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뭔데요?”강선우가 다급하게 물었다.“이건 강 대표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시면 돼요.”공민서가 작은 유리병 하나를 강선우에게 건넸다.그 물건을 받은 강선우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시온에게 쓰라고요? 이게...”“이건 제가 해외에서 가져온 물건이에요. 무향 무색의 약이죠.”고개를 숙여 손톱을 내려다보며 말을 잇는 공민서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몇 알만 복용하면 천천히 지력에 손상을 주게 될 거예요.”“뭐라고요?”강선우가 인상을 찌푸렸다.“이런 약을 하온이에게 먹이라고요? 제가 정말 미치기라도 한 줄 알아요?”유리병을 깨뜨리려는 강선우를 보며 공민서가 냉소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심하온 씨밖에 없는 척은 이제 그만하세요, 대표님. 지금 대표님이 원하시는 건 정윤재를 망가뜨리고 두 사람의 결혼을 막는 거잖아요. 그러니 조금 전 제가 말한 일만 잘 마무리 하시면 정윤재는 본인 하나 챙기기도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거예요.”“거기에 심하온까지 이상 증세를 보인다면 두 사람의 정략결혼이 성사될 수 있을까요?”강선우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어떻게든 정윤재와 심하온의 결혼을 막을 수만 있다면 통쾌할 것 같았다.“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사 정윤재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다고 해도 심하온의 뇌가 손상이 된 이상, 정씨 가문에서는 그런 며느리를 원하지 않을 거예요. 강 대표님은 바로 그 기회를 틈타 심씨 가문으로 찾아가시면 돼요.”“심하온 씨가 어떤 모습이든 강 대표님은 여전히 심하온 씨를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다고 말하세요. 어쩌면 그 댁에서는 그런 강 대표님의 태도에 감동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심하온 씨도 다시 강 대표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피식, 웃음을 터뜨린 공민서가 말을 이었다.“물론 지력에 문제가 생기긴 했겠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여전히 강 대표님이 밤마다 그리던 심하온 씨잖아요. 강 대표님도 성공적으로 심씨 가문의 사위가 될 수 있고요.”공민서의 말에 강선우는 마음이 흔들렸다.오랜 고민을 끝낸 강선우가 갑자기
눈썹을 씰룩인 강선우가 주변을 훑어보았다.조금 전 여기로 오는 길에 강선우는 굳게 닫힌 문 여러 개를 볼 수 있었다.그 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강선우는 굳이 그 문에 관해 묻지 않았다.공민서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든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게다가 이번 신제품 출시회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강선우는 공민서에게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그러니 강선우는 동맹을 맺은 공민서를 해칠 이유가 없었다.“대표님, 한잔하실래요?”공민서가 손에 들고 있던 큐 스틱을 내려놓았다.“괜찮아요.”강선우가 거절하며 말을 이었다.“공민서 씨, 바로 본론부터 얘기하시죠.”테이블에 기대선 채 강선우를 쳐다보는 공민서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강 대표님께서 꽤 급하신가 보네요. 지금의 대표님은 전보다 훨씬 남자다워진 것 같네요.”강선우가 냉소 지었다.“이미 정윤재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어요. 그런 제가 뭘 더 걱정해야 할 게 있나요?”“좋아요.”공민서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정윤재를 진흙탕에 끌어내리려는 강선우의 모습이 공민서는 퍽 만족스러웠다.공민서가 손을 뻗자 옆에 있던 잘생긴 남자가 곧바로 그녀에게 태블릿 PC를 건넸다.그러자 공민서는 태블릿 PC의 화면을 톡톡 두드리고는 다시 강선우에게 건넸다.“정진 그룹에서 다음 달이면 해외로 물품을 운송할 거예요.”강선우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래서 그 물품이 수출되는 것을 막으라는 건가요?”“그건 아니에요.”공민서는 또다시 그 남자에게서 샴페인 한 잔을 받아 음미했다.“그 물품은 정진 그룹에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에요. 수출이 막힌다고 해도 기껏해야 손해를 조금 볼 뿐, 정진 그룹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을 거거든요. 제가 원하는 건 그 물품에 없던 물건이 하나 생기는 거예요.”강선우는 곧바로 공민서의 뜻을 알아차렸다.“어때요, 대표님?”공민서가 웃으며 잔 속의 샴페인을 가볍게 흔들었다.“물건은 제가 이미 준비했
