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울은 처방전을 다 쓴 뒤 처방을 전이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지난번에 제가 보내온 약이 아직도 있죠? 이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서 그 약과 함께 복용하세요. 이 약들을 다 복용하신 뒤 제가 다시 운초 씨에게 맥을 짚어드리죠. 평소에 시간이 있으면 운초 씨를 모시고 바깥의 녹색 풍경을 자주 보러 나가세요.”“감사합니다.”전이진이 감사 인사를 했다.여운초가 매일 마셔야 하는 한약은 전이진이 직접 나가서 잡아 온 것이다. 그리고 약을 지어 온 뒤로 정겨울에게 한 봉지씩 검사하도록 했고 정겨울이 냄새를 맡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여운초에게 약을 가져다주었다.정겨울은 감탄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환자들에게 치료해주면서 전이진처럼 조심스럽고 세심하며 배려심이 깊은 환자 가족을 처음 만났다고 했다. 정겨울은 두 사람 앞으로의 삶은 분명 행복하고 달콤할 것이라고 여겼다.여운초는 고생 끝에 단맛을 보는 전형적인 인물이었고, 전이진을 만나기 전에는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한동호가 몰래 그녀를 도와준다고 해도 겉으로는 그야말로 비참하게 살았다. 어렸을 때 받은 고통과 학대는 정말 말할 것도 없었다.“선생님, 운초의 눈을 씻는 약초가 떨어졌는데 계속해서 씻어야 할까요?”여운초의 눈을 씻는 약초는 정겨울이 직접 재배한 약초로 밖에서 구하기 매우 어려웠다.전이진은 정겨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상태로 보면 더는 씻을 필요 없이 약만 먹으면 충분해요. 그리고 밖으로 나가셔서 먼 곳을 자주 바라보셔야 해요. 그러면 아마 설 쇠기 전에 정상인의 시력으로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참, 근시는 아니었죠? 원래 근시라면 정상적인 시력을 회복할 수 없어요.”여운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근시가 아니었어요.”정겨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설이 지나고 정월이 되면 제가 다시 몸조리해 드릴게요. 결혼 날짜는 정했어요?”그들 결혼식 전에 여운초의 몸이 잘 조리될 수 있을 것이다.“정하긴 했지만, 아기를 바로 가질 계획은 없
정겨울의 말을 들은 여운초는 자신이 임신하기 어려운 원인이 바로 친엄마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여운초는 어려서부터 잘 먹지도, 잘 자지도 못하고 학대받아서 몸이 나빠졌다고 여겼는데 그녀의 친어머니가 임신하는 것에 대해서도 손을 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정말로 친어머니 맞기나 한 걸까!호랑이도 친자식들을 해치지 않는데, 추미자는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다.하지만 추미자는 여운별과 여천우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단지 장녀를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다.엄밀히 말하면 여운초가 추미자와 가장 닮았다.만약 가능하다면 여운초도 그녀의 어머니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친아버지를 많이 닮기를 원했다.전이진은 다시 한번 정겨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정겨울이 웃으면서 말했다.“이렇게 인사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 보답하고 싶으시면 제가 A시로 돌아가기 전에 이진 씨가 직접 요리를 해서 맛있는 음식을 저에게 대접해 주세요.”전이진의 요리 솜씨는 정말 훌륭했다.비록 예준일도 요리할 줄 알고 있지만, 전이진과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전이진은 전씨 그룹의 요식업계를 관리하며 세상의 음식을 맛보았고 또 많은 요리도 할 줄 알았다.전이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매일 선생님께 음식을 대접할 수 있어요.”“두 분도 바쁘신데 제가 어찌 매일 요리해 달라고 하겠어요? 돌아가기 전날 밥 한 끼 사주시면 돼요. 그러면 제가 원이 없을 것 같아요.”정겨울은 시간을 보더니 두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가볼게요. 준하 도련님과 효진 씨와 식사하기로 약속했거든요.”약속이 있다는 소리를 듣자 전이진은 더는 고집하지 않았고 여운초와 함께 직접 정겨울을 배웅했다.“정 선생님은 오후에 펜션에서 식사하셨죠? 우리는 오후에 산장으로 돌아갈 거예요.”정겨울은 매번 관성에 올 때마다 서원 리조트에 묵었다.리조트는 충분히 크고 경치가 좋았기에 오래 묵어도 답답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며칠밖에 머물지 못
