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 가문 아가씨가 전씨 가문 도련님을 열렬히 쫓아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겨우 전씨 가문 도련님과 함께 엮여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는데 그들때문에 화제가 줄었다고 그 아가씨는 화를 낸 것이다.재벌 가문 아가씨는 무슨, 남자를 구경도 못 해 본 게 분명했다!남자 하나 때문에 그들 집안을 짓밟다니, 정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하씨 집안 모두가 힘을 모은다고 해도 그 아가씨를 어떻게 할 방도는 없었다.시내에 와 이런 일을 겪고 나서야 하 영감은 걷는 놈 앞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하 영감은 자신의 손자들이 대단하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손자보다 수십 배는 대단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있었다."왜 그런 것이냐? 전에 이야기를 다 마쳤지 않으냐? 아버지와 네 삼촌이 대본도 다 준비해 놓고 합의할 때, 사람들에게 우리가 진짜로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하예정이 합의하지 않으면 그 애가 나빠 보이게 제대로 연기할 생각이었는데, 왜 갑자기 취소가 된 것이냐?"하씨 집안 할머니도 다급하게 물었다. "지문이가 뭐라니? 그 사람들이 안 도와주겠대?"하지문은 휴대폰 너머로 또 무슨 말을 한 듯, 둘째 아들은 체념한 듯 전화를 끊은 뒤 첫째에게 말했다. "지금은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대요. 하는 수 없이 우리가 몇 번 더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어. 지난번에 지명이 더러 동생들 데리고 가라고 했잖아. 젊은 애들이라 좀 충동적으로 나왔나 봐. 여덟째는 하예정의 가게를 부수겠다고 했다지, 뭐야. 그건 합의가 아니라 기름을 붓는 거지.""형, 다 같이 상의해서 어른들인 우리가 직접 하예정을 찾아가 사과하면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삭제하고 화해했다는 글을 다시 올려달라고 하는 건 어때요? 그래야만 이 사단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인터넷의 힘은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났고, 그들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면 이 방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하예정의 가게를
"태윤 씨, 저 지금 당신 회사 아래예요. 아직 퇴근 안 한 거예요? 저 당신이랑 점심 먹으려고 당신 데리러 왔어요. 깜짝 놀랐죠? 기쁘지 않아요?"전태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놀라기는 확실히 놀랐다.하지만 기쁨은, 존재하지 않았다.전태윤의 자제력이 좋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을지도 몰랐다."태윤 씨?"대답이 들리지 않자, 하예정은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전태윤은 넥타이를 잡아당겨 풀며 조용히 말했다. "저 이미 퇴근했어요. 근데 클라이언트께서 아직 가지 않으셔서 지금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에요. 아마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아니면 먼저 돌아갈래요? 조금 있다가 제가 가게로 갈게요.""얼마나 걸려요? 저 차를 몰고 온 게 아니라 택시를 타고 왔거든요. 괜찮아요, 저 회사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당신 일 다 하고 나면 같이 가요."전태윤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본 뒤 말했다. "회사 맞은편에 카페 있는데 거기서 기다려요. 조금 있다가 데리러 갈게요."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카페가 있는 것을 본 하예정은 별다른 생각 없이 전태윤의 말에 따랐다.하예정과의 통화를 마치고 난 전태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갑자기 쳐들어와 그의 진짜 신분이 탄로날까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하예정이 데리러 온 탓에, 전태윤은 접견실로 들어간 뒤 클라이언트와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빠르게 마무리했다.그런 뒤 소정남과 그 몇몇 임원들에게 클라이언트와 함께 관성 호텔로 식사 대접을 하라고 지시했다."전 대표님은 안 가시는 겁니까?"클라이언트가 반사적으로 물었다."급한 일이 있어서, 저는 함께 못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제가 다시 식사 대접하겠습니다."오늘의 이 중요한 클라이언트는 다름이 아니라 A시 제일 재벌 예씨 가문의 다섯째, 예준하였다.예진 그룹은 관성에도 자회사가 있었지만 여태까지 두 그룹은 서로 거래가 별로 없었다. 예진 그룹이 관성에 자회사를 세웠을 때도 눈치껏 해당 지역의 거물들과 케잌 싸움은 하지 않았었기에 자회사는
