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 씨, 우리 이 아이를 남겨두는 건 어때요? 방금 인터넷에서 확인해보니 유산하면 출혈이 심하면서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여운별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계속 말했다.“저는 아직 젊어서 죽고 싶지도 않고 너무 무서워요.”용태호는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튕기며 웃으며 위로했다.“바보 같으니라고. 의사 선생님이 아직 아래층에 계신다니까. 의술이 아주 좋거든. 산모가 아이를 낳았을 때 양수 색전증이 생겼는데 저 의사 선생님이 구해줬다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많은 일이 조금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만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아. 두려워하지 마. 말했잖아. 넌 나에게 아직 쓸모가 있다고. 널 죽게 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젊고 예쁜데, 나도 널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용태호는 여운별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네가 먹은 피임약은 부작용이 크고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잇어. 이 아이는 남겨서는 안 돼. 만약 태어날 때부터 기형이거나 뇌성마비가 온다면 어떻게 할 거야? 넌 아이의 평생을 망치는 거나 다름없어.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어서 네가 아이를 버리면 유기죄로 단정 지어져. 지금은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아이를 버리면 누가 버렸는지 바로 알 수 있어. 유산은 아파.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금방 지나가. 몸이 회복되면 가서 피임 수술을 받아.”여운별은 용태호와 같은 늙은 남자가 피임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용태호한테 목 졸려 죽을까 봐 두려워서 입가까지 올라온 말을 감히 내뱉지 못했다.“일어나서 약 먹어. 얼마 안 걸려. 내일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을 거야. 참, 말할 게 있는데 너의 눈먼 언니가 병원에 가서 너의 진료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어. 다행히 네가 진짜 이름으로 진료를 받은 것이 아니어서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여운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네 남동생이 부탁한 모양이에요. 병원에서 남동생에게 전화해서 몸이 안 좋으니 작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돈을 좀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인색한 놈이 저에게
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 차를 타고 떠났다.방윤림이 있는 한 다른 비서가 곁에 있을 필요가 없다. 방윤림 한 명이 열 명의 비서와 맞먹을 수 있으니까.방윤림은 외투를 벗자마자 이윤미의 몸에 걸치려고 했다.이윤미가 입을 열었다.“안 추워요.”“빨리 외투를 입으세요. 이 시간에는 정말 춥거든요.”“제가 세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 추우면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거든요.”“안에서는 춥지 않지만 나오면 추워요. 옷을 많이 입지 않은 것 같은데.”방윤림이 외투를 이윤미에게 걸치려 하자 그녀는 다시 막았다.“정말 필요 없어요. 빨리 입으세요. 감기 걸려요.”이윤미가 그의 외투를 거부하자 방윤림은 어쩔 수 없이 외투를 다시 입었다.그리고 이윤미와 함께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이윤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방 비서님. 저랑 좀 산책할래요?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서 좀 걸으면서 바람 좀 쐬고 싶어요. 정신이 맑아지게요.”방윤림은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피곤해서 그래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중간에 별로 쉬지 못하셨잖아요. 매일 이러는데 강한 사람이라도 버티지 못할걸요. 주말에 쉬지도 않고.”방윤림은 가슴 아파하며 말했다.다른 사람들은 주말에 모두 쉬지만, 그녀는 이씨 가문의 주인으로서 주말에도 여전히 바삐 돌아쳤다.후계자로서 정말 쉽지 않았다.특히 이윤미처럼 부모님 곁에서 자라지 않고 어릴 때부터 후계자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 이 길을 걷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었다.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관성에서 온 하예진 친구도 적수도 아니니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엄밀히 말하면 친구도 적이다. 그러나 이윤미는 하예진과 친구도 적도 아닌 사이로 지냈다.방윤림은 사실 하예진이 이씨 가문으로 돌아와 이씨 그룹을 장악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이윤미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방윤림은 이씨 가문의 가주를 전문적으로 보조해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이윤미가
