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태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더 반박했다가는 용태호의 심기만 건드릴 것 같아 여운별은 자신을 자책하는 쪽으로 말을 돌렸다.“아니에요. 제가 잘 못했어요. 아직 목소리를 바꾸는 법을 제대로 몰라 그녀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말았어요. 그녀가 의심하는 게 당연해요.”여운별은 여운초가 분명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여운초가 저를 의심하고 있을 때도 전 화내지 않고 참고 있었어요.”“여운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오늘 널 그만 돌아오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넌 이미 들통나고도 남았어.”여운별은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하려 했지만, 용태호의 차가운 시선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사실, 여운별은 오늘 연회에서 여운초가 상스러운 말로 임유나한테 모욕당하고 있는걸 보며 대리만족감에 속이 다 시원했다. 그리고 오늘 여운초의 말에 열 받은 것도 분명했다. 여운별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여운초가 조금만 더 했더라면 자칫 몸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여운초는 여운별의 분노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대로 발끈하는 여운별이었다.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여운별이 주눅 든 목소리로 입을 뗐다.“태호 씨, 미안해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봐요...”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용태호도 여운별이 조금은 안쓰러웠는지 마음이 누그러들기 시작했다.“네 잘못만은 아니야. 네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사람이 어떻게 한순간에 바뀌겠어? 강산은 바뀔 수 있어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고 하잖아. 이 정도까지 해낸 것도 이미 대단한 거야.”“하, 걸 아는 사람이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한단 말이야?”여운별은 혹여나 또 용태호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혼자 중얼거렸다.사실 그녀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세상 물정 모르는,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인 사람이었다.하지만,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니 이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이 얼마나 사람들의 비호감을 사는지, 심지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을 심히
여운별은 용태호가 약을 먹은 게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다.“이리 와”용태호가 여운별을 향해 손짓했다. 용태호는 금방 씻고 나온 여운별의 살냄새를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용태호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태호 씨...”여운별은 부끄러운 듯 달콤한 목소리로 누워있는 용태호의 옆으로 다가갔다.여운별은 비록 몇 번이고 용태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그럴 능력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용태호를 잘 달래는 것뿐이었다. 용태호가 기분이 좋아야 여운별 자신의 삶도 좀 나아질 수 있으니까......제일 이상적인 상황은 용태호가 만족을 느끼고, 빨리 관성을 떠나는 것이었다. 용태호만 곁에 없으면 여운별은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었다.비록, 지루한 에티켓 교육을 받으러 다녀야 했지만, 매일 종잡을 수 없는 용태호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낫았다. 용태호는 금방까지도 달콤한 말로 여운별을 아껴주는 듯 하다가도 한순간에 여운별을 죽이기라도 하듯 목을 조이며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했었다.용태호는 여운별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기게 했다. 그리고 몸을 뒤집어 여운별을 아래로 눕히며 움직이지 못하게 압박했다. 용태호가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여운별이 갑자기 있는 힘껏 용태호를 밀쳐 내더니 빠른 속도로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달려갔다.그 뒤로, 화장실에서 여운별이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상기 되어 있던 용태호의 얼굴이 순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수많은 애인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용태호를 거부한 애인은 없었다. 