭐 해요?”서현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그런 말을 한 건 다 오빠 때문이잖아요. 오빠랑 오빠 가족들이 모두 우빈이를 되찾고 싶어 하는 거 알아요. 만약 우빈이의 양육권을 빼앗아 오면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건데, 난 그저 일찍 엄마 역할에 적응하려 했을 뿐이에요.”차를 몰면서 주형인은 말했다.“우리 부모님이 우빈이를 돌아오게 하고 싶어 하시는 건 맞아. 처음부터 우빈이를 집에못 남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셨어. 어르신들은 원래 그래, 하나뿐인 손자인데 마음이 안 아플 수 있겠어? 하지만 난 우빈이를 돌아오게 할 생각이 없어.”그는 서현주를 슬쩍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당시 나한테 우빈이의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충고했던 사람은 너잖아. 지금 난 우빈이가 예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 예진의 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레벨이 아니야. 우빈이는 예진이를 따라 전 대표의 아내인 하예정을 만날 기회가 많아. 하예정도 또 우빈이를 친자식처럼 대하잖아. 재벌 집에 시집간 이모가 있는 한 앞날이 창창해. 난 비록 우빈이와 별로 지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내 아들인데, 앞날에 대해 매우 신경 쓰인단 말이야.”우빈이를 데려오면 그의 부모님 성격으로는 절대 예진 자매와 친하지 못하게 키울 것이틀림없다. 그러면 하예정이 조카를 도와주려고 해도 그럴 기회가 적을 거고, 우빈이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게 뻔했다.주형인은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현주야, 너 요즘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걸 거야.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가서 신나게 놀자. 어쩌면 임신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현주는 마음이 답답했다.그녀는 임신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주서인은 자신이 있는 한 서현주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서현주는 멈춰 서서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물었다.“뭔 일인데요?”주서인은 텔레비전의 리모컨을 내려놓고는 일어섰다. 그녀는 다가오면서 서현주가 들고 있는 쇼핑백들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뭘 샀는데 이렇게 많이 들고 온 거야? 돈 쓸 줄밖에 모르고. 올케랑 형인이는 지금 일도 안 하고 수입도 없는데, 돈 좀 아껴야 한다는 걸 몰라? 지금 올케가 먹고 쓰고 있는 돈들은 다 형인의 돈이야. 자기가 오래 일하면서 번 돈은 아까워하면서 왜 형인의 돈은 팍팍 쓰는 거야? 형인이의 돈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줄 알아?”주서인은 서현주를 돈 아낄 줄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들고 있던 쇼핑백들을 가로챘다.“누나,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주형인이 주서인을 향해 묻자,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이 누나가 한번 보는 것도 안 돼? 저리 비켜, 집에 들어와서 날 보고 인사도 하지 않고 말이야.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얘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잖아. 형인아, 이런 여자는 아끼면 안 돼. 아낄수록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앞으로 네가 고생하게 될 거야.”동생을 욕하며 쇼핑백들을 열어본 주서인은 서현주가 새로 산 옷 몇 벌을 꺼내 브랜드부터 살펴보았는데,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그녀는 그 옷들을 손에 들고 서현주를 비난했다.“올케는 자기가 아직도 스무 살 소녀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신 좀 차려, 이미 시집 간 유부녀란 말이야! 어머머, 이렇게 밝은색의 옷을 사다니,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형인이가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없으니 다시 다른 남자라도 낚으려고 그러는 거야?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어. 하긴, 올케는 돈을 쓰기만 하면 신부가 될 수 있는 그런 여자니까.”서현주는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녀의 눈에 주서인이야말로 염치도 없고, 양심도 없는 천한 사람이었다.서현주는 새 옷을 빼앗아 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주서인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이 사이즈의 옷은 나도 입을 수