카페에서 전태윤을 기다리던 하예정은 괜히 앉아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라떼 두 잔을 주문하며 테이크아웃해달라고 말했다.입구와 가까운 곳에 앉은 그녀는 차를 몰고 온 전태윤을 단박에 알아본 뒤 곧바로 포장한 커피 두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예쁜 얼굴에 미소가 드러나더니 전태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차를 몰고 가까이 온 전태윤은 그녀의 앞에서 멈췄다.다가온 하예정이 조수석에 타고는 안전벨트까지 하자, 전태윤은 그제야 다시 시동을 걸었다."당신 왜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그것도 까만 마스크를요."하예정은 무심하게 물었다.전태윤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조용히 마스크를 벗었다. 이미 회사 입구를 벗어났으니 이제 그를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비록 아직 그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전태윤이 설명하지 않자, 하예정도 더 묻지 않은 채 화제를 돌렸다. "커피 마실래요? 당신 주려고 샀어요. 제가 먼저 먹을게요, 다 먹고 나면 제가 운전할 테니 당신 마셔요.""고마워, 난 괜찮아."전태윤은 원래 단 커피는 입에 대지 않았다."그럼 가서 효진이에게 줘야겠네요. 효진이는 라떼 좋아하거든요. 매일마다 점심 먹고 나면 라떼에 디저트 곁들여 먹는 걸 엄청 좋아해요.""여자들은 단 커피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잘 안 마셔, 좋아하지도 않고."하예정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사실 저도 잘 안 먹어요. 많이 먹으면 몸에도 안 좋고요."심효진이 라떼를 시킬 때면 하예정은 보통 과일 주스를 시켰다."오늘은 왜 갑자기 날 데리러 올 생각을 한 거야?"전태윤은 낮고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오기 전에 전화라도 하지. 내가 회사에 없었으면 헛걸음할 뻔했잖아."오늘 그의 스케줄은 마침 점심시간 때쯤에 회사에 있었다.평소였다면 이 시간에 그는 보통 회사에 없었다."식사 시간이 다 됐는데도 일을 해요?"전태윤은 응하고 대답하며 말했다. "대부분 협상은 식사 자리에서 이뤄지지."하예정은 알겠다는 듯 대답하며 말했
"참,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하예정은 화제를 돌렸다.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전태윤은 하예정이 자신의 침묵 때문에 화를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왠지, 그녀가 화를 내지 않자 전태윤은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무슨 얘긴데요?""할머니께서 저희 집에서 주말 이틀 동안 묵고 싶대요. 저더러 당신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꼭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당신은 할머니 친손주인데 어떻게 동의하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할머니는 아마 부부 두 사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듯했지만, 괜한 생각이었다.그와 전태윤은 오붓한 시간은 없는 이름만 부부인 사이였다.낮에는, 각자 할 일을 했고, 밤에는 각자 따로 잘만 잤다.무슨 일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나 시간은 몹시 적었다.당시 초고속으로 결혼했을 때, 하예정은 자신의 결혼 생활은 파트너와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정말로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살고 있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조금 마음이 흔들렸었다. 하지만 자신이 전태윤을 데리러 온 것에, 전태윤이 침묵을 하자 그녀는 피어오른 불씨를 꺼버렸다.계약했던 대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5개월 뒤면, 다시 솔로가 되는 것이다.전태윤은 정말로 할머니가 오지 않았으면 바랏다. 할머니는 능구렁이나 다름없이, 손주들을 골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그와 하예정은 아직 이름만 부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할머니는 일단 오게 되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든 두 사람을 한 침대에서 재우려할 게 뻔했다."우리 주말에도 각자 할 일로 바빠서 할머니 곁에 있어 줄 시간이 없으니,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본가에 있는 게 낫지 않겠어? 적어도 본가에는 은퇴한 아들, 며느리가 있으니 할머니랑 놀아줄 수도 있고 말이야."전태윤의 말을 들은 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어쩐지 할머니가 혼자 결정하지 말고 꼭 전태윤에게 물어보라고 끊임없이 당부한다 했더니,
