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문을 여니, 조심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평소 늘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억지웃음을 지으니 가식적으로 보였다.“여보,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어.”전태윤은 두 손으로 옷을 받쳐서 들고 있었는데, 한 벌은 잠옷이고, 또 한 벌은 내일 입을 옷이었다.“내가 방안까지 가져다줄까?”하예정은 옷을 받아 들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를 들여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전태윤은 떠나지 않고 문어구에 서서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그녀가 다시 문을 열 거로 생각했다.과연, 2분도 안 되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허리를 펴고 잘생긴 얼굴에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문을 여는 순간, 부드럽게 말했다.“여보, 뭐 더 필요한 거 없어? 편하게 말해, 오늘은 내가 다 서비스해 줄 테니.”“옷 서너 벌과 다른 생활용품도 더 가져다줘요.”“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가져다줄게.”빠른 걸음으로 돌아서 간 전태윤은 조금 지나 물건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여보, 뭐가 빠졌는지 한번 확인해 봐, 내가 바로 가져다줄 테니.”얼추 살펴본 하예정은 다시 뒤로 물러서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여보”전태윤은 한쪽 다리를 문 안에 들여놓고 몸으로 그녀가 문을 닫지 못하도록 막으며 손을 비비며 애원했다.“여보, 비록 봄이라지만 요 며칠 날씨가 추워. 이 방에 보일러도 없는데, 당신 혼자 자면 추울 거야. 내가 당신의 보일러가 돼줄까? 절대 허튼짓하지 않을게.”하예정은 뻔뻔한 전태윤의 말에 어이없어 웃음을 지었다.이 사기꾼한테 이런 모습도 있다니...“여보, 제발 나란 보일러를 들여보내 줘. 봐, 방이 이렇게 큰데 당신이 창문을 닫아도 몹시 추울 거야. 지금 바로 이 보일러가 필요할 때잖아.”“필요 없어요! 당신 그 다리 치워요! 안 그러면 내가 닫는 문에 다리가 부러져도 상관 못 해요. 그럼 나도 당신을 버릴 이유가 생겨서 좋네요.”“여보!”“여보라고
전태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예정아, 나도 모든 걸 속인 건 아니야. 어떤 말은 진심이었어. 널 사랑한다는 말은 무조건 진심이야.”“그래요, 사랑하겠죠. 날 속이는 걸 사랑할 뿐이죠. 비켜요! 안 비키면 다리를 확 부러트릴라!”하예정이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후 문을 확 닫았다.전태윤은 감히 고육지책을 쓰지 못하고 얌전히 발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하예정이 방문을 안으로 잠그는 걸 덩그러니 지켜보았다.그는 한참 후에야 제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는 싱글 소파를 들고 다시 하예정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이불까지 챙겨와 소파에 앉아서 문을 막고 자려고 했다.그가 잠든 후에 하예정이 몰래 빠져나가서 담벼락을 뛰어넘을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은 진짜 그럴 생각이 있었다.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몰래 문 쪽에 다가와 가볍게 문을 열었는데 전태윤이 글쎄 소파에 앉아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곧장 문을 닫았다.“사기꾼! 이 사기꾼아, 어떻게 문까지 막을 수 있어.”하예정은 그를 수만 번도 더 욕했지만 결국 아무 가망 없이 순순히 침대로 돌아갔다.기분이 상한 탓인지 그녀는 줄곧 악몽만 꿨다. 꿈에서 밤새도록 전태윤과 싸웠는데 다음날 깨났을 때 그녀조차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어 손으로 쓱 만져보았더니 눈물이 흥건했다.밤새 다투는 꿈을 꾸다 보니 아마도 꼬박 운 듯싶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밤새 문 앞을 막고 있던 전태윤도 깨나서 방문을 두드렸지만 하예정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문 앞에 한동안 서 있다가 결국 소파를 들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띠리링...”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액정을 힐긋 보더니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정남아, 좋은 방법 생각해놨어? 얼른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해야 예정이가 용서해줄까? 인제 그만 냉전 하고 싶단 말이야.”소정남이 물었다.“나 지금 전화 끊어도 돼?”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태윤아, 너희 부부 지