“네가 꺼지라고 하면 내가 꺼져야 해? 여기 네 집이야? 집세 냈어? 너 집세 내면 바로 나갈게. 더는 안 찾아와.”주서인도 만만치 않았다.서현주는 아직 어리고 전에 줄곧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다 보니 주서인을 맞설 힘이 없었다.그녀를 내쫓을 여력이 없자 서현주는 씩씩거리며 남편에게 소리쳤다.“형인 씨 뭐 하는 거예요? 형님이 나 괴롭히는 거 안 보여요? 당장 내쫓으란 말이에요. 똑똑히 들어요. 이 집에 형님이 있는 한 난 없어요!”“누나, 자기야, 제발 좀 그만 싸우면 안 돼? 지겹지도 않아? 종일 싸우는 게? 어우, 내가 다 지긋지긋하다.”주형인은 지금 이 상태에 지칠 대로 지쳤다. 집구석이 조용할 새가 없으니 말이다.집에만 돌아오면 엄마와 아내가 싸우거나 누나와 아내가 싸웠다.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찰싹!분노가 극에 달한 서현주는 주형인에게 싸대기를 날렸다.뺨을 맞고 얼얼해진 주형인은 얼굴을 감싸 안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내가 애초에 눈이 멀었지. 어떻게 당신한테 시집올 생각을 했을까! 당신 누나랑 엄마가 이렇게 날 괴롭히는데 나설 줄도 몰라?! 난 당신 위해서 예물도 많이 요구하지 않았고 부모님 몰래 혼인신고까지 했어. 그런 나한테 고작 이렇게밖에 못해?”서현주는 남편을 때리고도 되레 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집구석이 대체 왜 이 모양이지? 남편이란 자는 왜 또 이것밖에 안 되는 건데?!’애초에 시부모님과 형님이 그녀를 겨냥할 때 주형인은 그래도 선뜻 나서서 도와줬었다.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형인은 슬슬 부모님과 누나에게 마음이 기울었다.하긴, 그의 눈엔 부모, 형제만 가족일 뿐 아내인 서현주는 들어온 사람이라 주씨 가문과 어우러지지 못하니까!서현주는 문득 하예진이 부러웠다. 그토록 단호하게 이혼한 건 고생길에서 벗어난 셈이다.서현주는 자신이 시댁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녀는 절대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니니까. 다만 시댁 식구들도 전혀 손해 볼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중 끝판왕은 역시나 형님
주형인이 문을 사이에 두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누나 제발 입 닥치고 집에 가 좀! 앞으로 별일 없으면 여길 찾아오지도 마! 누나가 이 집구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하예진이 남편의 가정폭력에 반항할 땐 더 심했다. 아예 식칼을 들고 주형인 잡으러 골목을 몇 바퀴씩 쫓아다녔는데 누나는 정작 다 잊은 걸까?동생에게 비참하게 욕먹은 주서인도 울화가 치밀었다.“그래, 내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 난 저년이 제일 눈꼴사나워. 내가 친정에 오겠다는데 저년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야? 엄마, 아빠가 여기 있으니 나도 언제든 올 수 있어. 내가 쟤한테 빌붙어 살았니? 본때 있으면 쟤가 직접 돈 벌어서 집 사라고 해. 그럼 나도 저년 집에 한 발짝도 발 들이지 않을 테니까!”주서인은 서현주의 인생을 망치기로 작정한 듯싶다!서현주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전에 하예진에게 외도 현장을 들켜서 한바탕 두들겨 맞은 이후로 단 한 번도 이렇게 초라해진 적이 없다.그녀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고 서러움이 북받쳤다.주형인은 그녀가 구슬프게 우는 모습에 살짝 안쓰러우면서도 또 은근 짜증이 났다.마냥 살갑고 다정하며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릴 거라 믿었고, 거기에 젊고 예쁘기까지 하니 그녀와 결혼하면 엄청 행복할 줄로만 알았는데 정작 이 집에 들여놓은 이후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인제 보니 서현주는 썩 예쁘지도 않고 살갑지도 않으며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긴커녕 사사건건 따지고 들고 소심하기 짝이 없어 그의 가족들과 잘 지내는 법이라곤 모른다.외조카한테마저 불친절할 따름이다.더욱이 그녀는 밥할 줄도 모르고 집안일도 안 해서 부지런한 하예진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한참 후 주형인은 결국 허리 숙여 아내를 부축해서 침대 머리맡에 앉혔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여보, 울지 마. 우리 신혼집도 금방 장식 마치잖아. 장식 끝나면 결혼식 치르고 얼른 거기 들어가서 살자. 엄마, 아빠는 고향 내려가서 지내시라고 내가 말할게.”“
