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화

Author: 고능비
아침 식사를 마친 태윤은 지갑을 꺼내서 살펴보았는데 안에는 현금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카드를 한 장 꺼내 예정의 앞에 내놨다.

예정은 의아한 눈길로 태윤을 쳐다봤다.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이 카드를 줄 테니 먼저 쓰고 있어, 비밀번호는…."

태윤은 비밀번호를 종이에 적어 예정에게 건넸다.

"앞으로 이 카드 안의 돈을 생활비로 써. 난 매달 월급이 나오면 그 안으로 넣을게. 하지만 앞으로 뭘 사든 장부를 적어 둬. 얼마를 쓰든 진 상관없지만 어디에 쓰는지는 알아야겠어.”

금방 혼인신고를 마쳤을 때 예정은 생활비를 더치페이로 하지 않겠는지 물은 적이 있었는데 태윤은 그때 거절하였었다. 이미 결혼을 한 이상 둘은 부부이며 가족이라고 봤다, 아내에게 돈을 쓰는 것은 응당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평소에 일도 바쁘고 하여 돈 쓸 곳도 적었다.

마누라 하나 두고 소비할 기회를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절제 없이 함부로 쓰는 건 좋지 않으니.....

장부는 적어 두는 것이 좋을 거라 여겼다.

그녀가 그 돈을 어떻게 쓰든 간에 이 작은 집에 쓸 거라면 그는 아무런 의견도 없을 것이다.

예정은 태윤의 이런 태도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비밀번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와 함께 카드를 태윤에게 돌려줬다.

"태윤 씨, 이제 이 집은 당신 혼자만의 집이 아니에요, 저도 함께 여기에 살고 있어요. 태윤 씨가 이 집을 샀으니 그 외 다른 비용은 더 이상 태윤 씨 혼자서 다 내게 할 순 없어요. 장만할 물건에 필요한 돈은 제가 낼게요.”

"40만 원이 넘는 물건을 구입할 때는 미리 태윤 씨랑 상의할 테니 그때 태윤 씨가 알아서 조금만 주면 돼요."

예정도 수입이 적지 않은 편이라 가정에 필요한 일상 지출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큰돈을 쓸 때만 태윤이 함께 부담하기를 원했다.

예정은 태윤의 돈을 쓰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주로는 태윤의 태도에서 불쾌함을 느낀 것이다. 마치 그 정도의 생활비를 탐내고 있는 듯 말이다....

게다가 장부까지 기록하라고 하다니....

예정은 평소에 가게의 지출 외에는 장부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태윤은 바로 그의 태도가 예정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윤은 잠시 침묵하더니 은행 카드와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를 다시 예정에게 건네면서 이번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예정씨, 서점을 하나 차린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걸로 얼마나 벌 수 있겠어? 이 집이 혼자만의 집이 아닌 우리 둘의 집이라고 했으니 당신 혼자 이 모든 지출을 감당하게 할 순 없어. 그러니 받아, 장부를 적는 게 싫다면 적지 않아도 돼.”

"전에 말한 차 구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계약금을 내줄 테니 한 대 사는 건 어때? 당신 수입으로 대출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텐데....”

태윤은 그녀의 수입이 어떤지 일부러 조사한 적은 없지만, 관성 중학교 입구에 서점을 열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돈도 적지 않게 벌었을 것이다.

요즘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의 돈이 가장 벌기 쉽다.

"집에서 가게가 그리 멀지 않아요, 오토바이로 금방 도착할 수 있어요. 매일 출퇴근 시간엔 차가 막혀 네 바퀴 달린 차가 저의 두 바퀴보다도 못할걸요?"

태윤은 달리할 말이 없었다.

예정이 말한 것이 사실이다.

그는 평소에 일부러 출퇴근 시간을 피하고 다닌다.

이따금 급한 일이 생겨 그 시간에 떠나면 차가 막히다 못해 그냥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가고 싶은 정도였다.

"그래도 차가 있으면 더 편할 거야, 주말에 차를 몰고 언니와 조카와 함께 짧은 주말여행이라도 갔다 올 수 있잖아.”