정겨울의 남편은 정겨울이 전씨 가문으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예씨 가문의 예준영의 요리 솜씨가 전이진보다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녀가 전이진의 요리 솜씨를 칭찬하는 것을 싫어했다.사실 정겨울은 그녀의 남편과 예준영의 요리 솜씨는 비슷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차이가 있다고 여겼다.게다가 예준영도 요리를 자주 하지 않았기에 정겨울도 예준영에게 요리해달라고 말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가장 좋은 해결책은 전이진에게 그녀의 집안 요리사한테 건의를 주는 것이다.전이진은 흔쾌히 승낙했다.두 사람은 정겨울이 차에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차는 전이진의 어머니 명해은이 정겨울에게 관성에서 타고 다니라고 정해준 차였다.정겨울이 관성에 온 이유가 바로 여운초에게 눈을 치료해주어 명해은에게 정상적인 며느리를 맞이해 주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그녀는 늘 정겨울을 귀한 손님으로 여겼다.정겨울이 관성에서의 모든 지출은 전이진의 어머니가 전부 도맡았다.“운초 씨,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밖은 너무 더워.”전이진은 약혼녀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안방으로 향했다.두 사람이 방문 앞으로 돌아왔을 때 밖에서 갑자기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운초 장님!”전이진은 그 목소리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약혼녀를 장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얼굴이 이내 굳어졌다.그러나 여운초는 매우 익숙했다. 그렇게 제멋대로 장님이라고 부를 사람을 여운별 외 아무도 없었다.‘감옥에서 나왔나?’여운초는 그 사실을 몰랐다.다만 여운별이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기에서 곧 나올 거라는 것만 알았을 뿐, 일부러 여운별의 출소 날짜를 기억하지 않았다. 연말이나 내년쯤일 거로 생각했다.그러나 벌써 나올 줄은 몰랐다.“여운별이 나왔어. 내 동생 말이야.”여운초는 전이진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내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당분간 여운별이 알면 안 돼.”여씨 가문의 직원들도 전이진이 안배해 들여보낸 사람 외에 원래 여씨 가문에서 일하던 하인들은 여운초의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여운초
여운초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그녀는 전태윤이 질투에 눈이 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니 전씨 집안의 내력인 것 같다.여운별은 대문 앞에 서서 전이진이 여운초의 손을 잡고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감옥 안에서 고생하고 나왔는데 여운초는 밖에서 전이진과 같은 조건이 좋은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전이진은 멋지고 매력 있는 남자였고 전태윤에 비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전태윤 성격은 매우 엄숙하고 도도한 반면 전이진은 훨씬 부드러웠기에 여운별은 전이진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다.다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여운별은 20대 초반이라 부모님이 감옥으로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시집가고 싶지 않을뿐더러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그들 중에서 남자 친구로 선택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여운별은 심지어 여운초가 전이진과 함께 서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너무 잘생겼고 또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질투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여운초가 여씨 가문의 모든 것을 이어받고 두 고모의 집을 파산시켜 빚을 지게 한 것도 전씨 가문 세력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여운별은 감옥 안에 있을 때 여운초에게 손을 쓸 수 없었지만, 지금은 바깥세상으로 나왔기에 여운초가 원하는 대로 행복하게 살게 해서는 안 되었다.“당장 문 열어! 나 들어갈래! 집사는 어디 갔어? 뭐 하는 거야!”여운별은 여운초를 불렀지만, 집사와 하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설마 여운초가 모두 바꾸어 버렸나? 빌어먹을!’여운별은 여운초가 어머니가 배양한 하인들을 바꾼 사실에 대해 매우 못마땅했다.“언제 나왔어?”“그걸 알아서 뭐해! 당장 문 열어!”여운초는 별장 입구에 도착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여운별을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난 앞이 보이지 않아 문을 열 수 없어. 들어올 방법을 알아서 연구해 봐.”“장님 주제에...”전이진이 갑자기 문에 발을 차버리자 여운별은 겁에 질려 몇