전남편은 이혼한 이후로 줄곧 불행하게 지냈지만 하예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면 그만이니까.새벽 네 시 좌우에 일어나 아들을 깨워서 하루 토스트로 출발한다.그렇게 또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주우빈은 아직 어려서 가는 길에 또다시 잠들었다.가게에 도착한 후 하예진은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아들을 의자 위에 눕혀서 재웠다. 우빈이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 또 의자 몇 개를 더 놓았다.그녀가 고용한 두 종업원은 아침 여섯 시가 돼야 출근한다.보통 여섯 시부터 아홉 시 반 사이가 피크타임이다.하예정은 일곱 시 좌우에 우빈이 데리러 가게로 왔다.그 시각 주우빈은 잠에서 깼다.아이는 잠에서 깨도 울지 않고 얌전히 카운터에 앉아 블록을 계속 조립했다.“언니.”하예정이 들어오며 언니를 부르다가 가게에 꽉 찬 직장인들을 보고 서둘러 언니를 거들어줬다.“제부는 출근했어?”하예정은 머리를 끄덕인 후 손님의 야채 토스트 주문에 재빨리 가서 토스트를 만들었다.“언니, 우빈이 아침 먹었어?”하예진이 대답했다.“아직이야. 어묵 좀 끓여주려 했는데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네. 네가 좀 도와줄래?”어묵은 보통 손님들이 주문할 때 끓이지 미리 끓여놓지 않는다.하예정이 알겠다며 대답할 때 노동명이 가게로 들어왔다.“예진아, 예정 씨도 와 있네요.”노동명은 안에 들어와 먼저 인사하고는 주변을 쭉 둘러보며 미소 지었다.“앉을 자리도 없네.”“대표님, 포장해서 회사 가서 드시겠어요 아니면 좀 더 기다리실래요?”노동명이 대답했다.“급할 거 없어. 좀 기다리지 뭐.”그는 주우빈에게 다가갔다.“아저씨.”노동명을 보자 아이가 활짝 웃었다.그 모습에 노동명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우빈아.”아이가 신나게 반겨주니 노동명도 두 팔 벌려 안아주려 했는데 이때 우빈이가 말했다.“아저씨, 블록 쌓는 거 도와주세요. 나도 모르겠고 아빠는 더 몰라요.”노동명은 아이를 안으려던 손을 거둬들이고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번쩍
주우빈은 서현주가 생각났다. 엄마의 설명을 곰곰이 되새겨보았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갸우뚱거렸다.“아저씨는 결혼했어요?”“아니, 아저씨는 아직 결혼할 사람을 못 만나서 안 했어.”“왜 못 만났어요?”“그거야 아저씨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으니까.”주우빈이 두 눈을 깜빡이며 의아한 듯 물었다.“아저씨 우리 엄마 안 좋아해요? 우리 이모랑 사촌 이모도 다 좋은 사람인데 아저씨는 전부 싫은 거예요?”“...”노동명은 실소를 터트렸다.“우빈의 이모는 좋은 사람이지만 이모부가 있잖니. 아저씨가 어떻게 우빈의 이모를 좋아할 수 있겠어. 사촌 이모도 좋은 분이지만 아저씨랑은 이성적인 감정이 없어. 우빈의 사촌 이모가 아저씨 스타일이 아니거든. 우빈의 엄마라면... 아저씨는 그저 친구로 생각해. 매일 이리로 오는 건 우빈이가 좋아서야.”주우빈은 알듯 말듯 아리송했다. 노동명이 그를 좋아한다고 하자 아이는 본능적으로 물었다.“그럼 아저씨 나랑 결혼할래요?”“우빈아, 우리 둘 다 남자라서 결혼 못 해. 아저씨가 비록 여자친구는 없지만 취향은 명확하단다. 오직 여자만 좋아해.”“방금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요.”“우빈이를 좋아하는 것과 여자를 좋아하는 건 의미가 다르지.”“다 좋아하는 거잖아요. 왜 나랑 결혼 못 해요?”“...”순진무구한 아이의 쉴 새 없는 물음에 노동명은 살짝 말문이 막히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우빈이는 아직 어려서 나중에 크면 다시 이 문제 토론할까? 자, 아저씨가 블록 쌓기 가르쳐줄게.”노동명이 화제를 돌렸다.앞으로 우빈이한테 무언가 캐내려 해도 신중하게 물어야 한다. 캐묻다가 되레 본인만 당할 테니까.“우빈이 아침 먹자.”하예정이 어묵과 토스트를 들고 와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이모가 먹여줄까?”“예정 씨는 가서 예진이 도와줘요. 내가 우빈이 먹일게요.”“고마워요, 동명 씨.”“괜찮아요. 우빈이만 먹어준다면 저는 더 바랄 것도 없어요.”다만 우빈이는 결국 노동명이 먹여