여운별의 행동은 용태호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여운별, 죽고 싶어 환장했나. 내가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용태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운별을 대체할 애인을 찾을 수 있었다. 용태호가 여운별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그녀의 하예정과 여운초에 대한 증오를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여운별만이 유독 전씨 가문의 세력에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앞으로 잊지 말고, 약 챙겨 먹어.” 용태호는 혹시 귀찮은 일이 생길까 여운별에 당부했다.“아니면 병원 예약 해줄 테니 그냥 피임 시술받을래? 그럼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약 많이 먹으면 나중에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여운별은 잠시 망설였다.“......”“그냥 약 먹을게요.”피임 시술이라니, 여운별이 아무리 어리고 멍청하다고 해도 용태호의 말대로 했다가는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용태호가 조금이라도 여운별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이 피임 조치를 해 여운이 약을 먹는 일도, 낙태를 하게 일도 없었다.“그래, 그렇게 하던가.”어차피 용태호 자기 몸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그는 여운별이 약을 먹든 시술하든 자신의 아이만 낳지 않는다면 전혀 상관이 없었다.용태호는 아내와 낳은 아이들도 이미 다 컸고, 가문의 후계자가 더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비록, 용태호가 아내에 대한 감정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자기 자식들만큼은 끔찍이 생각했다. 그는 온갖 애정을 쏟으며,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잘 자라도록 했다. 물론, 용태호가 혼외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독 좋아하는 두 명의 애인에게만 자신의 아이를 낳게 했다. 그 두 애인은 말도 잘 들었고, 어떠한 야망도 없어 용태호에게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용태호는 대가로 두 애인에게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며, 매달 생활비를 보내줬다.용태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내가 어떻게 화를 내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애인이 정처의 위치를 차지하려고 아무리 몰래 임신했어도, 아내가 대신 문제를 처리하도록 놔두었다.그나마 여운별은 어리고 예쁘기라도 해 용태호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똑똑함으로는 용태호 자기 아내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절대 여운별에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할 생각이 없었다.“얼른 쉬어. 내일 의사 부를 테니 확인해 봐. 정말 임신이 맞는지...”“정말 임신이 맞다면, 약 처방 해달라고 할 테니 먹
“얼어 죽을 장님! 전부 네 탓이야. 너 아니었다면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거야.”여운별은 잘 지내지 못하기만 하면 모든 잘못을 여운초에게 밀게 되었고 여운초에 대한 원망이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그리고 하예정도 끌어내 하루에 수없이 욕했다.여운초는 갑자기 재채기를 몇 번 했다.방금 욕실에서 나온 전이진은 여운초가 재채기하는 소리를 듣더니 다급하게 걸어가며 걱정스럽게 물었다.“감기에 걸렸어? 샤워하고 나올 때도 옷을 걸치지 않고 나오더니. 왜 난방도 안 틀고 있어? 날씨가 추우면 얼른 틀어야지.”전이진은 난방을 켜며 말했다.여운초가 대답했다.“얼마나 춥다고 난방을 켜? 창문도 꼭 닫았는데 안 추워. 옷도 두껍게 입고 이불도 덮고 있는걸. 내가 추위를 타는 게 아닌 누군가가 내 뒷담화 하고 있는 거야.”문씨 가문 연회에 참석할 때 드레스를 입고 있어도 여운초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문씨 가문은 따뜻했다.“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누군가가 꿈에서 널 욕하기라도 하게?”전이진은 여운초의 외투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그는 여운초를 따라 침대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주었다.“리조트는 그래도 추워.”전이진은 난방을 다시 켜지 않았다. 실내가 춥지 않으면 여운초는 전이진이 그녀를 안고 자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밀어낼 테니까.전태윤에게서 배운 수작인데 아내를 껴안고 잠들려면 난방을 틀면 안 된다고 한다.관성의 겨울은 추운 편은 아니었다.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오면 실내 온도는 낮지 않았다.십여 도의 온도는 정말로 난방을 켤 필요가 없다.“우리 엄마가 연회에서 문제가 좀 생겼는데 당신이 잘 처리했다고 칭찬하시더라고.”여운초 연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먼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기에 전이진에게 연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아직 알려주지 못했다.명해은은 돌아오자마자 전이진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문씨 가문의 연회에서 운초가 연적을 만났는데 이따가 운초에게 잘 해명해. 오해하게 하