대화가 벽에 가로막힌 듯 뚝 끊겼다.하예정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묵묵히 창밖의 풍경만 바라봤다.가게에 돌아갔을 때, 하예진도 마침 도착한 참이었다."언니."하예정은 차에서 내리며 언니를 불렀다.고개를 돌린 하예진은 동생 부부를 보자 포동포동한 얼굴에 미소를 띄며 동생에게 물었다. "태윤 씨와 어디 다녀오는 거야?""같이 식사하자고 회사로 데리러 간 거였어. 언니, 어때? 일자리는 찾았어?"차에서 내린 전태윤도 하예진에게 처형이라고 불렀다.하예진은 웃으며 대답하다 동생이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안색이 곧장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못 찾았어. 이력서를 한가득 넣었는데도 대답이 없으면 곧바로 거절하더라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가 이제 막 두 살 넘었다는 걸 알고는 나에게 아이가 그렇게 어린데, 일이 많으면 집중이 분산되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더라고. 그 말에 화가 확 차오르더라. 애가 있다고 일에 집중하지 않는 애 엄마가 어딨어?""그래서 나는 아이는 돌봐줄 사람이 있어서 출근 시간에는 일에 완벽히 집중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귀가 먹은 건지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언제부턴지 애를 낳고 난 여자는 일을 찾는 데도 차별을 받는 것 같아."하예진은 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지치고 배도 고팠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그러다 시댁에서 욕을 하며, 주형인과 헤어지고 나면 어떻게 살겠냐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그녀는 사회를 떠난 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장점은 더 이상 장점이 아니었고, 일을 찾을 수가 없어, 그녀가 회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회사의 선택을 기다려야 했다.그녀는 다시 회계팀장이 되기를 바랐지만, 지금 보기에는 무슨 직책이든 일자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언니, 괜찮아.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 맞는 자리가 있을 거야."언니를 달랜 하예정을 팔짱을 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밥부터 먹고,
식사를 마친 뒤, 하예진은 집으로 가 쉬겠다고 말했다.오전 내내 일자리를 찾느라 그녀는 몹시 피곤했다.일도 못 찾은 데다 적잖이 충격도 받아 그녀는 집으로 가 이력서를 다시 쓸 생각이었다. 지망을 더 넓히면 다른 일자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언니, 내가 바래다줄게."하예진은 자신의 제부를 쳐다봤다.전태윤은 적당히 대답했다. "처형, 전 먼저 회사로 가보겠습니다.""그래요, 운전 조심하고." 하예진은 그에 당부를 건넸다. 그렇게 전태윤이 떠나고 난 뒤에야 그녀는 아직도 자고 있는 아들을 안은 뒤 동생의 차에 탄 뒤 말했다. "태윤 씨 점심 식사 시간이 길지 않으면 넌 그냥 도시락을 회사로 가져다줘. 괜히 왔다 갔다 하게 하지 말고, 점심시간인데 쉴 시간도 없잖아.""알았어."하예정은 시동을 걸었다.그녀는 이제 다시는 전씨 그룹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괜히 언니에게 잔소리만 들을 게 뻔했다. 척 보기에도 언니는 전태윤이라는 제부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전태윤이 회사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오후 업무 시간이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그를 본 비서는 곧장 공경한 태도로 말했다. "대표님, 비서실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고개를 끄덕인 전태윤은 진중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하며 비서에게 지시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만, 다른 건 다 빼고."그는 아메리카노만 좋아했다.비서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대표님, 오후에는 커피 안 드시지 않아요?"전태윤은 보통 오전에 한 잔 마시고 하루를 버텼다. 만약 오후에 마신다면 밤에 잘 자지 못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보통 마시지 않았다.전태윤은 비서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감히 더 묻지 못한 비서는 전태윤이 사무실에 들어가자 얼른 커피를 내리러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간 전태윤은 소정남이 망원경을 들고 창밖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모습에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망원경을 확 뺏어 든 전태윤이 입을 열었다. "내 물건 함부로 건