방윤림이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러 갈게요.”이윤미는 그를 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당신도 매일 땅에 발을 디디지 못할 정도로 저보다 더 바쁜데 하루 쉬세요. 비서님 말에 따르면 매일 이렇게 바쁘게 다니며 버티다 보면 강철로 만든다고 해도 견뎌내기 어려울 거예요.”방윤림은 이윤미보다 더 바삐 돌아쳤다. 그는 수많은 일을 해야 처리해야 했다.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물어볼 때 그녀에게 답을 주고 그녀를 도와야 했다.작은 일들은 이윤미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스스로 해결할 때도 있었다.하여 방윤림은 그녀보다 훨씬 바빴다.“저는 괜찮습니다. 익숙해졌어요. 훈련 기간이 지금보다 더 힘들었는데 제가 전부 이겨냈거든요.”이윤미가 산책하고 싶어 하자 방윤림은 그녀와 함께 호텔 입구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그리고 항상 그녀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움츠러들고 추위를 느낀다면 즉시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입히려고 준비하고 있었다.그러나 이윤미는 춥지 않았다.일할 때 실내에서 난방이 틀어져 있었고 외출하면 차에 타거나 집에 돌아오면 바로 방에 들어갔다. 늘 따뜻한 실내에서 지냈다.만약 밖에서 돌아다니면 이윤미의 옷차림으로는 춥지도 않았다.게다가 이윤미는 밖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이깟 추위가 뭐람!어렸을 때 그녀는 겨울이 무서웠다.겨울에 양부모님은 오빠들에게 따뜻한 겨울옷을 준비해 주었지만, 이윤미는 늘 오빠들이 입다 던진 옷을 입어야 했다. 그들은 이윤미를 괴롭히려고 그녀의 헌 옷마저도 빼앗아 버리곤 했다.하여 이윤미는 자주 추워서 입술 색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끊임없이 떨고 있었다.이를 본 이웃들이 그녀의 양부모님에게 하나뿐인 딸을 얼어 죽일 셈이냐고 꾸지람까지 할 정도였다.남들에게 지적을 많이 받은 양어머니는 그제야 오빠들의 헌 옷을 몇 벌 더 꺼내 입혔다.새 옷을 입는 것은 한낮의 꿈이나 다름없었다.하여 양부모가 이윤미를 키워주셨다고 해도 자신이 이씨 가문의 진짜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는 고현이 20년 넘게 남장을 하고 있어서 성격이 남자다웠기 때문이다.방윤림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그럼 제가 아가씨와 함께 쇼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무료로 물건을 들어 드리면 아가씨도 힘들지 않으실 겁니다.”이윤미는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하긴, 그렇긴 하죠. 그런데 저는 내일 예진 씨와 함께 쇼핑하고 싶어요. 예진 씨 아들이 왔는데 녀석이 너무 귀여워서 제가 엄청나게 예뻐하거든요. 저와 예진 씨의 엄마는 같은 세대로 예진 씨도 사실 저를 이모라고 불러야 하고 어린 녀석도 저를 할머니로 불러야 하거든요. 놀랍게도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할머니로 될 줄은 몰랐네요.”하예진은 이윤미보다 몇 살이나 더 많았다.방윤림이 말을 건넸다.“가주님과 예진 씨 외할머니가 같은 세대라니, 나이 차이가 너무 나네요. 아가씨와 예진 씨 차이도 너무 나네요.”이은숙은 이은화를 딸로 여기며 키웠다.“우빈이가 한 번 오기는 쉽지 않은데 선물을 준비하고 싶어요. 비서님, 제가 그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아이들은 장난감을 좋아하죠. 혹은 어린이 금팔찌나 장수 금덩이 같은 것도 선물할 수 있어요.”우빈은 겨우 서너 살이라 그런 걸 보내도 괜찮은 선택이었다.이윤미가 입을 열었다.“우빈은 장난감이 부족하지 않을 거예요. 예진 씨가 지난번 우빈이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장난감 가게를 꾸려도 되겠다고 불편했거든요. 어린이용 금팔찌와 장수 금덩이를 선물하는 게 좋겠어요.”“우빈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은 우빈의 것이고 아가씨가 선물한 장난감은 이모할머니의 성의라서 괜찮을 거예요.”“이렇게 하죠. 내일 오전에 제가 선물을 준비할게요. 걱정하지 마시고 점심 식사 후에 선물을 가지고 예진 씨와 만나시면 될 겁니다.”이런 작은 일에 대해 방윤림은 이윤미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저를 도와 준비해 주세요. 노 대표님도 계시는데 그분께도 예물을 준비하세요. 앞으로 그분도 저를 이모할머니
