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경은 운전하면서 말했다.“말했잖아요. 예진 씨네 두 자매는 다 괜찮은 분들이에요. 예진 씨는 이제 막 이혼한지라 당분간 재혼 생각이 없을 거예요. 창업으로 돈 버는 게 급선무이지 결혼은 아예 신경도 안 쓸걸요.”한 번 실패한 결혼생활을 겪은 사람은 또다시 사랑이 다가올 때 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질 따름이다.하예진은 지금 창업 단계라 재혼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윤미라가 말했다.“걔가 동명이한테 조금이라도 사심을 품었다면 당장 가게 문 닫고 꺼지라고 할 참이었는데, 거기서 토스트 가게 못 하게 조치하려고 했는데 그런 거 전혀 없는 거야. 근데 난 또 왜 이렇게 걔랑 동명이가 앞으로 꼭 무슨 일 생길 것만 같지? 경계해서 나쁠 건 없다지만 무례하게 굴 수도 없잖니. 예진이도 이젠 더 이상 아무런 뒷받침 없는 고아가 아니야. 동생 예정이가 전씨 그룹 사모님이고 그 집안사람들은 팔이 안으로 굽기로 소문났어. 장소민은 예정이를 싫어하면서도 엄청 챙겨. 아무도 괴롭히지 못하게 말이야. 전씨 일가랑 우리랑 나름 사이가 좋아서 그 집 체면을 봐서라도 예진이를 내쫓을 순 없어. 걔네 이모 이경혜도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서 감히 건드리지 못해.”윤미라는 원래 하예진을 아들 상가에서 장사하지 못하게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노동명한테서 멀어지면 두 사람은 만날 일도 적고 윤미라가 걱정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다만 하예정은 노동명에게 전혀 이성적인 감정이 없다. 그럼에도 가게를 못 하게 가로막는다면 윤미라만 막무가내인 셈이 된다. 그와 동시와 전씨 일가와 성씨 일가 모두 미움을 사게 될 터이니 무의미한 노릇이다.만약 노동명과 하예진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을 때 손을 쓴다면 또 너무 늦어질 텐데.노동명의 성격은 엄마인 윤미라가 제일 잘 안다.사랑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일단 사랑에 빠지면 평생 간다.손은경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아줌마, 예진 씨 내쫓지 마세요. 이혼하고 창업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제 막 장사가 잘되고 돈을 바짝
“그래, 가.”심효진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꽂혀 있었다. 하예정은 그녀가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효진아, 우리 가게에 몇 안 되는 소설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는데도 그렇게 재미있어? 너 이참에 소설 써봐. 수년간 책 읽은 경험으로 분명 멋진 소설을 써낼 수 있을 거야. 출판해서 대박 터트리면 우리 서점 메인 코트에 보란 듯이 내놓을게. 우리 가게 간판 소설이지!“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난 보는 것만 좋지 쓰는 건 싫어.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음식 앞에서만 몸이 움직이지 책을 쓸 리가 있겠어? 너 소설 쓰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줄거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야.”하예정은 차 키와 아직 안 바꾼 지갑까지 챙기고 조카의 손을 잡고는 채소 사러 갈 채비를 했다.친구의 말을 들은 그녀는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너랑 정남 씨 러브스토리를 쓰면 무조건 베스트셀러가 되겠는데.”“나랑 정남 씨 이야기는 너무 무미건조해. 어떠한 우여곡절도 없고 라이벌조차 없어서 딱히 쓸 내용이 없다. 너랑 태윤 씨 스토리가 참 괜찮은데 내가 쓸 줄 모르네. 이참에 네가 자서전 낼래?”하예정도 피식 웃었다.“나도 그런 흥취가 없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어. 내일 밤엔 또 우리 그이랑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해. 너도 갈 거지?”“물론이지. 정남 씨가 진작 말했어. 아 참, 나랑 정남 씨 약혼식도 곧 다가오는데 너 태윤 씨랑 꼭 함께 와. 우리 결혼식은 5월 1일 전으로 정할 거야. 정남 씨는 뭐가 급하다고 부모님께 결혼 날짜를 5월 이전으로 받아오라고 하셨대.”“그거야 당연히 널 너무 사랑해서 빨리 집에 데려오고 싶어서겠지. 옆에 두면 매일 실컷 예뻐해 줄 수 있잖아.”심효진은 가볍게 웃었다. 소정남이 그녀에게 잘해주는 건 사실이니까.두 사람의 감정은 거창하고 우여곡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늘 안정적이고 담담하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왔다.인생은 가늘고 길게 가야 하는 법이니까.“우리 채소 사러 가. 금방 다녀올게.
