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일부러 굳은 얼굴을 하며 말했다.“내가 벌을 받은 거야.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전화를 받았다니까. 심지어 준하까지 나를 신의에게 소개해 치료해 주겠다고 했어.”전태윤이 모두의 관심을 받는 장면을 상상하며 하예정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녀는 웃음을 겨우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준하 씨 신의와 아는 사이라 당신에게 소개해 주려 하는 걸 왜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운초 씨의 시력이 회복할 기회가 있는지 신의에게 보여야 하는데.”“그걸 깜빡 잊어버렸어.”전태윤은 웃으며 말했다.“쏟아지는 관심에 너무 화가 나 이진네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지 뭐야. 운초 씨의 고모도 A 시에 가서 신의를 찾은 적이 있는데 찾지 못했대. 하지만 예준하의 넷째 형 예준영과 신의의 유일한 제자인 정겨울은 무조건 부부로 될 거니, 이제 정겨울이 예씨 가문의 넷째 사모님이 되면 여운초의 눈을 보일 기회도 훨씬 많아질 거야.”“무조건?”전태윤은 가볍게 응하고는 계속 말했다.“정겨울은 예준영을 구한 적 있어. 그 후 임신했는데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야. 다만 예씨 가문도 우리 전씨 가문처럼 책임감이 강한 타입이라 예준영은 정겨울이 임신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신의를 따라 정겨울을 찾아갔대. 예준하 말로는 아마 결혼할 거래. 정겨울은 아이를 낳기 전에 예준하를 따라 예씨 집안에 갈 거야. 다만 임신 중이라 진료하기가 불편할 테니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끝낼 때까지 몇 달 더 기다려야 할 거야.”하예정은 예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흥미진진하게 들었다.그들 부부는 원래 A 시로 여행을 가는 김에 예씨 집안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지금 하예진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하예정도 관성을 떠날 리가 없었다.여행 가는 일은 잠시 접어두었다.“당신 졸려? 먼저 가서 우빈이랑 함께 쉬어. 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싶으면 깨울게.”“우빈이 지금 엄청 깊이 잠들었어요. 그 무당 선생 말이에요, 정말 솜씨가 좋으신 것 같아요
성씨 집안 큰 사모님이 임신 후 고생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은 하예정도 그럴까 봐 걱정됐다.“진작에 생각 접은걸요. 스트레스 그만 받으려고요. 나 예전의 하예정으로 돌아가 내 삶을 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요.”굳이 말하자면 그녀는 남편의 신분이 자신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둘 사이의 차이는 너무 컸다.그녀는 투자한 프로젝트가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비록 남편과 같은 레벨에 서 있지는 못해도 최소한 차이를 줄일 수는 있을 테니.“잠깐 쉬러 갈게요.”“그래.”그는 아내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 아내가 꼬마의 옆에 눕는 것을 보고는 처형이 맞고 있는 링거병을 확인했다. 다음 것으로 바꾸기까지 이제 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는 다시 홀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시간이 이른 틈을 타서 작업 단톡방에서 일을 분배했다.하예진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예정은 거의 매일 언니 곁을 지켰다.전태윤은 낮에는 회사로 돌아가 일 처리를 했고 밤에는 아내와 함께 밤을 새웠다.힘들게 보내는 남편이 마음이 아파 그녀는 몇 번이나 집에 가서 쉬라고 설득했지만 결국 남편의 고집을 당하지 못했다.어느덧 하예진이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되자 전태윤은 숙희 아주머니와 다른 도우미를 보내 아내 대신 처형은 돌보게 했다.우빈은 며칠 뒤 여전히 강일구의 배웅 하에 다시 오 선생님의 무관으로 돌아가 수업을 받았다.하예진이 하루하루 나아지는 사이 관성 상류사회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전해졌다.뜻밖에도 여씨 집안의 큰아가씨가 친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고소했다. 20여 년 전 집안의 재산을 위해, 둘이 떳떳하게 같이 살기 위해 여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 즉 큰아가씨의 친아버지를 해쳤다고.여운초는 자신의 녹음 펜을 경찰에 넘기는 것 외에 전이진의 도움을 받아 소씨 가문의 조사를 통해 여 대표와 추미자가 젊었을 적 몰래 함께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내 경찰에 넘겼다.소씨 일가도 원래 여 대표 부부의 세상에 내놓지 못할 증거를 손에 쥐고