태윤은 할머니로부터 예정이 전에는 언니와 함께 살았었고, 가장 아끼는 사람은 언니와 조카라고 한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해요, 우리 금방 결혼해 아직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잖아요, 이렇게 태윤 씨의 돈을 많이 써 차를 한 대 사는 것은 전 불편해요. 사실 제 저축으로도 차를 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집부터 사고 싶어요. 집이 있어야 사는 것 같죠, 남자들은 차를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전 남자가 아니라서....”

남자와 여자는 생각하는 게 다르다. 여자들은 보통 집을, 남자들은 차를 원한다.

"참, 언니가 만나고 싶어 하세요, 언니한텐 태윤 씨가 출장하러 갔다고 하였으니 나중에 다시 언니를 만나러 가요."

태윤은 응하고 답했다.

대화가 끝나자 예정은 옷을 널러 갔고, 태윤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려고 했다, 이 집엔 아직 신문을 따로 주문하지 않아 대신에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태윤 씨 옷은 빨았나요?"

예정은 자신의 옷을 다 널고 나서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태윤에게 묻는다.

"내가 알아서 할게."

태윤의 옷은 보통 세탁소로 보내 세탁을 한다.

예정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계속하여 집 청소를 하였다.

바닥을 쓸고, 바닥을 닦고, 방을 치우고....

태윤은 예정이 집안을 누비며 하인이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였다가 결국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윤의 집에서 이런 일들은 모두 하인이 도맡아 하였다. 하지만 보통 집에서는 아내가 이런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그들이 입주하기 전에 그의 집사가 하인을 시켜 청소하여 매우 깨끗하였다. 예정이 한 바퀴를 돌며 쓸었지만 아무 쓰레기도 보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끝낸 후, 예정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잠시 정리를 한 뒤 핸드백을 들고나왔다.

"태윤 씨, 저는 먼저 언니의 집에 가 보고 바로 가게로 돌아갈 거예요, 오늘 밤 몇 시쯤 돌아올 건지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 주세요, 이번엔 안에서 문을 잠그지 않을게요."

"출장 가지 않을 때는 매일 밤 돌아올 거야, 출장 가게 되면 미리 알려줄게.”

예정은 응하고 답하곤 집을 나서려 했다.

”예정....씨, 당신 이 카드 받아.”

태윤은 카드를 들고 일어나 예정에게 다가가 다시 카드를 건네며 사과하였다.

"아까 내 말투가 나빴어, 미안해."

예정은 잠시 그를 쳐다보더니 이번에는 진지하다고 생각하여 카드를 받아 비밀번호가 적힌 종이와 함께 그녀의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예정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방문이 닫히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 역할을 그다지 잘하지 못한 것 같아.’

다시 소파로 앉은 태윤은 휴대폰을 들어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사가 전화를 받자 이렇게 분부했다.

"할머니가 일어나시면 이번 주말에 함께 발렌시아 아파트에서 식사하자고 전해줘요. 이렇게 전하면 무슨 일인지 아실 거예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004화

