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뒤로 넘길수록 춤을 추는 사진은 점점 더 많아졌다.그리고 사진 속 심하온의 어색하던 춤사위는 점차 자연스러워졌다.그녀의 표정도 단순한 호기심으로부터 진지하게 변해갔다. 무용을 향한 심하온의 열정을 사진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심하온은 무용을 진심으로 사랑했다.정윤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심장이 찌르르 저렸다.이때,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하며 알람을 울렸다.휴대폰을 확인하자 심하온에게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귀여운 고양이 이모티콘과 함께 한 글자로 된 문자였다.[자?]정윤재가 웃으며 답장했다.[아직 안 자.]그리고 곧 심하온이 정윤재에게 전화했다.곧바로 전화를 받은 정윤재가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온아.”“왜 아직도 안 잤어?”침대에 누운 심하온은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에는 베개를 들고 있었다.“뭐해?”정윤재가 무릎 위에 올려둔 사진첩을 힐끔 쳐다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서류 보고 있어.”만약 지금 그녀의 어릴 적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심하온은 부끄러움에 당장이라도 달려와 목을 조를지도 몰랐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그러면 하온이 볼 수 있겠네.’정윤재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서류 본다면서 왜 웃어?”심하온이 의아한 듯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정윤재가 곧 다시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넌 왜 아직 안 잤어?”“자려다가... 갑자기 윤재 씨가 보고 싶어서.”심하온이 말했다.“그래서 통화하고 싶었어.”괜스레 마음이 뜨거워진 정윤재가 입꼬리를 올리며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나도 보고 싶어.”“하지만 우리 오늘 저녁에도 같이 밥 먹었잖아.”심하온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제 떨어진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벌써 보고 싶은 거지? 이래도 되는 건가?”“당연하지.”정윤재가 말했다.“네가 날 사랑하고, 나도 널 사랑하니까 보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난 윤재 씨가 드라마 대사라도 읊는 줄
그 말을 들은 심기찬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심기찬이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 기다리자 잠시 후 심하온이 국수를 들고 식탁으로 걸어왔다.“아빠.”심하온이 가져온 면을 심기찬 앞에 놓으며 젓가락을 손에 쥐여주었다.“일부러 유영에게 배운 거예요. 유영이가 국수를 정말 맛있게 끓이거든요. 하지만 제가 유영이가 한 것만큼 맛있게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서 드셔보세요.”심기찬은 곧바로 심하온이 만든 국수를 한 입 먹은 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우리 딸 역시 대단하네.”“정말요?”심하온이 잔뜩 들뜬 표정을 지었다.“그럼 많이 드세요. 부족하면 얘기하시고요. 더 있어요.”“그래. 너도 같이 먹어.”“괜찮아요. 전 저녁 많이 먹어서 배불러요.”“윤재와 같이 먹었니?”심기찬이 물었다.“네.”고개를 끄덕인 심하온이 말을 이었다.“아, 아빠. 내일 윤재 씨와 윤재 씨네 외할아버님께 가기로 했어요.”그 말에 심기찬이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거길 왜 가. 그 영감이...”“아빠.”심기찬의 태도에 심하온이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그래도 윤재 씨 외할아버지잖아요.”비록 심하온 역시 연재덕이 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연재덕과의 사이를 회복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뻔했다.심기찬 역시 연재덕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 화풀이를 딸에게 할 수는 없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웃는 얼굴로 심하온이 해준 국수를 먹었다.심기찬이 식사를 마치자 심하온이 물었다.“아빠, 오늘 이렇게 늦게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그냥 친구들 모임이 있었어.”심기찬은 심하온에게 정윤재를 만났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얘기를 하다 보니까 시간이 늦었던데.”“그랬구나.”심하온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하품하며 몸을 일으켰다.“아빠, 전 먼저 들어가서 잘래요. 아빠도 일찍 주무세요.”“그래.”심기찬은 의자에 앉아 심하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러던 그는 갑자기 얼
심기찬의 얼굴에는 감춰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피어올랐다. 꼿꼿이 펴고 있던 등은 조금씩 굽어졌고 눈시울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나는 하온이에게 미안한 게 많아. 하온이 엄마에게도 너무 미안하고.”정윤재 역시 심하온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심기찬은 정윤재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강선우 그놈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심지어 그 고집스러운 성격에 힘든 일을 조금 겪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 고생 좀 하다 보면 더 일찍 정신을 차릴 거라고 생각했거든.”하지만 그 대가가 이렇게 클 것이라는 건 전혀 예상한 적 없던 일이었다.결국 강선우의 인품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심기찬 역시도 그가 이렇게까지 악독한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심기찬의 빨갛게 달아오른 눈시울과 감춰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켜보던 정윤재가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었다.“아버님, 지난 일은 아버님 잘못이 아니에요.”낮지만 다정한 정윤재의 목소리가 울렸다.잘못을 한 사람은 강선우와 강다인이었다.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심하온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진정한 죄인은 강선우와 강다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이 깊은 자책과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심기찬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하온이는 아직도 어릴 때와 같아. 그런 상처를 입고도 우리를 걱정하느라 아직도 알려주지를 않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걸 모르겠어.”“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어머니 친구분인 최 교수님께 치료를 부탁했어요.”정윤재가 말했다.“하지만 최 교수님도 하온이 다리가 완전히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직은 하온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고요.”심기찬은 정윤재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사실 나도 줄곧 세계 각 곳의 유명한 의사에게 하온의 다리를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어.”