전태윤은 그를 이곳에 오게 할 수 없다.성기현은 아직 그가 하예정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아마 그녀가 성기현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지 못한 듯싶다. 만약 성기현이 집에 오면 바로 알아버린다.전태윤은 딴 사람들이 전혀 안중에 없다.다만 성기현 모자는 경시하면 안 된다.이경혜는 하예정의 이모이자 그녀의 친정 어르신이다.하여 하예정을 대신해 앞장설 자격과 이유가 충분하다.“알았어, 그렇게 전할게.”소정남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 자칫 머뭇거리다가 전태윤이 또다시 그에게 방법을 구할까 봐...정작 그의 제안은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대체 어쩌라는 건지!전태윤은 곧바로 별장을 나섰다. 그는 장씨 아저씨에게 하예정의 아침을 꼭 챙기라고 했다.게다가 경호팀 절반을 별장에 남겨두었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하예정이 도망칠까 봐 경호원들에게 문단속을 단단히 시켰다.40분 후.전씨 그룹, 대표 사무실.전태윤과 성기현은 거의 나란히 사무실에 들어섰다.전태윤은 곧게 본인 책상 앞으로 다가가 검은색 의자에 앉았고 성기현도 뒤따라오며 제멋대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조 비서가 두 사람에게 각각 온수 한 잔씩 따라왔고 투명인간처럼 바로 물러갔다.두 명의 대표는 전부 험상궂은 얼굴이었고 소정남마저 감히 구경하러 오지 못했으니 조 비서는 더더욱 남아있을 엄두가 안 났다.“전 대표, 내가 한 말 귓등으로 흘렸어요? 소현이가 아직 전 대표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는데 예정이한테 싹 다 털어놓은 거예요? 다들 소현이 생각은 전혀 안 하나요? 내일이면 곧 돌아와요. 가장 친한 친구가 라이벌이 되어 자신이 제일 사랑한 남자를 빼앗아간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현이는 아마 미쳐버릴 거라고요.”성기현은 너무 화나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전태윤이 신분을 밝힌 후 하예정이 어떤 반응이었는지 아직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성기현은 그녀에게 연락해보려고 했지만 배터리가 다 되어 휴대폰이 꺼진 상태였다. 그는 하예정이 기자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아 일부
한참 후, 성기현이 물었다.“예정이는 전 대표의 신분을 알고 어떤 반응이던가요? 도통 전화를 받지 않네요. 계속 꺼진 상태에요.”전태윤이 비난 조로 말했다.“역시 뒤늦게 찾은 사촌 동생이다 보니 신경을 덜 쓰는군요. 예정의 휴대폰은 어젯밤부터 통화 가능했어요. 계속 꺼진 상태라고 하는데 과연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어요? 예정이가 무슨 반응인지 성 대표한테 알려줘야 해요? 그건 나랑 예정이 사이의 일이지 당신들이랑 무관해요.”이경혜가 하예정의 이모라고 해도 다들 금방 친척관계인 걸 확인했으니 그다지 정이 깊지 않다.전태윤은 오직 하예진만이 그를 질책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성씨 일가의 사람들은 아직 그럴 자격이 없다.성기현은 말문이 막혀서 또 한참 침묵하다가 겨우 말했다.“전 대표, 오늘 이렇게 찾아와서 번거롭게 굴었네요. 내가 한 말도 조금 이기적이었어요. 그저 소현의 기분만 고려했지 예정의 기분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어요. 전 대표는 나보다 예정이에 대해 더 잘 알 테니 걔가 어떤 성격인지도 알고 있겠죠. 전 대표의 신분을 알게 된 후 예정이가 만약 달갑게 받아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만약 화를 낸다고 해도 걔를 원망하지 말고 생각을 할 시간을 좀 줘요. 난 비록 예정이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도 쭉 밝은 성격으로 살아온 건 예정이가 아주 강한 사람이란 걸 말해주잖아요. 인생의 풍파를 늘 웃어넘기잖아요. 그러니까 전 대표가 거짓말한 것도 예정이는 꼭 태연하게 마주할 거예요.”성기현이 하예정을 위해 말해주자 전태윤은 오히려 침묵했다.그가 아무 말 없으니 성기현도 입을 다물었고 사무실 안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전태윤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성기현에게 물었다.“그해, 성 대표 아내가 성 대표에게 구애하는 걸 포기했을 때, 어떻게 아내분 마음을 되돌려서 계속 사랑하게 했나요?”성기현이 두 눈을 껌뻑였다. 전태윤은 지금 그에게 경험을 묻는 걸까? “진심은 꼭 통한다고 봐요. 아내가 애초