강선우는 어쩔 수 없이 폐기 공장으로 들어갔다.무거운 문을 열자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미간을 찌푸린 강선우가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강선우를 본 남자는 곧바로 담배를 끄며 공손한 태도로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오셨습니까. 따라오시죠.”말하며 그들은 강선우를 안으로 안내했다.강선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확실해요?”“따라오시면 됩니다.”남자가 느긋하게 강선우의 말에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다.강선우는 두 사람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창고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낡고 어지러웠다. 여기저기 폐기된 부품들이 널려 있어 강선우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창고의 제일 안쪽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문이 있었다.문 옆을 더듬던 한 남자가 숨겨져 있던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문이 열리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두 남자가 휴대폰 플래시를 켜며 강선우에게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내고는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대표님, 계단 조심하세요.”강선우는 마지못해 두 남자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미간을 팍 찌푸린 채 걸음을 옮기는 강선우의 눈빛에는 짜증이 가득했다.‘왜 하필 이런 곳에서 만나려고 하는 거야? 재벌집 딸이면서 이런 곳이 불쾌하지도 않은 건가?’하지만 지하로 내려갈수록 강선우는 조금씩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강선우의 귓가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가 들렸고 그와 함께 옅은 향수 냄새가 느껴졌다.“여긴 대체 어디예요?”“내려가 보시면 알아요.”강선우는 울컥 올라오는 성질을 꾹 참아냈다.두 사람은 감정이 없는 딱딱한 기계 같았다.계단을 내려온 두 사람은 또 강선우를 데리고 수많은 코너를 돌아 겨우 철문 앞에 도착했다.한 명이 손을 들어 문 옆의 기계에 지문을 인식하자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그리고 보이는 풍경에 강선우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폐기된 공장의 지하에는 화려한 유흥업소가 있었다.그곳은 오로지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같은 일을 몇 번이고 반복한 후에야 고현주는 연재덕은 그 일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고현주를 절망에 빠뜨렸다.태원 그룹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아내와 딸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연재덕은 수많은 돈과 정력을 들여 그 일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다.그리고 연재덕은 고현주에게 거금을 쥐여주며 떠날 것을 요구했다.그런 연재덕의 모습에 고현주는 그가 이제는 자신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떠났음을 느꼈다.하지만 연재덕의 부하도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간 이상, 고현주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당시의 고현주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연재덕이 주는 돈을 받고 강운시를 떠나는 것이었다.그렇게 고현주는 강운시를 떠나 운정에 자리 잡았다. 자신을 부잣집 딸로 포장해 순조롭게 강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다.결혼 후 대원 그룹에 위기가 부딪혀 수심이 가득한 남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고현주는 연재덕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곧 그런 생각을 접어야 했다.연재덕이 그녀를 도울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주며 떠나라고 했을 때, 연재덕에게 두 사람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진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고현주가 연재덕을 찾아가는 건 부질 없는 짓이었다.하지만 심하온이 심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고현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재덕에게 부탁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지금의 연재덕은 이미 80세가 되어가고 있었다.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람은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어쩌면... 재덕 씨도 그렇지 않을까?’고현주는 도박을 한 번 해보기로 결심했다.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완벽히 들어맞았다.기적적인 한 수였다. 연재덕이 아니었다면 강선우의 처지는 더 처참했을 테니까.“엄마.”강선우 목소리에 생각에 잠겼던 고현주가 고개를 들었다.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고현주의 시선이 외출하려는 강선우에게 향했다
