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당신도 일이 바쁘잖아요. 도련님은 이제 별일 없으니까 우리가 여기서 돌볼게요. 먼저 회사에 가요.”하예정이 전태윤을 먼저 보내려 했다.아까만 해도 전유림은 입원하기 싫다고 버티고 있었기에 전태윤의 위엄이 필요했다.그런데 지금은 쫓아내려 해도 본인이 나가기 싫어할 판이었다.“형수님도 얼른 들어가세요. 저랑 호영이가 여기서 돌볼게요. 검사 결과 나와서 별일 없다 싶으면 그때 우리 집사를 불러서 돌보게 하면 되니까요.”그들은 모두 시내 중심에 집을 마련하고 전담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 집안일을 돌보게 했다.전유림도 전태윤 부부를 돌려보내려 했다.친형 두 사람만 있어도 벌써 숨이 막히는데 가장 무서워하는 큰형님까지 여기 앉아 있으니 아무리 크게 다친 게 아니라도 그 엄격한 기운에 병세가 더 악화될 것 같았다.어릴 적부터 전태윤에 대한 공포심은 지금까지 이어졌다.이제 거의 서른이 되어 능력도 뛰어나고 사업도 제법 성공했지만 큰형님만 마주하면 전유림은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말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 조심스러워졌다.혹시라도 잘못했다가 큰형님한테 한 소리 듣거나 더 심하면 맞을까 봐 겁이 났다.전태윤이 손을 잘 때리지 않기는 해도 절대 안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그런데 하예정이 전씨 가문으로 시집오고 조카들도 생기고 나서는 전태윤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동생들에게 너무 엄격하게 대할 때마다 그녀는 남편을 극구 말리면서 너무 엄격하게 대하면 안 된다고 했다.하예정은 정말 전씨 형제들의 구세주였다.막내 전지율은 처음 큰형수님을 보자마자 마치 든든한 울타리를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하예정이라는 확실한 보호막을 단단히 붙잡고는 절대로 놓지 않았다.막내 녀석, 참으로 교활했다.전유림은 왜 자기는 그때 왜 그 보호막을 잡을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그때는 다들 경계하며 지켜보는 분위기였다.어쨌든 전태윤은 하예정과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지만 전씨 할머니가 몇 번을 설득한 끝에 하는 수 없이 효도하는 마음으로 결
“덕분에 입원할 겸 제대로 쉴 수 있겠네.”전태윤 일행은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데 능한 사람들이라 눈썰미가 매우 예리했다.전유림이 진소아를 볼 때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하예정이 포착했다면 전태윤 일행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모두 연애해 본 사람들이라 전유림의 그런 반응을 보며 다들 설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원래 형들은 동생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동생이 먼저 도움을 청할 때야 경험자로서 조언 한마디를 건네곤 했다.전우가 동생을 놀려 댔다.“아까는 입원하기 싫다고 하지 않았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눈빛이던데. 큰형이 여기 안 계셨으면 상처만 처리하고 바로 도망갔을 거 아니야. 그런데 의사 선생님 보고 나니까 태도가 확 변했네? 입원하겠다고? 게다가 며칠 더 있겠다고?”전유림이 태연하게 말했다.“갑자기 생각났거든. 몇 달째 프로젝트 하나 때문에 정말 죽을 맛이었거든. 제대로 쉬고 싶었는데 마침 사고가 나서 입원한 김에 휴식도 취할 겸 이렇게 있는 거지. 그러니까 아무도 나 보고 뭐라 하지 마.”전우가 동생의 가슴을 툭 치며 말했다.“마치 우리가 너만 구박하는 것처럼 말하네. 이 자식... 좋아. 입원하고 싶다면 며칠 더 쉬어. 우리가 나중에 의사 선생님께 부탁해서 매일 큰 병에 약 잔뜩 처방해 달라고 할게. 하루 종일 링거에 매달려 있게. 그리고 쓴맛 나는 한약도 지어 달라고 해서 매일 두 봉지씩 먹게 해 줄게. 열흘 정도 병원에 틀어박혀 있어 봐야 정신 차리지.”전유림이 소리쳤다.“큰형! 전우 형 좀 봐. 자꾸 나만 괴롭혀.”“너 이미 스물여덟이지? 반올림하면 서른 살이야. 애가 아니라고. 막내도 자기가 어리다고 안 하는데.”전유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할머니 앞에서는 나도 아직 애 거든.”“엄마는 너 보기도 싫어하셔. 너랑 막내 얼굴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시면서 딴 데 가서 놀라고 하셔. 언제 약혼녀 데리고 와서 부모님 뵙겠다고 해야만 반가워하실걸.”“와이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과장이 조용히 설명을 이었다.“저 병실에 계신 분 중 세 분은 제가 알아요.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 그 부인, 그리고 셋째 도련님이세요. 침대 앞에 서 계신 분은 생소한 얼굴인데 아마도 전씨 가문의 다른 도련님일 거예요. 전씨 가문은 형제들끼리 정이 남다르기로 유명하죠. 아마 교통사고를 당한 분도 그 집안 도련님일 테니 전 대표님 부부와 셋째 도련님까지 모두 모습을 보이신 거예요. 전 대표님 부부는 초스피드 결혼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금실이 좋기로 소문났어요. 아들과 딸도 모두 두셨는데 그분들의 사랑 이야기는 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죠. 특히 그 부인분은 본래 평범한 분이라 아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해요. 