그런데 아내의 입덧이 너무 심하다고 성기현이 글쎄 아이를 지우겠다고 한다.심효진은 아내 사랑이 지극한 남자를 많이 봐왔지만 성기현처럼 아내를 위해 아이까지 지우려는 사람은 처음이다.“새언니는 당연히 반대하죠. 언니도 설득해 보려 했는데 도통 말이 안 통해요. 오빠가 기어코 아이 지우라는 거 있죠. 임신하고 나서부터 언니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는 족족 토하니까, 심지어 담즙까지 토해내는 경우가 많아요. 얼굴이 다 반쪽이 돼서 오빠가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에요. 지금 엄마, 아빠도 집에서 새언니 지키고 있어요. 오빠가 또 불쑥 새언니 데리고 병원 가서 아이를 지울까 봐요.”어쩐지 이경혜가 요즘 잘 안 보이더라니...심효진이 관심 조로 물었다.“그 정도로 심하게 토하면 병원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의사가 먹는 약 처방해 주셨는데 효과가 딱히 없어요. 게다가 새언니는 태아 보호 차원에서 종일 집에 누워있어야 해요. 프로게스테론이 낮다고 하더라고요. 어휴, 엄마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엄마는 참 위대하다.심효진이 말했다.“예정이 보통 근처 슈퍼로 가서 채소 사니까 금방 올 거예요. 오는 대로 예정이한테 말하고 우빈이 데려가세요. 그 아이가 총명하고 귀여워서 소현 씨 오빠도 아이를 보면 마음이 바뀌실 거예요.”“네,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미 예진 언니한테 전화해서 동의 구했어요. 언니도 우리 오빠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고는 한바탕 욕하더라고요. 일 마무리하는 대로 새언니 보러 오겠대요.”금방 유청하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모두가 기뻐했고 하예진 자매는 영양제까지 사 보냈다. 전씨 일가에서도 하예정의 면을 봐서 영양제를 한가득 사 보냈는데 입덧이 이토록 심할 줄이야.“임신하면 신 음식 좋아한다던데 신 음식 좀 사서 구토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건 어때요?”성소현이 머리를 내저었다.“새언니한테는 아무 소용 없어요. 먹는 족족 토하긴 하지만 먹고 바로 토하는 게 아니라 한참 지나서야 구토가 올라와요. 입맛
하예진과 주형인이 신혼집을 장식할 때 주형인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장식 비용을 하예진이 부담하긴 했지만 그녀도 그 당시 출근해야 해서 시간이 많은 하예정이 언니 대신 신혼집 장식을 지켜보았다.집 장식의 고통을 맛본 그녀는 예준하가 너무 이해됐다. 물론 예준하가 이토록 자주 별장에 찾아와 장식을 지켜보는 건 성소현 때문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성소현은 데면데면한 성격이 아닌데 아직 예준하가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진 못했다.전태윤에게 구애하다가 실패한 이후로 감히 더는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성소현이 직접 운전해서 제집 별장 앞에 도착한 후 경적을 누르며 말했다.“당연하지. 준하가 이 별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산 거래. 나중에 결혼하고 아내랑 함께 여기서 지낼 생각이라던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토록 별장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걸 보면 여자친구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성소현은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전부 사랑하는 반쪽을 찾았는데 유독 그녀만 외롭게 혼자이다.그녀가 사랑할 사람, 서로 마음이 통할 그 사람은 대체 어디 있을까? 언제쯤 그녀 앞에 나타날까?“준하 씨는 인제 언니네랑 이웃이 돼서 자주 드나들겠네요? 여자친구가 뉘 집 재벌가의 따님인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왜?”하예정이 일부러 떠보듯이 물었다.성씨 일가의 도우미가 밖에 나와 별장 대문을 열어주었고 성소현은 마당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아무 말 없던데. 예정이 네가 제부한테 물어봐봐. 혹시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우리 그이는 남 일에 늘 관심 없어요. 준하 씨가 청첩장을 보내면 모를까. 그전까진 절대 사적인 일을 안 물을걸요.”성소현은 전태윤이 변한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가십거리에 제일 호기심 많은 사람은 그래도 소정남이다.그는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항상 제일 먼저 최신 소식을 얻곤 한다.“아가씨, 도련님께서 돌아오셨는데 또 큰 사모님 모시고 병원 가서 아이를 지우겠대요. 두 어르신은