전이진이 급급히 해명했다.“여보, 나 밖에서 여자 건드린 적 없어.”“알아. 난 당신이 밖에서 바람피웠다고 말한 적 없어. 단지 당신이 너무 멋지고 훌륭해서 수많은 여자를 매료시켰다고 말했을 뿐인데. 남자도 미녀를 볼 때 몇 번이고 더 보고 싶어 하고 심지어 첫눈에 반하잖아. 여자들도 마찬가지야. 멋진 남자를 보면 참지 못하고 눈길 한 번 더 주면서 설레하는걸. 연회에서 가희 씨가 날 친구에게 소개해 주셨는데 그 친구분은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너무 냉담하게 대하는 거야. 심지어 험한 말까지 나에게 하더라고. 너무 이상했어. 건드린 적도 없는데... 나중에 알았는데 당신을 짝사랑했더라고. 내가 그 친구분의 연적으로 된 거지.”전이진의 멋진 얼굴은 이내 굳어졌고 나지막이 물었다.“누구야?”그의 아내가상대방과 인사를 나누는 것만 해도 이미 상대방의 체면을 충분히 세워준 셈이다.그러나 그 여자가 의외로 여운초를 아랑곳하지 않았다.여운초는 전이진의 예쁜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남편은 내 나쁜 소식만 들어도 얼굴이 어두워진다니까. 이진 씨는 늘 부드러운 사람인데 차가운 표정을 지으면 당신 큰형과 겨루어 볼만 해. 여보, 난 당신의 어두운 얼굴이 싫어.”전에 그녀는 전이진을 볼 수 없었기에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표정이 어땠는지도 몰랐다.전이진과 지내면서 느낌상으로 그가 부드럽고 지적인 남자라고 결론지었다.외부 사람들 눈에도 전이진은 우아하고 지적인 남자로 보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전씨 가문의 횡포함이 들어있었다.때때로 화가 날 때면 그의 냉담한 표정이 전태윤과 겨룰 수 있을 정도다.전태윤은 차가운 얼굴에 익숙해져 있지만, 전이진은 차가운 표정을 거의 짓지 않았다. 하여 전이진이 갑자기 차가운 얼굴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곤 한다.“내가 뭐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거든.”여운초는 웃으며 전이진의 찌푸린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난 단지 당신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말
예전에 여준희도 여운초에게 전이진을 놓치지 말라고 설득한 적 있었다.심지어 젊고 활기찬 여천우도 전이진을 칭찬하며 전이진의 눈에는 온통 그녀뿐이라고 말했다.여천우는 여준희와 힘을 모아 여운초에게 전이진의 감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지 않았던가!전씨 가문은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면 안 된다면서, 그녀도 아주 훌륭하기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 없다면서 말했다.여운초도 전이진이 그녀에게 진심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당시 여운초는 그 당시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전이진처럼 훌륭한 남자가 더 좋은 짝을 찾아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시각장애인인 그녀에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느꼈었다.그 뒤로 전이진은 정겨울이 여운초에게 눈을 치료하게 하려고 몇 번이고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 이 때문에 예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은 전이진이 정겨울의 산후조리에 방해된다면서 불평까지 늘어놓았다.전이진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날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난 당신 사람이고 당신도 내 것이야. 당신은 할머니께서 나에게 골라주신 사람이야. 사실 처음에 나에게 시각장애인을 골라주어서 할머니가 너무 편파적이라고 생각했어. 나도 내가 훌륭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우리 큰형만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할머니가 효심을 이용해서 큰형이 큰형수님과 결혼시켰거든. 형수님 출신이 우리 가문만 못하지만 적어도 정상인이잖아. 호영이 짝도 훌륭하고. 근데 할머니께서는 너에게 수많은 서프라이즈가 있으니 천천히 하나하나 캐어내라고 하신 거 있지.”전이진은 또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에 뽀뽀하고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여보, 내가 처음 당신에게 접근했을 때 할머니께서 골라주신 사람이 얼마나 놀라운지 좀 보고 싶은 것도 있었어. 놀랍게도 넌 정말로 나에게 서프라이즈를 줬지. 넌 익숙한 환경에서는 일반적인 사람처럼 행동했어. 그때 난 우리 할머니께서 나에게 골라주신 아내가 남만 못지않을 거란 점을 알았거든. 그래서 먼저 너에게 꽃을 주문한 거야. 꽃 배달