하예진은 병상에 앉아있었다. 이젠 하루 종일 링거를 맞을 필요도 없고, 매일 오전에만 두 병 맞고 점심때가 가까워질 때면 다 맞을 수 있어 오후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다친 손은 아직도 힘을 못 써서 아들을 안을 수도 없었다.그녀는 나중에 사업에 영향을 미칠까 봐 조금 걱정했다.의사가 잘 휴식하기만 하면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효정이랑은 오랜 친구인데 약혼식엔 무조건 참석할 거니 걱정하지 마.”하예정은 껍질을 다 깎은 사과를 네 조각으로 잘라 한 조각은 언니에게 주고 한 조각은 우빈에게 주고 나머지 두 조각은 숙희 아주머니와 도우미에게 주었다.“사모님 드세요.”숙희 아주머니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어서 드세요. 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하예진도 거들어 말했다.“예정이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아서 안 드시면 여기 둬도 이제 버리게 돼요.”두 자매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숙희 아주머니는 하예정이 건넨 사과를 받았다.“언니, 점심 뭐 먹고 싶어?”그녀는 사과를 깎은 칼을 내려놓고 언니에게 물었다.“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돌아가서 만들어 올게.”“내가 지금 먹는 하루 세 끼는 너랑 태윤 씨가 알아서 정하고 있잖아. 영양사에게 부탁해 만든 식단이 상처 회복에 좋다고 하더니... 굳이 물어봐서 뭐 하게?”영양사가 준비한 레시피 중 일부는 하예진이 좋아하는 요리가 아니었다. 하예정은 언니를 달래서 다 먹이느라 힘을 적지 않게 들였다.그녀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언니가 다른 거 먹고 싶으면 내가 해줄 수도 있어.”“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박씨 아저씨가 매일 가져다주시는 음식만 해도 배가 터질 지경이야. 이제 퇴원할 때면 너희들 덕분에 20킬로는 더 찔 것 같아.”겨우 살이 빠졌는데 병원에 한 번 입원한 것 때문에 살이 되레 찌게 될 셈이다.하예정 부부뿐만 아니라 큰이모네도 병문안만 오면 보양식을 가져다준다.이모는 피를 많이 흘렸으니 보양해야 한다고 하면서
전태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노동명은 감히 매일 하예진을 보러 오지 못했다.일주일에 두 번 정도 왔는데, 처음도 전태윤과 이야기를 나누던 날 밤이고 이제야 두 번째 방문이다.“동명 씨, 은경 씨.”하예진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일어났다.노동명은 먼저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그는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이 꽃다발은 너에게 주는 거야.”“고마워요, 동명 씨. 뭘 이런 걸다.”꽃다발을 받은 하예진은 감사를 표했다. 병실에서 그녀는 매일 많은 과일 바구니와 꽃다발을 받았다.그녀는 보통 사람이지만 전씨 집안의 큰 사모님의 친언니이자 이경희의 조카딸인지라 매일 그녀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노동명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는 하예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관심 조로 물었다.“의사가 언제 퇴원할 수 있다고 했어?”“일주일은 더 입원해야 퇴원할 수 있다고 했어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손은경도 관심 조로 그녀에게 몇 마디 물었다.똑똑.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경호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하예정에게 공손히 말했다.“주씨 집안 사람들이 또 왔습니다.”하예진이 정신을 차린 후 주씨 집안 사람들은 자기가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병원에 찾아왔다.하에정은 언니를 한 번 쳐다보고는 분부했다.“돌려보내요.”그녀는 서현주가 이용당한 것은 여씨 사모님이 서씨 집안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협박을 해 우빈이를 빼앗도록 강요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서현주가 경찰에 연행된 후, 변호사를 제외하고 주씨 집안이든 서씨 집안이든 아무도 그녀를 볼 수 없었다.판결이 난 후에야 가족이 면회할 수 있다.서현주는 변호사를 통해 하예진에게 사과하는 동시에 변명도 가득 늘어놓았다. 비록 그녀를 질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빈이를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자신도 여씨 사모님에게 협박받아 어쩔 수 없이 도와줬다고 해명했다.어떤 이유로든 그녀가 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법의 처벌이다.
