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월요일 아침.은소예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오늘은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저녁 메뉴 결정.“이걸 언제 붙였어?”뒤에서 셔츠 소매를 정리하던 신시안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아침에.”“왜 갑자기?”“재밌잖아.”소예가 메모를 떼어 들었다.“조건은?”“조건?”“퇴근했다고 해놓고 집에서 일하기 금지. 회사 건물 나간 시간 기준. 일부러 일정 취소하기 금지.”시안이 웃었다.“벌써 규칙이 왜 이렇게 많아?”“당신이 이상한 방법 쓸까 봐.”“저녁 메뉴 하나 정하는데 내가 뭘 하겠어.”“몰라. 당신은 퍼즐도 내가 잠깐 자리 비우면 몰래 맞추잖아.”“그건 반칙 아니라고 했잖아.”“내 기준에는 반칙이야.”소예는 메모 뒷면에 볼펜으로 짧게 적었다.1.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간 시간 기준. 2. 업무 취소 금지. 3. 먼저 나간 사람이 증거 사진 보내기.시안이 메모를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증거 사진?”“응.”“어디서 찍어.”“회사 밖.”“진짜 할 거야?”소예가 다시 냉장고에 붙였다.“당연하지.”시안의 눈빛이 달라졌다.“좋아.”오전은 평범하게 흘렀다.NEXT ONE 사무실도 조용했다.급한 문제도 없었다.공차연이 오전 공유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소예가 불렀다.“차연아.”“네?”“오늘 오후 일정 뭐 남았지?”차연이 잠시 생각했다.“세 시 내부 확인 하나 있고요. 네 시 반 자료 검토 있습니다.”“네 시 반 건 오늘 꼭 해야 해?”차연이 소예를 봤다.“본부장님.”“왜?”“혹시 일찍 퇴근하시려고요?”소예의 표정이 멈췄다.“아니.”“방금 표정이 맞는데요.”“그냥 물어본 거야.”차연은 웃으며 말했다.“오늘 확인 안 해도 문제는 없는데 내일 오전으로 미루는 건 추천 안 합니다.”소예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 해.”“네.”“원래대로.”“네.”차연이 돌아서다가 다시 물었다.“대표님이랑 내기하셨어요?”소예가 노트북으로 시선을 내렸다.“일해.”“맞네요
일요일 오전 열 시 47분.은소예가 눈을 떴다.평소라면 이미 한참 전에 일어났을 시간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알람도 없었다.옆자리도 비어 있었다.소예는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찾았다.알림 몇 개를 확인하고 시간을 다시 봤다.10시 48분.“진짜 안 깨웠네.”어젯밤 보드게임 내기에서 정한 규칙.진 사람이 일요일 아침을 준비한다.그리고 이긴 사람은 스스로 눈을 뜰 때까지 깨우지 않는다.소예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주방 쪽에서 신시안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일어났어?”“응.”“잘 잤어?”소예는 식탁을 봤다.토스트.스크램블에그.샐러드.과일까지 있었다.그리고 커피는 없었다.소예가 물었다.“커피는?”“같이 마시러 가기로 했잖아.”“진짜 안 만들었네.”“게임 결과는 지켜야지.”소예가 의자에 앉았다.“몇 시에 일어났어?”“여덟 시 반.”“그럼 두 시간 넘게 뭐 했어?”“밥 준비하고.”“그게 두 시간이나 걸려?”시안이 대답하지 않았다.소예가 눈을 가늘게 떴다.“퍼즐 했지?”“……조금.”“몇 개?”“점수 안 세기로 했잖아.”“몇 개 했냐고.”“열한 개.”소예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시안이 앞을 막았다.“어디 가.”“퍼즐.”“밥부터 먹어.”“당신 혼자 열한 개 했잖아.”“경쟁 안 한다며.”“그래도 내가 자는 동안 하는 건 좀 그렇지.”“그럼 깨울까?”소예가 멈췄다.“그건 안 되지.”“그러니까 밥 먹어.”결국 소예는 다시 앉았다.아침을 다 먹은 뒤 둘은 밖으로 나왔다.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했지만 어느 카페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다.시안이 물었다.“어디 갈래?”“아무 데나.”“그게 제일 어려워.”“걷다가 보이는 데.”“진짜?”“응.”둘은 차도 타지 않았다.집 근처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평일에는 거의 지나가지 않는 길이었다.소예가 먼저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저기?”시안이 간판을 봤다.“괜찮아 보여?”“몰라.”“검색해볼까?”시안이 휴대폰을 꺼내
