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네 친아버지다.”연희는 떨어진 휴대폰을 바라봤다.스피커에서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연희야.”연희가 천천히 휴대폰을 주웠다.“당신 누구야.”“정말 모르겠니?”“말해.”“네가 어릴 때부터 나를 뭐라고 불렀는지 생각해 봐.”연희의 눈빛이 흔들렸다.머릿속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아버지 장례식 날.자신의 어깨를 잡고 끝까지 울지 말라고 했던 남자.어머니가 친척들에게 소개했던 사람.아버지의 친구라고만 알고 있었다.“아저씨……?”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웃음이 들렸다.“그래.”연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죽은 줄 알았는데.”“죽었다고 믿게 만든 거야.”“누가?”“네 어머니.”연희가 정애를 바라봤다.정애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엄마?”정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연희야.”“설명해.”“네가 어릴 때부터 그 사람을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그런데 왜 내 앞에 있었어?”“네 아버지와 약속했어.”“무슨 약속?”“네가 안전해질 때까지 숨기기로.”연희는 헛웃음을 흘렸다.“안전?”“그래.”“그럼 지금까지 내가 안전했어?”정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희는 다시 전화에 대고 말했다.“당신이 내 친아버지라면 왜 지금까지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남자가 잠시 침묵했다.“네가 나를 찾는 순간 혜경이 움직일 테니까.”“그럼 지금은?”“이미 움직였어.”연희의 시선이 혜경에게 향했다.혜경은 아무 표정도 없었다.“당신이 내 아이를 없애려고 했어?”“아니.”“그럼 누가?”“내가 막으려고 했어.”연희가 눈을 찌푸렸다.“뭘?”“네 아이가 아니라.”남자가 말했다.“네가 죽는 걸.”연희는 숨을 삼켰다.“무슨 소리야?”“네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혜경은 네 몸을 조사했어.”“왜?”“네 혈액형 때문이야.”연희가 멈칫했다.“혈액형?”“네가 태어난 날 기록된 혈액형과 지금 네 혈액형이 다르다.”도율이 바로 반응했다.“그건 말이 안 됩니다.”“가능하지.”남자가
“내 남편은 이미 죽어 있었어.”연희는 혜경을 바라봤다.“그럼 사진 속 남자는 누구예요?”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출생기록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그게 중요하니?”“중요해요.”연희가 한 걸음 다가갔다.“내 인생이 전부 거짓말이었는데.”“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그러니까 말해요.”혜경은 연희를 바라봤다.“네가 태어난 날 병원에는 두 명의 산모가 있었어.”연희의 표정이 굳었다.“한 명은 네 친엄마.”혜경의 시선이 옆의 여자를 향했다.“그리고 다른 한 명은 나였지.”여자의 얼굴이 굳었다.“거짓말.”혜경이 차갑게 웃었다.“정말?”“당신이 임신한 적이 있었다고?”“있었어.”혜경이 배를 내려다봤다.“하지만 아이는 죽었지.”연희는 숨을 삼켰다.“그럼 사진 속 아기는?”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여자가 먼저 말했다.“내 아이야.”“그런데 혜경 씨가 안고 있었잖아요.”“빼앗겼어.”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출산하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아이가 없었어.”연희가 혜경을 노려봤다.“당신이 가져간 거예요?”혜경은 침묵했다.“대답해요.”“그래.”짧은 대답이었다.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왜?”“내 아이가 죽었으니까.”혜경의 눈빛에는 감정이 없었다.“나는 빈손으로 병원을 나갈 수 없었어.”여자가 달려들려 하자 세아가 막았다.“하지 마세요!”혜경은 계속 말했다.“그 아이를 데려갔어.”연희의 심장이 뛰었다.“그 아이가 누구인데요?”혜경이 연희를 바라봤다.“너야.”모두가 얼어붙었다.“뭐?”“네 친엄마가 낳은 아이를 내가 데려갔어.”혜경이 말했다.“그리고 네 아버지에게 넘겼지.”정애의 말이 떠올랐다.네가 내 딸이 아니라는 거.연희는 숨을 삼켰다.“그럼 나는….”“그래.”혜경이 대답했다.“정애가 키운 아이는 네 친엄마가 낳은 아이야.”연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그런데 왜 출생기록을 바꿨어요?”“네 친엄마가 아이를 찾지 못하게 하려고.”“왜?”“그 여자가