    게다가 한성근은 아직 살아 있었다.그는 이은숙의 곁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특별 비서였다.이은화가 친자매를 해치고 가주 자리를 차지한 죄가 다시 드러난 이상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이은화의 자식들이 그 자리를 잇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저는 도저히 억울해서 못 참겠어요! 이건 말도 안 돼요! 설령 가주 자리를 빼앗긴다고 해도 우리가 이씨 그룹에서 맡고 있는 자리까지 하예진이 손대게 할 수는 없어요! 절대 못 빼앗게 할 거예요! 그리고 엄마가 남긴 재산 말이에요. 이윤미가 우리와 똑같이 나누지 않으면 절대로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제가 죽더라도 윤미가 혼자 독차지하게 두지는 않아요. 같이 죽더라도 저는 포기 못 해요. 제가 죽으면 제 자식들이 우리 엄마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잖아요. 윤미는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잖아요? 결국 손해 보는 건 걔예요!”말을 끝낸 정일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돌아서 나가버렸다.그는 정군호의 말을 듣기 싫었고 단 한마디도 더 하고 싶지 않았다.정일군과 정일호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결국 정일범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거실에 남은 건 한 노인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정군호는 치를 떨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이런 불효자들 같으니라고! 내가 어쩌다 이런 놈들을 낳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이렇게 둔한 놈들이 또 있을까.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말이야! 이은화, 너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어!”그의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졌고 늙은 몸은 분노로 떨렸다.관성.오후 세 시 반.노동명은 회사를 나와 우빈이가 다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유치원에 도착하니 4시까지는 아직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우빈처럼 유치원 버스를 타지 않고 부모가 직접 데리러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네 시가 되어야 나올 수 있었다.다리 불편한 노동명은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우빈을 기다렸다.그때 한 쌍의 늙은 부부가 그의 차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들의 손에는 햄버거 포장 봉투가 들려 있었다.그는 단번에 알아봤다.바로 우빈의 친조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003화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정씨 형제들이 보내온 호의를 분명히 받았다.그들은 예전부터 이은화에게 섭섭한 감정을 품고 있었고 이은화의 아들이 보내온 선물 역시 안 받으면 손해라고 여겼다.받으면서도 그저 이은화가 자신들에게 늦게나마 보상해 주는 셈으로 여긴 것이다.하지만 정씨 형제들이 꾸민 일에 동조해달라는 제안에는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증거도 없고 입으로만 약속한 일인데 정일범 형제들이 그들을 어쩌겠는가.그 많은 선물도 후배가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로 보낸 정도로 넘겨버리면 그만이었다.정군호는 참다못해 손바닥으로 아들의 팔을 탁 내리쳤다.그러고는 큰 소리로 꾸짖었다.“내가 몇 번을 말했어! 너희는 늘 귓등으로 흘려버리잖아. 너희가 이윤미랑 피는 섞였어도 성은 정씨야! 이씨가 아니라고! 이씨 가문의 규칙은 백 년이 넘게 이어졌는데 너희 때문에 그걸 바꿀 리가 없잖아. 바뀔 거였으면 진작에 바뀌었겠지. 지금까지 왔겠니? 그 사람들은 전부 이씨 가문의 일원이야. 당연히 자기 사람들 편을 들지 너희 같은 정씨 집안 사람을 왜 돕겠어? 그 사람들은 이윤미조차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너희가 돈으로 사서 자기들 편을 들게 만들겠다고? 헛된 꿈도 정도가 있지. 꿈에서도 그건 불가능해. 진짜 너희 어머니 쪽 사람을 도와야 한다면 차라리 이윤미를 밀지 너희들을 밀어주지는 않을 거야. 이윤미가 너희보다 훨씬 능력이 강하잖아. 관성 쪽 몇몇 큰 재벌가도 윤미의 체면은 봐줄 거야. 하지만 너희가 덤벼든다면 그 배후의 사람들이 단합해서 이씨 가문을 하루 만에 무너뜨릴 수도 있을 거다. 지금의 이씨 가문이 옛날의 이씨 가문이 아니야. 강성의 상류 사회에서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어.”꾸짖음은 계속 이어졌고 정군호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정군호는 한참을 퍼부으며 욕하다가 결국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세월이 그만큼 흘렀고 몸도 마음도 이미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그는 스스로 건강이 점점 악화되고 있음을 느꼈다.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에 정군호는 서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002화