“잠깐, 잠깐.”은소예가 양손으로 액자 양쪽을 붙잡았다.“기울었어.”신시안이 반대쪽을 잡은 채 멈췄다.“안 기울었어.”“내 쪽이 내려갔잖아.”“바닥이 약간 기울어 보이는 거 아니야?”“그런 바닥이 어디 있어.”“오래된 집이면 있을 수도 있지.”소예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우리 집 오래됐다는 얘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지 마.”“그럼 당신 팔이 내려간 거겠지.”“신시안.”“알았어. 올릴게.”둘은 완성한 첫 번째 퍼즐을 액자 안으로 옮기는 중이었다.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천 조각이 단단하게 맞물려 있기는 했지만 조금만 힘이 잘못 들어가면 가장자리부터 들렸다.소예가 말했다.“천천히.”“하고 있어.”“오른쪽 조금.”“내 오른쪽?”“내 오른쪽.”“그럼 내 왼쪽이잖아.”“그러니까 당신 왼쪽.”“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지금 말했잖아.”둘은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서로를 보더니 웃었다.“퍼즐 맞추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든데?”시안이 말했다.소예도 인정했다.“그러게.”10분 뒤.첫 번째 퍼즐은 무사히 액자 안에 들어갔다.소예가 뒤로 물러섰다.“됐다.”시안도 옆에 섰다.야경 그림이 액자에 들어가자 전혀 다르게 보였다.며칠 동안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퍼즐이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그림 같았다.“괜찮지?”“응.”“벽에 걸면 더 괜찮겠다.”시안이 벽을 봤다.“주말에 필요한 거 알아볼게.”소예가 바로 말했다.“이번에는 같이 알아봐.”“왜?”“또 뭐 하나 빠뜨릴 것 같아.”“액자 고른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그래서 같이 하자고.”“알았어.”둘은 액자를 벽 아래쪽에 안전하게 세워두었다.그리고 동시에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두 번째 퍼즐.따뜻한 불빛이 켜진 작은 서점 그림.소예가 말했다.“뜯을까?”시안이 시계를 봤다.“열 시 20분.”“그래서?”“내일 출근.”“테두리만.”“그 말 믿어도 돼?”“이번에는 진짜.”시안이 웃었다.“뜯어.”조각이 쏟아졌다.
“잠깐.”은소예가 카드를 내려놓으려다 멈췄다.신시안이 물었다.“왜.”“당신 지금 웃었지?”“안 웃었어.”“웃었어.”“카드나 내.”소예는 시안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수상했다.분명 무언가 있었다.“당신 좋은 카드 있지?”“그걸 알려주면 게임을 왜 해.”“표정에 다 보여.”“내 표정 잘 모른다며.”“이제 좀 알아.”소예가 결국 카드를 내려놓았다.시안은 기다렸다는 듯 자기 카드를 꺼냈다.탁.“끝.”소예의 표정이 굳었다.“뭐가 끝이야?”“내가 이겼다고.”“잠깐만.”소예가 테이블 위를 확인했다.자기 점수.시안의 점수.남은 카드.다시 계산해도 결과는 같았다.두 점 차이.소예가 허탈하게 말했다.“또 두 점이야?”“응.”“이 게임 이상해.”“질 때마다 게임 탓할 거야?”“아니, 생각해 봐. 계속 한두 점 차이잖아.”“그만큼 비슷하게 한다는 거지.”소예가 카드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한 판 더.”시안이 시계를 가리켰다.밤 열 시 48분.“열한 시까지 한다며.”“12분 남았잖아.”“한 판이 12분 안에 안 끝나.”“빠르게 하면 되지.”“그리고 당신이 졌어.”소예의 손이 멈췄다.시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액자.”“…….”“진 사람이 알아보기로 했잖아.”소예가 카드 한 장을 괜히 만지작거렸다.“내일 알아볼게.”“약속 지켜.”“알았어.”“내가 골라?”“내가 진 거니까 내가 할게.”“좋아.”시안이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예가 뒤에서 말했다.“근데 다음 판은 내가 이길 거야.”“내일?”“응.”“또 내기할 거야?”“당연하지.”시안이 돌아봤다.“뭘 걸게?”소예가 잠시 생각했다.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오락실에서 시안이 인형 뽑기에 실패하면서 생긴 소원 하나.아직 쓰지 않았다.시안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말했다.“설마 그 소원 걸려고?”“그건 내 건데 왜 걸어.”“그럼 언제 쓸 건데?”“필요할 때.”“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시키려고.”소예