전 대표님은 전씨 가문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니까 신분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아요.”진소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비록 그분들이 재벌가의 도련님이라 해도, 저희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굳이 두려워할 필요까지야 있겠어요?”“두려워하라는 게 아니에요. 진짜 재벌가 분들은 품위가 남다르거든요. 전 대표님이 항상 무표정에 엄격하신 걸 빼면 다른 분들은 좀 부드러운 편이에요.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지만요. 평소에는 대부분 상냥하게 대해 주시니까 무서워하기보다는 그분 검사를 철저히 해서 상처를 잘 치료해 드리라는 뜻이에요. 그 가문은 신의와도 인연이 깊거든요.”의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김청산 신의의 전설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진소아가 과장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신의님은 아직 살아 계시는가요?”그녀도 교수한테서 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신의님은 수십 년 전 선배라고 들었는데 살아 계셔도 아주 연세가 많으셔서 더 이상 진료는 안 하시지 않을까요?”“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세요. 하지만 더 이상 직접 진료를 보시지는 않으신대요. 그분의 유일한 제자 정 선생님이 전씨 가문과 매우 가깝게 지내거든요.”진소아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정 선생님을 한 번만 뵐 수 있
그렇게 해마다 홀아비로 지내는 모습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경력 많은 의사가 전유림의 상태를 간단히 확인한 뒤 젊은 여의사에게 말했다.“소아 씨, 이 환자분도 소아 씨가 맡아요. 교통사고로 다친 분이에요.”진소아가 전유림을 한번 바라보더니 차분하게 대답했다.“네, 과장님.”그녀는 인턴이 아니라 관성 병원에 막 발령받은 새내기 의사였다.과장이 다시 전유림에게 말했다.“크게 다친 곳은 없어요. 검사 결과 나오는 대로 기다려보시다가 큰 문제 없으면 이틀쯤 입원하다가 퇴원하세요. 그리고 처방한 약을 상처에 바르시면 됩니다.”전유림은 손등을 차 앞 유리 파편에 베여서 당분간 약을 발라야 했다.그가 점잖게 말했다.“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슴 쪽이 너무 아파서요. 혹시 내상이 있진 않을까 싶어서 며칠 더 입원해서 제대로 검사받고 싶습니다.”과장은 이내 진소아에게 흉부를 눌러보라고 했다.진소아가 다가가 자연스럽게 전유림의 가슴 부위를 살며시 눌러 보며 물었다.“아프세요?”“네, 사고 났을 때 몸이 앞으로 확 쏠리면서 핸들과 부딪혔거든요.”진소아는 다시 심장 주변이나 갈비뼈 쪽을 살살 눌러 보며 물었다.“이쪽은요?”전유림은 몹시 아픈 표정을 지었다.“아파요. 다 아파요. 건드리기만 해도 너무 아파요. 며칠 더 입원해야겠어요.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 주세요.”진소아는 과장과 함께 들어오기 전에 이미 전유림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환자분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당직 의사 선생님께서 이미 상처를 처리해 드렸고 검사도 여러 건 신청해 놓았어요. 제가 확인했는데 흉부 엑스레이도 찍으셨더라고요. 찍으셨으면 몇 시간만 기다리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결과 나오는 대로 확인해 보죠.”전유림이 부드럽게 말했다.“네,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그는 진소아의 명찰을 슬쩍 훑어보았다. 거기에는 그녀의 이름과 병원에서의 직급이 적혀 있었다.인턴이 아니라 정식 의사였다. 나이로 보면 아마 갓 발령받았거나 다른 병원에서 막 옮겨 온 모양이었다.과장이
하예정이 입을 열 열었다.“며칠 입원하면서 지켜봐야 해요. 검사를 꼼꼼히 받아야 한다고요. 어떤 사람들은 당장은 멀쩡해도 집에 가서 며칠 뒤에 갑자기 숨지기도 한대요. 속에 다친 걸 모르고 제때 병원에 안 가서 그런 거예요.”“맞아. 며칠은 입원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걱정돼.”전호영이 동생을 나무랐다.전우가 침대 끝에 걸터앉으며 물었다.“머리 검사는 했어?”“다 했어. 머리는 전혀 이상 없어. 머리는 안 부딪혔고 가슴만 부딪혔어.”전유림은 부딪힐 때는 엄청 아팠지만 지금도 아프긴 해도 처음보단 덜하니까 아마 별일 없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전태윤이 단호하게 말했다.“모든 결과 나오고 나서 얘기하자. 일단은 이대로 있어.”전유림이 입술을 깨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 약도 처방하지 말고 주사도 놓지 말라고 해 줘. 나는 약 먹고 주사 맞는 거 딱 싫어.”병원에 실려 오자마자 의사와 간호사가 먼저 임시 응급실로 밀어 넣었다.여러 검사 결과 별로 심하게 다친 건 아니라서 상처를 소독하고 입원한 뒤 여러 검사를 하기로 했는데 어떤 검사는 오늘 못 할 수도 있었다.전유림은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며 입원하는 것이 괜한 고생이라고 생각했다.전태윤이 자신을 걱정해서 의사 말대로 입원시키는 건 이해하지만 입원은 하더라도 약 처방이나 주사는 딱 질색이었다.그건 고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전유림은 자신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친 게 아니라고 여겼다.