“문을 열어! 나 들어갈 거야!”여운별은 전이진의 매서운 눈빛을 보더니 더는 여운초를 장님이라 부르지 못했고 집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계속 소리쳤다.전이진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귀먹었어? 운초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운초가 안 보여서 문 열어주기가 불편하다고 하잖아. 들어오고 싶으면 스스로 문 열고 들어오든가 아니면 밖에 그냥 서 있어.”“열쇠가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 문이 잠겼잖아!”여운별은 화가 치밀어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여운별이 열쇠가 있으면 여운초한테 고개 숙일 필요 없이 진작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전이진은 약혼녀를 부축하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밖이 너무 더워. 내가 부축해줄 테니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그는 여운별이 한 말을 못 들은 척했다.여운초도 정말로 부축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장... 여운초! 문 열어! 여긴 내 집이야. 나 집에 들어갈 거야!”전이진이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여운별을 바라보았고 여운별도 더는 감히 소리치지 못했다. 그녀는 기가 막혔지만 두 사람이 점점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던 여운별은 별장 대문을 흔들며 옛날 그 집사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집사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고 또 이내 다른 하인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겨우 하인 한 명을 보게 되어 여운별이 바로 크게 소리쳤다.“이 봐! 난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야. 여긴 내 집이야. 빨리 문 열어!”여운별은 많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더니 집안의 하인들이 여운초에 의해 전부 바뀌었을 거로 추측했다.여운별은 여운초에 대한 원한이 더 짙어졌다.그 하인이 다가와 잠시 여운별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저는 둘째 아가씨를 본 적 없어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요. 그쪽이 둘째 아가씨가 맞는지 확신이 가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문을 열어드릴 수 없어요.”“제가 바로 당신들의 둘째 아가씨예요. 집 안에 우리 가족 사진이 있는
그 말을 들은 여운별은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11월의 햇살이 여름처럼 그렇게 매섭지는 않지다.관성에서는 한겨울에도 너무 춥지 않았다. 겨울에 해가 뜨면 긴 팔 셔츠만 입을 수 있기에 아직 겨울이 되려면 멀었다.그러나 여기서 햇볕에 오래 쬐면 그래도 너무 덥다.여운별은 햇볕에 타서 얼굴이 빨개지고 이마와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그녀는 끊임없이 여운초를 욕하다가 목이 말랐지만 마실 물이 없었다.게다가 여운초는 이미 집 안으로 들어갔기에 여운별이 아무리 큰 소리로 욕을 해도 듣지 못했다.그러던 여운별은 고개를 들어 문을 보더니 결국 문을 뛰어넘어 들어가기로 했다.대문 틈 사이에 공간이 있었기에 여운별이 조심만 하면 금방 넘어갈 수 있었다.하여 여운별은 대문을 넘기 시작했다.그 시각 별장 2층에서 여운초가 방안 창가에 서서 별장 대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 않않았다. 하여 곁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여운별이 돌아갔어?”“아니. 지금 대문을 넘고 있어.”여운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여운별도 자신이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예전에 운별이가 문을 잠그고 아무도 문을 열지 못하게 해서 내가 대문을 넘고 들어왔거든.”“그리고 그날 유리 파편을 바닥에 많이 뿌렸거든. 난 앞이 보이지 않아 문을 더듬으며 대문을 넘어 들어오며 착륙할 때 손바닥이 베었어. 어떤 유리 파편들은 심지에 살에 꽂혔었어.”“난 보이지 않아 바늘로 유리 조각을 골라낼 수도 없었어. 집안의 하인들도 모두 여운별 모녀의 명령대로 나에게 유리 조각을 골라주는 사람이 없어서 난 손바닥의 통증을 참으며 밤을 지새워야 했어. 그리고 다음 날 나가서야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손바닥의 유리 조각 들을 골라냈거든.”“다 골라내도 양손이 너무 아팠어. 병원 가서 약 먹을 돈도 없었는데 유리 파편 골라주는 낯선 사람이 내 양손에 상처가 많은 걸 보고 동정 때문인지 소독약, 진통제, 소독제 등 약들을 사주고 나를 도와