전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 "예준하는 싸움 실력이 별로야. 그 예씨 가문도 A 시에서는 우리 가문과 마찬가지로 재계 서열 1위인 가문이라 안전을 위해서라도 예준하는 경호원을 더 두는 수밖에 없지. 너도 지금 안 것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놀라. 만약 예준하의 기세가 부러운 거면 너도 매일 경호원 주렁주렁 달고 다니든지."소정남은 원체 실력이 괜찮아 경호원은 필요 없었다.게다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면 너무 눈에 띄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서가 노크하고는 들어왔다."대표님, 분부하신 커피 가져왔습니다."비서는 막 내린 커피를 가지고 와 천천히 전태윤 앞에 내려놓았다.비서가 나간 뒤, 소정남은 친구 겸 상사인 전태윤을 놀렸다. "점심에 아내랑 애정행각 하러 다녀오니까 오후에는 일할 정신 없지? 커피 몇 잔 더 하지 그래?"전태윤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애정행각은 무슨 그는 그와 하예정 사이에 또 안 좋은 일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같이 밥 먹으려고 퇴근하는 걸 데리러 온 하예정에게 자신은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는데도 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아, 전태윤은 하예정이 앞으로는 절대로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왜 그래? 안색이 왜 그렇게 안 좋아? 설마 부부 싸움한 거야? 내가 보기에 부인분 성격 엄청 좋아 보이던데."막무가내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한참을 침묵하던 전태윤은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소정남은 비록 입은 무거웠지만 가십을 너무 좋아했다. 전태윤은 소정남이 아는 게 너무 많아, 어느 날 취해서 자신에 대해 전부 다 이야기를 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그는 또 소정남에게서 하예정과의 어색한 침묵을 해결할 방법을 묻고 싶기도 했다.그리하여 전태윤은 입을 열었다. "나 어쩌면, 조금, 상처를 준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소정남은 두 눈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곧장 물었다. "어떻게 상처를 줬는데? 말해 봐."전태윤은 책상
"동명이 내일 같이 늘 보던 데서 밥 먹자더라. 그 자식은 매번 밥 살 때면 늘 식객당으로 가자고 하네. 거기 음식이 맛있기는 하지만, 가게 옆이 할머님이 차린 소희 카페라 거기 가서 느긋하게 있을 수만 없었다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그건 우리가 예전에 자주 가던 곳이잖아. 동명은 정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녀석이잖아."예전에 세 사람이 아직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때, 전태윤은 아직 경험을 쌓고 있어 대표도 아니었을 때에는 신분을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탓에 세 사람은 중급 정도 되는 식당에 자주 갔다.소희 카페는 관성에서 제일 크고 제일 세련된 카페였고 그 주변에 있는 것은 옷 가게든 식당이든 격이 너무 떨어지지는 않았다.격이 너무 떨어지면 소희 커페가 끌어오는 손님을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그 카페에서 소비를 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고수입의 직장인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늘 자신을 박하게 대하지 않아, 카페에서 나오면 늘 다른 맛집을 가거나 쇼핑을 하는 탓에 그 번화한 거리는 소희 카페를 중심으로 중고가 상권이 만들어졌다."갈 거야?""밥을 산다니 당연히 가야지."전태윤의 얼굴에 간만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와 소정남은 이동명과는 우정이 돈독한 편이었다.이동명이 밥을 산다니 얼굴을 내민다기보다는 괜히 집에서 하예정과 어색하게 서로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그럼 나도 갈게. 간만에 주말인데 놀기도 해야지. 밥 먹고 나면 너희 할머니네 카페에 가자. 밤에는 해변에게 바비큐하는 건 어때?"전태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바비큐를 할 바에는 차라리 골프를 치는 게 나았다.소정남은 한참 동안 재잘거린 뒤에야 사무실을 나섰다.소정남이 가자, 전태윤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태윤아, 예정이가 말했지?""했어요."전태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그런지 기억력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할머니, 전 이미 할머니의 소원대로 하예정과 결혼했어요. 다른 일에는 절대로 끼
전씨 할머니는 한 손에 꽃다발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갓 구운 생선을 집어 전이혁에게 건넸다.“이런 작은 생선은 막 구웠을 때 먹는 게 맛있어. 식으면 맛이 없으니 따뜻할 때 먹어.”“고마워요, 할머니.”전이혁은 할머니가 건넨 생선을 받아 주저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먹던 중에 핸드폰을 꺼내 전우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다.전이혁은 전우와 나이도 비슷하고, 어릴 때부턴 전우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형제 중에서 전우와 가장 친했다. 그러니 그는 자랑하고 싶을 때는 무조건 전우를 찾았다.전이혁의 사진을 보자마자 전우는 가족 단톡방에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할머니, 낚시 가셨어요? 직접 구워 드시기까지 하네요. 많이 잡으셨어요? 저도 먹을래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이혁은 일부러 약 올리듯 답장했다.“이젠 없어. 