“준하 씨 일단 정자에 앉아서 기다리세요.”도우미는 그를 정자로 모시며 미안함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예준하는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괜찮아요, 가서 볼일 보세요.”그는 정자 아래의 석탁 앞에 앉아서 성소현에게 줄 간식거리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우미에게 묻지도 않았다.예준하는 성씨 일가 옆집 별장을 산 이후로 갖은 핑계를 둘러대며 성씨 일가로 자주 찾아왔다. 하여 성씨 일가의 모든 도우미들이 그의 신분을 알고 깍듯이 모신다. 매번 올 때마다 집안으로 공손하게 모시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외부인에게 알리지 못할 일이 생긴 듯싶다.굳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으니 더 캐물을 이유도 없었다.예준하는 아직 성씨 일가의 이웃일 뿐이니까.“준하 씨, 물 한 잔 따라드릴게요.”비록 집안에 들이진 못했지만 문전박대까지 할 순 없다.예준하도 가볍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도우미는 그제야 정자를 벗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집안에서 성문철 부부는 소파에 앉아있었고 성문철이 한창 아내의 등을 두드리며 화난 마음을 다독였다. 그는 다정한 말투로 아내를 위로했다.“기현이도 청하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니까 당신이 이해해. 그 자식 상대할 필요 없어.”하예정이 이모에게 온수 한 잔 따라왔다.하예진은 성소현과 함께 가서 유청하를 소파로 데려왔다. 성기현이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게 말이다.성기현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아이를 갖고 싶지 않냐고?당연히 갖고 싶지, 청하와 둘만의 아기를 엄청 원했지. 하지만 유청하가 이토록 입덧이 심할 줄 몰랐다. 먹는 족족 토해서 얼굴이 반쪽이 된 게 실로 안쓰러울 따름이었다.성기현의 눈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보다 아내 유청하가 더 중요했다.우빈이는 성기현 옆에 서서 머리 들어 사촌 외삼촌을 쳐다봤다. 반짝이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을 방불케 했다.“외삼촌.”아이가 나긋나긋하게 부르자 성기현이 고개 숙여 우빈이를 내려다봤다.녀석은 예쁘장
만약 유청하가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안 겪고도 이들 부부에게 아이를 얻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남자가 임신할 수만 있다면 그는 무조건 청하를 위해 이 고통을 감수할 것이다.한 도우미가 안으로 들어와 성소현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성소현은 도우미에게 낮은 목소리로 분부했고 도우미가 나간 후 아무렇지 않은 듯 새언니에게 말했다.“언니, 화 풀어요. 오빠가 잠시 무언가에 씌운 것 같아요. 엄마도 망할 놈이라고 욕했어요.”유청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성기현과 결혼한 이 몇 년 동안, 그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독차지해 버렸다. 유청하도 결혼 후 마지못해 줄곧 피임 조치를 했고 바로 그 때문에 여태껏 임신 소식이 없었다.밖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불임이라고 쉬쉬거릴 때 드디어 부부가 일심동체로 2세 계획을 가졌다.유청하는 소원대로 임신했고 이 아이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아직 태동은 없지만 배 속에 그녀와 성기현 둘만의 피가 흐르는 예쁜 아기가 있다는 생각에 모성애가 저절로 흘러넘친다.엄마라면 다 그렇듯이 유청하도 배 속의 아이를 제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그런 아이를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성기현은 그런 그녀 마음도 몰라주고 무작정 병원 가서 애를 지우자고 한다. 앞으론 절대 아이 가질 일이 없으니 둘이서만 평생 살자고 한다.게다가 본인은 남동생이 있으니 나중에 동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성씨 일가의 가업을 물려받으면 된다고 한다.유청하는 기가 막혀 머리를 내저었다.성기현이 그냥 해본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심일 줄이야.그녀는 마지못해 남편의 생각을 시댁 식구들에게 알렸고 집안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그녀는 아직 감히 친정에는 알릴 엄두가 안 났다. 친정에서 남자 친척들이 달려와 성기현을 한바탕 두들겨 팰까 봐 두려웠다.“기현 씨가 글쎄 의사랑 예약까지 다 잡은 거 있죠. 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요?”유청하는 시누이에게 남편의 흉을 봤다.성기현은 우빈이를 안고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아내를 바라봤다.“당신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차라