방윤림이 입을 열었다.“아가씨, 제가 말하면 아가씨 귀를 더럽힐 수 있습니다.”“윤정의 일은 늘 제 귀를 더럽혔는데 제가 전부 들었잖아요. 너무 많이 들어서 면역력이 생겼어요. 아무리 강력한 스캔들도 들을 수 있거든요.”“이윤정 씨가 세 오빠를 꾀려고 하는 것 같아요.”이윤미가 추측했다.“아마 우리 세 형수님에게 복수하기 시작했겠죠.”방윤림은 신중하게 대답했다.“이윤정 씨가 어떤 마음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렇게 되면 창업도 불가능할 테고 가주님은 윤정 씨의 앞길을 막을 테고 남의 회사로 일하러 가지도 않을 텐데. 가주님도 윤정 씨가 좋은 직장을 찾는 것도 막을 겁니다. 이대로 강성에서 나가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원한을 품고 그런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이윤미는 피식 웃었다.“만약 제가 이씨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신분이 바뀐 것이 자신 친아버지의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저는 아마 이씨 가문을 떠나고 강성을 떠났을 거예요. 그때 떠났으면 양어머니가 여전히 저에게 감정이 남아 있을 것이고 따라서 저에게 돈도 줄 거 아니에요. 예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어쩌면 다 가지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져가서 다시 시작했을 거예요. 분명 잘 지내고 있었을 거예요. 우리 엄마가 공을 들여 키운 사람인데 창업 정도는 쉽게 해낼 수 있을 거예요.”아쉽지만 이윤정의 선택이 틀렸다.물론 이윤정도 이씨 가문의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할 것이지만.이윤정은 어리석게도 이씨 가문에서 20여 년 동안 후계자로 일했지만, 이윤미는 시골뜨기라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에 순조롭게 후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라고 생각했다.이윤정은 자신이 아직 희망이 있다고 여겼다.그래서 이윤정은 떠날 수가 없었다. 너무 아름답게 생각했다.이윤미는 이윤정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윤미가 이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로 이윤정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두 사람은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다.방윤림이 입을 열었다.“사람마다 선택이 다른 법이죠. 성
“네.”이윤미는 방윤림이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시름이 놓였다.그녀는 곧 꿈나라로 들어갔다.방윤림은 그녀가 잠든 것을 발견하던 천천히 옆으로 차를 세우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이윤미는 너무 피곤해서 깊이 잠들어 있어 방윤림이 외투를 덮어줬다는 사실도 몰랐다.이씨 가문의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2시가 넘었다.방윤림은 저택 문 앞에 차를 세웠다. 그는 대문의 열쇠가 없어 이윤미를 깨울 수밖에 없었다.이윤미는 얼떨결에 깨어나서 방윤림을 보며 물었다.“방 비서님, 왜 제 꿈에 계세요?”방윤림은 실소하고 말았다.“아가씨, 저는 당신 꿈에 없어요. 아가씨가 깨어나신 것은 제가 깨워서 그래요.”하지만 보아하니 이윤미는 아직 제정신이 아닌듯했다.이윤미는 눈을 깜빡이며 똑바로 앉았고 그녀의 몸을 덮었던 외투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외투를 잡았다.“너무 덥게 잤어요. 비서님 외투가 덮어졌고 에어컨이 켜지니 엄청 더웠어요. 외투로 덮어줄 필요 없어요.”이윤미는 이미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집에 벌써 도착했네요. 이 시간에 사람들을 깨울 필요 없어요. 제가 열쇠를 가지고 있거든요.”이윤미는 열쇠를 들고 차에서 내려 대문을 열었습니다. 방윤림이 말을 건넸다.“이렇게 늦었는데 비서님도 돌아가지 마세요. 오늘 밤 여기서 하룻밤 묵으세요. 집에 객실이 많으니 아무 방이나 찾아서 하룻밤을 보내면 돼요.”방윤림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가주님께서 아시면 안 좋아하실 거예요.”설령 그가 객실에 묵었다 하더라도 이윤미의 별장에서 묵을 것이다.이윤미와 한집에 살면 마치 동거하는 것 같았다.이윤미는 미혼이고 남자친구도 없다. 이윤미의 집에서 묵는 것이 그녀의 평판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했다.“문을 잠그고 방으로 돌아가서 쉬세요.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어떤 규정들은 깨뜨리면 안 된다.방윤림은 이씨 가문의 저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차로 몇 분 거리였다.만약 이씨 가문의 큰 저택에 살고 싶