이때, 네 마리의 큰 개가 여운별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여운별은 놀라서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했다.그녀는 서둘러 대문 위로 되올라가 대문 밖으로 나갔고 그 개들도 따라서 덮쳐들려고 하자 여운별은 너무 놀란 나머지 땅으로 떨어졌다.쿵!여운별이 땅에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여운별은 너무 아파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들이 문 앞으로 몰려들어 대문에 매달리자 여운별은 그녀를 물어뜯을까 봐 땅에 주저앉은 채로 뒤로 물러났다.대문에서 멀리 피하고 개들이 대문 틈 사이로 나올 수 없는 모습을 보자 여운별은 비로소 시름을 놓았다.그녀는 자신이 문을 넘어 나간 뒤로 땅에 넘어진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개들에게 처참하게 물어 뜯겼을지도 모른다.여운별은 그제야 아까 넘어진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문은 2미터가 넘는데 그녀는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아파 죽는 줄 알았다.빌어먹을 여운초가 풀어준 개들일 것이다.여운초가 집에서 그렇게 사나운 짐승들을 키우다니!여운별은 그녀의 애완견, 애완 고양이는 아직 살아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여운별은 고통을 참고 일어섰다.그녀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고 판단했다.여운초는 문을 열어주지 않고 하인들도 여운초의 말을 듣은 것으로 보면 아마 아무도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여운별은 잠깐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몰랐다.안 들어가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됐다. 이곳은 그녀의 집이라고, 그녀가 어릴 때부터 자라온 곳이다.과거 여운별이 여운초를 괴롭혔만, 여운초가 눈이 멀어지는 것에 익숙해지자 여운별의 괴롭힘에도 반항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여운별이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여운별이 항상 여운초를 이기는 장면으로 끝났다.그런 여운별은 이제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없었다. 심지어 별장의 대문도 들어가 수 없다.‘운초가 정말 지독한 사람이었네!’만약 여운별이 자신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여운초에게 복수할
여운별은 인터넷에 글을 올려 1인 미디어에 연락해 글을 보내 인터넷에 올리게 하고, 인터넷 여론을 이용하여 여운초를 압박하고 여운초의 명성을 훼손할 계획도 생각해 놓았다.전씨 가문과 같은 최고급 재벌가들은 명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운초가 평판이 나빠지면, 전씨 가문도 아마 여운초 장님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여운별은 아픈 엉덩이를 비비며 걸어갔다.여기는 탈 수 있는 택시가 없었다.그녀는 머나먼 길을 따라 걸어간 뒤, 그제야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휴대폰도 없었기 때문에 온라인 택시 예약을 하려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여운초, X같은 장님! 두고 봐! 내가 두 배로 갚아줄 테니!”여운별은 걸어가면서 여운초를 욕했다.그녀는 방금 전이진이 여운초를 감싸고 있던 장면을 떠올리며 또 소리쳤다.“너의 남자까지 내가 다 빼앗을 거야!”사고도 나기 전에 추미자는 여운별을 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되게 하려고 계획했다.전태윤의 도도한 성격을 고려한 여운별은 전이진이나 전호영을 겨냥하고 있었다. 두 도련님은 성격이 부드러워 엄숙한 전태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일이 터지는 바람에 세 사람 모두 감옥에 가게 되었고 추미자의 계획은 자연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이제 자신이 겨냥했던 남자가 여운초의 약혼자로 된 것을 본 여운별은 여운초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어져만 갔고 앞으로 전이진을 빼앗아 여운초의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길을 걸어가던 여운별은 자신의 힘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여 조수를 구하려고 했다.친동생은 외지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여운별을 도울 수 없었다. 게다가 동생은 여운초와 사이가 더 가까웠다.그러다가 여운별은 자신의 두 큰고모와 그들의 가족들을 떠올렸다.두 고모의 집은 여운초에 의해 파산되었기에 아마 여운초를 이가 갈리도록 미워할 것이다. 그러나 전씨 가문이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었기에 두 고모도 복수할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여운별은 두 고모를 찾아가 힘을 합쳐 여운초를 상대하려 했다.두 고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