다음 날 아침, 여운초는 전이진의 빤히 보는 눈빛에 의해 깨어났다. 그녀는 누군가가 그녀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눈을 떠보니 전이진의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여운초는 그의 눈을 가리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전이진이 물었다.“여보, 왜 이렇게 쳐다봐? 사람을 먹지 않아서 다행이네. 아니면 나를 잡아먹을까 봐 걱정했을 거야.”전이진은 이번 한 번만 이렇게 쳐다본 건 아니다.전이진은 몇 번이고 여운초가 자는 모습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여운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어도 본능적으로 잠에서 깨날 수 있었다.혼인 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어 처음으로 한 침대에서 잠들고 깨어났는데 여운초는 그에게 이런 그윽한 시선을 받고는 화들짝 놀랐었다.집에 도둑이 있는 줄 알았다. 처음으로 한 침대에서 잠들었기 때문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고 전이진과 부부로 된 사실도 잊었다.눈앞의 사람을 똑똑히 본 여운초는 본능적으로 이불을 잡아당겨 자신을 꽁꽁 싸매고 나서 이불 아래로 발을 뻗어 전이진을 침대에서 걷어찼다.전이진은 그녀의 발에 차여 땅에 떨어졌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여운초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이 혼인 신고를 한 기억을 떠올리더니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그를 땅에서 일으켜 세웠다.그리고 웃으면서 사과했다.“혼인 신고한 사실을 깜빡했어. 날 덮치려는 줄 알고 그만 차버렸네.”전이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나무랐다.“내가 언제 덮쳤다고 그래? 우리가 혼인 신고 하지 않았어도 약혼한 사이인데 내가 당신 침대에 있는 게 뭐 어때서?”그녀는 겸연쩍게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예전에 강제로 키스한 적이 있지 않았냐고, 그것이 바로 덮치는 거라고 알려주었다.여운초가 옛날얘기를 꺼내자 전이진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그녀가 두 사람이 이미 부부 사이로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려고 전이진은 그날 밤 다시 한번 불태워 하마터면 여운초가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 할 뻔했다.전이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난 이렇게 당신을 보고
여운초가 눈을 뜨고 전이진을 노려보았다.“동호 오빠와 형수님은 지금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마. 두 사람의 사이에 영향을 주면 안 돼.”전이진은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알았어.”한동호 부부는 정말로 금실 좋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전이진은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아내를 빼앗길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지금 한동호가 여운초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처럼 강렬하지 않고 많이 평범해졌다. 정말로 여운초를 여동생처럼 대했다.전이진은 다가가 여운초의 볼에 뽀뽀하고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여보, 좀 더 자. 난 나가서 한 바퀴 뛰고 와서 아침밥 해줄게. 내가 직접 해줘야지. 창빈 도련님이 하신 요리가 더 맛있는데. 당신이 돌아올 때쯤이면 아마 창빈 도련님이 모두에게 아침 식사를 해놓고 기다릴걸.”전이진은 웃으며 대답했다.“큰아버지 댁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 싶어? 그럼 내가 빨리 가서 볼게. 창빈이가 일어났는지 모르겠어. 아침 많이 해놓으라고 부탁해서 우리 아침 식사를 그곳에 가서 하자. 창빈이가 월요일에 원림성의 A시에 간대. 큰어머니께서도 조금 아쉬워하셔서 며칠 동안 창빈이가 시간 내서 어르신들과 함께 있을 거야. 맛있는 음식도 해드리고.”여운초는 잠을 자지 않고 일어나 호기심에 물었다.“그렇게 먼 곳에 가서 무엇을 하신대? 출장 가시는 거야?”“다른 가문의 가정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해. 그 가문의 사람 입이 특히 까다롭다고 해. 창빈이가 자신의 요리 솜씨가 뛰어난지 확인하기 위해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여운초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창빈 도련님의 요리 솜씨가 검증이 필요해? 당신들 형제들은 전부 할머니의 밑에서 자랐잖아. 큰형수님이 말씀하시는데 당신 형제들 요리 솜씨가 아주 좋다고 하던데.”전씨 할머니는 세상의 모든 요리를 다 드신 분이다.전씨 가문의 형제들은 전부 전씨 할머니의 밑에서 자랐다. 그들은 종종 전씨 할머니께 요리해 드렸다. 할머니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그들의 요리 실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