그는 병실에조차 들어갈 수 없는데 노동명이 있는 병실 안에서는 이따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이런 비교에 주형인은 상심했다.“형인아.”김은희는 매우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노 대표가 예진의 병실에 있어!”주서인도 동생을 쳐다보며 일깨웠다.“오든 말든 그건 남의 자유인데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 가, 우리.”주형인은 말하며 부모와 누나를 놔두고 먼저 발길을 돌렸다.그는 사 온 꽃다발을 경호원에게 가져다주는 대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형인아, 형인아.”김은희는 아들 뒤를 쫓아갔다.그녀는 쓰레기통을 지나가면서 버려진 꽃다발을 몇 번이나 쳐다봤다.‘아이고, 몇만 원짜리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다니.’주경진도 한숨을 쉬며 따라갔다.주서인만이 병실 입구에 남아 경호원에게 말했다.“귀한 손님이 와서 접대하는 걸 방해하지는 않을게요. 손님들이 다 간 후에 다시 들어갈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괜찮죠?”말하고는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경호원들은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병실에 강제로 들이닥치지 않는 한 경호원들도 상대하기에 귀찮았다.‘예전에는 그렇게도 하예진 씨를 괴롭히던 사람이 인제 와서 무슨 착한 척하는 거야?’30분 뒤 노동명과 손은경이 병실에서 나왔다.30분을 기다린 주서인은 벌떡 일어섰다. 노동명이 손은경과 함께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머리를 숙여 휴대폰을 보며 노동명을 못 본 척했다.손은경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노동명에게 물었다.“왜 좀 더 있지 않고요.”노동명이 자기를 곁눈으로 보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나를 그렇게 볼 필요 없어요. 진심으로 말한 말이에요. 비꼬려는 뜻은 없어요.”“은경 씨, 어디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얘기 좀 해요.”그녀는 시원히 응했다.10분 후.두 사람은 커피숍에 들어갔다.노동명은 아메리카노 한 잔, 손은경은 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은경 씨,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편이라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손은경은 우아한 동작으로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미소를 띤 채 노동명을 바라보며 말했다.“동명 오빠는 참 직설적인 사람이네요. 좀 자존심이 상하긴 해요. 왜 예진 씨를 좋아하는지 말해줄래요? 이혼한 적이 있는 데다가 세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어 당신이랑은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잖아요. 난 단지 내가 어디에서 졌는지 알고 싶어요. 결함이 있다면 고치려고요...”“솔직히 나도 모르겠어요. 난 내가 예진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조차 몰랐어요. 그러다 예진이가 다치니까 마음이 안절부절하고 두렵더라고요. 마음이 아팠어요. 그 후에야 나 자신이 어느샌가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혼했든, 아들이 있든 상관없어요. 우빈이가 나는 너무 좋아요. 집안 형편에 관한 문제는... 난 그런 것에 신경 안 써요. 하지만 예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당분간은 고백하지 않을 거예요. 이제 삼 년쯤 지나 예진이의 사업이 잘되기까지 기다렸다가 고백하려고요.”하예진의 사업이 더 잘된 후 고백하는 편이 성공할 확률이 좀 더 높다고 생각했다.그때가 되면 그녀도 자신감 넘치는 여강자가 되어 있을 테니까.노동명을 바라보는 손은경의 눈빛은 쇼크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그녀는 원래 더 노력하기만 하면 쟁취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들은 후 이제는 포기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하예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으니까.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그 여자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는 현재 거의 마흔이 되는 나이로 노총각에 속했다. 많은 사람은 그 나이에 이미 둘째를 낳아 기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하예진을 위해 몇 년이란 시간을 더 기다리려 하고 있다. 결혼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고백하는 시기를 말이다.하예진의 사업이 성공한 후 고백한다고 해도 꼭 그와 결혼한다고 장담은 없다. 설령 고백에 성공하여 결혼한다고 해도 적게는 1년, 많게는 3년 심지어 5년 남짓한 시간이 걸릴 것