“그 얘기를 듣고도 자상하다는 말이 나와?”“그건 젊으셨을 때 얘기잖아요.”정윤재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제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늘 자상하셨어요.”연미정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정윤재의 말에 연미정은 애써 정창호의 모습을 떠올렸다.정창호는 정윤재가 18살 때부터 산에서 지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 이전 연미정이 봤었던 정창호는 언제나 웃음기 없는 얼굴에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끔 정창호 앞에서 실수라도 하게 된 사람은 그의 눈빛 하나에 얼어버리곤 했었다.‘어딜 봐서 자상하다는 거야?’‘하긴, 그러니 다들 손주 사랑은 남다르다고 하는 거겠지.’연미정이 모르는 정창호는 어쩌면... 다정한 사람일지도 몰랐다.연미정이 계속 과일을 먹는 사이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정윤재가 몸을 일으켰다.“엄마,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요.”“어디 가는데?”연미정이 물었다.“시간도 이렇게 늦었는데.”정윤재는 연미정의 질문에 대답 대신 말했다.“일찍 쉬세요.”“저 자식이.”연미정이 멀어져가는 정윤재의 뒷모습을 보여 욕을 중얼거렸다.하지만 결혼할 사람까지 있는 다 큰 자식을 간섭할 필요는 없었다.연미정은 과일을 먹으며 다시 휴대폰에 열중했다....정윤재의 차가 한 별장으로 들어섰다.직원이 공손한 태도로 정윤재에게 길을 안내했다. VIP룸 앞에 선 직원이 문을 두드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정 대표님 오셨습니다.”“들어와.”안에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직원이 곧 허리를 숙여 정윤재에게 들어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들어가시죠.”정윤재가 문을 열고 VIP룸으로 들어갔다.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심기찬이었다.“아버님.”정윤재가 고개를 숙여 심기찬에게 인사를 건넸다.“왔나?”심기찬이 웃으며 말했다.“앉게.”정윤재가 심기찬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내서 미안해.”“미안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괜찮아요.”정윤재가 얼른 대답했다.심기찬은 남도 아닌 장인어른이 될 사람이었다.
“그래.”정윤재가 턱으로 슬며시 심하온의 머리를 쓸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했어.”“그럼 우리도 텔레파시가 통한 건가?”“우린 원래 마음이 잘 통했잖아.”괜히 마음이 간지러워진 심하온이 정윤재를 꽉 끌어안으며 그의 온기를 만끽했다.집으로 돌아온 심하온이 일 층에 있던 도우미에게 물었다.“아빠는요?”평소라면 서재나 안방에 있을 시간이었다.심하온은 심기찬과 회사와 관련해 할 얘기가 있었다.“대표님께서는 아직 들어오지 않으셨어요.”심하온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하지만 심기찬이 회사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긴 심하온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정윤재는 심하온을 집에 데려다주고 나서야 본가로 돌아갔다.거실에 앉아 과일을 먹던 연미정은 들어오는 정윤재를 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아들, 왔어? 와서 과일 좀 먹어... 너, 입이 왜 그래?”입술에 왜 상처가 났냐고 물으려던 연미정이 문득 뭔가를 알아차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더는 묻지 않았다.‘젊은 애들이라 뜨겁네.’정윤재 역시 연미정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소파에 앉아 입을 열었다.“삼촌께서 오늘 오셨어요.”“오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더니 왜 갑자기 온 거야?”정윤재에게 묻던 연미정은 곧 알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아, 나한테서 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화가 나서 며칠 일찍 왔나 보네.”정윤재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할아버지 댁에 가니까 할아버지와 싸우고 계시더라고요.”“그럴 줄 알았어.”연미정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쩌면 그녀는 연철민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몰랐다.“넌 오늘 왜 갑자기 할아버지 댁에 간 거야?”연미정이 물었다.“또 그 일 때문에?”“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정윤재가 대답했다.“내일 하온이와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가려고 했거든요. 하온이를 난처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해서 미리 말씀드리러 간 거예요.”연미정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그
말을 마치자마자 정윤재의 위험한 눈빛이 스쳤다. 심하온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았지만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다. 정윤재의 입술이 거침없이 내려앉아 거부를 허락하지 않는 기세로 그녀의 숨결을 모조리 빼앗았다.“읏...”정윤재의 키스에 심하온은 거의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였다.다행히 이곳에는 두 사람뿐이었다.수란재에서는 특별한 지시가 없는 한 누구도 함부로 다가오지 못한다.기운이 빠진 심하온은 힘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지만 그는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제압했다.키스가 끝났을 때 그녀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한것처럼 감각이 흐릿했다.“내가 그렇게 잘 속아?”정윤재가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시선을 맞췄다.심하온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원래 잘 속는 편이잖아.”그러곤 스스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그래도 그건 네가 날 사랑해서잖아. 나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긴장하고 신경 쓰는 거 맞지?”그 말이 정윤재의 귀에는 더없이 달콤했다.그가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심하온은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입술을 세게 물었다.순간 통증이 스쳤지만 정윤재는 피하지 않았다.그녀가 마음껏 그러도록 내버려 두었다.심하온은 흔적이 남은 그의 입술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나 괴롭힌 벌이야.”이건 반드시 갚아야 할 복수였다.“이렇게까지 앙심을 품어?”“조금 전에 일어난 일이잖아. 그걸 어떻게 잊어.”“그럼 더 확실히 기억하게 해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그녀를 소파 등받이에 밀어붙였고 다시 깊은 키스가 이어졌다....정윤재와 심하온이 자리를 뜰 때 지배인과 몇몇 직원들이 배웅을 나왔다.무심코 정씨 가문 황태자의 입가에 난 상처를 본 지배인은 잠시 멈칫했다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괜히 봐서도 물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차에 오르자 정윤재는 봉투 하나를 꺼내 심하온에게 건넸다.“이게 뭐야?”심하온은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선물.”“선물치곤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