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타러 갈래?”전태윤이 차를 몰며 물었다.아내와 데이트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운전기사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기가 직접 운전했다.그리고 경호차가 멀리서 뒤따랐다.“나는 말을 탈 줄 몰라요.”하예정이 성실하게 말하자 전태윤은 웃었다.“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지금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 말타기에 딱 좋아. 우리 집 승마장으로 가볼까?”“당신 집에 승마장도 있어요?”“내 집일뿐만 아니라 당신 집이기도 하니 우리 집이라고 해야지. 우리 집 승마장에는 말을 많이 기르고 있어 승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우리 집 승마장에 가서 말을 타곤 해.”마장의 수입은 결코 적지 않다.전씨 일가의 마장에 가서 말을 타는 사람은 모두 부자니까.“넷째가 승마장 운영을 맡고 있는데 걔는 말을 자기 목숨처럼 아끼며 좋아하거든. 그래서 승마장 운영을 맡겼더니 잘하고 있어. 수익도 짭짤해.”하예정의 기억 속의 넷째 도련님은 웃는 것을 좋아하는 밝은 소년이다. 피부가 약간 검기는 하지만 아마도 승마장에서 자주 뛰어다녔기 때문일 것이다.“당신의 말을 들으니 정말 우리 집의 승마장을 한번 보고 싶네요. 이따가 내가 말을 잘못 타도 당신 나를 비웃으면 안 돼요.”“당연하지, 내가 당신을 데리고 천천히 탈 테니 걱정 마.”“알았어요.”하예정은 다시 하품하고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여보, 나 눈 좀 붙일 거니 도착하면 깨워 줘요.”“응, 그래.”“요즘 자꾸 졸음이 쏟아지는데 환절기 때문인지 모르겠어요.”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전태윤은 갑자기 차를 옆으로 세웠다.“왜 그래요?”그가 차를 세운 것을 알아차린 하예정은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눈을 뜨고 몸을 바로 세워 밖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왜 갑자기 차를 세웠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당신 요즘 따라 피곤하고 잠도 많이 오고, 하루 종일 자도 자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아?”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별로 피곤하지는 않아요. 다만 요즘 졸음
진단 결과를 손에 쥔 하예정은 그 시각 자신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그들 부부는 이렇게 오랫동안 금슬이 좋았지만, 아직도 임신 소식이 없다. 지금 다시 병원에 온 이상 그녀는 검사를 받고 싶었다.반면 전태윤은 따로 검사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둘이 건강하니 아무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다만 아이와의 인연이 아직 닿지 않았을 뿐이다.“우리 그냥 온 김에 한 번 검사해 봐요. 만약 정말 숨겨진 문제가 있다면요? 그럼 빨리 발견하고 빨리 치료하는 게 좋잖아요.”그녀는 남편에게 함께 전면적인 검사를 받자고 설득했다.“난 몸이 멀쩡한 데다 반년에 한 번씩 종합검진을 받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 당신도 마찬가지야. 당신은 감기도 잘 안 걸리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따로 검사받을 필요 없어. 아직 인연이 안 닿은 것뿐이야.”전태윤은 아내를 데리고 떠나려 했다.따로 검사받고 싶지 않았다.그는 그들 부부가 모두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겉은 건강해 보여도 검사만 하면 문제가 드러나는 사례가 얼마나 많아요. 여보, 혹시 무서워요? 검사해서 문제라도 발견할까 봐요?”이 말에 전태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난 아무 문제 없는데 뭐가 무서울 게 있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겨우 반년이니 임신못 한 건 매우 평범한 일이야, 그러니 헛된 생각하지 마. 10년 뒤에도 임신 못 하면 그때 다시 와서 검사해도 늦지 않아.”“그땐 늦어요. 10년 동안 임신 못 하고 다시 검사하러 오면 이미 늦었을걸요. 나 10년 뒤면 이미 서른이 넘었어요. 그 나이에 문제 발견하고 몇 년을 치료해 나았다고 해도, 고령의 산모로 아이 낳기 어려울 거예요. 우리 지금 이렇게 병원까지 왔는데 한번 검사받으면 어때서요? 당신 왜 반응이 이렇게 심해요? 만약 문제가 있다면, 빨리 치료해야죠. 그래야 우리만의 사랑의 결실을 가질 수 있잖아요.”“당신은 마치 내 몸에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내가 일부러 검사를 받고 싶지 않아 하는 것처럼.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경호원이 다가와 걱정스러운 듯 하예정을 불렀다.“사모님.”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소변 검사 결과를 보고는 그걸 접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은 후 밖으로 나갔다.