“하예진 쪽은 신경 쓸 거 없다. 찾아가지도 마. 너만 못나 보여. 아줌마가 알아서 할게. 난 우리 동명이 이혼녀 만나게 할 수 없어. 내가 이혼녀를 며느리로 들일 순 없잖니.”윤미라는 손은경이 하예진을 찾아가 소란을 피울까 봐 두려웠다. 괜히 노동명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을 테니까.“넌 앞으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동명이만 따라다녀. 예진이는 이 아줌마가 알아서 해결할게. 난 동명의 엄마야. 아무리, 동명이가 엄마인 나랑 얼굴 붉힐까.”손은경이 운전하며 말했다.“아줌마 지금 바로 하예진 씨 찾아가게요? 제가 볼 때 동명 오빠는 단지 하예진 씨 아들과만 가깝게 지낼 뿐 하예진 씨랑은 딱히 뭐가 없던데요. 우리가 괜한 오해한 거 아닐까요? 오빠는 단순히 하예진 씨 아들을 좋아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나도 그 아이가 똘망똘망하고 귀엽던데요. 예진 씨가 오빠네 건물에 세 들어서 가게 꾸리는 것도 별일 아니에요. 임대료 제때 지급하면 되죠. 누구한테 임대하든 결국 다 같은 의미잖아요. 게다가 하예진 씨는 전태윤 씨 처형이고 전태윤 씨랑 동명 오빠가 절친 사이라 태윤 씨 면을 봐서 도와준 걸 수도 있어요.”손은경은 속으로 하예진을 견제하긴 하지만 윤미라처럼 이렇게까지 충동적이진 않았다. 윤미라는 당장이라도 하예진을 찾아가 노동명한테서 멀리 떨어지라고 윽박지를 것만 같았다.“은경이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하예진이 우리 동명이랑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일단 예진이 찔러봐야 해. 괜한 생각 못 하게 말이야. 넌 신경 쓸 거 없다. 아줌마가 알아서 해.”윤미라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손은경을 찍었다.“아줌마, 나 왜 찍어요?”윤미라가 웃으며 말했다.“다 쓸데가 있어서 그러지. 사진관 가서 한 장 뽑아야겠어. 걱정 마. 아줌마가 널 해칠 리 있겠니. 이따가 나 저기 하루 토스트 앞에 세워주고 넌 바로 동명이 만나러 노씨 그룹으로 가.”손은경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윤미라의 분부를 따랐다.윤미라는 아들이 하루 토스트에서
하예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가게는 노 대표님 겁니다. 대표님은 제가 전태윤 씨 처형인 걸 봐서 임대료를 한 달에 160만 원 받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합치면 거의 200만 원 가까이 돼요.”윤미라는 아들이 하예진의 돈을 받았다는 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적어도 그녀에게 공짜로 가게를 내주며 영업하게 하진 않았으니까.하예진은 전태윤의 처형이라 한 달에 임대료 160만 원만 받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그 녀석이 돈까지 받았어요? 예진 씨는 전태윤 씨 처형인데 왜 기어코 돈 받았대요?”윤미라가 일부러 떠보듯이 물었고 하예진이 재빨리 설명했다.“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대표님이 돈을 안 받으시면 저도 이 가게를 임대할 엄두가 안 났을 겁니다.”“임대료 주니까 동명이가 받던가요?”“그럼요. 지난달엔 현찰로 줬고 대표님은 바로 앞에서 액수를 세어본 후에야 가게를 나가셨어요. 이번 달엔 대표님 집사분께 드리면 된대요.”윤미라는 괜히 본인이 예민하게 군 것만 같았다.작은아들이 정말 하예진을 좋아한다면 그녀가 주는 임대료를 받지 않을 테니까.“그 녀석 참... 그래도 여기 유동 인구가 많아서 장사가 잘될 거예요. 임대료가 높긴 하지만 매출액도 오를 겁니다.”윤미라는 곧이어 그녀에게 물었다.“아드님은 왜 안 보이죠?”“예정이가 서점으로 데려갔어요.”윤미라는 알겠다며 대답했다.하예진 자매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이가 좋다.“아침 장사하기 힘들죠? 전보다 훨씬 살 빠진 것 같군요.”윤미라는 하예진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는데 애초에 볼 때보다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지금의 그녀는 전보다 얼마나 더 예뻐졌는지 모른다.중요한 건 그녀가 자신감을 되찾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노동명이 그녀를 좋아할 만도 했다. 하예진은 정말 변화가 너무 컸으니까.노동명은 그녀처럼 자신감 넘치는 여자를 매우 좋아한다.손은경이 바로 그런 여자이다.윤미라는 손은경과 노동명을 자주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