“만약 두 달 전이라면 나도 예정 씨가 쿨하게 이혼하고 뒤도 안 돌아볼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쉽게 이혼하지 못할 걸. 감정이라는 게 어찌 그리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어.”소정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지랖 넓게 물었다.“예정 씨 임신은 했어?”전태윤이 답했다.“아직이야...”둘은 피임조치도 안 취했고 전태윤도 애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종무소식이었다.아직 아이와 인연이 닿지 않은 듯싶다.“아이가 없으니 오직 너 스스로 해결해야겠네. 태윤아, 넌 어리석은 게 아니야. 일이 발생하고 지금까지 네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단지 너의 본능적인 반응이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네가 만약 예정 씨였다면 감쪽같이 속은 후 감금을 당하고 기절까지 했는데 너라면 무슨 기분일 것 같아? 지금은 네가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골치 아파할 때가 아니야. 이 문제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문제야. 중요한 건 네가 잘못을 저지른 후 일련의 행위가 예정 씨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거야. 이혼이 두려워서 감금하면 예정 씨가 생각이 바뀔 것 같아? 두 사람 사이의 갈등만 점점 더 격화될 뿐이야.”“예정 씨 그만 풀어주고 떨어져서 며칠 지내. 너희 부부 지금 마음을 식힐 필요가 있어. 너도 차분하게 잘 생각해봐. 이후에 어떻게 해야 예정 씨가 다시 널 믿어줄지. 이번에 거짓말한 일로 예정 씨는 너에 대한 신뢰가 전부 깨졌을 거야. 예정 씨도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네가 그간 잘해줬던 것들과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추억들이 생각날 거야. 그리고 매번 예정 씨가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네가 옆에 있어 주고 묵묵히 도와줬어. 이것들도 다 너희 부부가 쌓아온 추억들이야.”“네가 잘해준 것들을 되새길 때 그때 너도 다시 분발해서 깨졌던 믿음을 조금씩 쌓아 올리란 말이야. 그러면서 슬슬 화해하는 거 아닐까? 너 계속 예정 씨를 감금하면 예정 씨도 온통 너의 단점들만 되뇌고 너에게 속았다는 사실만 곱씹을 거야. 그러면 네가 잘해줬던 일들은 아예 생각도 안 날
“예정 씨가 지금 이혼을 언급해도 전혀 불안할 것 없어. 두 사람 아직 실천에 옮기지도 않았잖아. 고작 이혼합의서를 쓴 것뿐인데 뭐가 두려워? 이혼절차를 밟지 않는 한 두 사람 충분히 되돌아설 여지가 있어. 네가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달렸지. 한번 잘 생각해봐. 난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 거울 좀 봐봐, 고작 하루 사이에 예전의 카리스마를 전부 잃고 의기소침해졌잖아. 보는 내가 다 속상해. 어휴, 너 차라리 날 사랑하지 그랬어. 그랬더라면 난 절대 널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을 텐데.”전태윤이 책상 위의 물건을 집어 들고 소정남에게 내던졌다. 그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며 질책했다.“난 여자를 좋아하니까 작작 꼬드겨. 효진 씨가 너 이러는 거 알면 바로 마음 접을걸.”그가 웃자 소정남이 말했다.“웃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소정남은 나가서 전태윤이 먹을 음식을 사 왔다.전태윤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소정남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뿌듯했다.사무실에 홀로 남은 전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더니 저 멀리에 있는 고층건물을 바라보았다.한 걸음 물러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했거늘 정말 그가 너무 꽉 잡고 있었던 걸까?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면 바로 해결될까?전태윤은 소정남과 처형이 했던 말을 곰곰이 되새기더니 자신의 행동이 정말 하예정과의 관계만 악화시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처형이든 심효진이든, 또 혹은 소정남이든 전부 똑같은 말만 했다. 하예정은 절대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지 지금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처형은 그가 모래알을 꽉 잡듯이 하예정을 잡고 있는데 세게 잡을수록 모래는 더 빨리 새어나간다고 했다.그를 타일렀던 사람들은 전부 그가 지나치게 일방적이란 걸 암묵적으로 일깨워줬다.“띠리링...”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장씨 아저씨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도련님, 사모님 친구분 심효진 씨가 오셨어요..