경호원들은 그녀의 뒤를 따라 병원을 나와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가는 동안 경호원들은 마음속으로 도련님이 차에서 기다리길 기도했다.도련님은 비록 성격이 좋지 않지만, 매번 사모님과 말다툼할 때마다 말만 딱딱하게 할 뿐 마음속으론 사모님을 걱정하고 있어 정말 혼자 두고 가지는 않을 것으로 그들은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실망하게 됐다.그들은 하예정을 따라 차를 주차한 곳까지 걸어갔는데, 그곳에는 전태윤의 차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두 대의 경호차만이 주차되어 있었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차 키 줘요.”경호원 한 명이 차 키를 꺼내자, 그녀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요구했다. 경호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차 키를 건네주었다.“따라오지 않아도 돼요.”“사모님!”경호원들이 자신을 부르자 하예정은 차에 오르면서 말했다.“난 괜찮으니 다들 태윤 씨한테 가요.”곧 그녀는 차를 몰고 떠났다.경호원들은 서서 사모님이 그들의 경호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하예정은 지금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병원을 나온 그녀는 무작정 차를 몰고 길을 따라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날이 점점 어두워졌다.얼마나 오래, 얼마나 멀리 달렸을까... 그녀는 고속도로에 올라갔다가 또다시 내려와 도로에 차가 점점 줄어들어서야 천천히 차를 멈췄다.길 양쪽은 작은 숲이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그녀도 차에서 내릴 생각 없이 그저 차 안에 멍하니 앉아만 있다가 한참 뒤 휴대폰을 꺼내 보았는데 전화도 메시지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남편이 아무런 연락도 없자 그녀도 먼저 연락할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그냥 건강검진 한번 받아보자는 게 뭐가 문제야? 검사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좋은
“큰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그 녀석이 갑자기?”전현림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물었다.“예정이도 같이 왔어?”“차가 두 대 왔는데 하나는 큰 도련님이 직접 운전하시고, 다른 하나는 경호차인 것 같습니다만 사모님은 차에 안 계신 것 같습니다.”“주방에 반찬 두 가지를 더 준비하라고 해. 이 시간에 찾아왔으니 밥은 먹여야잖아.”도우미들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여기는 큰 도련님의 집인데, 큰 도련님이 집에 오셔서 식사하시는 건 보통 일이 아닌가? 하지만 전현림은 자기 큰아들을 집에 찾아와 밥을 얻어먹는 손님 취급하였다.도우미가 떠나자 전현림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말했다.“당신 내 포위망을 뚫을 방법을 찾았어? 아직 못 찾았으면 나 계속 간다?”“좀 더 생각해 보게 방해하지 말아요. 참, 방금 아주머니가 뭐라고 했어요? 태윤이가 왔다고요? 어떻게 시간이 있어서 온 거죠?”“그 녀석을 누가 알아? 마누라가 생긴 뒤로는 리조트에 잘 돌아오지도 않고, 돌아온대도 그냥 한 바퀴 돌고 다시 가는데. 여기가 자기 집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장소민은 아들을 편들어 말했다. “태윤인 항상 당신을 본보기로 삼고 당신이 하는 대로 배우고 있는 거예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당신이랑 같은 부류인걸요.”다들 전태윤의 성격이 이미 세상을 떠난 친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았다. 전현림은 젊은 시절 지금의 전태윤과 다를 바 없었다.다만 이제 나이가 든 데다 은퇴까지 하니 편안하게 아내와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성격이 많이 온화해졌다.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전태윤이 마당으로 들어섰다.경호원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부모가 또 바둑을 두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예정이는?”장소민이 아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하지만 전태윤은 입을 굳게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 그래? 또 싸웠어?”장소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묻더니 바로 남편에게 말했다.“바둑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어, 우리 가족 중에 누구든지 딸을 낳기만 하면 큰 보너스를 주신다고. 나와 네 어머니도 선물 톡톡히 주마. 우리는 네 할머니가 준 금액을 넘지 않도록 둘이 함께 천억을 줄게.”전현림 부부의 개인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천억 원쯤을 내놓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그 보너스는 아직 누구도 받지 못했어. 