전태윤이 동생의 말을 잘라 말했다.“모든 건 의사 선생님 말대로 해.”전유림은 입을 다물었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이어서 의사 두 명이 간호사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그중 여의사 한 명은 아주 젊어 보였는데 전유림보다 나이가 좀 어려 보였다.인턴일지도 모른다.여의사는 동그란 얼굴에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를 가졌는데 오관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누구에게나 편안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압도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전화를 끊고 하예정은 다시 걸어가서 명해은에게 말했다.“태윤 씨가 저보고 뭐 좀 도와달래요. 저 먼저 다녀올게요.”“그래, 가 봐.”하예정은 다시 언니에게 말했다.“언니, 하연이 혹시 나 찾으면 좀 달래 줘.”하예진이 걱정하며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해?”“별거 아니야. 금방 처리하고 올게. 하연이는 꼬물이랑 놀고 있으니까 아마 울지는 않을 거야.”언니와 오빠들이 많이 함께 놀아주고 있었다.하예진은 조카를 잘 돌보겠다고 하며 동생을 안심시켰다.우빈은 어릴 때 이모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전하연이 큰이모를 좋아했다.하예진이 있으면 하예정이 외출하기 훨씬 수월했다. 적어도 아이가 울지는 않으니까.하지만 하예진은 바빠서 매주 올 수 없었고 한 달에 한 번 오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그런데도 전하연은 하예진을 기억하고 있었다.하예정은 급히 자리를 떴다.그녀는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전호영과 전우에게 전화를 걸어 전유림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알렸다.전유림은 셋째 집안의 막내로 전호영과 전우의 친동생이었다.친동생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두 형은 안절부절못했다.전태윤이 병원으로 이미 출발했고 지금 하예정도 병원에 가려는 참이었다.따라서 두 형제도 당연히 병원에 가 보려 했다.그러나 전씨 할머니가 놀랄까 봐 두 형제는 조용하게 움직이려 했다.전씨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이런 소식을 들으면 놀라고 걱정하실 게 뻔했다.할머니가 많은 풍파를 겪어 오셨다고 해도 두 형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일단 병원에 가서 전유림의 상태를 확인하고 상처가 가벼운지 확인한 다음에 말하기로 했다.크게 다친 게 아니라면 할머니께 굳이 알릴 필요 없었다.어차피 그들은 평소 도시 중심에 살고 있었고 사업상 자주 출장을 다니며 여기저기 날아다녔기에 몇 달씩 서원 리조트에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전씨 할머니는 평소에 손자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정도였지 자주 본가에 와서 같이 있으라고 요구하지는 않았다.증손자들이 생긴 뒤로는 전씨
전씨 할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우빈은 정말 말썽도 잘 피우지만 기본적으로 착하고 사려 깊은 아이예요. 조용히 있을 때면 반드시 사고를 치고 있을 때잖아요.”하예정이 말을 이었다.“한번은 혼자 조용히 놀고 있길래 뭘 하고 있나 보러 갔더니 제 화장품을 가지고 놀고 있더군요. 립스틱으로 책상과 바닥을 도배해놓았죠. 얼굴에도 입술에도 온통 칠해놓고서는 제 앞에서 뿌듯해하던 표정이 어찌나 우스운지...”그 장면을 상상하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은 웃음거리가 된 것이 부끄러웠는지 한성근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작은 목소리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
“예정아, 우리 잠시 본가에 들러 할머니께 말씀드리자. 할머니께서도 그 어르신들을 만나보고 싶어 하실 거야.”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다.전씨 할머니는 그 시절 관성에서 꽤 이름 있는 인물이셨다. 어르신들도 전씨 할머니를 알고 있을 것이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아침 일찍 일어난 사실을 떠올리더니 마음을 바꾸었다.“먼저 집에 가서 쉬어. 내가 본가에 다녀올게. 할머니께서 오고 싶어 하시면 모시고 올게.”하예정은 재빨리 대답했다.“안 피곤해요. 같이 가요. 한동안 안 갔는데... 이번 주말엔 우빈이를 데리고 가서 이틀 정도 묵
“할머니께서는 저의 선택을 존중하신다고 하셨지만 후회하지 말라고 하셨어요.”전이혁은 명해은에게 먼저 국물을 떠드렸고 또 전현민이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다시 국물을 한 그릇 떠드리며 말했다.“저는 후회할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비록 이전에는 도아영과 꿈속의 여자 ‘여우'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우'와 함께할 때 특별히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는 ‘여우'와의 만남을 간절히 기대했고 만나서 싸운다고 해도 그 순간이 기다려지기만 했다. 이런 기대감은 도아영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다.그가 도아영에게 접근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