“예진아, 너는 지나온 사람이라 잘 알겠지. 청하 씨 어떻게 하면 입덧 나아질 수 있을지 방법 좀 연구해 봐.”성기현은 아내가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다. 먹는 것마다 토해내니 아이까지 포기할 생각이었다.낙태가 몸에 더 해롭다고 하니 그는 또 유청하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나도 입덧 낫게 하는 방법을 몰라요. 심하게 토하면 병원에 가봐야 해요. 난 우빈이 임신했을 때 별로 안 토했거든요.”그녀가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다닐 때 다른 임산부들이 입덧이 심하다는 말을 듣고는 우빈이가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이가 아마도 엄마를 걱정할 줄 아나 보다.어떤 임산부들은 아기를 낳을 때까지 토한다고도 한다.“병원 가봤는데 소용없어.”성기현이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럼 참는 수밖에요. 이 기간이 지나면 다 나아질 거예요. 오빠 자꾸 새언니 데리고 애 지우러 간다는 말 하지 말아요. 언니 기분에 영향 준단 말이에요. 임산부는 임신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야 해요.”유청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기현 씨 한 번만 더 애 지우라고 하면 그땐 바로 이혼이에요. 아이는 내가 가질 거예요. 나 혼자서도 키울 수 있어요!”“여보.”성기현은 재빨리 다가와 아내의 손을 잡았다.“여보, 이혼이라니. 나 죽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알았어요, 이젠 더 이상 말도 안 꺼낼게요. 당신 배 속의 아이 잘 키워서 건강하게 낳아요. 낳거든 그때 다시 요 녀석 엉덩이를 때려야겠어요. 당신 괴롭힌 죄 내가 대신 갚아줄게요.”“때리기만 해봐요. 손만 대면 난 바로 아기 데리고 친정 갈 거예요.”“알았어요. 안 때려요. 절대 안 때릴게요.”성기현은 아내 사랑이 지극하다. 낙태가 몸에 해롭다는 걸 알게 되자 그는 드디어 마음을 접었다. 옆에 있는 귀여운 우빈이를 보고 있자니 사실 그도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우리 딱 한 명만 낳아요. 두 명은 안 돼.”임신 한 번 하는 게 이토록 힘들다니, 그는 절대 둘째 생각이 없다!유청하
“이모, 언니가 이따가 차를 사러 가려 하는데, 이모랑 소현 언니는 시간 어때요? 시간 되시면 같이 차 보러 가주실래요? 저는 이제 가게로 가봐야 해서요. 언니는 매일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데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 차를 한 대 사서 타고 다니라고 제안했어요. 태윤 씨가 차를 한 대 준다고 했는데, 언니한테 거절당했지 뭐예요.”“나절로도 충분히 차를 살 수 있어서 그래. 제부가 선물한다고 덥석 가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언니는 친정 식구로서 너의 시댁에 들러붙어 산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비록 전씨 일가보다는 가난하지만, 그로써 여동생의 시댁에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그래서 하예진은 전씨 일가가 주는 혜택은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언니, 태윤 씨나, 우리 시댁 식구들이나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 걱정하지 마.”그녀는 언니가 모두 자신을 위해 고려한다는 것을 안다.“알지, 제부나 사돈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언니는 외부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서 그래. 할아버지가 그동안 제부를 몇 번이나 찾아가서 소란을 피우며 돈을 요구했잖아, 이 때문에 예정이 너의 명성도 다소 영향을 입은 것 같아. 우리랑 시골 쪽의 갈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오해보다 동정한다고 쳐도, 언니는 절대 너의 발목을 잡는 그런 일은 할 수 없어. 게다가 언니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수입도 있잖아, 원하는 게 있으면 나절로도 충분히 모아 살 수 있어. 자기 돈을 쓰면 편하고 즐거워.”남에게 신세 지는 것보다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묵묵히 듣고 있던 성소현이 얼른 말했다.“예정아, 너 얼른 가게로 가봐. 나랑 엄마가 예진 언니와 함께 차 보러 갈 거니 걱정하지 마.”“알겠어요, 그럼 이모, 언니, 수고해 주세요.”그러자 성소현은 하예정을 흘겨보며 말했다.“수고는 무슨, 너 또 이런 말 하면 나 진짜 삐진다.”하예정은 히죽 웃음이 나왔다.이때 도우미 아주머니가 불쑥 들어오더니 말했다.“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