할머니께서 나 주려고 특별히 남겨둔 거야. 그러니 네 몫은 없어. 그리고 너 진짜 생선 한 조각 먹으러 올 거야? 손해가 클 텐데?”“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할머니표 생선구이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할머니는 워낙 자유로워서 오전엔 리조트에 있다가도 오후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었으니, 큰 손자인 전태윤도 못 말릴 정도였다.부모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할머니의 손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잘 해드리는 것밖에 없을 뿐, 감히 할머니를 간섭할 수 없었다. 그나마 큰 손자인 전태윤이 할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인데 그마저도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할머니는 그야말로 나이 든 개구쟁이였다. 할머니는 지금은 리조트에 있지만 다섯째 손자인 전우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늘은 많이 잡지 못했어. 넷째한테 줄 몇 꼬치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다 먹었어. 먹고 싶으면 설 연휴 때 와서 직접 낚시해서 구워 먹어. 그래야 더 맛있지.”전우는 아쉬움으로
잠시 후, 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는 고개만 돌려 살짝 보더니 다시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할머니, 저 왔어요.”멀리서 전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이혁은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린 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풍겨오는 바비큐 냄새는 정말 좋았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 이런 날씨에는 바비큐가 최고죠.”관성의 겨울 날씨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어제는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워서 할머니들은 밖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온이 확 올라와 정오 무렵에는 햇빛까지 쨍쨍하게 비추더니 약간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관성의 사람들은 겨울에 가끔 이렇게 바비큐를 해 먹긴 하지만 보통은 휴일이 되어야 준비해서 해먹을 여유가 있었다.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할머니는 생각만 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바비큐를 즐길 수 있었다.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전이혁은 자신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들이 성장하면 당장 사업을 넘겨주고, 자신은 조기 은퇴해 할머니처럼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것은 신선놀음보다 더 행복한 삶이었다.“넷째 도련님.”양씨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전이혁에게 안부를 물었다.전씨 할머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던 여러 할머니도 전이혁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전씨 할머니가 무려 아홉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 부러워했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막내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의 손자는 이미 뛰어나고 유능한 인물들로 소문나 있었다. 게다가 막내 두 명은 비록 사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적이 우수했고 앞날도 창창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었다.전씨 가문은 자손들이 하나같이 훌륭했고 가업도 재산도 어마어마했으니,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그들은 가끔 함께 수다를 떨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곤 했었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그 시절에도 그들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때부터 이미 가문에서 주름잡는 존재였다. 결국 훌륭한 어른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전씨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자아이를 불렀다.“소령이, 이리 와봐.”여자아이는 깡충깡충 뛰어갔다.“어르신, 닭 다리 다 구워졌어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자신에게 닭 다리를 주려고 부른 줄 알았다.전씨 할머니는 여자아이를 안아 올리며 웃었다.“아직 다 안 구워졌어.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을 거야.”