    차 소리가 들리자 정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던 정군호는 옆에서 돌봐주던 도우미 아줌마에게 말했다.“나가서 한 번 봐. 혹시 도련님들이 돌아온 건 아닌지.”도우미 아줌마가 나가자 곧 세 아들이 앞뒤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그 광경을 본 정군호는 저절로 미간을 찌푸렸다.그제야 그는 살아생전에 아내가 왜 세 아들을 대할 때마다 쉽게 짜증을 내고 속이 터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정말이지 이 세 아들 때문에 속이 썩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들에게 실력을 유지하라, 더 이상 과욕 부리지 말고 고향에 돌아와 살라고 타이르고 또 타일렀건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설날 무렵 그는 아들들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갔었다.그때만 해도 아들들이 드디어 마음을 고쳐먹은 줄로만 알았지만 명절이 끝나고 이씨 그룹의 업무가 재개되는 날이 되자 세 아들은 또다시 들뜬 얼굴로 회사로 돌아가 버렸다.그 꼴을 본 정군호는 집에서 한참이나 분통을 터뜨리며 욕을 퍼부었다.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하예진이 이씨 가문의 새로운 가주가 될 것이다.하지만 두 집안 사이에는 이미 원수로 불릴 만큼 깊은 원한이 있는데 하예진이 정군호의 세 아들들을 순순히 놔두겠는가.이윤미는 그들과 함께 자라지 않아 생각의 뿌리부터 달랐고 게다가 지금 하예진의 편에 서 있었다.그 때문에 관성 쪽 사람들도 이윤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그나마 사정을 봐주며 수위를 조절했던 것이다.“아버지.”“아버지.”아들들이 차례로 부르자 정군호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이 근무 시간 아니냐? 너희들은 출근 안 해? 이렇게 시간 내서 돌아다닐 여유가 어디 있어?”그 말투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아니면 이씨 그룹이 한가한가? 그래서 너희들한테 장기 휴가라도 내주었단 말이냐?”말이야 바른말이지만 그 속에는 꾸짖음이 섞여 있었다.정일범은 정군호의 옆에 앉았다.정일호는 그들의 대화를 도우미 아줌마가 듣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에게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지 말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001화

    “그래도 제가 끝까지 오빠들을 설득해 볼게요. 며칠 안에 아버지랑 두 새언니를 만나 볼 거예요. 그분들이 나서서 오빠들을 좀 말려보게 해야죠.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면 정말 모른 척할 거예요. 그때 가서 예진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저는 못 본 척할래요.”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정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건 정일범 형제들이었다.하예진이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않아요. 그분들이 조용히 살고 더러운 수작질만 안 한다면 강성 중심에서 물러나 정씨 집안 쪽 고향으로 돌아가 사시면 돼요. 그분들이 지금 가진 걸 전부 빼앗지는 않겠어요. 반만 넘기면 충분해요.”하예진이 이렇게 말한 건 이윤미에게 체면을 세워주는 뜻이었다.정일범 형제에게 절반의 재산은 남겨주겠다는 말은 그들이 굶어 죽지 않게 해주는 최소한의 배려였다.“그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접지 않을 거예요. 분명 뒤로도 은근슬쩍 일을 꾸미겠죠. 예진 씨가 그들의 재산 절반만 요구한 것도 사실은 자비를 베푼 셈이에요.”세 오빠와 함께 지낸 시간은 고작 두세 해 남짓이었지만 이윤미는 그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은화가 생전에 세 아들을 직접 처리하지 못한 것도 결국 친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도 친아들에게는 칼을 들이대지 못할 것이다.하여 이은화는 결국 그 짐을 이윤미에게 넘겼다.이윤미는 포용심이 없는 여자가 아니었으나 세 오빠는 그녀를 원망했다.정일범 형제는 이윤미에게 아무런 형제애도 없었다.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없었다.그들은 오히려 그녀의 불행을 바랐다.그런데도 이윤미가 하예진에게 고개를 숙여 그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오직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해서였다.죽기 전에 이은화는 거의 모든 재산을 친딸인 이윤미에게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다.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사무실 안에서 대화를 이어갔다.그리고 이윤미는 하예진을 데리고 여러 부서를 돌며 회사의 구조와 업무 흐름을 직접 보여주었다.이씨 그룹의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4000화