쾅!철문이 흔들렸다.연희가 뒤를 돌아봤다.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저쪽으로 가.”여자가 연희의 손목을 잡았다.“어디로요?”“기록실 뒤쪽에 비상통로가 있어.”세아가 급하게 문을 닫았다.“연희야, 빨리!”도율이 문 앞을 막아섰다.“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도율 씨.”“가세요.”연희는 움직이지 않았다.“저 사람들 누구예요?”도율이 대답했다.“확인해 보겠습니다.”쾅!이번에는 문이 크게 흔들렸다.여자가 연희의 손을 잡아끌었다.“지금 가야 해.”세 사람은 기록실 안쪽으로 뛰었다.낡은 캐비닛 뒤에 좁은 통로가 있었다.여자가 벽의 작은 손잡이를 당겼다.철문 하나가 열렸다.“여기로.”연희가 들어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도율이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도율 씨!”“가세요!”철문이 닫혔다.곧이어 바깥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연희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통로 끝에는 오래된 계단이 있었다.몇 층을 올라갔을까.여자가 갑자기 멈췄다.“잠깐.”연희가 돌아봤다.“왜요?”여자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네가 봤던 수술기록.”“네.”“그 기록은 진짜야.”연희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수술한 사람은 누구예요?”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세아를 바라봤다.세아가 고개를 숙였다.“내가 봤어.”“뭘?”“수술실 들어가는 사람.”연희가 세아에게 다가갔다.“누구였어?”세아는 입술을 떨었다.“혜경 씨가 아니었어.”“그럼?”“남자였어.”“누구?”세아가 눈을 감았다.“최무겸 씨 아버지.”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죽은 사람인데?”“그때는 살아 있었어.”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 사람이 의사였어?”세아가 고개를 저었다.“의사는 아니었어.”“그럼 왜 수술실에 들어가?”세아가 대답했다.“수술을 지시하러.”연희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그럼 내 아이를 없애라고 지시한 사람이….”“응.”세아가 눈물을 흘렸다.“최무겸 씨 아버지야.”연희는 벽에 기대섰다.머
“세아!”연희가 빈 병실로 뛰어들었다.침대 위에는 구겨진 이불만 남아 있었다.창문은 닫혀 있었다.병실 문도 잠겨 있었다.“어떻게 사람이 사라져요?”연희가 간호사에게 소리쳤다.“방금 정전됐을 때 잠깐 복도가 어두워졌습니다.”“몇 분이나요?”“채 일 분도 안 됐어요.”도율이 병실 안을 살폈다.“창문으로 나간 건 아닙니다.”연희가 침대를 바라봤다.“그럼 어디로 갔어?”도율이 바닥을 가리켰다.“이걸 보세요.”침대 아래에 작은 플라스틱 카드가 떨어져 있었다.연희가 집어 들었다.낡은 출입카드였다.앞면에는 세강병원의 로고.뒷면에는 붉은 글씨가 찍혀 있었다.구관 지하 1층.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아까 전화한 여자가 말한 곳.”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가능성이 있습니다.”“가요.”“잠깐.”도율이 연희의 팔을 잡았다.“정전 직후입니다. 누군가 일부러 전원을 끊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그래도 가야 해요.”“혼자 가지 마세요.”연희는 대답 대신 카드를 움켜쥐었다.“세아가 저 아래 있을 수도 있어요.”두 사람이 병원 지하로 내려갔다.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계단을 내려갈수록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옅어졌다.대신 오래된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구관 지하 1층.복도 끝에 철문 하나가 있었다.카드를 대자 붉은 불빛이 켜졌다.삑.문이 열렸다.안쪽에는 오래된 의무기록 보관실이 있었다.철제 캐비닛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연희가 안으로 들어갔다.“세아!”대답이 없었다.도율이 손전등을 켰다.그때 연희가 멈췄다.바닥에 신발 자국이 있었다.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두 종류였다.하나는 여성용 구두.다른 하나는 남성용 구두.“누군가 여기 있었어요.”도율이 자국을 따라갔다.복도 끝에 작은 문이 하나 더 있었다.문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연희가 손잡이를 잡았다.그 순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오지 마.”연희가 얼어붙었다.세아였다.“세아야?”“연희야.”“문 열어.”“