“그러니까 이걸 여기 놓으면 되는 거지?”은소예가 카드 한 장을 내려놓았다.신시안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안 돼.”“왜?”“거기 못 놔.”“설명서에는 된다는데?”“조건이 안 맞잖아.”소예는 설명서를 다시 펼쳤다.둘 사이에는 며칠 전 퍼즐과 함께 샀던 2인용 보드게임이 놓여 있었다.처음에는 정말 한 판만 할 생각이었다.문제는.게임을 시작한 지 15분이 지났는데 아직 첫 판조차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여기 봐.”소예가 설명서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같은 문양이면 연결 가능.”“그 아래.”“뭐?”“단, 상대 구역에 이미 같은 문양이 있으면 불가능.”소예가 아래쪽 작은 글씨를 읽었다.잠깐 침묵.“글씨가 왜 이렇게 작아?”시안이 웃었다.“게임 만든 사람한테 물어봐.”“아니, 중요한 규칙이면 크게 써야지.”“그러니까 안 되는 거 맞지?”소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카드를 다시 가져왔다.“알았어.”시안이 자기 카드를 내려놓았다.“그럼 나는 여기.”“잠깐.”“왜?”“그것도 안 되는데?”“돼.”“아니야.”이번에는 소예가 설명서를 시안 앞으로 밀었다.“그 아래.”시안이 읽었다.표정이 멈췄다.소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중요한 규칙인데 글씨가 작지?”시안이 카드를 다시 가져갔다.“그러네.”“그렇지?”“응.”“내가 맞았네.”“그건 아니지. 당신 것도 틀렸잖아.”“당신도 틀렸잖아.”“그래서 둘 다 틀린 거지.”소예가 팔짱을 꼈다.“왜 이렇게 인정이 없어?”“정확한 건 정확하게 해야지.”“회사 얘기 금지.”“이게 왜 회사 얘기야?”“그 말투가 회사야.”시안이 웃었다.첫 판은 40분 만에 끝났다.승자는 소예였다.단 두 점 차이.소예는 점수표를 시안 앞으로 밀었다.“봤지?”“두 점.”“이긴 건 이긴 거야.”“초보자 행운.”“당신도 초보자거든?”“한 판 더.”소예가 시계를 봤다.밤 열한 시 18분.“아까 한 판만 한다며.”“당신이 이겼
“이건 어때?”신시안이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은소예는 소파에 기대앉은 채 화면을 봤다.숲속 오두막.창문에는 노란 불빛이 켜져 있었고,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오른쪽 아래.2,000 PIECES.소예가 바로 화면을 밀어냈다.“싫어.”“그림도 안 봤잖아.”“봤어. 이천 개.”“천 개짜리는 이제 너무 쉽잖아.”“아직 완성도 못 했거든?”“거의 했지.”소예는 거실 한쪽 퍼즐 테이블을 봤다.‘거의’라는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처음에는 조각밖에 보이지 않던 그림이 이제 제법 형태를 갖췄다.야경의 건물도.하늘도.빛이 번지는 거리도.남은 건 비슷한 색이 몰린 부분뿐이었다.소예가 말했다.“다음 것도 천 개.”“그럼 이건?”시안이 화면을 넘겼다.바닷가 풍경이었다.소예가 바로 말했다.“바다는 안 돼.”“왜?”“파란색 너무 많아.”“그게 이유야?”“해보면 알아. 같은 색 많은 게 제일 힘들어.”시안이 피식 웃었다.“며칠 했다고 전문가 다 됐네.”“당신보다 많이 맞췄거든.”“첫날 졌잖아.”“그 뒤에는 내가 더 많이 했어.”“세어봤어?”“당연하지.”시안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걸 세고 있었어?”“당신은 안 셌어?”잠깐 침묵.소예가 눈을 가늘게 떴다.“셌네.”“조금.”“몇 개?”“말 안 해.”“신시안.”“다음 거나 골라.”결국 퍼즐은 고르지 못했다.마음에 들면 조각 수가 너무 많았고.천 개짜리를 찾으면 그림이 마음에 안 들었다.소예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냥 지금 거 다 맞추고 사자.”“갑자기?”“완성도 안 했는데 다음 거 찾으니까 이상해.”시안도 휴대폰을 내려놨다.“그럼 지금 할까?”“지금?”시계를 봤다.밤 아홉 시 반.소예가 퍼즐 쪽을 한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30분만.”시안도 따라 일어났다.“어제도 그 말 했던 것 같은데.”“오늘은 진짜.”“타이머 켜.”“나 못 믿어?”“응.”“너무 바로 대답하는 거 아니야?”30분 타이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