전태윤은 조 비서가 안고 있는 서류 뭉치를 보면서 분부했다.“전이진한테 보내서 처리하라고 해. 만약 결정을 못 내리겠으면 걔더러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전해. 그리고 나 요즘 회사에 자주 못 나오니까 걔한테도 말해. 전이진도 전씨 가문의 남자이니 마땅히 날 위해 전씨 그룹의 중임을 분담할 의무가 있어.”조 비서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대표님은 수중의 업무를 내려놓고 오롯이 사모님께 전념하려는 걸까?전태윤은 비서에게 분부한 후 엘리베이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몇 분 후, 그는 전용차를 타고 전씨 그룹을 떠났다.그 시각 조 비서도 부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가 전태윤이 한 말을 모조리 전이진에게 전했다.전이진은 조 비서가 안고 있는 한 뭉치 서류를 보더니 표정이 확 굳었다.“여기 놓고 가. 다 처리하면 가지러 오라고 다시 통지할게.”“고마워요, 부대표님. 아 그리고 대표님께서 요즘 회사에 자주 못 나오시고 부대표님도 전씨 가문의 남자이니 마땅히 대표님을 위해 전씨 그룹의 중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전이진이 이해한다는 듯이 대답했다.“알았어. 가서 볼일 봐.”그는 일찌감치 예감이 들었다.큰형은 형수님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회사의 중임을 그에게 맡길 게 뻔하다.아홉 형제 중에서 전태윤과 전이진만 회사의 핵심 인물이다. 다른 남동생들은 계열사를 책임지거나 호텔 운영을 책임지고 또 일부는 아예 가족 기업에서 근무하지 않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전태윤이 여유가 없으면 전이진이 나서야 한다.게다가 그는 아직 솔로이니까!듣기로 할머니가 최근에 그와 어울리는 여자친구를 사방으로 물색하고 있다고 한다...전이진은 몸이 움찔거렸다. 큰형이 사랑의 늪에 빠지더니 이성까지 잃었다. 그는 쭉 이렇게 솔로로 지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만약 그 언젠가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전이진은 상대에게 자신의 진짜 신분을 솔직하게 밝히리라 다짐했다. 절대 큰형처럼 신분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전태윤의 일은 전씨 일가의 형제들에게 큰 깨우침을 줬다.
전태윤의 눈가에 슬픔이 스쳤지만 어제처럼 격하게 반응하진 않았다.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정아, 정말 저 동물들을 키우고 싶어? 그럼 내가 장씨 아저씨더러 길을 안내해서 너랑 효진 씨를 데리고 우리 집 과수원들을 구경시켜줄게. 닭을 키우기 적합한 곳이 있으면 바로 거기서 키워. 네가 직접 돌보고 싶으면 직접 돌보고 그게 아니면 도우미들이 돌봐줘도 돼.”하예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구정 때 당신 본가에서 보냈는데 과수원을 전혀 못 봤어요.”“서원 리조트 옆에 산이 몇 개 있는데 과수를 많이 심었어. 그게 바로 과수원이야. 거긴 우리 집안의 대저택이라 매년 구정 때마다 거기서 보내.”시댁에 뜬금없이 리조트가 하나 생겨도 하예정은 더이상 놀랄 것 없었다.갑부니까.모든 분야로 돈만 벌 수 있다면 그들은 전부 섭렵할 것이다.“날 이 별장에서 내보내려고요?”하예정은 뒤늦게 전태윤의 말에서 요점을 포착했다.전태윤은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도 마주 봤다. 부부가 서로 마주 본 순간 하예정은 그제야 전태윤도 요 이틀 얼마나 수척해졌는지 알아챘다. 그녀가 힘든 만큼 그도 똑같이 괴로웠다.“예정아, 미안하단 말을 수없이 해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과하고 싶어. 널 그렇게 오랫동안 속이지 말아야 했어. 나에 대한 믿음이 다 깨졌잖아. 지금 당장 날 용서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건 바라지도 않아. 단지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내가 그 믿음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게. 그리고 쉽게 이혼 얘기를 꺼내지 말아 줄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진짜 이혼할 지경에 이르지 않는 한 말다툼하고 감정이 격해질 때 이혼 얘기를 꺼내면 상대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정은 한참 침묵한 후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지금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내가 한 말과 행동에 가끔 후회하기도 해요... 태윤 씨, 나 인제 더는 태윤 씨랑 할 얘기 없으니까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돌아가서 마음을 좀 진정하고 싶어요. 우리 결혼 생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