“그런데 왜 양씨 아저씨의 자리를 잇고 싶다고 했지?”전씨 할머니가 여자아이를 예뻐한다는 건 리조트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전씨 가문은 몇 대째 아들만 태어났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딸을 가지길 원했었고, 그것이 안 되자 손녀를 기대해 보았지만, 매번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할머니는 이제 증손녀를 기대해 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증손녀를 안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종종 직원들에게 집에 여자아이가 있으면 관성으로 데려와 학교도 보내고 같이 생활하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리조트에 있는 놀이공원에 놀러 오라고도 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여자아이들이 리조트에 놀러 오게 되면 손주며느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한테 증손녀를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양씨 아저씨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양씨 아저씨가 사는 집도 아주 예뻐요. 저도 양씨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그 여자아이는 겨우 세 살밖에 안 됐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말도 잘해서 가끔 그 여자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어른들이 놀랄 정도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부모도 가르친 적이 없는 말을 스스로 내뱉곤 했었다.우빈이도 가끔 서원 리조트에 올 때마다 리조트에서 내려와 그 여자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곤 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여자아이가 리조트에 올라와 우빈이와 함께 놀기도 했었다.“아까 양씨 아저씨가 한 말 잘 들었지? 네가 컸을 때는 양씨 아저씨는 이미 은퇴하고 다른 사람이 저 자리에 있을 거야. 그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야 네 차례가 오게 돼. 그보
할머니는 함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다.“날씨가 좀 쌀쌀하네. 우리 따뜻하게 몸도 데울 겸 한 잔씩 할까?”“어르신.”전씨 할머니가 술을 마시자고 하자 양씨 아저씨는 바로 할머니를 제지했다.“어르신 술 마시면 안 됩니다. 큰 도련님께서 아시면 또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며 저를 혼내실 거예요.”“양 집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태윤이는 점점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온갖 걸 다 간섭하려 들어.”할머니는 손자인 전태윤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며 투덜거렸다.그러자 함께 있는 몇몇 할머니들이 웃기 시작했다.“큰 도련님께서 어르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저희 나이에는 술도 적게 마시는 게 좋잖아요.”“과일주는 괜찮아. 양 집사, 가서 과일주 두 병 가져와. 바비큐에는 술이 있어야 제맛이지.”양씨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리조트에 전화해서 과일주 몇 병을 가져오도록 했다.그들이 직접 잡은 생선 외에도 양씨 아저씨는 몇몇 어르신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바비큐용 식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어르신들 옆에는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양씨 아저씨는 그들을 위해 과일 주스를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기분 좋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전씨 할머니는 이렇게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생활을 참 좋아했다. 게다가 내년엔 첫 증손주가 태어나니 할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할머니는 자신이 구운 소시지 한 꼬치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고 그 아이의 높게 올려 묶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소령이 갈수록 예뻐지네. 반짝이는 눈 좀 봐. 네 엄마가 너를 ‘소령이’라고 부르는 게 딱 맞아.”그 여자아이는 소시지를 건네받으며 귀엽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전씨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또 뭐 먹고 싶어? 할머니가 구워줄게.”“닭 다리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익숙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씨 할머니에게 닭 다리를 구워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