정윤재의 그 한마디는 마치 비수처럼 연재덕의 마음 깊숙이 꽂혔다.멀어지는 정윤재의 뒷모습을 보는 연재덕의 마음이 찢어졌다.사실 연재덕도 알고 있었다.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속죄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때 여자에 눈이 멀어 아내를 배신하고 내연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은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니 이제 와서 자신의 속죄를 위해 손자에게 한걸음 물러서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결국은 모두 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정윤재의 말이 맞았다.만약 그의 아내가 이 모든 일을 알게 된다면 연재덕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할 게 뻔했다.연재덕은 아내를 만나러 갈 면목이 없었다.연재덕의 잔뜩 굽어진 등은 그를 더욱 노쇠해 보이게 했다.정윤재가 심하온을 찾으러 정원에 갔을 때 그녀는 꽃밭 앞에 서 있었고 심하온의 옆에는 조경원이 그녀에게 꽃을 설명하고 있었다.심하온은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이 정윤재에게는 귀엽기만 했다.걸음을 멈추고 심하온을 쳐다보는 정윤재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따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이렇게 귀여운 사람에게 강선우는 어떻게 그런 상처를 줄 수 있었던 걸까?’그래서 정윤재는 도무지 인간 같지도 않은 강선우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분노를 거둔 정윤재가 걸음을 옮겨 심하온 곁으로 다가갔다.정윤재를 본 조경원이 곧바로 설명을 멈추었다.“도련님, 심하온 씨.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나지막이 인사를 건넨 조경사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심하온은 다가오는 정윤재를 발견하고는 순간 환한 미소를 지었다.심하온이 정윤재의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물었다.“할아버님과 얘기 다 했어?”정윤재가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심하온 역시 그때의 일에 관해 전부 알고 있었다.하지만 심하온은 연재덕과는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정윤재와 연재덕이 그 일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
힘껏 밀쳤을 뿐이었다.그 사람은 곧바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졌고 넘어지면서 머리를 세게 부딪히며 피가 새어 나왔다.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렸다.그때의 연재덕은 그 일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배상도 할 만큼 했고 그 일을 저지른 부하도 과실 치사로 실형을 선고받았다.연재덕은 피해자 가족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했다.그러니 그 일은 곧 연재덕의 머릿속에서 잊혔다.하지만 최근 들어 연재덕은 그때의 그 일을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 잠이 들면 그때의 일이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한 생명이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연재덕이 직접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고 해도 연재덕은 결국 그 사람의 죽음에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었다.연재덕은 가끔 눈물로 얼굴을 씻어내리며 자신을 비난하던 고현주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이미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연재덕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씻지 못한 죄를 품은 채로 눈을 감고 싶지는 않았다.그런 이유로 연재덕은 고현주의 부탁을 아무런 고민 없이 들어줄 수 있었다.연재덕에게 그건 속죄의 기회였다.“할아버지.”정윤재가 연재덕을 쳐다보았다.“그 사람이 고현주 씨 아버님이시죠.”의문형이 아니라 서술형이었다.긴 한숨을 내쉰 연재덕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시 고현주의 아버지는 어디에선가 연재덕이 고현주의 남자친구라는 얘기를 듣고는 몇 번이고 연재덕을 찾아와 돈을 달라며 소란을 피웠었다.많은 돈을 줬음에도 그 남자는 끝까지 만족을 몰랐다. 그는 한 번, 또 한 번 연재덕 앞에 나타났다.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연재덕은 부하에게 그 남자를 쫓아내라고 지시했다.하지만 그 지시에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제 반대편에 서는 방법으로, 저의 행복을 희생하는 방법으로 본인을 속죄하려고 하셨던 거네요. 그래요?”연재덕이 휙 고개를 들고 정윤재를 바라보았다.그 말을 꺼내는 정윤재의 눈빛은 덤덤하기만 했다.하지만 연재덕의 마음은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