이윤미는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서 소파 앞에 앉아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마셨다.지금의 조용함이 그녀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줄 수 있었다.위층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자 이윤미의 신경은 다시 조여들었다.그러나 앉은 자세가 변함이 없었지만 위층을 올려다보지 않았다.추측할 필요도 없이 이은화일 것이다.곧 이은화가 위층에서 내려왔다.그리고 이윤미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어?”딸의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있는 것을 본 이은화는 손을 내밀어 이윤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옳은지 그른지, 복인지 화인지 모르겠네.”“엄마, 저 괜찮아요.”이은화가 내뱉은 말을 이윤미는 알아들었다.이윤미를 되찾아 진짜 딸과 가짜 딸의 신분을 되찾은 것이 이윤미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른다는 의미였다.가끔 이윤미도 그 생각을 한다.이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녀는 자신의 사업도 일으킬 수 있기에 양부모 가족의 착취와 괴롭힘에서 벗어날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어쩌면 이윤미는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지금처럼 이씨 그룹을 열심히 지탱할 필요가 없었다. 이씨 그룹은 이은화 손에서 수십 년 동안 운영되었지만 승승장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날따라 쇠퇴해지고 있었다.이윤미는 그 문제를 발견하고 개혁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씨 그룹은 아직 그녀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은화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회사에서도 추진할 수 없었다.가끔 이윤미는 자신이 힘이 부족하다고 느꼈다.신경 쓰지 않자니 또 그녀의 사명이라 관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씨 그룹을 강성의 업계에서 사라지게 할 수도 없었으니까.그 외에도 이윤미는 암암리에 있는 적들도 상대해야 했다.가정 안의 큰일은 이윤미가 참여할 수는 있지만 결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작은 일들은 전부 그녀에게 맡겨졌다.이토록 큰 가문이 크고 작은 일이 많은데 이은화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가주가 정말로 그렇게 많은 일에 관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소한
이은화는 이윤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네 큰 오빠가 이틀 동안 외박했는데 네 큰형수님이 큰오빠가 또 밖에서 여자들과 뒹군다고 의심하고 있어.”이은화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유전자의 문제야. 내 유전자가 좋은데 어쩌면 네 아빠 유전자가 너무 강해서 너의 세 오빠에게 바람피우는 유전자를 물려준 건 가봐. 윤미야, 너도 엄마가 이 일에서 너무 한다고 생각해?”“저는 배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사랑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지만, 결혼 중에 바람을 피우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어요.”이윤미의 대답에 이은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애로운 눈빛으로 이윤미를 바라보았다.“다들 이씨 가문의 좋은 유전자는 전부 딸들에게 물려준 거라고 말하고 있어. 난 예전에 믿지 않았지만 네가 돌아온 후로 천천히 믿게 되더라고. 너의 성격과 일 처리 방식은 나와 너무 닮았거든.”예전에 이은화는 이윤정의 성격과 일 처리 방식이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느꼈지만, 나중에야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이윤정이 전임 집사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은화의 친딸은 집사의 딸로 살고 있었다.이윤정과 이윤미의 신분이 바뀐 후, 이은화는 이윤미가 정말 그녀와 비슷하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유일하게 다른 점을 말하자면 이윤미는 아직도 양심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가치관도 매우 올바르다는 점이다. 이은화처럼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이은숙의 한 가족을 죽이고 여동생을 죽이는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었다.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지니지 않았다.요즘 노년에 접어들면서 이은화의 생활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아마도 하느님이 이은화의 젊은 시절에 저지른 죄 때문에 그녀에게 벌을 주고 있는듯했다.이윤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저는 엄마 친딸이에요. 엄마를 닮은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이은화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우리 모녀가 가장 닮았어.”“엄마, 큰오빠가 정말 또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 아니겠죠?”“아마도 병원에 가서 아버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