“최무겸의 아버지였어.”세아의 말이 떨어지자 연희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사진 속 남자는 분명 최무겸의 아버지였다.젊은 시절의 얼굴이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그런데 이상했다.“잠깐.”연희가 사진을 확대했다.남자 옆에 서 있는 여자가 있었다.낯선 여자였다.하지만 손목에 찬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이 시계…….”정애가 사진을 보더니 그대로 굳었다.“왜?”“엄마가 갖고 있던 거잖아.”정애의 입술이 떨렸다.“그건…….”“엄마가 아빠 유품이라고 했던 시계.”정애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럼?”“그 시계는 네 친엄마가 차고 있었어.”연희의 눈이 커졌다.“뭐?”정애가 사진을 똑바로 바라봤다.“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사진 한 장을 보여줬어.”“이 사진?”“아니.”정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사진 속 여자만 따로 찍힌 사진이었어.”연희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그 여자가 내 친엄마야?”정애는 대답하지 못했다.연희가 다급하게 물었다.“엄마!”“그래.”정애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 여자가 네 친엄마야.”복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연희는 사진 속 여자를 다시 바라봤다.“그럼 아빠는?”“네 아버지는 그 여자를 사랑했어.”“그런데 왜 나를 데려온 거야?”정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그 여자가 너를 낳고 사라졌으니까.”“어디로?”“죽었다고 들었어.”“누가?”“최혜경 씨.”연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혜경이 엄마한테 직접 말했다고?”“그래.”“친엄마가 죽었다고?”“응.”“그걸 믿었어?”정애가 고개를 숙였다.“그때는 믿을 수밖에 없었어.”연희가 웃었다.“역시 또 혜경이네.”그때 세아가 입을 열었다.“연희야.”“왜.”“그 여자는 죽지 않았어.”연희가 세아를 돌아봤다.세아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내가 그걸 확인했어.”“어디서?”“네 출생기록을 찾다가.”세아가 숨을 삼켰다.“사망신고가 없었어.”도율이 바로 반응했다.“사망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연희의 얼굴이 굳었다.“뭘?”정애는 입을 열지 못했다.연희가 한 걸음 다가갔다.“엄마.”정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네가 내 친딸이 아니라는 거.”순간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정애에게 쏠렸다.연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다 아주 천천히 물었다.“그럼 나는 누구 딸이야?”“연희야.”“대답해.”정애가 고개를 숙였다.“나도 몰라.”연희가 헛웃음을 흘렸다.“이제 와서?”“정말 몰라.”“그런데 내가 친딸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아?”정애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가리켰다.“네가 태어났던 날… 네 아버지가 아기를 데리고 집에 왔어.”“아기?”“너였어.”연희의 눈이 흔들렸다.“병원에서 데려온 아기를 나한테 건넸어.”“왜?”“그냥 키우라고 했어.”“친딸이라고?”“그래.”정애가 울먹였다.“나는 처음엔 믿었어. 그런데 몇 달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무슨 연락?”“출생기록에 문제가 생겼다고.”연희가 숨을 삼켰다.“그때 알았어?”“네가 우리 부부의 친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그런데 왜 계속 키웠어?”정애는 눈물을 닦았다.“이미 넌 내 딸이었으니까.”연희의 입술이 떨렸다.“그 말로 끝이야?”“아니.”정애가 고개를 저었다.“끝낼 수 없었어.”그녀가 낡은 사진을 꺼냈다.“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나한테 이걸 남겼어.”연희가 사진을 받아 들었다.사진 속에는 젊은 정애와 남편, 그리고 갓난아기였다.사진 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연희가 태어난 날과 같았다.그런데 사진 아래 작은 문장이 있었다.‘이 아이를 절대 세강에 돌려보내지 마.’연희가 숨을 멈췄다.“세강에?”정애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는 그 말의 뜻을 몰랐어.”“지금은?”“조금은 알아.”정애가 세아를 바라봤다.“혜경 씨가 네 출생기록을 찾으라고 했다는 걸 들었으니까.”세아가 고개를 숙였다.“미안해.”연희가 세아를 바라봤다.“너는 왜 그걸 찾았어?”“혜경 씨가