노동명은 잠자코 손은경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 담담히 말했다.“은경 씨, 이건 당신의 결정이에요. 은경 씨가 뭘 하고 싶든 간에 그건 은경 씨의 일이지 난 그에 응답할 생각이 없고, 따라서 감사한 마음에 그 감정을 받아들일 생각은 더더욱 없어요.”비록 그녀가 그의 말을 듣고 침착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추잡한 말부터 앞세워 말했다.자신에 대한 감정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때 단칼에 끊어버리려는 생각이었다.그의 마음은 다른 여자 하나 더 담을 만큼 넓지 않으니까.일단 한번 마음에 들어온 여자는 평생 그대로 마음에 담아둘 생각이었다.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할 것이고 결혼하지 못한다면 잊지 못할 감정을 가슴 깊이 간직해 두면 그만이다.손은경은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이를 핑계로 내 감정을 받아달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모두 어른이잖아요. 자신이 한 모든 결정이 초래한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죠. 사적으로 만나자는 요청은 마음대로 거절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협업에 관해서는 나에게도 기회를 줬으면 해요. 우리 손정 그룹은 아직 관성에는 뿌리를 박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쪽에서는 몇 개의 대그룹 중 하나거든요.”노동명과 마주친 그녀의 눈빛은 태연했다.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그에 관해서는 목표가 일치한다면, 나도 손정 그룹과의 협업을 거절하지는 않을 거예요.”그녀는 웃으며 말했다.“동명 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도 안심이 되네요.”커피잔을 비운 뒤 그녀는 말했다.“나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이따 저녁에 봐요.”저녁이면 모두 소정남과 심효진의 약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소씨 가문의 집에 가야 했다.소정남은 소씨 가문의 도련님일 뿐만 아니라 소씨 가주 아들인 소지훈과도 친하게 지내어 소씨 가문의 중시를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씨 그룹의 비서실장이기도 하고 전태윤과 노동명과도 절친한 사이라서 그의 약혼식은 당연히 성대하게 치러졌다.심효진을 사랑하는 소정남은 약혼식이든 결혼식이든 최선을 다
‘이렇게 차갑고 거만한 남자를 하예정은 어떻게 정복한 거지?’주서인은 속으로 투덜댔다. 그녀더러 이런 남자와 같이 생활하라고 하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싸늘하다.그는 전태윤을 더 이상 볼 담이 없어 하예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예정 씨, 우리 단둘이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주서인에게 물었다.“무슨 얘기요? 지금 여기서는 못 할 얘긴가요?”주서인은 재빨리 전태윤을 보고는 다시 하예정에게 눈길을 돌렸다. 역시 하예정이 보기 훨씬 나았다.그녀가 예전에 그토록 하예정에게 못되게 굴면서 동생을 부추겨 아내와 싸우게 하며 온갖 수를 써서 하예정을 집에서 내보내려 한 이유는 자기 자녀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녀는 자녀들을 시내의 중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었다.또한 하예정의 젊은 미모를 질투했다. 하예진은 결혼 전에는 예뻤지만 결혼 후 관리를 잘 하지 않아 살이 쪄서 더 이상 결혼 전의 미모를 볼 수 없었다. 그녀와 달리 동생인 하예정은 매일 꾸준히 단련하여 항상 표준적인 모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이성은 끌리고, 동성은 서로 배척한다고, 주서인은 하예정을 질투했다.지금 그녀는 하예정에 대해 고마움만 있을 뿐 마음가짐이 변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봐도 질투심은 티끌 마치도 없다. 오직 눈이 즐거워질 따름이었다. 하예정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자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 전태윤과 같은 훌륭한 남자에게 시집가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예정 씨, 우리 그냥 따로 얘기해요.”하예정은 남편을 한눈 보고는 주서인이 자기 남편을 무서워하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여보, 차에서 기다려요.”전태윤은 부드럽게 말했다.“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거기서 얘기하면 돼. 당신을 볼 수는 있지만 대화하는 건 들리지 않아.”그는 복도 끝을 가리키며 하예정과 주서인을 그곳으로 보내 따로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병실 입구에선 두 사람이 보였지만 대화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그녀는 그의 뜻대로 했다.그녀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