태윤아, 너와 예정이가 한번 힘내봐.”장소민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만약 너희들이 손녀딸을 낳아주면 내 주얼리의 절반은 손녀의 몫이야.”전태윤은 부모님을 쳐다보았다.부모님의 말이 다 끝나길 기다린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소변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왔어요.”“음성?”전현림은 아내를 향해 보았다. 그녀의 웃음은 굳어졌다. 하지만 바로 입을 열었다.“괜찮아. 너희들은 아직 젊고, 결혼한 지 반년밖에 안 됐잖아. 결혼식도 아직 안 올렸고. 서두르지 마, 급하지 않으니. 피임 조치를 취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아이를 가질 거야.”“임신 못 했구나.”전현림은 실망한 듯 말했다.“며느리에게 보너스 주려고 남겨둔 돈을 이제야 쓸 수 있겠구나 했건만.”그러자 장소민은 이내 위로했다.“못하면 못 한 거죠 뭐. 아직 젊은데 급할 것도 없잖아요. 결혼식도 아직 안 했고요. 지금 임신하면 결혼식 때 배가 나와 웨딩드레스 입기 불편해요. 태윤아, 예진이 웨딩드레스는 어떻게 되었어?”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웨딩드레스는 당연히 디자이너에게 맞춤 제작을 의뢰할 것이다.전태윤은 아직 자기 아내의 웨딩드레스 준비에 대해 시작도 하지 못했다...그는 문득 자신이 아직 준비하지 않은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결혼식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너는 우리가 신혼여행을 하고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임신해 가진 거야.”전현림이 이 말을 한 것은 사실 다른 뜻은 없었다.하지만 전태윤의 귀에서는 다른 뜻으로 들렸다.그는 부모님이 입으로는 재촉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급해한다고 생각했다. 인제 결혼한 지
전태윤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내가 무슨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먼저 가버린 것뿐인데 억울해서 울 리가 있어요?”그는 하예정이 우는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예정이가 널 혼자 병원에 남겨두면 가버리면 넌 기분이 어떻겠어?”장소민은 아들에게 되물었다.그녀의 큰아들은 정말이지 감정에 관한 일이라면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할머니도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그더러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강요했다. 그의 고약한 성격으로는 다른 여자라면 이미 이혼했을지도 모른다.전태윤은 입술을 깨물고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내가 다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길도 아는데 굳이 같이 가지 않아도 나 절로 돌아올 수 있어요.”장소민은 말문이 막혔다.“우리 다 건강하니까 검사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내가 의사를 보는 걸 무서워한다면서 무조건 검사하라고 고집하며 화나게 하잖아요. ”전태윤은 계속 투덜댔다.“내가 한 말을 믿지 않잖아요. 날 너무 안 믿는 것 같아요. 임신이란 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임신 못 했으면 못 한 거죠. 결혼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결혼한 지 10여 년이 지나서도 임신하지 못한다면 모를까.”장소민은 더더욱 어이가 없어졌다.정말이지, 장가 가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자신이 줄곧 자랑스러워했던 큰아들을 한 대 때리고 싶어 하는 날이 올지를 몰랐을 것이다.“10년 후면 너희들도 이미 늙었어. 그때 가서 검사하고 다시 치료 시작하면 예정이도 고령 산모가 될 거야. 이 자식아,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도통 모르겠네. 검사 한 번 받아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전현림도 같이 아들을 욕했다.“지금 검사를 하고 안 한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이 녀석이 제 와이프를 병원에 혼자 두고 가버렸다는 거야. 만약 예정이가 너를 대꾸하려 하지 않거든 우리가 널 도와 사정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마. 넌 그렇게 당해도 싸. 아직도 본인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예정이가 억지부