    노동명은 하예진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그가 지금 두 다리를 잃게 된 것도 부모의 반대를 끝까지 꺾으려 한 결과였다.그는 자신의 다리로 부모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그 동의가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마지못해 한 연기였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하예진이 설명했다.“잘해 주세요. 두 분 다 저한테 정말 잘해 주세요. 그리고 우빈이도 받아주셨어요. 다만 지금은 우빈이가 이모와 함께 지내는 걸 더 편하게 느껴서 그래요. 시부모님이 우빈이를 데리고 있으려고 며칠이나 달래셨는데 끝내 동의하지 않더라고요. 우빈이는 태어나서부터 거의 예정이가 돌봐왔거든요. 제가 제일 힘들 때도 옆에서 도와준 사람은 예정뿐이었어요. 제가 집에 없을 때 우빈이도 꼭 이모랑 같이 있고 싶어 해요. 누가 아무리 잘해줘도 결국에는 이모를 택하더라고요.”노동명은 우빈이를 친아들처럼 아꼈지만 하예진이 관성에 없을 때마다 우빈이는 노동명보다 하예정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다행이네요. 적어도 노 대표님의 가족이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은 아니란 뜻이니까요.”두 사람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방윤림은 묵묵히 그들 뒤를 따랐다.대표실은 회의실과 같은 층에 있었고 회의실과 멀지 않았다.대표실로 돌아오자 하예진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꽃병에 꽂힌 장미꽃 한 다발이었다.그건 방윤림이 이윤미에게 선물한 꽃이었다.방윤림은 두 사람 앞에 따뜻한 물을 한 잔씩 따라두고 다시 과일과 간단한 과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모든 것을 정리한 뒤에야 조용히 대표실을 나갔다.하예진은 그가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방 비서님은 묵묵히 일을 잘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네요.”이윤미의 얼굴에 부드러운 온기가 번졌다.그녀와 방윤림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제가 좋아해요. 말수가 적지만 정말 세심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에요.”일할 때는 든든한 동료이고 삶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이은화가

  • 내 남편은 억만장자   제3999화

    그리고 지독하게 악행을 저질렀던 이은화, 하예진 일행은 결코 그녀의 묘소를 찾아 제사를 올리진 않을 것이다.하예진 쪽 가문에게는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하예진이 아무리 아량이 넓다고 해도 원수의 무덤 앞에 절을 올릴 정도로 관대하지는 않을 것이다.그래서 이윤미가 직접 돌아와 제사를 올려야 했다.어머니의 묘 앞이 썰렁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자식으로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도리였다.비록 이은화가 천만 가지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래도 그분은 이윤미의 어머니였다.“참. 예진 씨랑 노 대표님의 결혼식에는 저도 꼭 돌아올게요. 명색에 그래도 예진 씨 윗사람인데.”이윤미는 부드럽게 웃으며 늦은 축복을 건넸다.“예진 씨가 노 대표님과 인연을 맺게 되어 정말 기뻐요. 노 대표님은 예진 씨를 정말 아껴주시잖아요. 둘이 함께라면 분명 행복할 거예요.”노동명처럼 능력 있는 남자가 하예진을 위해 이씨 가문으로 들어오기로 한 일은 이씨 가문의 역사에서도 전례 없는 파격이었다.가주가 되는 여인의 남편이 능력 없는 재벌 2세가 아닌 진심으로 가주를 위해 문을 들어서는 사람이라니, 그건 새 시대의 시작이었다.“고마워요.”하예진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한 뒤 시선을 방윤림에게 옮겼다.“그럼 방 비서님이랑 언제 혼인 신고하실 거예요? 두 사람 결혼식에는 꼭 초대해 주세요. 저도 우리 결혼식 청첩장 드릴 테니까 윤미 씨도 저를 초대하셔야 해요. 윤미 씨 결혼식은 못 가면 섭섭할 거예요.”이윤미는 방윤림과 눈을 마주쳤다.그의 눈빛에는 부드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우리는 안 급해요. 정착할 도시를 찾으면 그때 가서 혼인 신고해도 늦지 않죠.”이제 강성을 떠날 준비를 하는 마당에 굳이 이곳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다른 도시에서 새로운 삶이 자리를 잡으면 그때 조용히 신고하고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싶었다.이윤미는 방윤림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전통 정원과 물이 흐르는 남쪽 지방의 한적한 분위기를 아주 좋아한다며 그런 풍경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