전태윤의 조각 같은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졌다.“엄마, 아빠도 손주를 안길 바라고 계시는 거죠?”장소민은 입을 열었다.“우리가 손자를 안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촉한 적 없어. 이 일을 우리 탓으로 돌리지 마. 우리는 예정이 앞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한 적이 없어.”“예정이가 스트레스가 커요.”전태윤도 본인이 아내가 건강검진을 받자고 했을 때 조금 예민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가 아이를 가지는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해 걱정이 앞선 나머지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예정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면 예정이에게 운명에 맡기라고 말해줘. 우리는 재촉하지 않으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임신이 어려워지니까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해. 너희 둘이 같이 있은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잖아. 2, 3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도 임신하지 못하면 그때 다시 검사를 받으면 돼.”“맞아요. 그래서 저도 따로 검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저와 예정의 몸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무래도 예정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거예요. 저도 예정이와 말했어요, 정남과 효진 씨의 약혼식에 참가한 후에 기분 전환할 겸 함께 여행 가자고.”장소민은 아들이 2~3년이 지난 후에도 임신하지 못해도 아이에 대해 재촉하지 말라는 말뜻을 알아차렸다.‘이 녀석, 속셈은 많아서.’그들은 시부모로서 아이에 대해 재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들 부부는 아직 결혼식도 치르지 않았기에 아이를 급하게 낳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됐어. 너희 부부의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결해. 엄마가 약속할게, 10년 동안 재촉하지 않겠다고. 아이를 낳든 말든 너희 마음대로 해.”얼굴이 한껏 밝아진 전태윤은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했다.“엄마, 고마워요.”“고맙긴, 빨리 돌아가서 예정이에게 사과해. 앞으로 그렇게 성질부리고 그냥 가버리면 안 돼. 예정이가 너한테 이러면 넌 미쳐버릴걸? 하도 예정이의 성격이 좋아서 너를 양보하는 거야.”장소민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럼 이만
심씨네도 방금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 하예정은 마음이 복잡해 저녁 식사 후 심효진을 끌고 근처를 걸었다.“너 전에 시댁에서 아이에 대해 재촉하지 않는다고 했었잖아. 너 스스로 자신에게 너무 스트레스 주는 거 아니야?”두 사람의 우정은 아주 깊다. 심효진은 또한 하예정과 전태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옆에서 지켜봐 온 사람이다. 그녀는 하예정으로부터 전씨 집안에서 아이에 대해 재촉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재촉은 하지 않았어. 그냥 이렇게 오랫동안 임신 못 한 게 내 몸에 문제라도 있어 그런 게 아닌지 걱정돼서 말이야.”하예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데도 난 너무 신경 쓰여. 시댁이 재벌이 아니라 보통 가정이라도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어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걱정하기 마련이야. 피임하지도 않았는데...”심효진이 주변 사람들을 돌이켜보니 대부분은 결혼 후 바로 임신 소문이 돌았고 더욱이는 임신하고서야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혼한 지 반년이 넘어서도 임신하지 않은 데다 피임 조치도 하지 않은 걸 알면 뒤에서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그녀는 친구의 스트레스를 이해한다.“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아 이런 일은 겪어보지 못했지만, 너무 스트레스받으면 안 된다는 건 알아. 너 스트레스가 심하면 임신하기가 더 힘들 거야. 난 네 문제가 아니란 걸 믿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고,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아.”하예정은 또 한숨을 쉬었다.“효진아, 난 지금 임신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게 아니야. 아까 태윤 씨랑 싸웠는데 글쎄 날 제쳐놓고 혼자 가버리는 거 있지. 떠나기 전 태윤 씨의 표정과 말투를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심효진은 친구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위로했다.“태윤 씨의 태도를 보면 네가 화낼 만도 해. 내가 듣기만 해도 너 대신 화가 나. 오늘 밤엔 우리 집에서 자는 거다. 태윤 씨가 데리러 와도 바로 같이 돌아가지 말고. 한번 속 태워봐라 그래. 내가 엄마 아빠한테 집 밖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상관하지 말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